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Journal of Buddhist Thought and Culture
Institute for Buddhist Studies
연구논문

초기 화엄교학의 여래장 이해와 대응

박보람*
Bo-ram Park*
*충북대학교 조교수
*Assistant Professor, Chungbuk University

© Copyright 2019 Institute for Buddhist Studies. This is an Open-Access article distributed under the terms of the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Non-Commercial License (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3.0/) which permits unrestricted non-commercial use, distribution, and reproduction in any medium, provided the original work is properly cited.

Received: Apr 16, 2019; Revised: May 27, 2019; Accepted: Jun 21, 2019

Published Online: Jun 30, 2019

국문 초록

고통 해결을 위해 참 ‘나’의 규명을 목적으로 하는 불교는 무아적 이해를 특징으로 하지만, 상당히 이른 시기부터 유아적 해석도 불교의 중요한 축으로 자리잡는다. 대승에 들어서면 여래의 열반을 여래의 상주로 재해석하며, 이를 계기로 “모든 중생이 여래의 신체를 지니고 있다.”는 의미의 여래장이 대승의 대표적 유적 흐름으로 등장한다. 이후 여래장 사상은 대승불교의 두 축인 중관·유식학파와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변화를 거듭해간다. 『승만경』에 보이는 여래장의 초기 변화는 여래의 상주, 불성을 중심으로 하는 불공(不空) 여래장에 번뇌로부터 완전한 여읨이라는 공(空) 여래장의 측면을 부가하여 유아적 흐름의 입장에서 무아적 흐름을 포섭하려고 하는 시도이며, 이러한 시도는 여래장 사상이 일단락되는 『보성론』 이후 인도와 티베트에서 계속된다. 중관학파는 무아적 흐름의 대표인 공 사상의 관점에서 여래장 사상을 변용하여 포섭하는데, 그 핵심은 여래의 신체인 여래장을 공성으로 이해하는데 있다.

이처럼 여래장 사상은 ‘여래장 사상’이라는 하나의 용어로 부르더라도 단일한 체계라고 할 수 없을 만큼 넓은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기에 세심한 접근이 필요하며, 이는 초기 화엄교학과 여래장 사상의 관계를 고려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초기 화엄교학을 선도한 지엄은 『승만경』 이래 사용되어 온 불공·공 여래장의 아이디어를 채용하지만 불공덕(佛功德)의 불공·번뇌의 공 여래장을 진심인 진여 그 자체가 불공이면서 공이라는 여래장으로 변용한다. 이 변용을 통해 지엄은 그의 법계연기 체계 내에서 정연기와 염연기에 걸쳐서 관계하는 여래장 자체에는 번뇌라는 개념을 아예 상정하지 않으려고 했다고 유추할 수 있다.

의상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 ‘여래장불’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여래장의 여래 → 중생이라는 불가역적 단방향성을 극복하고, 여래 → 중생 → 여래라는 원융한 사이클로 치환한 다음 이것을 바로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나 자신의 일로 등치시킨다. 이를 통해서 의상은 유적 흐름의 여래장 사상을 무적 흐름의 공성으로 이해함으로써 유무의 중도로 여래장 사상을 해석한 후, 이를 다시 나 자신의 여래출현으로 승화시킨다.

Abstract

Buddhism, which focuses on the identification of true 'me' to solve the fundamental suffering of life, is characterized by the interpretation of me as selfless, but from a very early stage of buddhism, the interpretation of me as self also appears as an important axis of Buddhism. Mahāyānabuddhism reinterprets the nirvana of tathāgataga as the permanent residence of tathāgataga, which makes tathāgatagarbha, a representative flow of the interpretation of me as self, born.

Since then, tathāgatagarbha thoughts are influenced by Yogacāra thoughts, but rather Mādhyāmika thoughts is more actively embracing tathāgatagarbha thoughts. Its key is to understand tathāgatagarbha which is the body of tathāgataga as śūnyatā. It makes the selfinterpretation and nonself-interpretation harmonize.

Based on the thoughts of nonempty tathāgatagarbha (不空如來藏) and empty tathāgatagarbha (空如來藏), Zhiyan (智儼) and Uisang (義相) included śūnyatā, a kind of nonself-interpretation, on tathāgatagarbha, a kind of self-interpretation. This is similar to the case of Mādhyāmika school. Uisang further went from here to reinterpret tathāgatagarbha thoughts as the manifestation of tathāgataga.

Keywords: 여래장; 공성; 공·불공여래장; 여래장불; 여래출현; 지엄; 의상
Keywords: Tathāgatagarbha; Śūnyatā; Nonempty Tathāgatagarbha (不空如來藏); Empty Tathāgatagarbha (空如來藏); Buddha of Tathāgatagarbha (如來藏佛); Zhiyan (智儼); Uisang (義相)

Ⅰ. 서론

불교의 근본 목적은 다양하게 표현 가능하지만, 결국 ‘이고득락(離苦得樂)’으로 귀결될 것이다.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방법으로 불교를 포함한 많은 인도 종교·철학 전통이 ‘나’에 대한 올바른 앎을 추구했으며, 불교를 개창한 석가모니 부처님은 아트만 등의 실체에 기반을 둔 다른 전통들과 달리 진실한 나, 참 나[眞我]에 대한 여실지견(如實知見)으로 무아(無我)를 주장하였다고 얘기된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나’에 대한 교설이 무아가 아니라 실제로는 비아(非我)라는 후대의 논란은 놔두더라도 독자부(犢子部, Vātsīputrīya)의 뿌드갈라(pudgala)설 등을 보면 불멸 후 상당히 이른 시기부터 불교 내부에도 나에 대한 이해에 유아(有我)적 흐름이 무아적 흐름과 함께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1) 한편, 대승불교에서는 나에 대한 유적(有的) 이해를 여래장·불성 사상이 대표한다. 또한, 이른바 비판불교라고 하는 입장에 따르면 뿌드갈라 설은 말할 것도 없고, 여래장, 유식학파, 화엄종, 선종 등도 전부 유적 이해에 기반을 둔 것으로 아예 “불교가 아니다.”라고 언급된다.

이제까지 불교로 인식되어 왔던 흐름들에 대해서 “불교다, 아니다.”라고 하는 이러한 주장은 두 가지 측면으로 분리해서 고찰할 수 있다. 첫째, 사상 또는 교리적인 측면에서는 각자가 불교를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에 따라서 충분히 논의될 수 있다고, 아니 오히려 반드시 논의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주장은 무엇이 부처님 가르침의 요의·종취(宗趣)·핵심인가라는, 불교도라면 누구나 고민해보아야 할 내용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가 예를 들어 “여래장 사상은 불교가 아니다.” 또는 “중관 사상이 불교이다.” 등등의, 그 자체가 추상적 개념체인 학파적 진영 논리에 빠진다면 이는 중관, 여래장 사상 등 여러 교의 그 자체도 끊임없이 변화하는 연기법이라는 점을 도외시한 일반화의 오류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불교 내 무적(無的), 유적 흐름은 시기와 장소를 바꿔가며 서로를 비판하는 동시에 상대방을 변용하여 포섭함으로써 자신을 끊임없이 갱신시켜 왔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상호작용하며 변화하는 무적, 유적 흐름의 과정 중 어디에 점을 찍어서 이것은 유이고 저것은 무라고 고정하려 한다면 이는 각주구검(刻舟求劍)의 답습이 아닐까?

