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Journal of Buddhism and Society
Institute for Buddhist Studies
연구논문

태어남의 과정에 대한 불교적 이해

배형진*
Hung-jin Bae*
*중앙승가대학교 대학원 불교학전공 박사과정
*Ph.D. Condidate, Major in Department of Buddhism Studies Graduate School of Joong-ang Sangha University

© Copyright 2020 Institute for Buddhist Studies. This is an Open-Access article distributed under the terms of the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Non-Commercial License (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3.0/) which permits unrestricted non-commercial use, distribution, and reproduction in any medium, provided the original work is properly cited.

Received: Apr 20, 2020; Revised: Jun 18, 2020; Accepted: Jun 22, 2020

Published Online: Jun 30, 2020

국문 초록

본 논고는 ‘태어남(生有)’을 토대로 새 생의 성립에 작용되는 시점에서 근원적인 의미를 알아보고, 이어 새 생의 현상 원리를 천착하여 시대별 한역 불전에서 나누어 고찰하고자 한다. 연기법에 따라 지배받는 생명 존재인 유정 중생들은 업력에 의해서 후생의 몸을 받으며, 삼세에 걸쳐 삼계와 육도사생을 윤회전생한다는 관념을 보다 구체적으로 제시를 하고 있다. 윤회하는 인간은 전생의 업력으로 인한 생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사생(四生) 가운데 인간으로 대표되는 태생(胎生)은 부모의 교합과 중음(中陰)의 삼사화합(三事和合)으로 인하여 수태(受胎)가 된다. 이와 같은 개념적 사고는 새 생에 대한 연기의 논리로서 삼사가 화합하여 새 생이 성립되는 그 시점과 조건도 업식에서 연유한다. 이렇듯 식에 대한 해명은 한 생에서 다른 생으로 상속할 수 있는 수태의 근원적 요소로 나타내고 있다.

초기불교에서 생명은 오온(五蘊)과 육근(六根), 식(識)의 변화의 관점에서 파악하고 있고, 부파불교 경론에서는 이를 토대로 하여 명근(命根)의 주체는 중유(中有)라 하며,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특히 사유(四有)의 개별 존재로 새 생에 밀접한 관계가 있는 중유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대승불교에서는 전개과정에 나타난 새 생에 대한 이해를 더욱 발전시켜서 삼계육도에 윤회하는 주체를 아뢰야식으로 변화하였다고 볼 수 있다. 삼사화합의 생명 발생 이론은 아뢰야식의 이론으로 이어지면서 전생(轉生)의 원리를 총체적으로 해명하는 것이다. 따라서 새 생에 대한 원리와 의미는 생의 시작되는 시점의 문제와 새 생의 성립 조건의 문제로 구분하여 수정에서 착상 사이 어느 순간임을 보여준다.

이상과 같이 본 고에서는 ‘생’에 대한 논의를 목적에 두고, 시대별 한역 불전에서 나누어 정리하였다. 먼저 초기불전에서는 새 생의 시작점을 삼사화합의 조건으로서 식이 모태에 결합하는 생의 주체로 간주되어 부모의 교합과 정혈의 존재, 향음의 존재 등을 조건으로 한다. 부파불교 경론에서는 오온상속을 통한 중유설의 정립으로 중유가 전생 업을 상속하여 건달바(健闥婆)가 사와 생의 중간과정을 연결시키는 주체로 설정되었다. 대승불교 경론에서는 아뢰야식이 중간 생명체로서 전환원리가 되는 건달바와 중유의 개념을 포괄하고, 부모의 탐애심으로 인한 정혈과 일체종자식인 아뢰야식의 화합으로 성립된다는 점이다. 결국 논점은 불교의 경론들에 근거하여 새 생의 성립에 작용되는 시점은 수정과 가까운 시간에 일어나는 수태 과정이라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따라서 수태는 부모의 교합과 정혈의 발생과 같은 시점에 삼사의 조건이 동시에 갖추어짐으로써 새 생이 수정의 시점에 있는지 또는 착상에 가깝게 있는지를 확인하였다.

Abstract

This paper aims seeks to find out the fundamental meaning at the point of time when it is applied to the establishment of a new life based on ‘birth(生有)’, and then to take into account the phenomena and principles of new life and consider them in the Buddhist scriptures of Buddhist scriptures by period sattva (中生). The life being governed by Pratīya-samutpāa (緣起) is under the body of the Afterlife by karma force (業力), presenting more concretely the idea of Samgye and yukdosasaeng being Samsara across Samse. In the process of preparing for a life caused by karma force in the previous life, Viviparity (胎生) represented as a human in the catvāro yonayaḥ (四生) becomes a impregnation due to his parents’ intercourse and trika-saṃipāta (三事和合) in antarā-bhava (中陰). This conceptual thinking is pratityasmamutpada’s logic of new life, and the timing and conditions at which samsa is harmonized to form a new life are also derived from karmic (consciousness, 業識). As such, the explanation of the forconsciousness (識) is represented as a fundamental element of the concept that can be inherited from one life to another.

