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Journal of Buddhist Thought and Culture
Institute for Buddhist Studies
일반논문

대한불교조계종 통합종단 60주년 포교의 회고::

오종만(금강)*
Jong-man(Ven. Kum-gang) Oh*
*중앙승가대학교 교수
*Professor, Joong-Ang Sangha Univeri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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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ceived: May 21, 2022; Revised: Jun 08, 2022; Accepted: Jun 18, 2022

Published Online: Jun 30, 2022

국문 초록

본 논문에서는 1962년 통합종단 출범 이후 현재까지 실행된 포교 사업을 정리하고, 이후 포교활동을 전망하였다. 통합종단은 출범한 직후부터 ‘포교’를 종단의 3대 목표로 제시하였지만, 종단의 정치적 혼란으로 체계적인 종책 수립과 집행을 하지 못했다. 1977년 서옹스님이 과감하게 도입하였던 포교원의 별원화도 당시 종단의 분규로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유명무실해졌다. 종단의 공백을 메꾼 것은 종단 밖의 재가불자들과 스님들의 원력이었다. 도심포교, 신도교육 등 현재는 익숙한 포교 체계와 내용은 당시 이들의 노력 덕분에 가능하였다. 1994년 종단개혁으로 포교원이 인사권과 예산권을 갖춘 기구로 독립하면서, 종단차원의 체계적으로 포교정책이 수집되고 집행되기 시작하였다. 1대부터 7대 포교원까지 매 포교원은 다양한 종책을 수립하고 집행하고 있다. 하지만 2005년 『포교비전』이 발표된 이후 더는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포교전략과 비전이 검토되지 않고 있다는 아쉬움이 있다. 사회변화에 대한 전망을 반영하는 포교 전략을 수립하고, 이 전략 추진을 위한 종책 수립과 집행이 필요하다. 또한 포교원에 수립한 포교 프로그램이 일선 사찰에서 수용되고 실천될 수 있도록 교육기관에서 교육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사찰의 공공성을 강화하는 포교 프로그램이 적극 실천되어야 한다. 코로나19 이후 사찰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요구는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모든 종교가 이에 대한 대처를 잘하지 못하고 있어 종교의 영향력이 감소하고 있다. 공적 역할을 강화하고 사회적 기대를 충족시킴으로써 불교의 포교역량은 더욱 높아질 수 있다.

Abstract

In this paper, propagation projects that have been implemented since the launch of the integrated order in 1962 have been summarized, and propagation activities have been predicted. Immediately after the launch of the integrated order, "Propagation" was presented as the three main goals of the order, but due to the political turmoil within the Jogye order, systematic policy establishment and execution were not achieved. The independent operation of the Dharma Propagation Bureau, boldly introduced by Supreme Patriarch Seo-ong in 1977, also became nominal without any results due to the order's dispute at the time. The work of the Buddhist monks and believers outside a formal order administration filled the absence of the Jogye order. The propagation system and contents that are now familiar, such as urban propagation and Laypeople Education in Buddhist Temples, were possible thanks to their efforts at the time. With the 1994 Reformation Order, as Dharma Propagation Bureau became independent as an organization with personnel and budget rights, propagation policies began to be collected and implemented systematically at the order level. From the 1st to the 7th Dharma Propagation Bureau, that Bureau establishes and implemented various policy measures. However, it is regrettable that since the 『Propagation Vision』 was announced in 2005, propagation strategies and visions from a long-term perspective are no longer being reviewed. Therefore, it is necessary to establish a propagation strategy that reflects social change prospects and develop and implement a policy to promote this strategy. In addition, educational institutions should be cooperated so that propagation programs formulated by Dharma Propagation Bureau can be accepted and implemented in front-line temples. Finally, a propagation program that strengthens the publicness of the temple should be actively implemented. Since the COVID-19 pandemic, the demand for the social role of temples has been increasing. However, as all religions are not coping well with this, the influence of religion is decreasing. Therefore, Buddhism's propagation capacity can be increased by strengthening public roles and satisfying social expectations.

Keywords: 조계종; 포교; 포교 종책; 포교원; 사찰의 사회적 역할
Keywords: The Jogye Order; Propagation; Propagation Policy; Dharma Propagation Bureau; The Social Role of Temples

Ⅰ. 서론

승가의 규모가 60명에 이르자, 부처님은 ‘법을 설하라’는 당부를 제자들에게 전하였다. 이처럼 부처님께서 제자들에게 전한 첫 당부가 ‘포교’였다. 부처님의 당부를 받은 60명의 비구들은 저마다의 길을 떠났고, 그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마을들에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였다.

한국불교도 마찬가지이다. 불교가 이 땅에 전래된 이후 1,700여 년 동안 다양한 부침을 겪었지만, 포교 그 자체를 멈춘 적은 없었다. 시대 상황과 여건에 따라 때로는 침체되기도 위축되기도 했지만 언제나 어려움을 극복하고, 또다시 포교 활동을 시작하였다.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 그리고 한국전쟁 이후의 한국불교도 그러했다. 숭유억불 정책에 의해, 사찰령에 의해 억압받고 탄압받았던 한국불교는 정화불사를 통해 일제 잔재를 청산하고, 일신한 모습으로 포교에 큰 뜻을 두었다. 통합종단을 이룬 1962년 대한불교조계종은 포교와 역경, 도제양성을 3대 지표로 제시하였다. 하지만 정화불사라는 엄중한 상황에서 포교 사업을 제대로 집행하기 어려웠다. 그러다 1994년 종단개혁 시에 포교원이 독립기구가 되면서 획기적으로 변화하였다. 본 연구는 여기에 주목한다. 즉 포교원이 독립기구가 되면서 종단의 포교 종책과 사업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를 집중적으로 검토하고, 이에 기반하여 향후 전망을 정리할 것이다.

종단의 포교 전반을 정리하고 이를 분석한 연구는 그리 많지 않다. 여성, 청소년 등 특정 주제에 대한 연구는 많지만, 종단 단위에서 포교 종책 전반을 검토한 연구는 많지 않다(김은영, 2017). 정리해야 하는 막대한 자료의 양과 ‘포교’보다 ‘수행’이 우선시 되는 승가의 문화도 일정한 영향을 주었다고 판단된다.

