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들어가는 말
재 의례는 재가자와 출가자의 상호작용을 통해 천도의 설행(設行)을 이끌어가면서 재가자는 내세에 대한 종교적 기대를, 출가자는 중생 구제라는 본연의 소임을 추구하는 행위이다. 이러한 재 의례의 구체적 행위를 통하여 재가자의 상례(喪禮) 기능과 죽음에 대한 사찰의 역할이 현실적으로 결합된다.
이러한 천도 의례는 불교에서만 중시되는 것이 아니고, 무속과 유교도 역시 사후의 천도와 관련된 영역을 추구하고 있으며, 특히 무속의 죽음관은 불교의 천도 의례와 연관성이 높다. 조선 후기에 전래된 카톨릭도 한국의 현실을 반영하여 제사를 통해 사후의 영속성을 추구하는 경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이처럼 내세와 영혼에 대한 관념은 여러 종교와 연관성을 지니고 있다.
재 의례는 ‘영가의 극락 천도’라는 목적을 실현하기 위하여 종합적인 의례의 구조와 요소로 구성되어 있고, 여러 요소는 현실 세계를 벗어난 의미를 부여하는 상징적인 요소와 현실을 반영하는 구체적인 요소가 다양한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나아가 주불전(主佛殿)의 신성함을 상징하는 공간의 시각적인 요소와 특유의 음률을 구성하는 범패의 청각적 요소, 승가의 구성원들이 의례를 집전하여 만다라를 표현하는 교학적인 요소로 구성되고 있다.
그런데 불교 교단의 내부 변화에 따라 의례에 대한 관념이 변화하면서 의례 구조 및 요소에도 변화가 나타난다. 이러한 불교문화는 재 의례의 형태적 변화를 발생시켰고, 의식문(儀式文)의 형식과 내용을 이해하는 것에 영향을 끼친다.
본 논문은 조선 후기 이후 천도 의례에 나타난 변용과 습합 현상을 그 이전의 불교 의례와 비교하여 살펴보고, 관음시식(觀音施食)의 선택적 수용을 검토함으로써 대한불교조계종이 찬집한 『통일법요집』에 그러한 변화가 어떻게 반영되고 있는지에 대한 고찰과 그 함의를 논의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관음시식과 조선시대의 불교 의례 변화에 관한 주요 연구 성과들을 검토하고, 관음시식문의 변화 분석을 통해 의례 변화의 함의를 도출하고자 한다.
Ⅱ. 선행연구와 문헌의 검토
신규탁(2014)은 관음시식에 담긴 철학적 요소를 찾아내기 위해 관음시식의 의례 구조를 분석하였고, 관음시식의 예문(禮文) 속에는 불교의 깊은 철학이 깃들어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그 속에 담긴 철학을 두 측면에서 밝혀본다면, 첫째 세계관의 측면에서 세계관은 『화엄경』 「화장세계품」에 집약되어 있고, 이것을 바탕으로 중생들이 사는 기세계(器世界)를 설명할 수 있고, 둘째 인생관의 측면에서 모든 중생은 ‘완전한 기능’을 간직하고 있지만, 번뇌로 인해서 그것이 제 기능을 못 하니, 번뇌의 무상함을 깨쳐 본래의 ‘완전한 기능’을 잘 살리라는 것이다.”(신규탁, 2014: 107)라고 관음시식의 철학을 정의하고 있다.
심상현(2014)은 시식(施食)과 영반(靈飯)에 대한 개요를 설명하면서 이 둘은 다른 성격을 지니고 있고, 시식의 소의경전(所依經典)은 수륙재(水陸齋)에 근원하고 있고, 영반은 시식에서 분화 발달한 것이며, 이 두 시식의 소의경전으로 『구발염구아귀다라니경(救發焰口餓鬼陀羅尼經)』, 『구면연아귀다라니신주경(救面然餓鬼陀羅尼神呪經)』, 『우란분경(盂蘭盆經)』 등을 예로 들고 있다.
이성운(2011)은 한국 불교 시식의문 성립에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하는 『증수선교시식의문』과 주요 수륙재 소재 시식의문인 『법계성범수륙승회수재의궤』, 『천지명양수륙재찬요』, 『수륙재무차평등재의촬요』 등의 구조와 특징을 설명하였고, 시식의문이 삼단 삼청, 삼단 시식, 삼밀가지, 무외시, 재시, 법시로 진행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최명철[원명](2020)은 사십구재의 성립 과정에서 시대별로 간행된 의례문을 통해 재차의 전승 과정을 살피고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고려 말인 14세기에 간행된 「결수문」, 15세기 「진언권공」, 16세기 「권공제반문」, 17세기 「운수단과 제반문」, 18세기 「제반문(청문)」, 19세기『작법귀감』, 20세기 『석문의범』을 중심으로 재차의 전승 양상을 살펴보았다.
이성운·김인묵(2020)은 한국 불교문화의 정체성을 확인하기 위해 칠칠재(사십구재)의 전형은 무엇이고, 그것이 현실에 적응해온 변용을 통찰하면서, 「제반문」 등을 그 중심에 놓고 논의하고 있다.
이연경[도경](2020)은 불교의 사상과 신앙적 믿음에 기초해 유명(幽冥)을 달리한 망자(亡者)를 위로하고, 극락왕생을 발원하기 위해 설행하는 보편적인 사십구일재의 절차와 구조가 현재처럼 전승하는 게 과연 올바른 것인지를 자문(自問)하고, 지난 30여 년 동안 불교계의 대표적인 어산(魚山) 스님들과 함께해 온 경험을 토대로 각 절차의 전개와 구성 그리고 내용 전반에 대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개선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민순의(2017)는 불교 의례의 시식에 대한 의미를 먼저 설명하고, 유교식 의례와의 차이점을 비교하고, 칠칠재(七七齋), 기신재(忌晨齋), 백중재(百中齋), 수륙재 등의 예를 통해 시식이 진행되는 불교 의식을 설명하면서 단독 시식의례로서 관음시식을 소개하였다.