In early Buddhism, life is understood from the perspective of changes in the pañca-skandha (五蘊), ṣaḍ indriyāṇi (六根) and consciousness, and in Sectarian Buddhism(部派佛敎)’s scriptures, the subject of jīvitendria (命根) is called jung-yu(中有) more specific. In particular, the role of antarābhava (中有), which is closely related to new life as an individual being of catvāro bhavāh (四有) is emphasized. Mahayana Buddhism further developed an understanding of the new life that appeared in the development process, and changed the subject that circled tri-dhātu ṣḍdhāavaḥ (三界六道) to alaya-vijnana (阿賴耶識). Trika-saṃipāta’s theory of life generation leads to the theory of alaya-vijnana and explains the principle of samsara in a holistic way. Therefore, the principle and meaning of a new life are divided into problems at the beginning of life and problems at the conditions of the new life, indicating which moment is between fertilization and implantation.

As above, this study examined the discussion of ‘life’ in the Buddhist scriptures of Korean translation by period. First of all, in the early Buddhist scriptures, the starting point of a new life is regarded as the condition of trika-samnipata, and thus as the subject of life that vijjnans binds to motherhood, so it is conditional on the presence of Intercourse and the menstruse, and gandharva (香陰) of the parent. In the Sectarian Buddhism scripture, the theory of antarābhava, through the inheritance of the pañca-skandha (五蘊), inherited karma of the previous life and set gandharva (乾達婆) as the main subject linking death to the middle course of life. In the scriptures of Mahāyāna Buddhism (大乘佛敎), alaya-vijnana encompasses the concept of gandharva and antarābhava which are converted as middle creatures, and it is achieved by the harmony of menstruse and (sarvabījakavijñāna, 一切種子識) alaya-vijnana due to parental greed. After all, based on Buddhist scriptures, it is symbolically shown that the timing of the formation of a new life is the impregnation process that takes place in a time close to fertilization. Thus, the impregnation looked at whether the new life was at the point of fertilization or close to the implantation by having (saṃipāta’s, 三事) conditions at the same time as the occurrence of the parent’s intercourse and the menstruation.

Keywords: 생; 업; 오온; 윤회; 연기설; 사유; 삼사화합
Keywords: Birth; Karma; Pañca-Skandha; Pratītyasamutpāda; Catvāro Bhavāh; Trika-Saṃipāta

Ⅰ. 들어가는 말

주지하다시피 생명은 인간의 관심사 중 가장 소중한 문제이다. 불교에서 ‘생(生)’에 관한 설명은 다양하지만, 인간이 삶을 통한 존재를 영위하면서, 조건에 따라 일시적으로 생멸하는 연기적 현상들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연기설은 한 생명체의 새로운 생을 통해 성립되는 성장 과정뿐만 아니라, 삼세 윤회의 과정까지도 포함하고 있는 재생 자체의 전개 과정에 대한 도식이다.

불교에서는 연기를 중심으로 생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십이지연기 가운데 11지인 ‘생(生)’은 10지인 ‘유(有)’의 조건에 따라 일어난 것이며, 여기서 ‘유’는 재생의 원인이 된다. 유는 삼계를 ‘삼유(三有)’1)로 설하며, 10지인 유와 동일한 맥락에서 살펴볼 수 있다.2) 한역불전에서 생은 “유로부터 나중에 오온의 몸을 받아 삼계사생(三界四生)에 태어나는 것을 생이라 한다”고 정의한다. 따라서 ‘생’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는 십이연기에서 ‘유’의 구조를 도출하여 ‘생’에 대한 천착(穿鑿)이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불교에서 ‘유’는 현상적 존재로 유정 혹은 중생이라는 개념으로 일체 존재로 인식되며, 연기의 관계에 의해 상호 의존하여 새로운 개별 생의 형태로 성립된다. 따라서 유는 유전연기(流轉緣起)의 과정에서 사유의 시간적 과정으로 묘사한다. 이렇듯 사유의 각 ‘유’가 연기하는 과정에서 생유는 중유로부터 사유(四有)까지의 중간 생명체로서, 인연이 성숙되면 생유에 진입하게 되므로 생유와의 관계는 불가분리하다.

중생이 태어나는 사생의 모습 중 인간으로 대표되는 태생은 식으로부터 부모의 교합과 건달바(乾達婆)의 삼사화합으로 중유에서 찰나 순간 생유로 전환한다. 다시 말하면 생유는 전생의 업력으로 내생의 부모를 인연하여 모태에 탁태(托胎)하는 찰나를 말하며, 그 순간부터 새 생이 성립된다. 이와 같은 새 생이 성립되어지기 위해서는 일정한 요건의 결합이 필요하다. 먼저 생명이 형성되는 조건으로 부모의 교합과 어머니의 가임기라는 조건이 맞물려 부모의 정자와 난자가 결합할 때 중유가 삼사화합의 조건으로 모태에 들어가 소멸됨과 동시에 새로운 생유로 변천한다. 따라서 ‘생’ 즉 오온의 취합과 식과 중유 등을 연계하여 생유의 상속을 이해하고, 모태에 수정 시 중유를 비롯한 삼사가 화합하는 과정을 통해 태아가 형성됨을 파악할 수 있다. 이와 같은 화합이라는 과정적 관계성에 따라 부모의 교합뿐만 아니라, 전생의 업력이 서로 결합할 때 결생(潔生)에 의해 새로운 생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이러한 생명현상이 상호의존관계[緣起]에 의해 생에 대한 연기의 논리를 끊임없이 한 생에서 다른 생으로 상속할 수 있는 재생과 수태의 근원적 요소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중생은 자신의 업에 이끌려 단지 경험과 기억의 모임에 대한 오온에 집착하기에 그 습관으로 남아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 다시 몸을 받고, 유지하는 생사가 반복되는 과정에서 고통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 같은 원인은 ‘생’에 대한 실상을 바로 보지 못하는 무명으로부터 행이 발생하여 업의 조건[身,口,意]에 따라서 생긴 마음의 작용인 의식과 갈애를 조건으로 함께 일어난다. 따라서 태어남은 죽음의 원인이 되어 끊임없이 이어지는 윤회의 관계 속에 있다.