둘째, 역사적인 측면, 즉 불교라는 사회 현상을 통시적으로 파악하려는 입장에서는 앞과 다른 접근 방식이 필요할 것이다. 나에 대한 무적 이해가 불교 역사 전체를 통해서 불교를 불교이게 한 고유의 특징인 것은 두 말 할 필요도 없다. 그렇다면 나에 대한 불교의 유적 이해는 어떠한가? 뿌드갈라 설을 비롯하여 여래장·불성 등 나에 대한 유적 이해가 불교가 펼쳐진 대부분의 시공간에 엄연히 존재했고, 그것도 상당한 영향력을 미쳐왔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유적 이해에 기반을 둔 흐름이 불교의 역사 전반에 걸쳐서 자신을 ‘불교도’라고 인식한 사람들에 의해 존재·기능해왔다는 역사적 사실을 다만 자신의 개인적인 잣대로 부정할 수 없는 것은 아닐까? 불교 내 무적, 유적 이해의 전개 과정을 역사적 측면에서 파악하기 위한 연구라면 불교 현상 중에서 자신의 잣대에 의해 유적 이해로 판단한 부분을 잘라내 버리고, 무적 이해라고 단정한 조각만을 이어붙이는 짜집기 작업이어서는 곤란하다. 그보다는 불교라는 사회 현상 속에서 무적 이해와 더불어 이질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유적 이해가 어째서 끊임없이 등장하는지 그 수요와 공급의 메커니즘을 고찰하여 자기만의 불교라는 고정된 틀에 사람을 끼워 맞추기보다는 사람을 통해서 불교라는 연기법을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이에 이 글에서는 둘째, 역사적인 측면 특히 사상사적인 부분에 초점을 맞추어서 대승불교 내 유적 흐름의 대표인 여래장 사상을 초기 화엄교학2)이 어떻게 이해했고 대응했는지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여래장 사상의 전개 과정을 선행 연구를 통해서 파악한 후에 이를 바탕으로 초기 화엄교학을 대표하는 지엄(智儼, 602-668)과 의상(義相, 625-702)이 받아들인 여래장 사상이 여래장 사상의 넓은 스펙트럼 중 어디에 위치하며 또한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변용하는지 알아본다. 마지막으로 그 대응이 화엄교학의 ‘나’ 이해와 어떠한 관계에서 나온 것인지, 또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의상의 화엄교학을 중심으로 고찰하고자 한다.

Ⅱ. 여래장 사상의 전개와 대승불교의 수용

여기에서는 초기 화엄교학의 여래장 이해를 다루기 전에 인도 불교에서 시작되어 다양한 모습으로 펼쳐지는 여래장 사상의 전개 상황을 선행 연구를 통해 파악한다.

1. 불교 내 무아적 해석과 유아적 해석의 두 흐름

대승불교의 여래장 사상은 불교 내에서 나에 대한 유아적 이해의 대표로 여겨진다. 그러나 여래장 사상이 불교의 나에 대한 유아적 이해라는 이어달리기에서 대표 주자일지는 몰라도 최초 주자는 아니었다. 따라서 그 이어달리기 전체를 조망하기 위해서는 여래장 사상뿐만 아니라, 다른 주자들도 염두에 두어야 하며, 그리고 더욱 중요하게는 그들을 달리게 한 동인(動因)이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해야만 한다.

카츠라 쇼류의 글 등에 따르면 불교 내부에는 불멸 후 상당히 이른 시기부터 참 나에 대해서 무아적 이해와 더불어 유아적 이해가 등장했으며, 이 두 이해 사이에 벌어진 대론이 이후 인도 불교를 구성하는 중요한 축이 되었다.

① 본 장의 목적은 인도불교사상사에 있어서 ‘무와 유의 대론’이 대승불교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부파불교 시대의 최초 논쟁인 ‘푸드갈라 논쟁’에서 이미 그 선행형태가 나타나며 부파불교에서 대승불교까지 ‘무와 유의 대론’이 지속되었다는 것, 즉 인도불교사상사에서는 일관되게 ‘무’와 ‘유’ 두 조류가 있었음을 밝히고자 하는데 있다(카츠라 쇼류, 2015: 246).

즉, 독자부가 석가모니 부처님이 설파한 나의 올바른 앎인 무아(또는 비아)를 뿌드갈라로 해석한 이래 이를 둘러싼 논쟁이 불교 전 시기를 관통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무아와 유아에 대한 논쟁을 통시적인 관점에서 살펴보면 불교 내 무적·유적 이해의 흐름이 단일한 두 흐름으로 구성된 고정적인 것이 아니라,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서, 마주하는 상대방에 따라서 가변적임을 알 수 있다.

불교의 나 이해는 인무아를 인정하지 않고 유위법도 무위법도 아닌 제3의 존재인 뿌드갈라를 참 나로 이해하는 독자부부터 인무아는 물론 유위법과 무위법 전부의 무아를 주장하는 중관학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유형이 있다. 따라서 중관학파의 입장에서는 독자부·유부·유식·여래장이 모두 유아적 이해의 흐름이지만, 유식학파의 관점에서 중관학파는 중도를 벗어난 단견에 해당하고 독자부는 상견에 해당하며, 여래장 사상에서는 무아설이 미요의(未了義)이고, 여래장·불성 사상이야말로 참다운 불설(佛說)인 요의라고 주장한다.

필자의 단견에 이처럼 다양한 나 이해의 핵심에는 무위법에 대한 이해가 자리하는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무위법의 하나인 열반은 무엇을 특성으로 하는가? 열반이라는 현상은 시공간과 무관하게 끊임없이 항상해야 하며[常], 모든 고통을 여의어서 즐거워야 하고[樂], 바로 그것이 참 나의 상태이며[我], 일체 염오를 벗어나 청정해야 한다[淨]. 무위법을 공한 것으로 주장하지 않고 일체법 분류에 포함시킨다면 결국 여래장·불성 사상의 ‘常樂我淨’과 근본적으로 같은 주장이 되고 만다. 물론 중관학파는 무위법조차 공한 것으로 파악함으로써 이 난제를 벗어나려 하지만 이는 허무론이라는 오명에 맞닥트리는 원인이 되고 만다.