그럼에도 한국불교는 내외의 어려움을 극복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새로운 ‘전환’을 앞두고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이 글에서는 지난 60여 년의 포교 발자취를 간략하게 정리하고 전환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를 ‘포교’의 관점에서 정리하고자 한다. 이때 주요한 것은 지난 과거를 어떤 관점에서 정리하는가이다. 유승무(1999)는 통합종단 출범 이후의 포교를 종책화와 제도화의 관점에서 정리하였다. 조기룡(2012)은 통합종단 출범 50년을 기념한 논문에서 현대화의 관점에서 포교의 역사를 정리하였다. 그는 현대화를 도시포교와 기복불교의 탈피로 이해하였고, 기복불교의 극복을 위해 도심사찰의 창건과 신도교육이 요구되었다고 정리하였다.

본 연구는 포교원의 독립기구화와 종책의 관점에서 종단의 포교 역사를 정리하고자 한다. 이는 지난 60년 간의 포교를 회고하고, 향후 포교 과제를 도출하고 방향을 제언하려는 본 연구의 목적 실현을 위해서는 대한불교조계종의 포교 핵심기구인 포교원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Ⅱ. 포교 60년 정리 (1): 포교의 정체와 자각1)

본 연구에서는 조계종단의 60년 포교 역사를 1994년을 기점으로 구분하여 정리하였다. 1994년 종단개혁의 성과로 포교원이 총무원에서 독립하였고, 이를 통해 종단 중심의 체계적인 포교 종책 수립과 집행이 가능해졌다. 포교원이 온전하게 독립2)하기 전에는 종단보다는 종단 밖 재가불자와 일부 스님들을 중심으로 포교가 진행되었다는 특징이 있다. 이러한 특징은 정화불사와 종단 분규로 이어지는 혼란으로 인해 더욱 가중되었다. 이후 종단이 안정화되고 종단개혁을 통해 제도화·체계화되면서 포교의 중심도 종단 밖에서 종단으로 변화하였다.

1. 포교 종책
1) 종단통합에서 10.27법난까지

1962년 정화불사의 성과로 통합종단이 출범하였고, 종단은 포교와 역경, 도제양성을 3대 지표로 제시하였다. 이를 통해 종단의 내실화와 사회활동에 대한 관심을 엿볼 수 있다. 3대 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종단은 제2회 정기중앙종회(1962.12.26.-30.)에 포교법과 교육법, 역경법을 상정하였고, 포교법과 교육법은 28일에 제정 의결하였다. 그리고 제5회 정기중앙종회(1963.11.18.-19.)에 ‘3대 사업 추진의 건’이 상정되었고, 한 차례 이월된 이후 제6회 임시중앙종회에서 통과되었다. 교무부에서 발의한 ‘3대사업 추진의 건’에 포교사업은 교도(신도)단체 지도체제 확립, 순회포교 및 선전, 종군포교, 포교사 재교육에 관한 세부 내용이 담겨있다(조기룡, 2012: 447-448). 그리고 1966년에는 ‘한국불교 중흥의 해’를 선포하고 종단적 차원에서 포교를 추진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였다. 그 이후 포교는 종단의 3대 종책사업으로 굳어지게 되었다(불교신문, 2008.03.01.).

종단에서는 신도단체법 등 관련법을 제정하여 포교 환경 구축을 위해 노력하였다. 앞서 언급했듯이 포교를 지원하기 위해 제2회 중앙중회(1962.12.25.)에서 제정된 포교법에서는 포교의 종류와 포교기관, 포교사, 포교 강습회 등을 규정하였다. 또한 이 법에서 포교를 ‘전법도생의 근본사명을 다하기 위하여 불교 교리 선포와 사회교화’를 목적으로 하는 활동으로 정의하고 있다(포교원, 2011). 이 법의 시행에 따라 1963년 9월 10일부터 25일까지 ‘전국포교사강습회’가 개최되었고 총 23명이 수료하였다.

이처럼 포교이념의 확립과 제도화는 비교적 이른 시기부터 이루어졌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제도화가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지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였다. 우선, 해방 이후 그리고 1950-60년대 불교계의 갈등이 1990년대까지 지속되었다. 비구-대처 간에는 법정 다툼이 지루하게 계속되었고, 이는 결국 1970년 태고종이 분종하여 한국불교계가 여러 종파로 분열되는 결과를 낳았다. 게다가 종단 내부에도 갈등과 분쟁/분규가 내재해 있었다. 안타깝게도 종단 내부에서 1970년대 이후 종권을 둘러싼 싸움이 시작되어 1980년대 중반까지 계속되어 종단 내부의 불평등 구조가 확대되었다(유승무, 1999). 이러한 종단 갈등과 분규는 종단 차원의 포교를 제약하는 조건이 되어, 포교활성화를 위한 종단의 사업이나 활동은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2) 10.27법난에서 종단개혁까지

이 시기는 1908년대부터 90년대 초반을 포괄하는 시기이다. 포교의 침체기라고 규정한 60-70년대에도 포교활동은 중단되지 않았고, 당시에 쌓인 성과들이 80년대부터 본격화되기 시작하였다. 다만 이 시기를 70년대와 구분한 이유는 1980년에 있었던 10.27법난 때문이다.

1980년대 한국사회는 산업화의 성과로 경제가 눈에 띄게 성장하였고 수도권을 중심으로 도시화가 진행되었다. 삶의 질이 향상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종교적 삶을 찾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불교계에는 1980년 ‘10.27법난’이라는 커다란 사건이 있어서 역사의 큰 변곡점이 되었다. 그리고 이 사건은 포교활동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10.27법난으로 한국불교와 종단은 커다란 피해를 입었다. 10.27법난을 자행한 신군부세력은 대외적으로는 종단의 오랜 분규와 부정부패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정부의 진상조사를 통해 종단의 자주화 움직임에 제동을 걸고 불교를 희생양으로 삼아 신군부 집권의 정당성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었음이 드러났다. 하지만 당시의 부정적인 언론 보도로 인해 불교계의 이미지 악화는 포교활동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 영향은 현재에도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된다. 또 다른 측면으로 우리가 주목할 점은 10.27법난의 영향으로 불교계 내부에서 자각과 성찰이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그 결과 개혁적이고 민주적인 의식을 갖춘 스님들이 성장하였고, 이 스님들에 의해 포교활동에도 새로운 전기가 마련되었다.