초기·부파불교와 대승불교에서는 새 생에 대한 시작과 관련하여 관점을 각각 피력하고 있다. 이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하는 것이 본고의 문제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해서 연기관이라는 불교의 근본교리를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있다.

국내의 불교학계에서 생명사상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연구가 진행되어 있다3). 이들 선행연구는 생의 성립과 생명의 개념, 윤회의 불가피성, 무아 윤회와 연기의 관계, 윤회와 업, 그리고 죽음의 극복과 해탈 등의 문제를 중심으로 불교의 관점에서 논구되었다.

따라서 본 고의 목적은 시대별 한역 불전에 근거하여 불교에서 보는 생의 전환시점과 새 생의 성립 형성 원리에 조건으로 놓고, 그 담론적 가능성을 타진하는 데 있다. 이와 같은 조건들이 새 생으로서 어떻게 결합되어 어떤 모습으로 구현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하여 언급고자 한다. 또한 새 생의 성립에 중유의 관련성을 검토하여 수태의 영향을 주는 과정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 불교 윤회전생의 흐름 속에서 생명에 대한 이해와 존중의 실천을 가질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하는 단초가 되고자 한다.

Ⅱ. 생유에 대한 불교적 이해

1. 생유의 의미

불교에서 ‘생’은 생성되고, 생멸한다는 연기설과 인과에 의한 업력에 따라 윤회하는 윤회설에 기반으로 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이 두 사상에 근거하면 개인의 삶이나 인간 존재의 목적이 무수한 원인과 조건에 의해 상호 연관하여 성립하는 것이고, 스스로 존재하는 자존적 실체나 고정된 실체로서 상존하는 존재는 없다. 이러한 두 사상은 서로 다른 의미를 지칭하는 것은 아니며, 같은 하나의 진리를 다른 방도로 설명하고 있을 뿐이다.

초기불교에서 ‘생유’에 대한 언급은 없지만, 십이연기에서 11지의 생으로 설명하고 있다. 생은 ‘유’의 조건에 따라 일어난 것이며, 오음(五陰)의 몸을 받아 재생의 원인이 된다. 여기서 유는 삼계를 ‘삼유’4)로 설하고 있으며, 삼유는 십이연기의 10지인 유와 같은 의미의 맥락에서 살펴볼 수 있다.5) 이러한 점들은 불교의 기저를 형성하는 연기설에 근거하여 생명에서 태어남은 노, 병, 사의 과정을 벗어날 수 없고, 생겨나지 않은 존재는 변화와 소멸 재생의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는 관점에서 볼 때, ‘생’이란 일정한 인연의 조건과 화합으로서 새 생의 시작을 의미함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생유’란 다양한 중생들이 다양한 세계에 출생하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수태에서부터 오온과 육입의 감각기관을 구체적으로 갖춘 즉 수정 임신의 단계에서부터 생명의 존재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윤종갑, 2010; 62). 그는 이러한 관점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연기는 한 생명체의 모태에 입태되어 성장하는 과정뿐만 아니라 삼생(전생, 현생, 내생)의 윤회전생의 과정까지도 포괄하고 있는 생명 그 자체의 전개 과정에 대한 도식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연기는 재생을 통해 새 생이 성립되는 과정으로 십이연기를 언급하며, 생사윤회의 재생적 순환 구조로 지목되고 있다6). 연기란 ‘무수한 조건들이 화합하여 일어남’이라고 이해하고 있으므로, 상호의존성을 본성으로 반영하는 그 본질에 있어서 매우 상통한다. 또한 초기불교와 부파불교, 대승불교에서 정의하는 ‘생유’에 대한 견해도 각각의 편차를 보이기에 어떠한 입장에서 이해하는가에 따라 다소 그 의미가 달라질 수도 있다.

살펴보면 윤회하는 생명체의 태어남의 방식에 대하여 크게 네 가지 유형으로 태생·난생·습생·화생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7) 여기서 문제 삼는 것은 태생이다. 이는 부모의 교합 과정에 식이 들어가 하나의 생명체가 형성되는 것으로 보고, 십이연기설로 설명하고 있으나, 전생에서 현생으로 태어나는 과정과 사후의 생명체에서 내세에 태어나기까지의 설명이 충분하지 않다. 반면, 이에 관련된 자세한 설명은 부파불교 아비달마 논서에서 사유설8)을 바탕으로 이론적으로 자세히 설명하고 있음을 문헌에서 확인된다.