일체법무아를 통해서 참 나를 이해하여 열반이라는 목표로 나아가려는 불교 여러 학파·부파·종파에게 열반 그 자체의 존재성 부정은 목표 상실의 역설에 이르게 된다. 필자는 이 지점이 불교 내에서 끊임없이 유적 이해가 등장하는 근본 동인이라고 생각한다. 때로는 윤회의 주체로서 때로는 불상주(佛常住)의 터전으로서, 때로는 수행과 포교의 근거로서 기능하는 나의 유적 이해는 열반이라는 불교의 목표 지점에 대한 고민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2. 대승경전의 여래장설과 중관·유식의 수용

앞서 언급했듯이 여기에서는 초기 화엄교학의 여래장 이해가 여래장 사상 전체의 스펙트럼 중 어디에 위치하는가를 파악하기 위해서 여래장 사상의 발생 사정과 이후 변화를 중심으로 선행연구를 이용하여 간략한 개요만을 정리하고자 한다.

1) 대승 『대반열반대경』의 불성·여래장

종래에는 여래장 사상이 『여래장경』에서 시작되어 『승만경』과 『부증불감경』을 거쳐서 『구경일승보성론』에서 일단 완결을 이룬 후, 인도에서는 유식학파와 중관학파 사이에서 점차 흡수·소멸되어 갔으며, 초기 형성 과정에서 대승 『대반열반대경』3)(이하 『열반경』)을 필두로 하는 열반경 계통 경전이 많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이해되어 왔다. 그러나 최근 연구(시모다 마사히로, 2015: 68-72)는 『열반경』의 성립이 『여래장경』보다 앞서며, 여래장 개념 또한 『열반경』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하며, 점차 많은 관련 연구가 이를 지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열반경』에서 설해지는 ‘여래장’은 무슨 의미인가? 이에 대해서 카노 카즈오는 『열반경』의 ‘여래장’(tathāgatagarbha)을 소유복합어로 풀이하면서 ‘여래를 안에 품고 있는 [불탑]’으로 이해한다(가노 가즈오, 2017). 『열반경』의 해당 문구에 등장하는 ‘여래장’을 무슨 복합어로 풀이하는가에 대해서는 동일하지 않지만 하바타 히로미(2015: 152-156)와 시모다 마사히로(2018: 357-360) 등도 모두 『열반경』에서 여래장과 불성이 여래의 신체 또는 여래의 신체를 품고 있는 불탑을 의미한다고 이해하고 있다.

『열반경』은 당연히 석가모니 부처님의 열반이 주제이다. 하바타 히로미(2015)에 의하면 『열반경』은 여래의 열반이라는 불교도에게 절체절명의 사건을 오히려 “여래가 여기에 있다.”는 의미의 ‘여래상주’(如來常住, nityo bhagavāṃ buddha)로 창조적 해석을 통해 승화시킨다. 이 때 주요한 수단이 되는 것이 바로 “모든 중생이 여래의 신체를 지니고 있다.”는 여래장 개념이다. 즉, 여래장 개념이 발생할 때 그 동인은 바로 여래의 열반이며, 그 핵심 의미는 여래 [신체]의 자기화이다. 이는 다음의 『열반경』 인용문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② 자기 자신인 부처에 귀의한다면 [자신과 부처의] 신체가 동일한 것이 되어야만 한다. …중략…여래와 같아지고 나서는 여러 부처들에게 합장 예배해야 할 필요는 없다. [그대] 자신이 중생들의 위대한 귀의처와 같아져야 한다.…자신의 신체가 일체중생으로부터 예배되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가노 가즈오, 2017: 11 재인용).

다만 카노 카즈오가 지적하고 있듯이 부처와 같아지는 자기 자신은 일체 중생을 의미하지만 말 그대로의 일체 중생이 아니라 “자기에 내화된 불탑의 공양을 바라는(가노 가즈오, 2017: 16)” 모든 중생을 가리킨다. 따라서 자기 자신이 여래의 신체를 지니고 있다고 믿지 않고 자기화가 된 여래의 신체를 예배하지 않는 중생이 바로 『열반경』에서 비난하는 일천제가 된다.

이러한 측면에 『열반경』의 여래장 개념은 부처님[佛]과 [부처님의] 가르침[敎]이라는 두 축으로 이루어진 ‘불교’(佛敎) 중 부처님을 중심으로 구축된 것이다. 따라서 여래의 열반을 동인으로 형성된 여래장의 실재론적 개념은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인 무아, 나아가 공의 입장과 대립한다. 이는 『열반경』에서 “‘여래는 anitya고, 반열반하여 공이 된다’는 주장은 ‘마설’로 비판되고, ‘공’의 실천을 부정하는 태도는 『대반열반경』 곳곳에서 반복해서 발견할 수 있다(하바타 히로미, 2015: 156-157).”는 언급을 통해서도 엿볼 수 있다.

2) 『승만경』의 불공·공 여래장

대승 『대반열반경』과 『여래장경』에서 창안된 여래장 사상은 말하자면 ‘불교’ 가운데 ‘불’(佛) 즉 부처님을 중심으로 부처님의 상주, 실재를 주창한 것으로서 ‘교’(敎) 즉 무아, 공의 가르침에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았다는 것은 앞서 말한 바와 같다. 그러나 여래장 사상이 창안된 이후에는 공 사상과 상호 작용을 일으키며 변화를 맞이하는데 『승만경』에 그 초기 과정이 보인다.

『승만경』의 여래장 사상은 이전의 여래장 사상과 여러 측면에서 다른 특징을 가진다.4) 『승만경』이 보여주는 중요한 변화 가운데 하나는 바로 여래장 자체의 성격에 관한 것으로 즉 ‘불’을 중심으로 한 유적 흐름의 여래장 사상이 ‘교’에 근거를 둔 무적 흐름의 공 사상을 융섭하려는 시도이다. ‘불’이 아니라 ‘불교’이기 위해서 신생 주장인 여래장 사상은 기존 체계인 공 사상을 어떤 형태로든 자기 안에 품어야 했을 것이다. 이에 대한 『승만경』의 대답이 바로 불공·공 여래장이라고 볼 수 있다.

③ 세존이시여, 여래장에 대한 지혜는 여래의 공(空)에 대한 지혜입니다. 세존이시여, 여래장이란 일체의 아라한, 벽지불, 대력보살이 본래 보지 못하는 바이고 얻지 못하는 바입니다. 세존이시여, 여래장의 공에 대한 두 가지의 지혜가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공여래장은 일체의 번뇌장을 여의거나 벗어나거나 달리 하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불공여래장은 갠지스 강의 모래[수]보다 많은 불가사의한 불법을 여의지 않고 벗어나지 않고 달리 하지 않는 것입니다.…중략…일체 고통의 소멸은 오직 부처님만 증득하여 일체 번뇌장을 무너뜨리고 일체 고통을 소멸시키는 길을 닦습니다.5)

③에서 『승만경』은 해탈도를 가능케 하는 지혜이자 오직 부처님만 가능한 지혜인 불공·공여래장에 대한 지혜를 설한다. 여기 인용문에서도 알 수 있듯이 『승만경』에서 공여래장은 번뇌의 ‘공’(空)을 의미하고, 불공여래장은 불공덕(佛功德)의 ‘불공’(不空)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승만경』에 의거하면 여래장은 공과 불공의 두 가지 측면을 동시에 갖추고 있는데, 본래 한량없는 부처의 공덕을 지니고 있기에 불공이고, 동시에 번뇌를 완전히 여의었기에 공이다.