하지만 종단 차원에서는 아직도 급속한 산업화·도시화의 사회흐름을 읽고 부응하는 노력은 미미하였다. 여전히 종단의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포교 종책은 없었다. 도심포교는 거점 마련 이상의 의미를 담지 못하였다는 한계도 있다. 이는 80년대 이후 건설된 신도시로의 진입 실패로 이어졌다. 그 결과 수도권에서 불교는 개신교, 가톨릭에 이어 종교인구 3위의 종교로 전락하였다.

몇몇 원력이 있는 스님들에 의해 서울, 부산 등에 포교당이 개설되어 활발한 포교활동을 전개하였다. 도심포교당의 수가 급속하게 증가하였고, 도심포교당이 새로운 사찰 유형으로 인정되었다. 즉 포교활동이 어느 정도 지속적으로 전개될 수 있는 조건이 형성되었다.

2. 종단 밖 스님과 재가불자 중심의 포교활동
1) 종단통합에서 10.27법난까지

중앙종단의 빈자리는 포교에 헌신한 스님들과 재자불자들에 의해 메꾸어졌다. 1970년대 후반부터 도심포교와 국제포교가 시작되었다. 개별 스님들이 여러 현장에서 포교 성과를 거두었다. 산업화와 도시화로 도시인구가 급격하게 늘어나는 상황에서 봉은사, 구룡사, 대원정사, 한마음선원 등처럼 도심포교에 성공한 사례들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종단 차원에 그 성과가 축적되고 확산하지는 못했다. 따라서 한국사회가 산업화 도시화되는 과정에서 타종교는 비약적으로 발전하였지만, 이 시기 한국불교와 종단은 그렇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있다.

중앙종단과 지역불교계, 사부대중 등 종단의 모든 구성원이 포교의 중요성을 공유하고 있었다. 실제 포교를 위해 다양한 노력을 경주하였다. 중앙종단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재정과 인력, 수행, 교리연구 등 여러 부분에서 재가자들이 불교 진흥을 위해 노력하였다. 중앙종단의 행정 지원과 신심 있는 재가불자들의 재정적인 지원이 큰 기여를 하였다. 대한불교진흥원과 부산동명불원 등이 이 시기에 창립하여 오늘에까지 이르고 있으며, 대한불교청년회, 대한불교관음회, 마야부인회, 대한불교미술협회, 대한불교부인회 등 다양한 신행단체도 결성되었다. 이 시기에 창립된 여러 단체는 강연회와 순회법회 등을 자체적으로 진행할 정도로 열정적이었고, 조직의 규모도 컸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대부분의 관련 단체가 침체되었다(<표 1> 참조).

표 1. 통합종단 출범 이후 1980년대까지
종단 ∘종단 설립 이후 신도회 육성을 위해 ‘신도단체법’ 제정(1963)
∘제1회 전국포교사강습회 개최(1964/9/10); 포교사 자격시험 실시(1968/2)
∘국방부에 군승제도 실시 청원(1965); 군종승제도 실현(1968)
∘전국신도회, 교구, 사암단위, 시·도 단위 171개 지회 신도회 조직 구성(1967)
∘숭산스님 미국에서 홍법원 개원(1972/10/22)
∘포교법 제정(포교원 설치 근거 마련, 1976); 포교원 개원(1977/3/26)
∘도심포교의 시작 :
 - 한마음선원(창건주: 대행스님, 1972)
 - 불광사(창건주: 광덕스님, 1974)
 - 석왕사(창건주: 고산스님, 1976)
신행 단체 ∘대한불교청년회(1962)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1963)
∘삼보법회(1966)
∘대한불교조계종 전국관음회(1966)
∘(사)異次頓·元曉兩聖師奉讚會(1970)
∘佛敎梵音會(1974)
∘(재)대한불교진흥원(1974)
∘대한불교청소년교화연합회(1978)
∘마야부인회(1963)
∘대한불교부인회(1965)
∘불교청소년교화연합회(1966)
∘대한불교법조인회(1970)
∘(재)大圓精舍(1970)
∘대한불교달마회(1975)
∘(재)釜山東明佛院(1977)
∘여성불교회관(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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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0.27법난에서 종단개혁까지

신도교육에 대한 종단의 관심과 지원이 턱없이 부족했지만, 이 시기 뜻있는 스님들과 재가불자들에 의해 신도교육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불교교양대학이 전국 곳곳에서 설립되었고, 다양한 계층을 위한 강좌 등도 활발하게 개설되었다(<표 2> 참조). 불교교육시 주로 지식인들에 의해 현대식 포교기법이 빠르게 도입되어 성과도 거두었다. 불교교양대학은 이 시기 도심포교당의 주요 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하였다. 불교교양대학은 신도들이 정기적으로 법회에 참석하도록 도움을 주었다. 이를 통해 신도들은 불자로서의 정체성과 사찰에 대한 소속감을 제고할 수 있었다. 신도들의 정체성과 소속감 제고는 사찰 성장으로 이어졌다(조기룡, 2012: 458).