연재영[미등](2014)은 조선시대에 간행된 수륙의례문의 계통을 규명함으로써 한국 수륙재의 형태와 특징을 고찰하였다.
이상의 선행연구들은 한국의 의례에 대한 문헌들을 시대적으로 분석하고, 그 연원을 밝히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불전과 한국에서 찬술된 의례집을 통하여 관음시식에 대해 살펴볼 수 있다. 먼저 인도에서 설행되었던 재 의례의 다양한 모습들은 삼장(三藏)에 편입된 사례가 매우 적어서 자세하게 살펴볼 수 없다. 다만 중국에 전해진 삼장 가운데에서 밀교와 관련된 내용을 통하여 일부 살펴볼 수 있는데, 대장경 중에서는 『대정신수대장경(大正新修大藏經)』과 『만신찬대일본속장경(卍新纂大日本續藏經)』에서 단편적으로 관련된 문헌을 찾아볼 수 있다.
『대정신수대장경』 제21권에는 불공(不空)이 번역한 『불설구발염구아귀다라니경(佛説救拔焔口餓鬼陀羅尼經)』 1권1)과 『시제아귀음식급수법(施諸餓鬼飮食及水法)』 1권2), 『유가집요구아난다다라니염구궤의경(瑜伽集要救阿難陀羅尼焔口軌儀經)』 1권3), 『유가집요염구시식기교아난다연유(瑜伽集要焔口施食起教阿難陀縁由)』 1권4) 등이 있고, 실차난타(實叉難陀)가 번역한 『불설구면연아귀다라니신주경(佛説救面然餓鬼陀羅尼神呪經)』 1권5)과 발태목아(跋駄木阿)가 번역한 『불설시아귀감로미대다라니경(佛説施餓鬼甘露味大陀羅尼經)』 1권6), 역자 미상의 『유가집요염구시식의(瑜伽集要焔口施食儀)』 1권7) 등을 통하여 관음시식과 관련된 내용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 같은 내용을 서술하고 있으며, 『유가집요염구시식의』에 이르러 현재의 관음시식 형태가 완성되고 있는데, 불정존승다라니신주(佛頂尊勝陀羅尼神呪)와 금강보살백자주(金剛菩薩百字呪)가 편입된 것은 다른 문헌에서는 볼 수 없다.
『만신찬대일본속장경』에서는 59권에 명나라의 주굉(袾宏)이 다시 교정한 『유가집요시식의궤(瑜伽集要施食儀軌)』 1권8)과 보충하여 주석한 『수설유가집요시식단의(修設瑜伽集要施食壇儀)』 1권9)이 있고, 청나라의 법장(法藏)이 저술한 『어밀삼시식지개(於密滲施食旨槩)』 1권10)과 『수습유가집요시식단의(修習瑜伽集要施食壇儀)』 2권11)이 있으며, 청나라의 적섬(寂暹)이 찬집한 『유가염구주집찬요의궤(瑜伽燄口註集纂要儀軌)』 2권12) 등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중국에서도 자생적인 의례집이 찬집되고 있는데, 수륙재와 관련된 문헌들이다. 수륙재는 수륙(水陸)의 떠도는 고혼(孤魂)과 아귀(餓鬼)를 위하여 불법(佛法) 강설(講說)과 음식 공양(供養)을 통해 영가를 천도하는 법회인데, 이들 문헌들은 수륙재의 기연(起緣)과 의식(儀式)의 절차를 기록하고 있다. 중국에서 수륙재는 양조(梁朝)의 무제(武帝)로부터 시작되어 송조(宋朝)에 이르러 『수륙의문(水陸儀文)』이 완성되었고, 남송시대에는 지반(志磐)의 『법계성범수륙승회수재의궤(法界聖凡水陸勝會修齋儀軌)』가 편찬되어 간행되었다.
『만신찬대일본속장경』의 제74권 예참부에는 송(宋)의 지반(志磐)이 찬집하였고, 명(明)의 주굉(袾宏)이 다시 교정한 『법계성범수륙승회수재의궤(法界聖凡水陸勝會修齋儀軌)』 6권13), 청(清)의 지관(咫觀)이 서술한 『법계성범수륙대재보리도장성상통론(法界聖凡水陸大齋普利道場性相通論)』 9권14), 『법계성범수륙대재법륜보참(法界聖凡水陸大齋法輪寶懺)』 10권15)이 전하고 있다.
이들 문헌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중국에서 관음시식과 관련된 문헌들은 이전 시대의 의례집을 보완하고, 보충하는 형태로 계승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비해 한국에서 찬집된 여러 의식문에는 많은 변화가 나타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의 억불정책에도 불구하고, 불교는 여전히 조선 사회의 주요 신앙으로 자리잡고 있었고, 조선 후기에 불교 신앙이 일반 백성들에게 확대되면서 불교 교리를 쉽게 알리기 위한 수단으로 경장의 한글 번역이 활발해졌으며, 같은 목적에서 의례집의 간행도 증가하였다.