여기에서 특히 두 가지 점이 눈에 띈다. 첫째, 『승만경』 이전의 여래장 사상이 불공을 중심으로 한 여래장이었다면 『승만경』의 여래장 사상은 불공과 함께 공의 측면도 포섭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불’ 측면의 여래장 사상이 기존 ‘교’ 입장의 공 사상을 배척하려는 입장에서 여래장을 중심으로 불공과 공을 포섭하려는 입장으로 선회했음을 암시한다.

둘째, 불공의 여래장 사상이 공 사상을 포섭하려고 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번뇌의 공을 의미하는 것이지, 여래장 그 자체의 공을 주장하지는 않는다. 만약 여래장 그 자체가 공하다고 하면 이는 대승 『대반열반경』 등에서 여래장을 주장하게 된 맥락(여래의 열반-“모든 중생이 여래의 신체를 지니고 있다.”-여래의 상주)에서 벗어나게 되고, 이는 자기 자신을 부정하는 결과가 되고 말 것이다. 즉, 여래장 자신의 정체성은 지키면서도 최대한 공 사상을 포섭하고자 했던 결과가 『승만경』의 불공·공 여래장이라고 볼 수 있으며, 이러한 입장은 『부증불감경』 등 여래장계 경전과 후대의 『보성론』에까지 주된 흐름으로 유지된다.

3) 중관학파의 여래장 변용과 유식학파의 여래장 동거

불교의 목표인 열반을 포함한 일체법을 공성으로 파악함으로써 참 나를 무아적으로 해석하는 중관학파의 흐름을 “I don’t have anything.”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면 여래의 열반을 여래의 상주로 재해석한 여래장 사상은 “I have something.”으로 나타낼 수 있을 것이다. 이 때의 ‘something’은 여래의 신체, 또는 신체를 품고 있는 불탑을 의미한다는 것은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다.

이 두 가지 흐름은 위 문장이 보여주듯이 서로 화합할 수 없다. 하나는 나에게 고정불변하는 실체라고는 아무것도 없으며, 더욱 정확하게는 아무것도 없는 것을 상황에 따라서 임시로 ‘나’라고 부를 뿐이라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나에게 무언가(=여래의 신체)가 있으며, 여래의 신체를 자기화함으로써 여래의 상주를 이야기하고 이러한 여래장을 바탕으로 윤회와 열반이 이루어진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두 측면은 두 가지 방향에서 소통을 시도하는데 하나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승만경』 등에서 확인되는 여래장의 입장에서 공 사상을 포섭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공 사상의 입장에서 여래장을 재해석하는 것으로 이는 6세기 이후 중관학파의 여러 논사들이 적극적으로 여래장 사상을 변용하면서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 변용을 본격적으로 추진한 것은 바비베카(Bhāviveka, 490-570년경), 찬드라키르티(Candrakīrti, 600-650년경), 카말라쉴라(Kamalaśīla, 740-797년경) 등이다. 세 논사가 여래장 사상을 재해석하는 세부 내용은 다르지만 간략히 요점만을 취한다면 결국 여래장 사상의 핵심인 ‘something’의 재해석으로 귀결된다.

『승만경』 등에 이어 등장한 여래장 사상을 대표하는 논서인 “『보성론』에서 여래장은 불공이지만, 그것을 에워싸고 있는 번뇌는 공이라고 설(가노 가즈오, 2015: 218)”하여 『보성론』에 의거하는 한 ‘something’은 어디까지나 불공(不空)이다. 즉, 불공과 공이 분리되어 불공은 부처님의 덕성6)이고, 공은 불공을 둘러싼 객진번뇌에 해당한다.

그러나 중관학파의 세 논사는 여래장 자체, 즉 ‘something’을 무아를 특징으로 하는 것, 또는 공성과 다름없다고 환골탈태시켜서 또는 아전인수하여 여래장 사상을 자신들의 중관학 체계 안으로 편입시킨다. 이러한 변용은 ‘something’을 ‘nothing’으로 재해석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즉, 여래장 문구인 “I have something.”의 구조는 그대로 두고, ‘something’을 ‘nothing’으로 치환하여 “I have nothing.”으로 바꿔 쓴 것이다. 다시 말해 여래장 외부의 객진번뇌를 공하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의 덕성인 불공 여래장 자체를 공하다고 하는 것이다. 이로써 무적 흐름의 대표인 중관학파의 공 사상의 입장에서 유적 흐름의 여래장 사상을 포섭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은 <그림 1>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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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중관학파의 여래장 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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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유적 흐름의 핵심인 여래장을 공성으로 파악하여 무적 흐름으로 끌어들이는 경향은 세 논사 이후 인도와 티베트 불교에서 지속된 것으로 보인다.

불교 내 유적, 무적 흐름을 굳이 구분하자면, 식의 존재를 인정하는[唯識無竟] 유식과 여래장은 중관학파에 비교해 볼 때 유적 흐름에 속한다. 이 둘의 관계를 보면 여래장은 발생 초기에 독자적인 배경을 가지고 형성된 것으로 판단되지만(高崎直道, 2009: 393-394), 이후 『보성론』에 이르러 여래장 사상이 일단락되는 과정에서 유식의 교리를 상당 부분 수용한 것으로 평가된다. 즉, 여래장 사상은 중관학파에 의해서 변용되기 이전에 유식학파에 먼저 접근했다고 볼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능가경』 등에서 보이는 여래장과 알라야식의 등치이다.

그러나 무위의 여래장과 유위의 알라야식은 본래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등치하는데 근본적인 한계가 있었고, 또 붓다론과 중생론이라는 서로 다른 방향성, 일승진실설과 삼승진실설의 대립, 일체개성불과 오성각별설의 문제 등 여러 면에서 입장 차이가 현저했기 때문에 유적 흐름인 여래장 사상은 같은 유적 흐름으로 포섭되는 유식사상보다는 오히려 무적 흐름의 대표주자인 중관사상과 더욱 친밀한, 화학적 결합을 이루게 된 것으로 보인다.