구본술은 초기불교의 윤회와 연기사상은 특성상 살아있는 모든 생명의 윤회 과정을 폭넓은 관점에서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불교의 생명에 대한 이해가 존재의 윤회와 연기라는 포괄적 구조의 해석에만 머문다면, 자칫 추상적이고 형이상학적인 논의에 치우칠 수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구본술, 2002: 247-248). 한편, 오형근의 의견에 따르면 이러한 부분의 단점을 보완하고 이론적으로 구체화하여 우리 인간에게 확실히 설명해 주는 사상이 곧 사유사상으로 해석한다(오형근, 1981: 100-101). 그들의 의견에 따르면 사유사상은 『구사론』에서 “번뇌로 인하여 연기되는 윤회의 생생상속(生生相續)은 사유에 불과하다9)”라고 한 바와 같이 생명 존재들의 윤회는 사유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이들의 의견은 윤회의 개별적 생의 시작에 초점을 맞추어 불교의 생명현상을 사유설에서 생의 의미를 규정함으로써 기인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생유의 전개 과정에 대한 연기론적 설명은 초기불교에 이어서 부파불교의 십이연기로 이어지며, 부파불교에서는 십이연기는 인간이 태어나고, 죽는 문제를 태생학적(胎生學的)으로 설명하고 있다. 『아비달마발지론』과 『아비달마대비바사론』, 『아비달마구사론』 등으로 이어져 설명되어진 사유설은 윤회하는 유정들의 순환과정을 네 가지 흐름으로 분류하여 후에 중유사상으로 발전한다. 이러한 사상은 초기의 윤회설에서 대승의 윤회설로 발전하는 매개의 역할을 하였다(박순자, 1992: 60). 이러한 불교의 윤회설의 관점에서 사유설의 전환 과정은 내세의 생명까지도 포섭하며, 새 생의 형성과정의 대표적인 전개 양상의 형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새 생의 연쇄는 한 과정으로서 한없는 순환을 낳은 의미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부파불교 논서에서 생유의 성립 개념은 오온의 상속을 받아들여 중유라는 개념으로 윤회를 연속시키는 새 생의 의미 원리로 설명하게 된다. 대승경론인 『유가사지론』에서는 새 생의 결생을 부모가 교합하여 수정란이 일어날 때, 그 순간 윤회의 주체와 새 생의 전환 과정으로, 전생의 업이 아뢰야식에 저장되어 다음 생으로 이어지는 새 생의 주체로서 독립된 의식임을 알 수 있다. 구본술은 『유가사지론』, 「본지분」에서 이 경전에 근거로, 8종의 연기설 부분을 들어 일련의 식들이 12지 중의 제3지인 식이 과거-현재-미래의 방식으로 윤회를 주관하며, 여기서 언급되는 제3지인 식은 수업식(隨業識), 후유상속식(後有相續識), 이숙식(異熟識) 등으로 불리며, 아뢰야식을 의미한다고 입증하고 있다(구본술, 2002: 201-202). 한편, 윤호진은 초기불교에서 식은 의식을 뜻하지만, 영혼과 같은 의미로 쓰일 때에는 ‘신(神), 식신(識身), 신식(神識), 향음(香陰) 중음(中陰) 등으로 표현된다는 점을 지목하고 있다(윤호진, 1992: 110). 필자는 위 논지의 입장과 이해를 같이 한다. 식의 주체를 물질이 아닌 식의 전변으로 보고, 그 중 아뢰야식이 근원적인 생의 주체로 이어간다고 보고 있다. 다시 말해 이 식은 부모와의 인연과 더불어 모태에 들어가 오온을 일으켜 업에 의한 잠재력을 유지하며, 다음 생으로 이어가는 주체로서 생·사의 윤회에 참여함을 간주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가실적 존재의 오온은 인간이 태어나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삶이 유지되고 있지만, 엄밀히 말하면 찰나적으로 생멸한다. 그러나 오온 이외에 어떤 고정불변의 자아가 있는 것이 아니며, 이 오온이 생사를 이어갈 뿐이다. 이때 ‘식’을 종자로 볼 때 ‘무명’에서 일어난 ‘업’이 바로 ‘식’을 일으킨다. 이러한 식이나 중음신 또는 중유는 고정불변의 실체로서 자아가 아니라 조건에 따라서 변화하는 연기적 존재로 인식한다. 오온은 죽음을 맞는 순간 서로의 관계의 고리를 상실하며 해체된다. 따라서 연기된 오온은 무상하고, 업의 주체는 실체가 없는 무아이지만 그 과보가 상속하여 윤회하게 되는 것이다. 연기의 주체를 전생과 현생 그리고 내생의 삼생을 윤회의 주체라고 한다. 그것은 모태에 수태하는 식으로서 연이 되어 과식(果識)이 상속하게 되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 『유가사지론』 권1에서는 “그때 부모는 탐애가 모두 절정에 이르면 맨 마지막에 각기 농도 짙은 정혈을 흘려보내는데, 양쪽의 그 정혈이 모태에 함께 머물면서 하나로 합해져서 한 덩어리의 우유가 발효한 그것처럼 응고될 때, 바로 그곳에 모든 종자가 과보로서 끌려 들어가게 되고, 지각의 근거인 아뢰야식이 화합해서 의탁하게 된다.”10)는 내용과 같은 의미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 초기불교에서는 생유에 대한 언급은 없지만 태어남에 대해서 십이연기의 11지의 생은 ‘유’의 조건에 따라 일어난 것이며, 오음11)의 몸을 받아 재생의 원인이 되며, 부파불교에서는 이를 토대로 오온의 상속을 받아들여 명근의 출현, 그리고 대승불교는 업과 아뢰야식이 저장되어 다음 생으로 이어지는 새 생의 주체로서 독립된 의식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새 생의 발생 변화과정은 연기에 기반을 두고 상속과 전변을 통해서, 새 생의 전반적인 연결과정에서도 도출되며, 또 순환적 원리로 작용하는 윤회의 과정에 대한 설명으로 해석한다.