표 2. 1980년대 이후 1994년 종단개혁까지
종단 ∘불교의식 전문교육(1981)
∘포교원·불교신문사 포교대상 시상 시작(1987)
∘호법포교사단 창립(1988/8)
∘포교사 재교육 실시(1988)
∘중앙신도회 창립 및 각급 신도회 구성, 사찰운영위원회 구성.
∘중국 연변지역 포교를 위한 연변 백산사 개원(1993/9)
∘불교종립학원연합회, 중·고교 불교교본 전면 개편 간행(1988/3/1)
∘불교 언론매체 설립 운동; 불교방송국 개국(1990/5)
∘원심회(圓心會), 조계사에서 청각장애인 수계법회 개최(1991/4)
∘어린이지도자연합회 부설 교계 최초 어린이불교연구소 개소(1993/1)
∘서울 지역에서 시작한 도심포교가 부산, 경남, 경기 지역으로 확대.
강남포교원(1982) 은평포교원(현 삼보사, 1983)
능인선원(1984) 구룡사(1985)
여수·여천 불교포교원(1980) 청주 심우회포교당(1984)
경북 구미불교포교원(1986) 대구 관음사(1990)
법륜왕사(1991) 무진법장사(1991)
금강정사(1991) 등
신행 단체 ∘불교교육기관
동양불교대학(1983) 대원불교교양대학 지방강좌 개설(1986)
대구불교교육원(대구사원주지연합회; 1988) 불교중앙교육원(1988)
전북불교대학(1988) 부산불교교육원(1988)
울산사원연합회 부설 불교교육원 (1993)
김해불교교육원(1994) 등
∘재가단체
대한불교법사회(1988) 한국교수불자연합회(1988)
(사)한국불교연구원(1988) 혜광맹인불자회(1989)
한국불교실업인회(1990) 예비역장성불자연합회(1990)
대한불교법사회(1991) 전국교법사단(1991)
불자가수회(1991) 등
사회복지 ∘양적 성장을 토대로 사회복지시설 출범 및 운영
전국비구니회 목동청소년회관 운영(1988/10) 사회복지법인연꽃마을(1989/8)
사회복지법인 광명보육원 준공(1989/12) 사회복지법인 성라원(1990)
(복)통도사자비원 개원(1992/7) 길음종합사회복지관 위탁 운영(1992/3)
불교계 청각장애인 위한 연화복지학원 설립(1993/2)
∘(복)연꽃마을, 노인 무료진료 및 건강상담을 위한 광명의원 개설(1991/9)
∘불교사회문화협의회 창립(1992/4)
∘한국불교사회봉사회 창립(198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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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기에 재가불자를 대상으로 하는 수계법회가 대규모 행사로 봉행되었다. 이를 통해 종단 정체성을 확립하는 전기가 되었고, 계율의식은 재가불자에게도 확산되었다. 현대적 사회복지활동도 198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주로 뜻있는 스님의 원력에 의해 개별 사찰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사찰 살림이 이전보다 풍부해지고 종단의 여러 구성원들이 구축한 물적·인적 토대가 기반이 되었다.

Ⅲ. 포교 60년 정리 (2): 포교의 체계화

1. 포교원의 독립기구화

종단개혁의 성과 중 하나는 포교원의 독립기구화이다. 포교를 전담하는 포교원은 1977년 개원하였지만, 실질적인 권한은 총무원에 있어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1970년대까지 종단에서 포교 종책을 전담하는 부서는 없었고, 교무부에서 담당하였다. 그러나 종단 내부에서도 포교원을 독립하여 포교 종책을 체계적으로 다루어야 한다는 주장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었다. 그러다 1974년 제38차 정기중앙종회에서 포교원의 독립이 공식적으로 논의되었다. 교무부에 대한 감사 결과에 ‘포교원을 독립하여 포교의 체계화를 기도할 것’이라고 명기되어 있으며, 교무분과 종회보고에서도 ‘포교원의 발족을 요구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공식적인 논의가 있고 난 이후 다음 해 열린 제42차 정기중앙종회(1975.12. 04.)에서 ‘포교원 설치의 건’이 통과되었고, 1년 뒤인 1976년 12월 14일 포교원 별원화에 대한 법적 근거가 마련된 포교법 개정안이 통과되었다. 마침내 1977년 2월 11일 서옹 종정스님은 석주스님을 포교원장으로 임명하였고, 3월 6일 포교원 개원식과 초대 포교원 취임식이 개최되었다.

취임사에서 석주스님은 “포교를 전문적으로 다루게 되는 기관이 독립적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한국불교사상 실로 역사적이며 획기적인 일”이라며 그 역사적 의미를 확인하였고, “불교의 현대화와 불교의 대중화, 불교의 사회화”를 목표로 제시하였다. 이러한 역사적 의미와 초대 포교원 석주스님의 의지에도 불구하고 앞서 언급했듯이 종단의 현실은 이를 뒷받침하지 못했다. 우선, 사무국 예산이 책정되지 않아 국장의 임명이 미루어졌으며 중앙포교사를 교무부가 임명하는 기존 행정체계가 그대로 유지되었다. 즉 포교원의 역할과 운영에 대한 종단 체계가 아직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이후 서옹스님이 5명의 포교위원과 포교부장, 포교국장을 임명하면서 포교원의 의결구조와 종무기능이 실행되기 시작하였다. 이후 포교원은 전국 순회포교를 실시하였고 연인원 5만 명을 동원하면서 성황을 이뤘다.

그러나 이러한 포교원의 노력은 종단의 정치적 상황 때문에 성과를 얻기 전에 위축되었다. 당시 종단에서는 종정 중심제와 총무원장 중심제 사이의 갈등이 있었다. 이 갈등은 종정스님과 종회의 갈등으로 가시화되어, 종회 해산과 종정 불신임, 2개의 총무원 등으로 종단은 파행을 겪게 되었다. 이러한 파행이 3년간 지속되면서, 포교원 활동이 제대로 이루어지기는 어려웠다.

도시화와 산업화로 상징되는 사회변화에 대응하는 포교 정책이 필요한 시기에 종단의 혼란으로 인해 포교원은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다. 포교원은 사회변화에 대응하는 체계적인 종단의 포교 종책을 수립하기 어려웠다. 종단을 대표하거나 상징하는 포교 프로그램을 더더욱 찾기 어려웠다. 당시 불교언론에서 “종단 포교 전반을 조직적으로 장약해야 하는 포교원이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 “포교에 대한 종단적 방향제시가 없다”는 비판은 바로 이러한 상황에 대한 문제제기이며, 정당한 문제제기이다(대한불교, 1979.11.25.). 하지만 당시 포교원의 위상과 구조를 고려하면, 실제 포교원이 할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았다.

이러한 포교원은 모습은 1994년 종단개혁으로 총무원에서 독립된 기구로 격상되었을 때까지 유지되었다. 1980년대에도 포교원의 종무행정 기능 대부분은 총무원 교무부에서 집행하는 형태로 운영되었다. 인사권도 총무원장에게 있었고, 사업영역도 분명하지 않았다. 형식상 1977년 이후 포교원은 별원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종무행정의 기능을 갖지 못한 체 형해화되어 있었다.

포교원이 실질적인 내용과 가치, 의미를 갖추기 시작한 것은 1994년 종단 개혁의 성과를 독립된 기구로 격상된 이후이다. 1994년 4월 10일 출범한 종단개혁회의는 종단 운영체계를 개혁하기 수많은 논의를 진행하였다. 그러한 회의 중 하나로 6월 22일 포교활성화 방안 마련을 위한 공청회가 개최되었고, 이 자리에서 지홍스님은 포교의 지속성과 독립성, 자율성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당시 포교원의 독립기구화(별원화)에 대해 토론자들은 찬반이 엇갈렸지만, 현재까지의 성과를 고려하면 지속성과 독립성, 자율성은 포교원의 가치로서 보장되어야 한다.