다음 절에서는 이러한 배경과 영향 관계를 가진 여래장 사상이 동아시아의 화엄교학에서는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변용되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Ⅲ. 지엄의 여래장 이해와 의상의 재해석

1. 지엄의 여래장 이해: 불공·공여래장과 염연기불

여래장에 대한 초기 화엄교학의 이해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다룰 수 있다. 이제까지 이에 관한 선행연구는 그 가운데 주로 연기설과 관련하여 이른바 여래장연기의 관점에서 여래장연기와 법계연기의 관계를 중심으로 다루어졌다(木村清孝, 1977: 512-521; 전해주, 1994: 50-58; 石井公成, 1996; 박보람, 2017). 이 글에서는 그에 바탕하여 앞서 살펴본 여러 여래장의 변화 가운데 초기 화엄교학이 받아들인 여래장은 무엇이고, 이에 어떻게 대응했는가에 중점을 두어 고찰하고자 한다.

지엄의 여래장 이해에서 먼저 한 가지 짚고 가야 할 점은 지엄의 화엄교학 체계 내에서 여래장이 어떠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는가이다. 지엄은 정연기와 염연기로 이루어진 그의 법계연기 체계 내에서 주로 염연기의 해명에 여래장을 활용하고 있다. 즉, “대체로 지엄이 법계연기설을 구축할 때 여래장설을 핵심으로 하는 정영사 혜원(淨影寺慧遠, 523-592)의 영향을 받는 동시에 그것을 초월하려는 입장이었다고 평가한다. 즉, 지엄은 법계연기설에서 여래장설을 수용하면서도 혜원이 이를 정연기(淨緣起)와 염연기(染緣起) 양 쪽 측면에서 모두 활용하였던 것과는 달리 여래장설을 염연기에만 한정하고, 정연기에서는 여래장설을 벗어나 성기설에 기반한 연기설을 확립하면서 화엄교의 독자성을 추구하였다(박보람, 2017: 144)”고 할 수 있다.

지엄의 이러한 여래장 이해는 여래장이 해탈도의 근거, 즉 정연기의 근거라는 여래장 본연의 취지와는 상당히 변형된 입장일 뿐만 아니라, 여래장을 청정한 여래의 덕성으로 파악하는 여래장 본래의 흐름보다는 염오식인 알라야식을 여래장과 동일시하는 계열과 가까운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지엄은 여래장을 염오식인 알라야식으로 이해한 것일까? 지엄이 이해한 여래장은 어떠한 여래장일까? 여기에서는 『수현기』 가운데 염연기 관련 논의를 중심으로 그 개요를 살펴본다.

먼저 지엄의 법계연기 중 염연기 구조를 도시하고, 그 중에서 특히 여래장이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부분인 섭말종본문(攝末從本門)을 이어서 인용하면 <그림 2>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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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법계연기 중 염연기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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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셋째, 지말을 포섭하여 근본을 따름이란 [다음과 같다.] 12인연은 오직 진심이 짓는 것이다. 파도가 물이 짓는 것이고 또한 꿈의 일이 오직 보심(報心)이 짓는 것과 같으니 진성이기 때문이다.…중략…

[문] 지말을 포섭하여 근본을 따름은 청정한 품류이어야 하는데, 어찌 염오문의 분별에 있는가?

[답] 이 지말을 포섭하여 근본을 따름의 이치는 청정한 품류의 연생에 있지만, 지금은 염오에 대하여 염오가 환과 같음을 드러내기 위한 까닭에 염오문에 있는 것이다.

[문] 뜻이 만약 이렇다면 일체의 청정한 법이 함께 염오에 대하여 허망을 드러내야 하는데, 어찌 지말을 포섭하여 근본을 따름이 염오의 연생에 있다고만 말할 뿐인가?

[답] 청정한 품류의 연기를 전체적으로 논하면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염오에 대하여 허망한 법을 드러내기 위한 까닭이다. 경에 모든 진리인 제일의를 여실하게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둘째는 다만 청정한 품류의 연기만을 드러내는 것이니, 곧 이치를 드러내는 문으로 곧 「보현보살행품」과 「보왕여래성기품」 등이 이것이다. 나머지 뜻은 이것에 준하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지말을 포섭하여 근본을 따름은 곧 공하지 않은 여래장이다. 이 가운데 또한 공한 [여래장]의 뜻도 있으니 자체가 공함이 되기 [때문이다.] 뒤에 마땅히 분별할 것이다.7)

④는 지엄의 『수현기』에서 『화엄경』 「십지품(十地品)」 제6 현전지(現前地)의 10중 십이인연을 주석하는 부분 중 일부이다. 지엄은 여기에서 법계연기 중 염연기를 다시 여러 겹으로 구분하는데, 이 부분은 지말, 즉 염연기를 포섭하여 근본, 즉 정연기를 따르는 문에 대한 설명으로써 이를 여래장에 의거하여 풀이하고 있다. 따라서 여래장에 의해서 염연기를 설명하고 있는 것은 맞다. 그러나 여기에서 설해지는 여래장은 염오식이 아니라, 진심으로서 다만 염연기에 상대하는 여래장일 뿐이다. 지엄이 이해하는 여래장이 염오식이 아니라면 이 여래장은 혹시 진망화합식인가? 이 단락 처음에 “12인연은 오직 진심이 짓는 것이다.”라고 하고 있는 것에서 지엄에게 여래장은 염오식도 또한 진망화합식도 아님을 명백하게 알 수 있다.

이어서 결론적으로 지엄은 여래장에 대한 자신의 이해를 ‘공하지 않은 여래장’[不空如來之藏]과 ‘공한 [여래장]’으로 정리한다. 지엄이 사용한 여래장의 두 가지 측면은 앞서 소개한 『승만경』 이래 여러 여래장계 경론에서 여래장을 설명할 때 사용하는 용어인 ‘불공여래장’(不空如來藏)과 ‘공여래장’(空如來藏)과 유사해 보인다. 그렇다면 지엄이 받아들인 여래장은 『승만경』 이래 『보성론』에 이르기까지 인도의 여래장계 경론에서 설해지는 여래장, 즉 불덕(佛德)의 불공(不空)과 번뇌의 공(空)을 두 축으로 하는 여래장인가?

그러나 위 인용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지엄이 주장하는 불공·공 여래장은 『승만경』에서 설해지는 불공·공 여래장과 궤를 달리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승만경』의 여래장은 앞서 서술한 바와 같이 불덕의 불공과 번뇌의 공을 축으로 한다. 하지만 지엄은 위 인용문에서 “이 가운데 또한 공한 [여래장]의 뜻도 있으니 자체가 공함이 되기 [때문이다.]”라고 하여 공한 [여래장], 즉 공여래장에서 공함의 대상이 『승만경』처럼 번뇌가 아니라, 여래장 그 자체임을 밝히고 있다.8)

지엄의 여래장은 『승만경』의 불덕의 불공-번뇌의 공 여래장이 아니라, 불덕의 불공-불덕의 공 여래장으로 불덕 자체가 불공이자 공인 여래장이다. 따라서 지엄은 『승만경』으로부터 여래장 사상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승만경』 이래 널리 사용되어 온 ‘불공·공 여래장’의 아이디어는 받아들이면서도 불공과 공의 대상을 불덕과 번뇌 두 가지에서 불덕으로 단일화시킨 것이다. 이 변용을 통해 지엄은 그의 법계연기 체계 내에서 정연기와 염연기에 걸쳐서 관계하는 여래장 자체에는 번뇌라는 개념을 아예 상정하지 않으려고 했다고 유추할 수 있다.