이러한 의례집은 현대에도 영향을 주고 있는데, “조선시대에는 41편의 의례집들이 전 시기에 걸쳐서 전국의 주요 사찰에서 꾸준히 간행되었다. 현재 한국에서 봉행되고 있는 불교 의례들에 이들 내용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문헌상, 현행의 불교 의례는 조선 시대에 이미 설행되고 있었던 의례에서 연원을 찾을 수 있다.”(윤연실[선정], 2021: 159). 또한 이러한 영향으로 조선 후기에 이르러 불교 의례가 확대되는 과정에서 점차 민간의 무속신앙과 뒤섞이는 현상도 나타나게 된다.
시대에 걸쳐서 축적된 의례의 작법들이 현재 봉행하는 불교 의례의 근간을 구성하고 있으며, 조선 후기와 일제강점기까지 저술된 의례집을 『한국불교전서(韓國佛敎全書)』를 통해 살펴보면 <표 1>과 같다.
<표 1>에 따르면 영가를 위한 관음시식의 형태를 갖춘 의례집으로 조선시대에 찬집되어 현재에 유통되고 있는 것은 『운수단가가』와 『작법귀감』의 두 종류이다.
『운수단가가』는 청허 휴정(1520~1604)이 불보살, 천신, 귀신 등에 대한 헌공의식(獻供儀式)으로 활용되었던 내용을 담아 편찬하였으며, 1627년에 전북 진안의 반룡사(盤龍寺)에서 개간한 목판본으로 ‘운수단의문(雲水壇儀文)’, ‘운수문(雲水文)’, ‘운수(雲水)’라고도 부른다.
『작법귀감』은 백파 긍선(1767~1852)이 1826년 전라도 장성부 백양산 운문암에서 상하 2권으로 간행하였다. 내용을 살펴보면, 상권은 총 21항목을 내용별로 소청(所請), 공양(供養), 신중(神衆), 계(戒)로 나눌 수 있고, 하권은 총 25항목의 의례가 있으며, 소청(所請), 예(禮), 규(規)와 식(式) 등으로 구성되고 있다.
한편, 백파 긍선은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저술의 의의를 밝히고 있다.
“작법의 절차에 대한 책들은 많으나, 서로 빠뜨린 부분이 있어 전체의 모양을 볼 수 없고, 또한 옳고 그름(涇渭)와 높고 낮음(高低)을 구분하여 말할 수 없다. …… 문하생 중에 몇몇의 선납(禪納)이 나에게 책 한 권을 만들어서 교정해 달라고 청했다. …… 여러 가지 문헌을 탐구하고 수록하여 그중에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요점을 간추려서 빠진 부분을 보충하여 일관되게 하려고 노력하였다. 의례는 3단(壇)을 갖추어야 하고, 이치는 육도(六度)를 포함해야 한다. 그리하여 네 모서리에 4성(聲)을 표시하고 또한 절구(節句)마다 구두점을 찍어서 책의 이름을 『작법귀감(作法龜鑑)』이라고 붙인다.”16)
『석문의범』(1935)은 일본불교 및 서양 종교가 한국에 들어와서 세력을 확장하던 시기인 1931년 출판된 『불자필람』의 내용을 수정과 보완하여 『석문의범』이라고 이름을 바꾸어 출간하였다. 『석문의범』의 저술 목적은 『불자필람』의 서문과 발문에서 찾아볼 수 있다.
“발행(發行)의 취지(趣旨)(부분 발췌)
법성을 잃어버림이 제일의 병이라서, 팔만법장이지만 조석(朝夕)에 송할 과(課)가 없고 펼쳐놓으면 삼천대계이지만 진속(眞俗)이 통용하는 서(書)가 없다. 그래서 단지 조모과송(朝暮課誦)과 예고의식(禮供儀式)을 담아 『불자필람』이라고 하였다. 김현곤(金玄坤)씨가 법(法)을 위하여 쪼개고, 진호(震湖) 강백이 편성(編成)하고, 퇴경(退耕)·대은(大隱) 두 대덕이 교정하고, 한용운(韓龍雲)씨의 후원(後援)으로 부처님의 힘을 입었다. 불기 2958년 신미 9월 상순. …
발(跋)(부분 발췌)
승가의 요법(要法)을 닦는 의문(儀文)은 선가귀감, 예수, 중례, 어산, 요집, 운수, 지반 등이다. 옛사람들은 일상과송(日常課誦)이 여법하게 찬회(懺悔)를 닦지만, 오늘날에는 예(禮)가 무너지고 식(式)이 없어져서, 진호 강백과 상의하여 신혼분수(晨昏焚修), 예송(禮誦), 다비(茶毘) 등의 법을 모아 『불자필람』이라고 하였다. 퇴경 화상에게 모든 의식을 찾아서 빠진 부분을 보충하여 바르게 하고, 번잡스러운 것은 요점을 취하여 상하편으로 배열하였다. 진호 강백에게 감독하게 하여 교증(敎證)하고, 퇴경 화상이 심사하였다. 불기 2958년 신미년 겨울 대은(大隱) 김태흡(金泰洽) 발문을 쓰다.”(이선이[태경], 2018: 340에서 재인용)
『불자필람』이 『석문의범』으로 변화하는 내용을 정리해 보면, 상하 2권의 차례에는 변함이 없고, 하권에 많은 내용이 추가된다. 『불자필람』부록(附錄)의 포교방식(布敎方式) 등은 간례(簡禮)에 구성되고, 고유의 노래인 가곡이 가곡(歌曲)에 추가되었으며, 신비(神秘)가 추가되었고, 교(敎)와 선(禪)으로 나누는 구성이다.