개혁회의 기간 동안 각종 공청회와 회의를 거쳐 마련된 새로운 종헌에 포교원이 독립된 기구로서 명시함으로써, 통합종단 초기부터 3대 사업으로 제시되었던 포교·역경·도제양성이라는 종단의 주요 목적사업이 체계적으로 추진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였다. 포교원은 지난 1977년 개원하였지만, 인사권이나 행정적 권한은 총무원에 있었고 별도의 예산권도 없었다. 하지만 새로운 종헌에서 포교원은 인사권과 행정적 권한, 예산권이 존재하는 실질적인 독립된 기구로서의 위상을 갖추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를 포교원의 역할과 기능 확대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일관된 포교 정책의 수립과 집행이 가능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또한 포교원 자체적으로 포교 자료와 교재, 이론 연구에 역량을 집중하여 성과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또한 교구본사에 포교국의 설치가 종법으로 규정되어 종앙종무기관과 본말사를 연결하는 종무행정 체계가 성립하고 네트워크의 구축이 가능해졌다. 종헌에 포교원의 역할과 위상을 명시하고 안정적인 재원을 마련하였다.

2. 역대 포교원의 성과

종단개혁의 성과로 새로운 종헌이 만들어지고 새 종헌에 의해 제28대 총무원장으로 당선된 월주스님은 정락스님을 포교원장으로 추천하였다. 포교원장 임기를 5년으로 규정한 것은 종단 정치 상황에 좌우되지 않고 독립성과 자율성, 지속성을 보장하기 위함이었다. 물론 처음부터 이러한 목적이 제대로 달성되지는 못했다. <표 3>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2000년대 이전에는 포교원장 스님들이 많은 성과에도 불구하고 임기 5년을 채우지 못했다. 제4대 도영스님부터 임기 5년을 채우는 전통이 만들어졌다. 이를 통해 그 이전보다 포교 종책은 일관성있고 체계적으로 추진될 수 있었다. 이를 반영하듯, 최근의 포교원장 스님들은 자신의 포교 종책의 핵심기조를 설정하고 이를 표현한 ‘슬로건’을 발표한다. 그리고 이 슬로건이 제시하는 포교 목적과 가치를 자신의 임기 동안 일관되게 추진한다(<표 4> 참조).

표 3. 역대 포교원과 특징
포교원장 재임기간 비고 및 슬로건
1대 장락스님 1994 - 1995 모색기. 독립 운영의 토대를 쌓음
2대 성타스님 1995 - 1999 성장기. 내용적 성장
3대 정련스님 1999 - 2001 확산기. 조직적 확산
4대 도영스님 2001 - 2006 정착기
5대 혜총스님 2006 - 2011 종단 포교 성숙과 재도약기
6대 지원스님 2011 - 2016 전법도생·환희와 감동의 포교
7대 지홍스님 2016 - 2021 신행혁신운동으로 전법의 새 지평을 열어가겠습니다.
8대 범해스님 2021 - 현재 신행중심 포교 ‘전법 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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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4. 주요 사업 및 흐름
1대 포교원 (1994 – 1995) 한국불교 중흥을 위한 포교청사진 제시, 포교사제도 정비, 신도교육체계화와 신도등록사업, 중앙신도회 결정, 포교 종무행정체계 구축
2대 포교원 (1995 – 1999) 청소년포교 활성화와 파라미타 창립, 신도등록 및 재적사찰 갖기 운동 신행활동 체계화 및 신도교육, 신도교재 발간, 포교행정 체계화
3대 포교원 (1999 – 2001) 새로운 조직과 단체 건설, 신도교육 체계 수립, 포교의 새로운 방향 정립
4대 포교원 (2001 – 2006) 신도교육 정착 및 교재 발간, 군불교 진흥과 군종교부 설립, 템플스테이의 성공적인 운영과 정착, 해외포교 관심 제고, 온라인포교 확대, 조계종 포교비전 발표, 각종 포교 현황조사 실시, 간화선 수행 프로그램
5대 포교원 (2006 – 2011) 어린이청소년포교 3개년 사업의 추진과 회향, 포교결집대회, 대한불교조계종 전법단 출범과 전법중심도량제도 시행, 멤버십 신도증 발급과 신도조직화 체계 개편, 신도교육기관 교과정 및 개편, 전문포교사 및 각종 포교자격제도 시행, 상담포교를 위한 불교상담대학·대학원 설치, 온라인 교육과 포교를 위한 디지털대학 설치, 새로운 신도조직 창립과 포교역량 결집, 포교프로그램 연구 개발, 이주민 포교
6대 포교원 (2011 – 2016) 지역포교 활성화 지원, 우리말 의례 개발 및 보급, 층별 일상 활용 콘텐츠 개발 및 보급 심성 개발(인성프로그램 및 포교콘텐츠 개발과 보급,),
국제전법단, 어린이청소년 전법단 창립 및 청년대학생 전법단 조직 통합 지원, 전국 경승 조직화 및 현황파악, 경찰 전법단 연계 매년 전국경승 연수개최 정착, 종단 신도품계제도 시행기반 구축, 신도전문교육기관(불교대학) 전국 교구본사별 개설운영(총135개소 운영), 신도지도자교육과정 개설 및 제 1기 선혜품계 품수자 배출, 교구신도회 조직완비(전국 교구본사별 교구신도회 창립 및 운영), 종단 신도조직체계정비(2015년 신도법 전부개정)
7대 포교원 (2016 – 2021) 신행혁신운동, 불교성전편찬, 우리말 의례, 신도수행프로그램 개발, 계층별 마음거울, 뉴미디어 포교콘텐츠 개발 및 보급, 신도교육기기관 학사관리 전산시스템구축, 포교단체 지원 및 활성화, 전법단 운영, 공공영역참여 솔루션 개발, 포교지도 구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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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대 포교원은 종단 차원의 포교 전략을 수립하고 이를 『한국불교 중흥을 위한 포교청사진』으로 제시하였다. 이 사업은 1994년 종단 개혁회의에서부터 시작되었다. 1995년 4월까지 종합적인 포교 방향과 구체적인 사업 내용을 마련하는 연구 활동과 일선 포교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할 수 있도록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와 활동가를 만났다. 이 청사진에서 포교원은 한국불교 중흥을 위한 3단계 포교 방안을 수립하고, 10대 부문에 걸쳐 100대 과제를 제시하였다. 이처럼 포교원은 초기부터 종단의 주요한 과제에 대해 중장기적 전략 제시라는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이와 별도로 1대 포교원은 포교원의 4대 중점 사업으로 포교의 체계화, 신도회의 활성화, 설법교안 발행, 통일법요집 추진을 제시하였다. 이때 발행하기 시작한 월간 『법회와 설법』은 현재에도 발간되고 있다. 또한 당시에는 신도등록 사업과 결합된 ‘신행혁신운동’이 시작되었다. 신도를 조직화하는 것이 당시에는 중요한 문제 인식되었고, 이를 위해 다양한 사업이 추진되었다.