2. 생유의 근원적 요인

앞에서 새 생으로 이어지는 근원적 요소는 연기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특성상 살아있는 모든 생명은 윤회의 과정이 상의성에 맞추어 전개되고 있음을 개괄적으로 살펴보았다. 여기서는 새 생의 근원으로서 건립되는 오온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단지 인간이 오온12)이라는 요소의 결합된 존재로 이루어짐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 존재에 대한 근원적 의지 즉 ‘업’의 과보에 의해서 오온은 새 생을 성립시키는 작용인으로써 살펴보고자 한다.

불교에서 인간의 생명현상은 폭넓은 개념에서 유정 또는 중생이라는 존재의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생명은 곧 존재를 의미하며, 존재는 근본물질인 사대의 인연화합과 현상계를 구성하는 오온은 다섯 요소의 집합체로서 생명현상의 근원을 이루고 있다. 연기법에 지배받는 오온은 삼세에 걸쳐 삼계 육도를 윤회전생한다. 이러한 생의 근원으로서 존재의 개념으로 오온은 단지 다섯 요소의 집합에 불과한 것이다. 연기가 인간 존재의 발생과 소멸과정을 상의성에 의해서 설명해 주고 있는 데 반해, 오온은 인간 존재의 그대로를 보여준다. 색은 육체를 가리키고, 나머지 네 요소인 수·상·행·식은 정신으로 존재를 형성하는 근원이 된다. 즉, 수와 상과 식은 모두 결합하여 있는 것이지 분리되어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을 하나하나 분리해서 차이점을 내보일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인간들은 느끼는 것을 식별하고, 식별하는 것을 인식하기 때문이다(윤호진, 1992: 87). 한편, 이병찬은 인간을 인간이게끔 하는 것이 생명인데, 이러한 생명에 의해서 다섯 가지 기능 즉 오온은 물질작용의 [色], 느낌작용의 [受], 인식작용의 [想], 의지작용의[行], 의식작용의 [識]이 활동을 하게 되고, 이로 인해 인간으로서 기능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기능은 실체적으로 작용하지는 않고, 단지 기능적으로만 작용한다고 주장하였다(이병찬, 2016: 294). 이들의 의견에 따르면, 오온이 있을 때 인간이라는 명칭이 붙게 된다. 오온은 실체적으로 작용하지 않고 기능적 작용하는데, ‘나’라고 할 만한 고정되고 변하지 않는 실체가 없다. 따라서 오온을 들여다보면 잠시도 고정되고 영원하지 않으며, 끊임없이 변하는 현상에 대한 존재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인간은 오온이 화합하여 그 기능을 하는 것이고, 그 기능이 소멸하여 해체가 됨으로써 생명의 변화과정을 보여주는 윤회의 한 단면으로 설명될 수 있다. 『잡아함경』 권26에 따르면 붓다는 일체를 오온이라고 설하신 것도 다섯 가지 요소들이 의지하여 일시적으로 이루어진 가상적 존재일 뿐, 그 인연이 다하면 결국 파괴되어 없어지는 존재에 불과하다 설하셨다.13)

이처럼 오온은 임의적으로 발생한 것도 아니며, 실체 자체로부터 발생한 것도 아니다. 오로지 오온이 발생할 수 있는 조건이 되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그러면 오온은 어떻게 발생하는가?14) 오온은 실체하는가?15) 『잡아함경』 권13에서 오온을 일으키는 것을 ‘생 즉 태어남’이라고 언급하고 있다.16) 이러한 오온은 일체 생명의 존재 현상인 일체법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생은 실체가 아닌, 오온이 발생할 수 있는 인연이 갖추어져야만 발생할 수 있다. 즉, 오온은 다섯 요소의 집합체로 생명 기능을 만들어 내는 생명 구조로 이해할 수 있다. 붓다는 인간 존재를 오온의 집합체이며, 실체가 없는 상호의존적 연기의 관계로서 모든 존재는 실재하는 것이 아닌 인연화합 속에서 각지의 요소에 따라 순환하는 인간의 생명현상의 형태로 나타남을 설명하고 있다.

한편, 안옥선은 오온은 업의 산물로서 현재의 나는 과거의 업의 산물이면서 현재의 업에 따라 초래될 수 있는 미래의 가능적 존재이기 때문에 과거에 있었던 상호작용에 의한 인과적 존재이며, 미래에도 오늘 상호작용의 결과로서 예상되는 관계로 해석한다(안옥선, 2002: 318). 그의 의견에 따르면, 오온의 상속에 대해서 업의 산물로 삼세의 상호 인과적 결과로 모든 것은 업의 결과물로 조건이 충족되면 과거에서 현재의 업에 따라 다음 생으로 이어가는 의지의 잠재력이 저장된 인과적 존재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오온은 가변하는 생명 존재로서 의존적, 연속적, 과정적 존재임을 말하는 것이다.