위의 내용으로 추정한다면 조선 후기까지 관음시식과 관련된 의례를 행하면서 청나라에서 찬집하였던 문헌에 영향을 받았으며, 이후의 근현대에 정착된 관음시식 의례는 19세기 초에 비로소 완성되고 있다. 한편, 『석문의범』의 찬술 과정에서 『작법귀감』 등을 참고하였던 것은 불교 의례의 전통성을 계승하려는 노력으로 볼 수 있다.
Ⅲ. 관음시식문(觀音施食文)의 변화와 함의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중국의 재 의례는 한국과 같이 큰 변화는 거의 없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지만 한국에서는 <표 1>에서 살펴보았듯이 경전에 근거한 찬집이 아니라 유학과의 습합, 또는 도교 및 무속과의 습합이 일어난 형태의 의례집이 찬집되고 있음을 살펴볼 수 있다.
관음시식이 개별적으로 완성된 형태를 보여주고 있는 문헌은 1627년 개간한 『운수단가가』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현대의 형태와 비슷한 사례는 『작법귀감』에서 찾아볼 수 있다. 『작법귀감』에서는 여러 시식문을 서술하고 있는데, 상권에 시식의 종류로 대령정의(對靈正儀), 상용시식의(常用施食儀), 상용영반(常用靈飯), 종사영반(宗師靈飯) 등을 수록하고 있고, 하권에 구병시식의(救病施食儀)를 별도로 수록하고 있다.
『운수단가가』에서 나타나는 관음시식의 절차는 향찬(香讚)부터 착어(著語)까지 42단으로 구성되고 있다(<표 2>). 현대의 관음시식과 비교하여 구분을 짓는다면 상단 불공과 하단 시식으로 나눌 수 있는데, (1)번부터 (25)번까지는 상단 헌공이라고 말할 수 있고, (26)번부터 (42)번까지는 하단 시식의 구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상단 불공의 25단 절차가 주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하단 관음시식의 14단 절차는 비교적 간단하게 서술되고 있다.
19세기 전반에 저술된 『작법귀감』은 대령정의와 상용시식의로 구성되고 있으며, 봉송은 상용시식의의 안에 부가되어 있고, 관욕은 생략되고 있다.
관음시식의 절차로써 먼저 대령정의는 (1) 거불(擧佛), (2) 지옥게(地獄偈), (3) 진령게(振鈴偈), (4) 파지옥진언(破地獄眞言), (5) 멸악취진언(滅惡趣眞言), (6) 보소청진언(普召請眞言), (7) 유치(由致), (8) 증명청(證明請), (9) 다게(茶偈), (10) 국혼청(國魂請), (11) 고혼청(孤魂請), (12) 지단진언(指壇眞言), (13) 행보게(行步偈), (14) 개문개(開門偈), (15) 예불게(禮佛偈), (16) 보례삼보(普禮三寶), (17) 제불자보례중위(諸佛子普禮中位), (18) 헌좌안위(獻座安位), (19) 괘전게(掛錢偈), (20) 수위안좌(受位安座), (21) 다게(茶偈), (22) 시식게(施食偈), (23) 시귀식진언(施鬼食眞言) 등으로 구성되고 있다.
상용시식의는 (1) 거불(擧佛), (2) 진령게(振鈴偈), (3) 파지옥진언(破地獄眞言), (4) 보소청진언(普召請眞言), (5) 고혼청(孤魂請) (6) 제불자보례삼보(諸佛子普禮三寶), (7) 제불자수위안좌(諸佛子受位安座), (8) 공양게(供養偈), (9) 무량위덕자재광명승묘력변식진언(無量威德自在光明勝妙力變食眞言), (10) 감영수진언(甘靈水眞言), (11) 일자수륜관진언(一字水輪觀眞言), (12) 유해진언(乳海眞言), (13) 오여래(五如來), (14) 시귀식진언(施鬼食眞言), (15) 보공양잔언(普供眞言), (16) 보회향진언(普回向眞言), (17) 여래십호(如來十號), (18) 반야게(般若偈), (19) 법화게(法華偈), (20) 정토업(淨土業) 등이고, 봉송고혼(奉送孤魂)의 절차로써 (21) 우(又, 한 게송), (22) 소전진언(燒錢眞言), (23) 봉송진언(奉送眞言), (24) 상품상생진언(上品上生眞言), (25) 삼귀의(三歸依), (26) 회향진언(回向眞言), (27) 파산게(破散偈) 등으로 구성되고 있다.
이처럼 『작법귀감』은 50단의 절차로 현재의 관음시식과 비교한다면 간략하게 구성되어 있다.
이후 20세기에 들어서 『석문의범』이 찬술되면서 시련, 대령, 관욕, 관음시식의 절차로 현대의 관음시식 형태가 완성되었다. 한편, 최근 들어 대한불교조계종에서는 『통일법요집』(성마, 2008)을 찬집하였는데, 시련, 대령, 관욕, 신중작법, 거량, 설법, 상단헌공, 중단퇴공, 시식, 봉송 등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석문의범』과 비교하여 외형적인 형태와 내용이 크게 팽창되어 있다.
비교의 편이성을 위해 유사한 내용을 담고 있는 시련, 대령, 관욕, 시식, 봉송 등을 선별한 후, 『통일법요집』의 내용과 『작법귀감』 및 『석문의범』에 나타난 관음시식 절차를 비교하였다.
