<천감 선자가 나에게 매우 은근하고 간절하게(天鑑禪子 求我於一言)>
일생을 아무 기량도 없이 一生無伎倆
그냥 백발의 늙은이가 되었도다. 虛作白頭翁
종이를 뚫어 깨달음을 구함은 鑚紙求眞覺
모래를 쪄서 밥 짓는 것과 같도다. 蒸沙立妄功
허공 꽃을 바위 위에 심고 空花栽石上
끓는 물을 목구멍으로 삼키도다. 燄水吸喉中
사변의 그물을 빠져나오지 못하고 難出四邊網
팔도의 바람을 늘 따르누나. 長隨八倒風
진주를 쥐고서도 구걸함이 슬프고 持珠悲乞丐
보배를 지니고도 빈궁함이 한스럽다. 守藏恨貧窮
나의 가보를 알고 싶은가. 欲識吾家寶
가을 하늘 점점이 나는 기러기로다.23) 秋天亂點鴻
<송암 도인에게(松嵒道人)>
산 속에서는 문자를 금하나니 林下閑文字
많을수록 마음이 산란하니까. 多多必亂心
정겨운 시도 오직 한 수만 情詩唯一首
그것으로 나의 노래 충분하다오.24) 可以偹吾吟
<천민 선자에게 답하다(酬天敏禪子)>
텅 비어 본래 한 물건도 없는데 虛寂本無物
어찌하여 수고스럽게 대장경을 전독하나. 何勞轉大藏
가을 강에 비친 서늘한 달빛은 秋江寒月色
원래 장왕의 전유물이 아닌 것을.25) 元不屬張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