지엄이 불공·공여래장 사상을 『승만경』으로부터 직접 받아들인 것인지, 아니면 후대의 다른 논서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지엄의 여래장 이해에 여래장 본연의 불공뿐만 아니라, 공적인 측면이 포함되어 있는 것은 주목할 만한 점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것이 앞서 언급한 중관학파의 공에 바탕한 여래장의 변용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니라고 해도.

물론 지엄이 여래장을 진식으로 파악했다고 하더라도 이 여래장을 자신의 교학에서 최고의 자리에 위치시키지는 않는다. 지엄은 진식인 여래장과 별도로 염연기를 아예 상대하지 않는 오직 청정한 문(「보현보살행품」과 「보왕여래성기품」)을 두어 여래장을 별교일승의 성기심보다는 아래에 위치시킨다. 이 점에서 지엄과 정영사 혜원의 여래장에 대한 이해 또는 평가가 달라진다고 할 수 있다.

2. 의상의 여래장 재해석: 여래장과 여래장불

지엄의 뒤를 이은 의상의 여래장 이해는 기본적으로 지엄과 유사하다. 의상은 지엄과 마찬가지로 여래장을 진식으로 이해하며, 이를 원교에 해당하는 진여와는 구별한다.

⑤ [문] 『수현기』[疏]에서 이르는 오종교체(五種敎體)가 오교(五敎)와 어떻게 지금 해당합니까?

[답] 첫째, 실제의 음성[實音聲] 등은 소승(小乘) 살바다(薩婆多) 등의 근본 가르침에 해당한다.…중략…

넷째, 유식인 음성[唯識音聲] 등은 멀리는 초교의 지위 등에도 있으나 바르게는 숙교의 마지막 이후이니, 일체법이 다만 하나의 여래장진식(如來藏眞識)이 지은 것이기 때문이다.

다섯째, 진여음성(眞如音聲)은 숙교(熟敎) 마지막 이후의 구극으로 원교(圓敎)의 지위에 해당하니, 일체법이 모두 진여(眞如)이기 때문이다.9)

⑤는 법장 찬으로 전해져 왔지만 근래에 의상의 강의를 제자 지통이 기록한 『지통문답』의 이본으로 밝혀진 『화엄경문답』 일부이다. 여기에서 의상은 여래장을 진식으로 표현하고, 또 여래장진식을 숙교 즉 종교에 포함시켜서 진여를 중심으로 하는 원교보다는 아래로 파악함으로써 지엄과 같은 이해를 보이고 있다. 의상은 여기에서 여래장(숙교)과 진여(원교)를 대비하고 있지만, 다른 구문을 보면 이 진여가 바로 성기법을 가리킴을 알 수 있다.

⑥ [문] 이러한 [고통은] 다만 일체중생의 여래장이 짓는 것인데 어떻게 자비가 되는가?

[답] 이미 전부 여래장이 짓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래장의 훈습으로 인한 까닭에 바야흐로 고통을 떠나 즐거움의 과보를 얻으므로 그 자비가 매우 깊어서 이보다 더한 것이 없다.

[문] 이익의 뜻은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중생이 고통을 받는 것이 어떻게 부처님의 자비인가?

[답] 만약 부처님이 [중생으로] 하여금 고통을 받게 하지 않으신다면 그 중생은 고통을 싫어하여 즐거움을 추구하지 못하므로 반드시 고통을 받게 하여야만 바야흐로 고통을 싫어하는 마음이 생겨난다. 이러한 뜻 때문에 중생에게 고통을 얻게 하는 것이 곧 부처님의 자비인 까닭에 받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말은 여래장 등이니 우선 종교 등을 기준으로 하여 그것을 말한 것이다. 만약 일승이라면 곧 성기의 법이 짓는 것이다.10)

⑥ 또한 『화엄경문답』의 한 구절이다. 여기의 내용은 기본적으로 『승만경』11)에 바탕하여 여래장이 생사와 열반의 근거이고, 특히 중생의 고통 또한 여래장으로 인한 것이라고 설한다. 의상은 여래장에 근거한 이 교설이 종교를 기준으로 한 것이며, 일승에 의한다면 곧 생사와 열반 모두를 성기의 법에 의한다고 하여 여래장과 성기법을 구별한다.

여기에서 주목할 점은 여래장의 일승적 재해석, 즉 성기적 재해석이다. 지엄의 경우, 법계연기 중 정연기는 「보현보살행품」과 「보왕여래성기품」에 근거하여 성기법을 설하면서도 염연기는 전체적으로 여래장에 의해서 벌어지는 것으로 풀이한다. 물론 이것 또한 혜원이 정연기, 염연기 모두가 여래장에 의한 것으로 설명하는 것보다는 역할이 축소된 것이지만, 어쨌든 지엄에게 여래장은 염연기의 체로서 아직 효용이 남아있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의상에게 여래장은 그나마 남아있던 염연기의 주체로서의 여래장의 역할이 인정되지 않는다. 의상에게 여래장이 연기의 체로서 활약하는 것은 종교의 이야기일 뿐, 일승에서라면 여래장은 아무런 역할도 맡지 못하고 성기법이 모든 역할을 대신한다.

그렇다면 의상에게 여래장은 생명력을 다한 과거의 유물일 뿐인가? 그러나 의상의 다른 문구를 보면 의상이 여래장을 완전히 버리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여래장 그대로는 아니지만 이를 재활용하여 자신의 종지라고도 할 수 있는 여래성기, 여래출현의 논의에 적극 이용하기 때문이다.

⑦ [문] 이것은 남이 이미 부처를 이루어서 예배하는 것으로 자신은 아직 부처를 이루지 못하였는데 무엇 때문에 [자기를 예배하는 것입니까?][답] 남의 부처를 예배하는 뜻이 없는 것은 아니나 먼 연(緣)으로 가까운 연은 아니다. 왜 그런가? 무릇 모든 부처가 중생을 위하여 부처의 덕을 설하는 뜻은 중생으로 하여금 스스로 또한 저 과를 얻게 하고자 하기 때문에 수행하게 하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중생은 자신의 미래에 얻을 과덕을 증득하니 저 [과덕]을 얻고자 하기 때문에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고 수행하는 것이지 남의 부처의 과덕을 얻기 위하여 수행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까닭에 바로 지금 내가 발심하여 수행하게 하는 것이다. 부처는 다만 나의 미래의 과이며 이미 부처를 이루었다면 남의 부처가 아니다. 이 뜻은 의심스럽거나 괴이하지 않다.