먼저 시련의 절차로는 옹호게 등의 7종류, 대령의 절차로는 옹호게 등의 20종류, 관욕의 절차로는 인예향욕 등의 29종류, 관음시식의 절차로는 거불 등의 28종류, 봉송의 봉송소 등 14종류17), 헌식의 헌식게 등 9종류18) 등 모두 107단의 절차로 진행되고 있다. 이처럼 『통일법요집』의 관음시식 절차는 『운수단가가』나 『작법귀감』에 비해 두 배의 이상 증가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설행하는 관음시식의 절차가 과거보다 증가했음은 최정범(2012)의 연구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최정범은 영산재의 진행 과정을 ‘시련-재대령-관욕-조전점안-신중작법-괘불이운-상단권공-식당작법-중단권공-관음시식-봉송’ 등으로 구분하는데, 이 중에서 시식과 관련된 재대령(10), 상단권공(69), 식당작법(26), 중단권공(20), 관음시식(35) 등의 절차를 보더라도 시식의 내용이 많이 증가했음을 알 수 있다(최정범[정허], 2012: 7-12).
『유가집요구아난다라니염구궤의경』, 『유가집요염구시식의』 등의 경전에 나타난 절차와 한국에서 찬집한 『운수단가가』의 절차를 비교하였다.
<표 2>의 경장과 『운수단가가』의 시식 절차를 문자적으로 이해한다면 여러 차이가 있으며, 중국의 사례와는 매우 대조적이다. 이것은 중국과 달리 한국에서는 경장의 내용을 불교문화에 알맞게 새롭게 해석하여 독자적인 의례의 체계를 완성하려고 노력했던 결과물로 추정된다.
재 의례의 절차를 완성하고 있는 『유가집요구아난다라니염구궤의경』(불공 역)에서 시식의 이전 단계라고 말할 수 있는 도량의 장엄과 관련된 내용을 살펴보자.
“먼저 정지(淨地)를 선택하고서 향수를 사용하여 주위를 바르고 …… 네 모서리에 여법하게 깃발을 세우며, 다섯 색깔의 비단을 사용하여 화염주 (火焔珠)를 안치하고, 또한 구슬 안에 불정주·대비주·수구주·존승주를 안치하는데 동쪽은 불정주이고, 서쪽은 대비주이며,남쪽은 수구주이고 존승주이며, 네 기둥을 여법하게 장엄하는데, …… 백 유순에 여러 우환이 없게 하며 결계를 맺는 것이다. 다음으로 주위에 비단의 번개(旛蓋)를 걸어놓고 보물·부채·불자를 세워두며, 다음으로 단법은 성중의 계위를 따라서 아가향(阿伽香)·청수(水)·묘한 꽃(妙花)·등불(燈塗)·음식(飮食)·탕약(湯藥) 등 여러 종류의 과일(果味)과 다른 물건(餘物) 등을 펼쳐놓고 법으로 청정하게 없애서 더러움이 접촉하지 못하게 한다.
장엄을 마쳤다면 손으로 향로를 잡고서 오른쪽으로 도량을 돌면서 두루 비추어보고 주위에 준비되지 않은 곳을 다시 안정시키고 장엄을 마친 여러 제자들은 향탕수로 목욕하고 새로운 옷을 입으며 밖으로 나가서 여법하게 청소하며 향기로운 진흙을 땅에 발라서 여법하게 장엄한다면 삼마야단(三昧耶壇)이라고 이름한다.”19)
위의 인용문에서 보듯이 제불과 여러 성중을 청하기 전에 도량의 장엄과 승가의 이전을 설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운수단가가』의 결계와 관련된 천수경이나 작단법, 설단 등의 절차들은 경전에 근거하여 한국 불교에 알맞게 선택된 사례라고 말할 수 있다. 또한 삼귀의나 시식의 진언도 개략적인 범주에서 경전과 상응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운수단가가』에는 『유가집요구아난다라니염구궤의경』에서 제시하고 있는 파지옥인(破地獄印)·소청아귀인(召請餓鬼印)·소죄인(召罪印)·최죄인(摧罪印)·정업인(定業印)·참회멸죄인(懺悔滅罪印)·묘색신여래시감로인(妙色身如來施甘露印) 등의 계인(契印)과 파지옥진언(破地獄眞言)·청아귀진언(請餓鬼眞言)·소죄진언(召罪眞言)·최죄진언(摧罪眞言)·정업진언(淨業眞言)·참회진언(懺悔眞言)·시감로진언(施甘露眞言) 등의 진언, 그리고 보승여래(寶勝如來)·이포외여래(離怖畏如來)·광박신여래(廣博身如來)·묘색신여래(妙色身如來)·다보여래(多寶如來)·아마타여래(阿彌陀如來)·세간광대위덕자재광명여래(世間廣大威德自在光明如來) 등 칠여래에 대한 칭명(稱名)이 생략되는 반면, 십이인연법자(十二因緣法者)와 착어(著語) 등이 새롭게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변천의 과정에는 조선 전기에 교종과 선종의 통합이 이루어졌고, 그때까지 명맥을 이어왔던 밀교의 교세가 급격하게 후퇴하고 있었던 영향을 반영하고 있다. 『조선왕조실록』의 태종실록을 살펴보면, “그곳에 소속한 전지와 노비를 신도(新都)의 오교양종(五敎兩宗) 가운데 전지와 노비가 없는 각사(各寺)에 옮겨서 급여하고, 또 정(定)한 숫자 외의 사사(寺社)의 전지와 노비를 정한 숫자 내(內)의 각사(各寺)에 옮겨서 급여하며, 그 나머지는 속공(屬公)할 것입니다.”20)라고 건의하였고 임금이 그대로 따랐다고 전하는데, 이 가운데에서 총지종(摠持宗)과 신인종(神印宗) 등은 밀교와 관련된 종파라고 추정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한불교조계종의 『통일법요집』에 수록된 관음시식과의 연관성은 낮다. 오히려 『작법귀감』, 『석문의범』과의 연관성이 크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문헌적인 근거로 추정한다면 유가시식에 근거하여 변용된 것이 아니고, 수륙재의문의 유통을 통하여 변용이 일어났고, 『작법귀감』과 『석문의범』을 통하여 정형화되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또한 대한불교조계종 『통일법요집』은 『작법귀감』과 『석문의범』을 참조하여 찬집하였다고 말할 수 있으나, 두 문헌의 한계는 어느 경전이나 문헌을 참조하였는가를 밝히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조선 후기의 다른 의례집인 『석문가례초(釋門家禮抄)』21)를 찬집한 나암 진일과 『석문상의초(釋門喪儀抄)』22)의 벽암(碧巖) 장로는 두 의례집의 출처를 자각(慈覺) 대사의 『선원청규(禪院淸規)』와 응지(應之) 대사의 『오삼집(五杉集)』, 그리고 『석씨요람(釋氏要覽)』 등이라고 밝히고 있어서 근원을 밝히는 문헌으로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다.