필자는 안옥선의 해석에 주목하며, 존재는 어느 한 시점과 실체를 정하지 않은 상호의존적 인과관계의 연속과정의 산물로 보고, 생의 의미를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하나는 ‘태어남의 생’이고, 또 다른 하나는 ‘살아감에 생’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생명에 대하여 존재하는 일체 모든 중생은 업의 생성과 받음으로 인해 오온의 화합과 인과에 따라서 존재가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일체 현상의 생기 소멸의 결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모든 존재는 어떠한 궁극적 실체 또한 없는가? 존재란 오직 상호 인연 관계 속에서만 존재한다. 따라서 중생은 인연에 의한 생물학적 재생과 함께 업을 조건으로 일어나는 오온의 화합과 해체의 가장 근본적인 존재임을 알 수 있다. 마치 초목에 불을 놓으면 모두 사라져 없어지듯이, 상호의지하고 있는 서로의 요소들이 인연이 다하면 ‘공(空)’으로 해체된다. 따라서 일체 존재는 무상한 것이어서, 영원한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다. 오직 타자와의 관계성에서만 그 의미가 있다. 이렇듯 요소 간의 상호관계로만 연기하는 생명은 업에 의해 존재한다. 뭇 생명은 이렇게 해서 개체 생명의 연속성에 완결되지 않고 되풀이하여 재생된다(구본술, 2002: 27).

이러한 내용을 종합해 볼 때 불교에서 업과 오온은 연기의 입장에서 이해돼야 할 것이다. 업력의 상속으로 전변하여 오온을 일으키고 윤회전생을 가능하게 한다. 생명체를 인정한 전제하에서 생명 존재의 실상이 오온의 집합체이며, 고정불변의 실체가 없는 상호 연기적 관계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순환적 과정인 윤회는 부모의 교합뿐만 아니라 전생의 업력이 상응하여 결생할 때 오온 즉, 새 생이 다시 성립되고 생기게 되는 단초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의 업과 오온은 존재를 구성하는 동인(動因)으로 연기를 이법(理法)으로 바라보는 관점이 병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Ⅲ. 생유의 형성 원리

1. 네 가지의 존재 형태

불교에서는 생명 존재의 탄생에 대하여 네 가지 유형으로 분류하고 있다. 이는 윤회전생 속에 참여하는 모든 유정 중생은 네 종류의 유형으로 태생·난생·습생·회생에서 벗어날 수 없다.17) 이러한 유정들은 업력에 따라 사생의 형태로 삼계와 오취의 세계로 거듭 태어나는 것을 생이라 한다. 『유가사지론』 권2에서는 태어남을 사생의 분류에 따라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곧, 이 삼천대천 세계를 일불토라 하는데, 여래는 이 안에 출연하여 정각을 이루시고 무변 세계에서 불사를 짓는다. 이처럼 편안한 세계가 이루어지고 나면 그 안에 오취가 있게 되나니, 나락가와 방생과 아귀·인·천이며, 네 가지의 나기인 태생·난생·습생·화생이 있게 된다.18) 또한 생이란 무엇이냐 하면 태생과 난생의 두 가지 나기에 처음 의탁하여 생김을 말하며, 등생이라 함이 무엇이냐 하면 곧 그 몸뚱이는 완전히 되었으나 아직까지 나오지 못하였을 때를 말하며, 취라 함이 무엇이냐 하면 거기서부터 나오게 됨을 말하며, 기라 함이 무엇이냐 하면 나온 뒤에 더욱 자라게 됨을 말하며, 出現이라 함이 무엇이냐 하면 습생과 화생의 두 가지 나기에서 몸뚱이가 단번에 생겨남을 말한다.19)

이러한 설명의 요점은 윤회의 과정에 참여하는 ‘유정’20)의 의미로 볼 때 수태로 인하여 후생의 몸을 받아 사생으로 전환되는 일련의 과정을 알 수 있다. 윤회에 참여하는 생들은 개별적이어야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생명에 대한 불교의 평등주의 기본적인 관점은 모든 존재는 평등하고 존엄하다는 것이다. 즉, 불성을 지녔다는 측면에서 보면 모든 중생은 부처의 각성 또는 일체중생이 부처가 될 가능성의 성품을 지닌 존재가 된다. 그러나 윤회의 세계에서 여러 형태의 단계로 나아가면서 인간과 동물의 가치 관계는 동일하지 않다. 한편, 조수동은 유정을 성립시키는 직접적인 원인은 업을 자기로 하고, 업의 상속자이며, 업을 모태로 하고, 업을 의지처로 하게 된다. 그리고 이 업에 의해서 중생 사이에 분별이 있고, 우열이 있게 된다고 주장한다(조수동, 1999: 140).