또 남이 이미 부처를 이루었다면 곧 이는 자신의 미래의 과보로서의 부처이다. 무엇 때문인가? 남이 부처를 이룰 때 곧 삼세 부처의 평등한 과를 얻기 때문이다. 또 나의 미래의 과보로서의 부처가 곧 남이 오늘 이룬 부처이다. 무엇 때문인가? 내가 미래에 부처를 얻을 때 곧 삼세 부처의 평등한 법을 얻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돌고 돌아 다시 서로 평등하다. 평등하고 차별 없는 과덕이 모두 지금의 나를 교화하여 수행하게 하니 이 뜻이 또한 없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혹은 지금 나의 몸 전체가 여래장불 등인 것이다. 지금 내가 곧 연(緣)으로서의 오성불(吾性佛)이니 따라서 곧 이러함에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슬픔과 괴이하게 여김이 일어난다. 지극한 마음으로 수행하여 미혹을 뒤집고자 하면 이 때문에 내 부처를 관하여 교화하니 곧 오체불(吾體佛)이다. 멀리서 남의 부처를 구할 것이 아니다. 이 뜻은 바르게 관행하는 자의 대요이다.

또 이 오성불이란 곧 일체 법계의 유정물과 무정물중에 완전히 즉하여 존재하니 어느 한 사물도 오체불이 아닌 것이 없기 때문이다. 만약 능히 자체불을 예배한다면 예배하지 않는 사물이 없으니 이 또한 깊은 대요이다.12)

⑦ 또한 『화엄경문답』의 일부이다. 이 구절은 의상의 화엄교학 중에서도 그 독특함으로 인해 주목받아 온 ‘배자체불설(拜自體佛說)’을 설하는 부분이다. 배자체불설이란 간략히 말하면 ‘멀리서 다른 부처님을 예배할 것이 아니라, 부처인 자기 자신[吾體佛=自體佛]을 예배하라는 것’이다. 부처인 자기 자신은 삼세와 시방에 변만하여 이 법계에 두루하지 않음이 없기 때문에 부처인 자기 자신을 예배하는 것은 곧 법계 일체 현상을 부처님으로서 예배하는 것과 다름없게 된다. 배자체불에 대해서는 지론종 및 삼계교의 영향을 고찰한 선행연구가 있지만, 앞의 『열반경』 인용문(②)을 보더라도 배자체불 개념 자체는 동아시아에서뿐만 아니라, 인도에서 이미 유사한 사례를 찾을 수 있다.

여기에 ‘여래장불’이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여래장불’은 의상 고유의 것이 아니다. 북위(北魏) 시대에 보리유지(菩提流支, Bodhiruci)가 번역한 『불설불명경(佛說佛名經)』 등을 비롯하여 여러 논서13)에 등장하는 용어이다. 지엄에게도 ‘여래장불’이란 표현이 보이지만 이에 관해서 크게 주목하여 논의를 행하고 있지는 않다.14)

의상의 여래장불이 특이한 점은 부처인 여래장불을 내 오척되는 몸, 즉 자기 자신과 등치시킨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부처인 자기 자신[吾體佛=自體佛]은 다시 여래장불(如來藏佛)로 표현되며, 이는 곧 내 몸 전체이다. 이것은 과연 무슨 의미일까?

이를 고찰하기 위해서는 먼저 ‘여래장불’의 의미를 알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존하는 문헌에 등장하는 ‘여래장불’ 용례는 극히 단편적으로 대부분 불명을 열거할 때 나오거나 별다른 설명이 보이지 않아서 그 의미를 파악하기 어렵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점은 ‘여래장’이 아니라 ‘여래장불’이라는 것이다. 시모다 마사히로의 논의(시모다 마사히로, 2015: 24-27)를 빌리면, 여래장 문헌에서 여래가 ‘여래장’이 되면서 중생쪽으로 하강하지만 “중생 안에서 여래장을 발견하고 그것을 선언하는 것은 항상 여래이고 중생이 아니”다. 즉 여래 → 중생으로의 불가역적인 단방향성이 여래장의 핵심이다. 하지만 ‘여래장’이 ‘여래장불’이 되면 불가역은 가역으로, 단방향은 양방향이라는 새로운 변화를 맞이한다. 중생쪽으로 내려앉은 ‘여래장’이 ‘여래장불’이 되면서 다시 여래로 상승한다. 따라서 ‘여래장불’이라는 용어는 여래장의 불가역적 단방향성이라는 한계를 극복하고, 여래 → 중생 → 불(여래)이라는 원융한 사이클을 완성한 것이다. 중생과 여래가 원융한 동그라미는 더이상 중생이 낮은 자리, 여래가 높은 자리도 아니며 중생이 인위이고 여래가 과위이지도 않은 원융한 한 자리일 뿐이다.

의상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이러한 함의의 ‘여래장불’을 바로 자기 자신과 등치시키는데까지 나아간다. 여래는 홀로 여래가 아니라 반드시 중생과 함께 하는 여래임을 자기 자신을 통해서 구체화, 즉물화시킨다. 결국 여래장불이 곧 내 자신이라는 것은 부처가 되고자 하는 행을 목표로 할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서 바로 부처로서 행할 것을 강력히 요구하는 여래출현의 다른 표현인 것이다.

정리하면 불공·공여래장을 변용하는 지엄과 의상의 입장에서 여래장은 무량불덕인 공성이다. 이런 입장이라면 유적 흐름의 여래장은 한량없는 부처님의 과덕이면서 동시에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인 무아·공성을 핵심으로 하는 무적 흐름 그 자체가 된다. 나아가 의상은 유무가 원융무애한 이 여래장을 여래장불로 승화시키면서 무량불덕인 공성이 곧 나의 일이며 여래출현임을 주창한다.

Ⅳ. 결론

고통 해결을 위해 참 ‘나’의 규명을 목적으로 하는 불교는 무아적 이해를 특징으로 하지만, 상당히 이른 시기부터 유아적 해석도 불교의 중요한 축으로 자리잡는다. 대승에 들어서면 여래의 열반을 여래의 상주로 재해석하며, 이를 계기로 “모든 중생이 여래의 신체를 지니고 있다.”는 의미의 여래장이 대승의 대표적 유적 흐름으로 등장한다. 이후 여래장 사상은 대승불교의 두 축인 중관·유식학파와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변화를 거듭해간다. 『승만경』에 보이는 여래장의 초기 변화는 여래의 상주, 불성을 중심으로 하는 불공(不空) 여래장에 번뇌로부터 완전한 여읨이라는 공(空) 여래장의 측면을 부가하여 유아적 흐름의 입장에서 무아적 흐름을 포섭하려고 하는 시도이며, 이러한 시도는 여래장 사상이 일단락되는 『보성론』 이후 인도와 티베트에서 계속된다. 중관학파는 무아적 흐름의 대표인 공 사상의 관점에서 여래장 사상을 변용하여 포섭하는데, 그 핵심은 여래의 신체인 여래장을 공성으로 이해하는데 있다.