의례는 의궤에서 출발하였으므로 반드시 변화가 일어난 점을 밝히는 과정이 정체성을 주장할 수 있는 근원이 된다. 관음시식과 관련된 『작법귀감』에서는 “여러 가지 문헌을 탐구하여 수록하고 그 가운데에서 잘못된 것들을 바로잡고, 요점을 간추리고 빠진 부분을 보충하여 일관되게 하려고 노력하였다.”23)라고 언급하고 있으나, 출처가 어느 문헌인가를 밝히지 않고 있으며, 『석문의범』 또한 그러하다. 그렇다면 현행 의례집의 정체성이 확립되어 있는가에 의문점이 일어난다.
그런데 앞에서 언급한 1470년 무렵에 간행된 『법계성범수륙승회수재의궤』의 판각이 남아있는 점에서 살펴본다면 조선 후기에 찬집되었던 관음시식과 관련된 문헌의 기초적인 문헌이라는 점을 부정하기 어렵다. 따라서 「수륙재문」과의 연관성을 비교하여 살펴보겠다(<표 3> 참조).
『법계성범수륙승회수재의궤』는 「행신조개계법사(行晨朝開啟法事)」, 「행발부법사(行發符法事)」, 「행상당소청법사(行上堂召請法事)」, 「행하당소청법사(行下堂召請法事)」 등의 4단으로 구성되고 있다. 이 절차들을 관음시식과 관련시켜 살펴본다면 「행신조개계법사」는 시련 및 대령과 연관시킬 수 있고, 「행발부법사」는 신중작법과 연관시킬 수 있으며, 「행상당소청법사」는 상단헌공과 연관시킬 수 있고, 「행하당소청법사」는 관욕 및 관음시식과 연관시켜 생각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수륙재문이 중국의 영향을 받았음을 추정할 수 있다.
또한 “수륙재는 활용 가치가 높아 조선시대에 많이 봉행되었고, 조선왕조실록에서 확인되는 것은 태조 1년부터 현종 15년까지 기록이 나타나고 있다.”(송법엽, 2017: 355)는 송법엽의 연구를 통해 수륙재문이 조선 후기까지 설행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으며, 수륙재문이 관음시식과 관련하여 현재 조계종에서 설행하는 모든 의례의 시작점이 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한편, 독립된 경전으로 유통되고 있는 『천수경』에서도 이와 비슷한 사례를 통하여 살펴볼 수 있다.
『천수경』은 주불전이나 다른 불전에서 설행되는 상단불공의 불공과 기도 등을 시작하면서 독송되고 있고, 재 의례와 관련된 전반부에서도 독송되고 있다. 그렇지만 현재 유통되는 『천수경』에서 정구업진언, 오방내외안위제신진언, 호신진언과 관세음보살본심미묘육자대명왕진언, 개경게, 준제공덕과 귀의준제, 준제진언과 준제후송 등은 본래 『천수경』에 수록된 내용이 아니었고, 한국 찬술의 의례집에 수용되어 유통되고 있었으나, 어느 문헌을 누가 참고하였고, 누가 처음으로 유통시켰는가의 사실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24)
『천수경』의 서분에 수용된 정구업진언, 오방내외안위제신진언, 개경게 등이 하나의 경장에 수록된 것은 청(清)의 건기(建基)가 찬술한 『금강경과의(金剛經科儀)』가 있고,25) 개경게는 별도로 명(明)에서 찬술된 『화엄도량기지대략(華嚴道場起止大略)』26)과 청에서 찬술된 『자비약사보참(慈悲藥師寶懺)』27)과 청의 서종(西宗)이 집주(集註)한 『자비도량수참법과주(慈悲道場水懺法科註)』28) 등에서 찾을 수 있다.