업에 우열은 조수동이 제시한 전거인 『구사론』에 근거하여 직접적으로 나타나지는 않고, 사생 중에 오로지 화생이 가장 많고, 화생이 가장 뛰어난 생이라고 설한 두 개념과 해석에서 유사한 의미로 보인다. 따라서 경문에서 설하는 3취(인간·방생·아귀)의 일부와 2취(지옥과 천)는 일체의 중유가 모두 화생이기 때문이며, 또한 생 가운데 마땅히 가장 뛰어난 것은 오로지 화생일 뿐이다. 즉, 최후신인 보살의 생을 일컫는 말이다. 만약 그렇다면 어떤 이유에서 생을 획득하는데 자제하면서도 화생을 받지 않고 중생제도를 위해 태생으로 태어난다고 하는가? 이 질문에 관한 확인은 『구사론』 권8에서 유정들이 복업과 지혜를 쌓은 정도에 따라 전도된 생각으로 수태가 된다는 것을 들어 알 수 있다.21)

이와 같은 업력에 의해 윤회에 참여하는 존재들은 넓은 의미로 유정을 구분할 때 인간과 동물들을 하나의 인격체에 포함한다. 그러나 그 형태나 분류에 따라 동등하게 평가되지는 않는다. 업에 의해서 유정의 상속 전희가 있다는 것은 오온으로 성립된 유정이 개체화하고, 그에 따른 과거의 일체 경험을 저장한 그 힘에 의해서 내세를 규정하고 전개해 가는 과정에 따라 사생의 삶을 이어가며, 네 가지의 유형으로 형태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이 같은 사유설의 형태는 출생하여 사망하기 이전의 일생을 사는 동안의 생을 본유라 하고, 사유는 업력으로 출생한 몸은 무상하여서 반드시 수명을 다하게 되는데, 그 사망하는 찰나의 생을 뜻하며, 중유는 사망 이후부터 다음 세상의 생을 받기 이전의 중간 생을 뜻하고, 생유는 중유의 생이 부모의 연을 만나 태내에 수태하는 찰나의 생을 말한다. 이상과 같이 생의 전환 원리를 기준으로 설명할 때 생유와 사유, 중유와 생유는 찰나로, 본유는 상속으로 분류할 수 있다. 사유는 즉 오취온의 존재이다. 그러므로 윤회하는 유정들의 존재는 오온으로 사유의 생의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개념은 생의 흐름의 한 부분으로 하나의 기간을 나타낸다. 이 기간에 욕계와 색계에 중생들은 오온의 성품으로 삼으며, 무색계는 사온의 성품으로 삼는다. 또, 욕계와 색계에는 사유의 과정을 거치지만 무색계는 중유가 존재하지 않으므로 본유와 생유와 사유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구본술, 2002: 20-21).

이렇듯 불교에서 사유은 모든 존재 전체를 포괄하는 개념적으로 설명하며, 삼세에 걸쳐 무수히 생사를 달리하면서 사유로서 시간적 과정으로 묘사되며, 사생으로 태어나는 개별 생의 형태를 보여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유는 생사 순환의 일기를 넷으로 분류하여 윤회하는 생의 분류에 따라 사유로 고정된 실체적 현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불교에서 사유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삼세로부터 과거의 업과 미래의 업에 직시해야 한다. 윤회는 업력에 의해 존재하고, 사유 또한 업력에 의해 진행되고, 존재하며 결정된다는 것을 이해하는 과정으로 설명된다. 다시 말하면 사유는 유정이 미혹의 세계에서 생사에 윤회하는 과정의 모습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하기 위해서 깨달음을 얻을 때까지의 윤회 과정을 네 단계로 설명한 것이다. 이처럼 사유와 관련하여 초기불교의 경전인 『아함경』에서는 삼유, 삼사화합, 십이연기 등을 설했고, 부파불교에서는 『발지론』, 『대바바사론』, 『구사론』에서는 삼제, 업, 상속, 사유 등을, 대승불교에서도 『유가사지론』, 『대보적경』 아뢰야식 등으로 언급하고 있다.

앞서 말했듯이 초기불교에서는 사유를 설하지 않았다. 그러나 ‘무아’를 설하면서 윤회에 대한 여러 가지 의미와 표현을 담고 있다. 초기불교에서 생명현상에 대한 문제는 연기로 설명하고 있으나, 태어나는 과정과 생명체에서 내세로 출생하기까지의 과정적 설명이 충분하지 않다. 그러한 부족했던 부분이 윤회의 동일한 연장선상에서 부파불교에 들어와 구체적으로 제시한 것이 사유설이다. 따라서 사유설은 유정들이 윤회전생에 대한 존재의 전변을 효과적으로 설명하고 있으며, 그 과정을 특성별로 각각 분류한 것이다. 이상과 같은 생의 전환원리를 기준으로 설명할 때 중유가 모태에 들어가는 첫 찰나를 생유의 시작으로 보고, 중유와 본유는 상속으로 분류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새 생의 성립 변화과정으로서 ‘생유’는 ‘중유와 본유’의 연결 선상에서 불가분리한 관계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이렇듯 유정들의 윤회 흐름 과정을 특징적으로 분류한 사유설은 중유설로 발전하여 사후에서 내세로 출생하는 과정에 중간 존재의 실상을 밝혀 주고 있다. 요컨대 이러한 중간 실상의 생은 태어남과 살아감으로써 또한 죽음과 함께 진행되고, 조건이 화합하여 생성되어 가는 과정에 원인이 없는 태어남과 죽음 또한 없는 것이다. 따라서 생사가 한 과정이듯이 생명현상의 근원적 문제로 사유설을 통해서, 불교가 가지는 윤회문제의 해답을 얻게 되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이어서 개별의 생으로서 태어남, 즉 생유는 조건들이 화합되어 형성되어가는 상태 속에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형성의 흐름은 현재의 조건적 요소에 의해서 생유를 성립시킨다고 말할 수 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다음 절에서 논의할 것이다.