이처럼 여래장 사상은 ‘여래장 사상’이라는 하나의 용어로 부르더라도 단일한 체계라고 할 수 없을 만큼 넓은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기에 세심한 접근이 필요하며, 이는 초기 화엄교학과 여래장 사상의 관계를 고려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초기 화엄교학을 선도한 지엄은 『승만경』 이래 사용되어 온 불공·공 여래장의 아이디어를 채용하지만, 불공덕(佛功德)의 불공·번뇌의 공 여래장을 진심인 진여 그 자체가 불공이면서 공이라는 여래장으로 변용한다. 이 변용을 통해 지엄은 그의 법계연기 체계 내에서 정연기와 염연기에 걸쳐서 관계하는 여래장 자체에는 번뇌라는 개념을 아예 상정하지 않으려고 했다고 유추할 수 있다.

의상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 ‘여래장불’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여래장의 여래 → 중생이라는 불가역적 단방향성을 극복하고, 여래 → 중생 → 여래라는 원융한 사이클로 치환한 다음 이것을 바로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나 자신의 일로 등치시킨다. 이를 통해서 의상은 유적 흐름의 여래장 사상을 무적 흐름의 공성으로 이해함으로써 유무의 중도로 여래장 사상을 해석한 후 이를 다시 나 자신의 여래출현으로 승화시킨다.

Notes

이에 대해서는 Ⅱ장에서 후술한다.

이 글에서 ‘초기 화엄교학’이라는 말은 엄밀한 시대 구분이라기보다는 작업가설적으로 지엄(智儼), 의상(義相), 법장(法藏)의 화엄교학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한다. 따라서 초기 화엄교학이라면 법장을 포함해야 하지만, 분량상 법장의 여래장 이해와 대응은 별도의 연구를 기대한다.

‘대승 『대반열반대경』’의 명칭과 그 의미에 대해서는 하바타 히로미(2015: 141-145) 참조.

『승만경』 여래장 사상의 여러 변화 중 하나가 여래장의 염법(染法) 포섭 가능성 여부이다. 『대반열반경』이나 『여래장경』의 여래장 사상은 “모든 중생이 여래의 신체를 지니고 있다.”는 핵심 구절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본래 정법(淨法)의 근거로서 상정된 것이었다. 그러나 『승만경』에 이르러서는 “여래장이 열반의 근거일 뿐만 아니라, 생사윤회의 의지(처)라고도 설해짐으로써 여래장이 염오법, 즉 유위법과 청정법, 즉 무위법 모두의 의지처로서 자리매김된다.” 자세히는 박보람(2011: 99) 참조.

『勝鬘師子吼一乘大方便方廣經』(T12, p.221c13-23), “世尊, 如來藏智是如來空智. 世尊, 如來藏者, 一切阿羅漢辟支佛大力菩薩, 本所不見本所不得. 世尊, 有二種如來藏空智. 世尊, 空如來藏, 若離若脫若異一切煩惱藏. 世尊, 不空如來藏, 過於恒沙不離不脫不異不思議佛法.…中略…一切苦滅, 唯佛得證, 壞一切煩惱藏, 修一切滅苦道.”

『열반경』에서는 ‘여래의 신체’로 상징된다.

智儼, 『大方廣佛華嚴經搜玄分齊通智方軌』(T35, 63b17-c2), “三攝末從本者. 十二因緣唯眞心作. 如波水作, 亦如夢事唯報心作, 以眞性故.…中略…問. 攝末從本, 應是淨品, 云何乃在染門分別? 答. 此攝末從本理, 在淨品緣生, 今爲對染顯染如幻故, 在染門. 問. 義若如此, 一切淨法, 並對染顯妄, 云何獨辨攝末從本在染緣生? 答. 凡論淨品緣起, 有其二種. 一, 爲對染以顯妄法故. 經云, 不如實知諸諦第一義故也. 二, 但顯淨品緣起, 卽是顯理之門, 卽如普賢性起品等是也. 餘義, 准此可解. 此攝末從本, 卽是不空如來之藏. 此中亦有空義, 爲自體空. 後當分別.”

木村清孝(1977: 521)에서는 “섭말종본문이 『승만경』의 「불공여래의 장」에 해당하는 것으로 되며, 게다가 이 경의 사상에 따르면서 그 자체의 공성이 지적되는 것은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고 지적한다. 다만 이러한 지적 이상으로 그 의미에 대해서 더욱 깊은 논의는 진행되지 않고 있다.

『華嚴經問答』(T45, p.599b14-26), “問 疏云 五種敎體五敎云何今當耶 答 初實音聲等當小乘薩婆多等宗敎…中略…第四唯識音等者 遠者有初敎位等正熟敎終以去 一切法但一如來藏真識作故 第五真如音聲者 熟敎終以去極當圓敎位 一切法皆如故.”

『華嚴經問答』(T45, p.610b8-16), “問. 此但一切衆生如來藏作, 何爲慈乎? 答. 旣舉體如來藏作故. 以其如來藏熏習故, 方離苦得樂果故, 其慈甚深, 莫過於此. 問. 益義可爾, 然而其衆生受苦者, 何佛慈乎? 答. 若佛令不受苦者, 其衆生不得厭苦求樂, 要令受苦, 方得生厭苦心. 以此義故, 得其衆生苦, 卽佛慈故, 令受也. 此言如來藏等, 且約終敎等言之. 若一乘者, 卽性起之法作也.”

『勝鬘師子吼一乘大方便方廣經』(T12, p.226b5-19).

『華嚴經問答』(T45, pp.604c25-605a14), “問 此他已成佛拜 何爲自未成佛乎 答 拜他佛之義非無 而遠緣非近緣 所以者何 汎諸佛爲衆生說佛德意 爲欲令衆生自亦得彼果故令修行 是故衆生證自當來所得之果德 爲欲得彼故不惜身命修行 非爲得他佛果故修行 是故正今吾令發心修行 佛但吾當果 已成佛非他佛也 此義不疑怪也 又有他已成佛 卽是自當果佛 所以者何 他成佛時卽得三世佛平等果故 又吾當果佛卽是他今成佛 所以者何 吾得當佛時卽得三世佛平等法故 如是展轉更互平等 平等無差別果德皆化今吾令修行 其義亦非無故也 或今吾身全體如來藏佛等是也 今吾卽緣吾性佛 以卽是而不知故悲怪發 至心修行欲返迷 是故其觀化吾佛卽是吾體佛 非遠求他佛 此義其正觀行者大要也 又此吾性佛者 卽於一切法界有情非情中全全卽在 無非一物吾體佛故 若能拜自體佛者無物不所拜 此亦甚大要也.”

대부분 동아시아 논서이고, 그 중 상당수가 신라와 관련이 깊은 것으로 추정되는 문헌에 등장한다. 이 점에 대해서는 추후의 연구가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智儼, 『華嚴經內章門等雜孔目章』(T45, p.580a19-20), “又約增數佛. 謂一數佛, 即如來藏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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