개경게는 『화엄경』이나 『약사경』의 독송을 위한 방편으로 수용되고 있으나, 정구업진언부터 개경게까지 수용된 것은 『금강경과의』가 유일하고, 그 가운데에 정삼업진언과 보공양진언, 봉청팔금강사보살(奉請八金剛四菩薩), 발원문이 이어지고, 뒤에 개경게를 수록하고 있으며, 오방내외안위제신진언은 ‘안토지진언(安土地真言)’29)이라고 서술되어 있다. 이 항목들은 『천수경』을 독송하던 일부의 대중들이 경전 독송의 방편으로 추가적으로 부가시켰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 시기는 조선 후기인 1704년에 찬술된 『염불보권문(念佛普勸文)』에 수용되고 있음을 고려하면, 늦어도 17세기 후반에 조선에 전해진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준제공덕과 귀의준제, 준제진언과 준제후송 등은 1769년에 찬집된 『삼문직지』에 수용되고 있다. 준제공덕의 항목은 명(明)의 시대에 수증(受登)이 찬집한 『준제삼매행법(准提三昧行法)』의 찬탄신성(讚歎申誠)의 항목에 수록되어 있고, 게송 끝의 ‘우차여의주(遇此如意寶) 정획대보리(定獲大菩提)’가 ‘우차여의주(遇此如意珠) 정획무등등(定獲無等等)’30)으로 변화되어 있으며, ‘나무칠구지대불모준제보살(南無七俱胝佛母大准提菩薩)’의 어구는 이전의 의례집 가운데서는 그 예를 찾아볼 수 없어서, 『불가일용작법』을 편찬한 진허 팔관에 의해 처음으로 수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준제진언’은 『현밀원통성불심요집(顯密圓通成佛心要集)』에서는 ‘칠구지불모심대준제다라니진언’을 “南無 颯哆喃 三藐三菩馱 俱胝喃 怛儞也他 唵 折隷主隷 准提 娑婆訶 部林”이라고 서술하고 있고, 『불가일용작법』에서도 “나무 사다남 삼먁삼못다 구치남 다냐타 옴 자례 주례 준제 사바하 부림”이란 진언으로 동일하게 서술하고 있다.31)
다음의 ‘준제후송’ 항목은 명의 사우교(謝于教)가 찬술한 『준제정업(準提淨業)』의 「준제진언지송편람(准提真言持誦便覽)」과32) 정법게진언부터 준제후송까지 수록되어 있고, 조선에서는 1869년에 정신(井辛)에 의해 찬집되었던 『불가일용작법』에서 찾아볼 수 있다.
관세음보살본심미묘육자대명왕진언은 『삼문직지』에서 처음으로 살펴볼 수 있으나, 호신진언과 관세음보살본심미묘육자대명왕진언이 같이 삽입되는 의례집은 『불가일용작법』이다. 따라서 ‘준제진언’과 ‘준제후송’ 및 호신진언과 관세음보살본심미묘육자대명왕진언도 역시 『불가일용작법』을 찬집하는 과정에서 삽입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여러 진언이 함께 수록된 문헌은 명의 요정(堯挺)이 찬술한 『준제심요(準提心要)』의 「지송의궤」에 정법계진언, 호신진언, 육자대명왕진언, 준제진언이 차례로 수록되어 있는데, 현재와 같은 진언만이 아니고 주석의 내용도 함께 서술하고 있다.33) 이처럼 정구업진언, 오방내외안위제신진언, 호신진언과 관세음보살본심미묘육자대명왕진언, 개경게, 준제공덕과 귀의준제, 준제진언과 준제후송 등은 개별적인 경전의 독송이나 다른 행법들을 위하여 찬집되어 유통되고 있었으나, 조선 후기의 『작법귀감』과 『석문의범』 등에도 수록되어 관음시식문에 정형화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이와 같은 진언들도 의식문에 자연스럽게 수용되고 유통되었듯이 「수륙재문」과 관련된 문헌들도 일정 부분에서 변용을 거치면서 관음시식에 영향을 끼쳤던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대한불교조계종의 『통일법요집』의 관음시식은 앞의 사례와 비슷하게 역사적인 흐름을 따라서 한국 의례에 수용되어 알맞게 선택되어 편집되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나머지의 절차인 봉송과 헌식 등은 『통일법요집』에 새롭게 찬집되었고, 봉송과 헌식 등은 『석문의범』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이것을 선택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당나라에서 완성되었던 『유가집요구아난다라니염구궤의경』에서는 영가천도를 위한 의례의 중요 구성으로 계인(契印) 진언이 중시되고 있으나, 중국에서 변용(變容)된 「수륙재의문」에서는 도량의 장엄 등의 구성이 진언으로 대체되고 있고, 관욕이 체계적으로 정립되고 있으며, 설계(說戒) 등이 수용되고 있는 점은 새로운 해석과 수용에 따른 변화라고 말할 수 있다.
재 의례는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여러 환경의 영향으로 변하고 있으며, 현재에도 진행되고 있다. 그러므로 재 의례를 설행하는 의식문은 변화하면서 습합되거나, 생략된 절차가 따르게 되는데, 이러한 현상을 조선 후기에 찬집된 의례집 『천지명양수륙재의범음산보집(天地冥陽水陸齋儀梵音刪補集)』의 서문에서 찾아볼 수 있다.
“당(唐)나라 삼장법사인 현장(玄奘) 공이 법을 구하기 위해 서천(西天)에 들어갔다가 저 범성(梵聲)을 들었는데,이 범패와 큰 틀이 같았고, …… 신라(新羅) 시대에 진감(眞鑑) 노승이 서쪽 중국에서 법의 등불을 잇고 겸하여 이 방법을 익히고 돌아와서 옥천사(玉泉寺)에 메아리를 남겨 주었으니, …… 기복(祈福)을 하거나 영가(靈駕)를 위하여 재를 올릴 때에 범패가 아니면 할 수가 없어 마침내 이 범패가 예로부터 계속 이어졌다.”34)
또한 『석문가례초(釋門家禮抄)』와 『석문상의초(釋門喪儀抄)』의 서문에서는 다른 상례의례(喪禮儀禮)가 별도로 전해지고 있었다는 기록을 살펴볼 수 있다.