종단개혁 이후 포교원에서는 신도등록사업(재적사찰갖기운동)을 진행하여 종도정체성을 확보하고, 신도 교무금 제도를 통해 포교, 신도관리 및 교육재정을 확충하고자 하였다. 1995년 10월 신도등록과 신도증 발급사업이 포교원으로 이관되었다. 포교원에서는 신도등록의 성패는 재적사찰을 통한 정기적 신행의 정착에 있다고 판단하고 신도들이 재적사찰을 갖게 하여 신행혁신을 이루고 신도등록을 유도하겠다는 방안을 마련하였다. 그래서 1995년을 ‘신행혁신의 해’로 정하고 ‘참다운 불자가 됩시다’라는 슬로건을 내세웠다.

1999년에는 신도법을 전면 개정하였다. 신도교육체계를 ‘입교-기본-전문-지도자교육과 재교육’ 체계로 정립하고, 신도기본교육을 의무화하여 신도교육 제도화하였다. 이후 신행과 교육이력에 따른 신도위계를 부여하여 소속감과 활동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였다. 하지만 관련 사업에 대한 신도들의 관심이 적으며, 성과도 노력에 비해 크지 않다. 제도 도입 초기부터 제도의 실효 및 타당성 문제가 제기되었다.

제3대 포교원에서는 포교사단 출범이라는 성과를 거두었다. 포교사단은 포교원이 초기부터 관심을 기울인 사업으로 역량과 원력이 있는 포교사 배출, 체계적인 자격 관리와 활동 관리가 가능한 체계를 갖추는 계기가 되었다. 더불어 재가불자들이 조직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직능직장조직들이 포교원의 지원 속에서 증가하였다.

4대 포교원장 도영스님은 앞서 언급했지만, 포교원이 독립기구화된 이후 처음으로 임기 5년을 마무리한 첫 포교원장으로 포교원 체계화와 지속성, 독립성이라는 가치를 유지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 도영스님은 5년 동안 군종특별교구 발족, 템플스테이의 성공적인 운영, 해외포교에 대한 관심, 온라인포교 시작 등 포교의 활동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군종교구와 템플스테이, 해외포교는 독립된 기관에서 운영될 정도로 성장하였다. 또한 우리가 주목할 점은 『포교비전』(2005)의 발간이다. 『포교비전』에서는 향후 10년간 포교 지향을 정리한 작업의 결과물로서 3개 추진 부분과 14대 핵심부문, 부문멸 주요 과제, 추진일정을 제시하였다(<표 5>).

표 5. 『포교비전』의 주요 내용
추진부문 핵심 부문
신도 역량 강화 조계종 신도 정체성 확립
조계종 (핵심)신도 양성
조계종 신도교육·수행 프로그램 개발과 지원
법회 의례의식의 개선 및 한글화
포교 시스템 강화 종단 포교 행정시스템 활성화
계층·단체간 네트워크 시스템 구현
포교전문인력의 네트워크화
포교영역 확장 및 강화 분야별 포교 전문인력 양성과 교육
미디어 포교 활성화
어린이·청소년·대학생(청년) 포교활성화
중·장년층포교 전략 강화
사회·문화 포교종책 기반 조성과 역량 강화
전략지역 포교활성화(신도시, 농어촌 등)
국제포교 활성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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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대 포교원장 혜총스님은 어린이청소년포교, 전법단, 종단멤버십제도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였다. 특히 어린청소년포교에 대한 종단적 관심이 높은 시기에 포교원장으로 취임하여 어린이청소년 포교 경험을 활용하여 3개년 계획과 집행을 이끌었다. 어린이청소년포교 3개년 사업을 회향하던 시기에는 많은 사업 성과에 대한 기대감이 있었고, 포교 성과를 종단차원에서 유지·확대하기 위해 ‘어린이청소년위원회’를 구성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때의 성과가 현재에 계승되지 못하고 있다. 다시 어린이청소년 포교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목소리와 종단 차원의 관심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있다. 또한 5대 포교원은 독립기구화 이후 포교사업 전반을 재정비하고 그간의 성과 위에 재도약을 위한 종법령을 제개정하고, 규칙을 정비하였다. 나아가 종단 신도조직화를 위해 각급 교육 및 신행경력에 따른 신도품계제도를 시행하였다. 의욕적인 시행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그 성과는 그리 좋지 않다.

6대 포교원의 성과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법회와 설법』 복간이다. 월간 『법회와 설법』은 1995년 5월 창간호부터 2011년 1월호까지 통권 183호까지 발간하다 휴간하였다. 『법회와 설법』이 휴간되면서 그동안 제방에서 많은 스님들이 복간을 요청하였다. 이러한 요청에 따라 포교원에서는 2015년부터 매달 3∼4가지 설법문안과 관련 포교자료를 정리한 E-book을 제작하고 배포하고 있다. 또한 6대 포교원은 지역에서 사찰의 기능과 역할이 미비하다는 현실의식과 지역포교를 위한 인적자원 간 네트워크 및 결합이 미약한 수준이라는 위기의식에서 지역포교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지역포교 모범사업을 공모해, ‘모범적인 지역포교사례 육성 및 지원’ ‘우수 사찰 및 단체의 포교역량 조직화’ ‘지역포교사업 컨텐츠 확보’를 시도하였다. 나아가 교구중심의 지역전법 추진안을 마련하여 교구중심의 지역포교에 대한 연구와 실천방안을 마련하여 추진해 나가기 시작하였다. 청소년 인성 함양을 위한 인성 프로그램을 보급하는 마음등불사업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 사업이다.

7대 포교원은 “삶을 지혜롭게, 마음을 자비롭게, 세상을 평화롭게. 지금 여기 붓다로 살자” 신행혁신 운동을 펼쳐왔다. 그 핵심에는 2016년부터 진행한 신행혁신운동 “붓다로 살자”운동이 있다. 또한 교리와 수행법, 의례를 체계화하고 사부대중에게 쉽게 전달하기 위한 기본적인 내용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였다. 2020년에는 불자들의 수행을 안내하기 위해 계율, 간경, 염불, 참선, 보살행을 알기 쉽게 정리한 「불교 5대 수행법 길라잡이」를 발간하였다. 아울러 불자들의 신행문화 진작을 위하여 부처님오신날과 함께 불교 4대명절인 성도재일, 출가재일, 열반재일에 대해 안내하고 수행정진하는 캠페인을 전개하였다. 또한 최근 코로나19 팬데믹에서 대면 법회가 어려워지자, SNS를 활용한 비대면 수행방법을 제시하여 신행 현장 곳곳에서 함께 수행하여 공유하는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내기도 하였다. 포교현황과 조직을 정비하고자 7대 포교원은 전국의 포교역량을 조사하고 분석한 ‘전국포교지도’를 완성했다. 종단 지도자 포럼에서 그 내용을 보고하였다.

Ⅳ. 향후 전망과 방향

1. 전환기를 대비하는 장기적 관점의 포교 전략 수립

포교원의 독립기구화는 지속성, 자율성, 독립성을 가치로 추구한다. 포교 종책은 시대변화를 반영해야 한다는 생각을 반영하고 있다. 때문에 포교원은 언제나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사회변화에 주목해야 한다. 사회문제와 사회변화를 어떻게 불교 교리에 맞게 재해석할 수 있는지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그 결과를 포교 및 수행 프로그램으로 제작하여 교구본사와 일선 사찰에 제공하여 신도교육과 포교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한데 현재 이 부분이 부족하다. 특히 시대와 사회변화에 주목하고, 이를 반영하여 새로운 포교 전략을 수립하는 노력은 1995년 『한국불교 중흥을 위한 포교청사진』, 2005년 『포교비전』이 발표된 이후 더는 진행되지 않고 있다. 특히 오늘날은 4차 산업혁명과 인구소멸 등으로 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변화하고 있으며 변동의 폭도 크다. 따라서 사회변화에 대응하는 포교 전략과 그에 따른 종책 수립에 대한 필요성도 높다. 이를 위해 종단의 포교역량을 정리하는 사업도 지속되어야 한다. 현재 포교현황과 포교지도 등 종단의 포교역량을 객관적으로 정리하는 작업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통계사업의 특징상 주기적이고 반복적인 자료 축적이 요구되지만 그렇지 못하고 있다.

실제 신행단체들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 중심으로 활동영역을 옮겨가고 있다. 그러한 변화 속에서도 종교성과 종교활동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고민을 포교원이 함께하고 답도 제시해야 한다. 하지만 여전히 포교원의 관심은 ‘관리’에 머물고 있다.

사회적 상황과 여건, 사회와 종단의 관계 등을 고려하여 다양한 사회변화를 검토하고, 그에 대한 포교 전략을 중장기적 관점에서 세우고, 이를 포교 종책으로 구체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포교원장 스님들이 임기 5년 동안 핵심 기조를 정립하고 이 기조 아래에서 포교 종책을 수립/집행하는 노력을 넘어서는 ‘노력’이 요청된다. 최소 10년 주기로 이러한 작업이 요청된다. 종단의 백년대계본부와 연계된 활동은 포교원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으며, 종단 차원의 전략을 공유한다는 의미도 갖출 수 있을 것이다.

2. 교육원의 교류 활성화를 통한 포교 종책의 실질적 적용과 실천

현재 종단은 총무원·교육원·포교원 3원 체계이며, 각 기구는 독립되어 운영된다. 이를 통해 포교원은 종단의 정치상황에 영향받지 않고 지속적인 포교 종책을 집행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포교와 승가교육의 교류 및 연관성이 매우 낮은 점은 극복되어야 한다.

포교의 운영 주체는 사부대중 모두이지만, 실질적인 운영주체가 승가임을 부정할 수 없다. 즉 일선 사찰의 주지스님들이 포교의 주체이다. 1980년대 소장 스님들의 성찰과 자각, 그리고 실천이 있었기 때문에 한국불교의 포교는 현재처럼 발전할 수 있었다.

현재 포교원에서는 다양한 포교 및 수행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이를 보급하기 위해 노력한다. 보급을 위해 책을 발간하고 사찰에 배포하고, 주지 연수프로그램을 활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실제 프로그램이 얼마나 보급되는지는 회의적이다. 일선 사찰의 주지스님들은 대부분 나름의 포교 방법을 가지고 있다. 즉 포교에 대한 자신만의 확고한 방법과 가치를 정립하고 있다. 따라서 새로운 포교 프로그램을 수용하고 이를 실천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이러한 현실을 고려하여, 포교 교육은 승가의 기본교육 과정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이는 승가교육의 현대화와도 맥을 같이 한다. 출가자가 급감하고 있는 현실에서 비구/비구니가 담당해야 하는 업무의 양과 종류는 급격하게 증가할 것이다. 더 이상 전통적인 강원교육만으로는 이에 대한 대처는 불가능하다. 현대사회에 맞는 승가교육이 절실하다. 이는 일반사회의 교육과는 다르다. 그래서 성직자(수행자) 양성 교육은 특수 교육으로 국가에서도 인정한다. 포교 교육과 승가 교육을 함께 고민하고 구조화하는 고민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일례로 교육원과 포교원, 중앙승가대가 함께 교육과정을 논의하는 협의체를 구성하여 일정한 주기로 포교 관련 교과목을 구성하는 방안을 고민할 수 있다.

3. 포교의 근거지 사찰의 변화

마지막으로 사찰이 변화되어야 한다. 사찰은 불교의 대표적인 종교시설로서 스님의 거주공간과 의례/의식공간, 신도들의 신행 공간이라는 특성이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하지만 사회적 공간이라는 의미를 더해 가고 있다. 사찰은 출가자와 재가자들이 만나는 곳이며, 불교와 사회가 만나는 곳이다. 불교의 다양한 의례와 종교활동, 사회적 운동과 실천이 ‘사찰’을 매개로 이루어진다. 사찰은 불교를 사회에 드러내는 공간이며, 자비심과 보리심이 구체적인 행위로 발현되는 공간이다(이명호, 2022).