“『석씨가례(釋氏家禮)』와 같은 책은 우리나라(東國)에는 본래 없었으니, 석씨의 집안에서 덕이 높으신 스님이 돌아가시면 흉례를 치름에 있어서 어긋나는 일이 많았다. 감실(龕室)·당당(當堂)·애읍(哀泣)의 경우는 세속과 똑같이 하였는데, …… 아울러 구조(口弔)와 제문(祭文)에 대해서는 말은 풍성하지만 상고할 길이 없고, 제복(制服)의 경중도 규범에 맞는 것이 없으며, 수답(酬答)하는 제서(題書)에 있어서도 높고 낮은 신분을 다하지 못하였으며, 사유(闍維)와 도종(導從)에 있어서도 길례와 흉례가 서로 뒤섞여 있었다.”35)
이러한 의례의 다양성을 박용진은 “천책의 실천수행과 불교의례는 대자 수행의례로는 보현도량, 법화도량, 사경과 송경, 율회, 대타적 기원의례로는 축수재, 법화경 인성 경찬, 수륙재 등의 불교의례를 확인할 수 있고, 고려후기 충렬왕과 충선왕대의 정오와 불교의례를 살펴보면 관련 자료의 대부분은 『동문선(東文選)』에 남아있고, 예참(禮懺), 축수재, 천도재(薦度齋), 사경(寫經)과 전독(轉讀), 점안(點眼), 용화회(龍華會) 등의 불교의례 자료가 확인된다.”(박용진, 2019: 78)라고 말하고 있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조선 전기에 존재하였던 여러 종파의 의례문이 수륙재나 천도재와 관련하여 다양하게 존재하였고, 종파들이 통합되는 과정에서도 조선 후기까지 영향을 주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과 관련되어 송법엽(보운)은 “불교가 한국에 전래된 이후에 주불전의 공간구성에서 여러 관점에서 변화를 일으켰으므로 의례도 이것에 알맞게 변화하였는데, 첫째는 가람에서 주불전 공간구성의 변화이고, 둘째는 불전에서 의례를 집전할 수 있는 승가 구성원의 변화이며, 셋째의 의례문의 구성의 변화 등이다.”(송법엽, 2022: 103)라고 말하고 있으므로 관음시식문의 변화는 복합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현재 대한불교조계종에는 약 삼천오백 개의 사찰이 있으며, 주불전에 맞추어 의례를 행하는 형태가 대부분이다. 대한불교조계종의 『통일법요집』은 이러한 전체적인 환경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고영섭(2010)은 한국의 근대화와 전통 불교의례의 변모에서 “조선 후기에 이르러 불교계 내부에서는 불교의식 개혁의 목소리가 일어났고, 조선 사회가 근대화되어가는 과정 속에서 전통 불교의례도 적극적인 변모를 거치게 되었으며, 불교 신도들도 조선의 근대화 과정에 부분적으로 동참하였고, 종래의 개별적인 의식집에서 수지(受持)와 집례(執禮)의 편리함을 고려하여 간편한 통합의식집이 탄생하였다.”(고영섭, 2010: 412)라고 말하고 있다.
대한불교조계종의 불교의례 변천의 한 방향은 경전적 근거가 아니라, 실제적 필요에 의해 변화가 일어난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하여 송법엽은 “현대의례에서 주목되는 점은 이전과 비교하여 『석문의범』에서는 예참과 정근이 수용된 점과 대한불교조계종의 『통일법요집』에서는 중단 퇴공이 수용되고 있는 현실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의례도 경전에 근거하지 않고 필요를 따라서 수용되었으며, 승가의 수행과 중생의 구제를 위한 방편으로 이전의 시대에서 수용되어 합리성이 검증되어 전통적으로 이어져 내려오는 항목들이다.”(송법엽, 2022: 107)라고 지적하고 있다.
불교의례는 역사적으로 존재하였던 각 종단의 종풍(宗風)을 드러내고 정체성을 나타내는 상징성으로 인식되고 있다. 한국 불교의 오랜 역사와 같이 재 의례도 존재하였고, 그 중심에 천도를 위한 관음시식의 설행이 자리잡고 있었으며, 이것을 뒷받침하기 위한 의식문의 찬집과 유통이 이루어져 왔다. 또한 천도 의례는 세존의 가르침을 상징하는 언어적 장엄과 작법을 통한 불교의 가르침을 사부대중들에게 전달하는 구성도 갖추고 있었다.
이렇게 볼 때, 대한불교조계종은 스스로가 현대에 합당한 관음시식문을 완성하고 있는 셈이다.
Ⅳ. 나가는 말
불교의례는 다양한 시대적 문화사상과 현실적 생태를 간직하고 있고, 한국 불교에서 승가의 수행과 포교에 영향을 끼칠 뿐만 아니라, 불교 신도들의 신앙생활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재 의례와 재 의례문은 각 종단의 종풍(宗風)과 지나왔던 문화를 투영하는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그 종단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방편으로 자리잡고 있다. 한국은 중국과 비교하여 수륙재를 중심으로 많은 재 의례를 설행하였으나, 개인의 의례도 중시하고 있었으며, 중국의 재 의례를 참조하였으나, 한국의 독자성을 갖추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현재의 대한불교조계종은 현대에 생겨난 역사가 짧은 종단이 아니고, 유구한 역사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므로 역사에 알맞은 의례집의 구성이 필요하였고, 이러한 실천의 방편으로 현대불교에 알맞은 합리적인 의례가 요구되었으며, 선택적으로 수용하여 『통일법요집』으로 집대성되고 있다.
『통일법요집』은 조선 후기부터 시작된 독자적인 의례문의 완성을 위한 노력을 계승하였다고 생각할 수 있으며, 앞으로도 지속적인 노력이 일어날 것이다. 모든 재 의례가 승가의 구성원에 의하여 합리성과 시의성을 바탕으로 설행되어야 하는 것은 그 종파의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는 방편이었고, 대한불교조계종에서도 이러한 당위성을 실천하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