이러한 점에서 사찰은 포교의 공간이다. 그리고 이때의 포교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널리 전하여 중생을 이롭게 하는 모든 활동’이다(포교원, 2007). 그리고 오늘날 포교는 더이상 “많은 사람들이 부처님의 법을 이해하고 자발적으로 실천수행하여 깨달음에 이르도록 하는 것”(포교원, 2007)을 추구하기는 어렵다. 기후위기와 4차 산업혁명, 코로나19 팬데믹 이후의 우리가 목도하는 사회가 너무나 엄혹하기 때문이다. 기후위기를 야기한 산업혁명은 독점과 독식, 갈등과 분열, 저성장과 양극화로 상징되며, 4차 산업혁명과 코로나19 이후 이러한 사회의 모습을 더욱 심화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갈수록 늘어가는 갈등과 혐오가 그 방증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회와 문명의 ‘지속가능성’을 지역사회에서 찾으려는 노력이 시작되었고, 사찰에 새로운 역할을 요청하고 있다. 이때의 역할은 인류의 미래를 위해 현실 사회에 실현가능하고 지속가능한 새로운 지역사회(공동체) 모델을 만드는 과제이다. 사찰은 지역사회에 공동체성을 함양하고 심화시키는 핵심 동력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사찰의 역할은 종교적 역할을 넘어 공적(또는 사회적) 역할로 확대되어야 한다. 이 공적 역할을 강조하기 위해 ‘공공불교(Public Buddhism)’ 개념이 제시되었다. 지역사회에서 공공불교의 역할은, 첫째 지역이슈에 대한 불교적 해석과 대응, 둘째 생태적 가치의 학습과 실천, 확산, 셋째 지역주민들이 교류하는 어울림 장소 제공으로 정리할 수 있다(이명호, 2021, 2022).

이러한 측면에서 위에서 정리한 세 역할이 오늘날 사찰에게 부여된 새로운 역할이며 새로운 포교활동이다. 이러한 흐름에서 7대 포교원은 사찰이 사회적 역할을 다하기 위하여 지자체 등 정부 기구가 시행하는 공공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 안내서 「사회 공익사업 참여 포교방안」을 발간하였다. 이렇게 포교의 근간인 사찰의 사회적 역할을 곧 ‘포교활동’으로 이해된다. 8대 포교원에서도 사찰의 공적 역할을 지원하기 위한 노력은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

Ⅴ. 결론을 대신하여

본 논문에서는 통합종단 출범 이후 현재까지 포교 사업을 정리하고, 이후 활동을 전망하였다. 통합종단이 출범한 직후부터 ‘포교’를 종단의 3대 목표로 제시할 만큼, 포교는 언제나 종단의 주요 목표였다. 하지만 1994년 종단개혁으로 포교원이 인사권과 예산권을 갖춘 기구로 독립할 때까지 종단 차원의 체계적인 종책 수립과 집행은 어려웠다. 그 핵심에는 종단의 혼란이 자리하고 있다. 1977년 서옹스님이 과감하게 도입하였던 포교원의 별원화도 종단의 분규로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유명무실해졌다. 그리고 그 공백을 메꾼 것은 종단 밖의 재가불자들과 스님들의 원력이었다. 도심포교, 신도교육 등 오늘날 종단의 포교체계와 내용은 이들의 노력 덕분에 가능하였다.

1994년 포교원이 독립기구로 활동을 시작한 이래, 1대부터 7대 포교원까지 매 포교원은 다양한 종책을 수립하고 집행하였다. 어떤 종책은 성공을 거두며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기도 하였지만, 일부 종책은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표류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신도조직화 사업과 그와 연관된 멤버십 사업이다. 이는 신도교육 및 신도품계사업, 종단 정체성 및 핵심 신도 양성사업과도 연결되어 있다. 이 사업이 갖는 중요성을 고려할 때, 지금처럼 방치하기보다는 이 사업에 적용된 기존의 관점에서 벗어나 새로운 관점을 도입해서 기초부터 살펴보는 장기적 관점이 요구된다.

이는 본 연구자가 향후 방향과 전망에서 정리한 내용과도 깊이 연관되어 있다. 사회변화에 대한 고민과 전망을 반영하는 포교 전략을 수립하고, 이 전략 추진을 위한 종책 수립과 집행이 필요하다. 현재 2005년 이후 이러한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 어렵게 마련된 포교 프로그램이 일선 사찰에서 수용되고 실천될 수 있도록 승가교육기관에서 공식적으로 교육되어야 한다. 이를 위한 교육원과의 협력방안도 마련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사찰의 공공성이 강화되어야 한다. 코로나19 이후 사찰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요구는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모든 종교가 이에 대한 대처를 잘하지 못하고 있어 종교의 영향력이 감소하고 있다. 불교는 이 기회를 잘 활용해야 한다. 공적 역할을 강화하고 사회적 기대를 충족시킴으로써 불교의 포교역량은 더욱 높아질 수 있다.

Notes

2장과 3장의 주요한 내용은 대한불교조계종 종단화합과개혁을위한사부대중위 원회(2016)의 보고서와 포교원의 『포교총람』(2011)를 주로 참고하여 정리하 였다. 이 두 자료를 인용한 경우에는 인용출처를 밝히지 않았다.

포교 관련 선행연구들과 기존 글들에서는 1994년 이후 포교원과 교육원이 별원화되었다고 표현한다. 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이는 교육원에만 해당한다. 이 글의 2장 2절에서 정리했듯이 포교원의 별원화는 서옹스님께서 종정으로 재임하시던 1977년에 이미 이루어졌다. 비록 많은 한계를 가지고 있었지만 형식적으로 별원으로 존재하였다. 때문에 우리는 ‘별원’이라는 형식보다는 역할과 기능, 즉 ‘행정과 예산의 독립’에 주목해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 글에서는 1994년 종단개혁 이후의 포교원의 변화를 ‘별원화’가 아닌 ‘독립기구화’로 표현하였다. 다시 정리하면서 포교원의 별원화는 1977년에 이미 이루어졌고. 1994년에 독립기구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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