2. 생유 형성의 흐름

앞에서 윤회에 참여하는 유정이 생사를 거듭하는 생명현상의 변화과정은 여러 가지 원인과 조건의 유형에 따라 사생과 사유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음을 개괄적으로 살펴보았다. 사유설에 있어서 생유는 즉 ‘태어남’은 윤회전생에 한 개념으로서 개별적 한 생이 시작되는 순간을 의미한다. 이러한 생유는 전생의 업력으로 내생의 부모를 인연하여 모태에 탁태하는 찰나를 말하며, 그 순간부터 생명체가 성립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생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일정한 요건의 결합이 필요하다. 먼저 생명이 형성되는 조건으로 부모의 교합과 어머니의 가임기라는 조건이 맞물려 부모의 정자와 난자가 결합할 때 중유가 삼사화합의 조건으로 모태에 들어가 소멸함과 동시에 새로운 생유로 변천한다. 여기서 중유의 존재가 어떻게 태어남과 연결되는지 또한 삼사화합과 같은 이론은 어떻게 생유 형성의 흐름에 관련되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어떤 것이 ‘생유’ 인가, 『장아함경』 권10에서 붓다는 아난과의 대화를 통해서 식이 모태에 들어가야 최초의 생으로 존재함을 말하고 있다.22) 『아비달마법온족론』에서는 태어남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다양한 종류의 유정들이 다양한 종류의 유정들 속에 태어나고, 평등하게 존재하고, 취인(趣人) 출현하며, 온(蘊)을 얻고 계(界)를 얻고 처(處)를 얻으며, 명근이 발생하는 것 등을 통틀어 생이라고 한다.”23) 한편, 『유가사지론』에서는 새 생의 형성을 부모가 교합하여 수정란이 생길 때 아뢰야식이 화합하여 조건을 이루어 모태의 자궁에 들어가게 됨으로써 새 생으로서 결생이 된다고 설명하고 있다.24)

위의 견해에 따르면 생이란 수태에서부터 오온과 육입의 감각기관을 갖춘 존재를 말하며, 명근25)의 출현이 새 생의 출현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수(壽)와 명근의 관계성이다. 초기불교에서 일반적으로 생명의 용례로 사용하던 수가 부파불교에서 수와는 별개로 명근을 제시하여 새 생의 본체로 규정하고 있다. 이 같은 해석은 부파불교가 명근을 생명의 본체로써 정신도 물질도 아닌 존재로 보고 있다. 따라서 모태 내에 자리 잡은 식으로부터 명색이 발생하고, 이러한 방식으로 명색이 태아의 몸과 마음을 형성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몸과 마음은 인식기관인 근(감각 접촉)을 형성하는데, 육입처가 그것이다. 신체적, 정신적 근이 형성되면 태아는 태 밖으로 나오게 되며, 이를 ‘탄생’이라고 한다. 이러한 모든 존재는 무엇에서 일어나며, 무엇과 함께 오는 것인지 『중아함경』 권7에서 생명 형성의 흐름에 대한 설명을 다음과 같이 확인할 수 있다. “이른바 어떤 비구는 생의 참뜻을 알고 생의 원인을 알며, 생의 멸함을 알고 생을 멸하는 도의 참뜻을 아는가. 어떻게 생의 참뜻을 아는가. 이른바 그 중생과 저 모든 중생의 무리는 배게 되어 배고, 나게 되어 나고, 자라게 되어 자라고, 오음을 일으킨 뒤에는 명근을 얻는다고 한다. 이것을 생의 참뜻을 아는 것이라 한다.”26) 아울러 『유가사지론』에서 아뢰야식과 명근이 생명의 근원으로 설명되고 있는 내용과 같은 의미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초기불교에서는 새 생의 형성 흐름은 업력에 의한 신식이 윤회의 주체가 되어 후생으로 전생을 하는 이른바 삼사화합을 수태의 요건으로 보고 있다.27) 이러한 새 생의 형성 원리는 식 등의 개념을 표현함을 볼 수 있는데, 여기서 식은 삼사화합의 기본적 요건으로서, 생의 흐름을 이어주는 원리로써 작용함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십이연기의 식지의 내용이 구체화하면서 부파불교의 중유 사상으로 이어진다. 부파불교의 십이연기는 인간의 생사 문제를 태생학적으로 설명한다. 이와 같은 과정적 흐름에서 수태되어 한 생명으로서, 즉 새 생의 일대기를 삼세양중인과(三世兩重因果)의 과정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삼생의 생사 순환적 과정에서 생유의 형성 흐름은 새 생의 전환원리로서 하나의 시점으로 이해되고 있다.

대승불교에 와서는 식의 개념이 중유와 아뢰야식으로 포괄되어 정립된다. 『유가사지론』 권1에서 아뢰야식은 부모의 정혈이 교합하여 새 생을 일으킴과 동시에 중간 생명체로서 중유는 그 이름을 상실하고 아뢰야식이 새 생의 주체가 된다. 따라서 삼사화합도 초기불교와 부파불교에서의 요소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때 부모는 탐애심이 지극하여 맨 나중에는 저마다 한 방울씩의 짙은 정혈을 내는데, 둘의 방울은 뒤섞여져서 모태 안에 머무르며, 합하여 한덩이가 되나니, 마치 끊인 젖이 엉기어 맺혀질 때 이곳에 온갖 종자의 이숙이 소속되고 집수의 의지할 바인 아뢰야식이 섞여서 의탁하게 된다. 어떻게 의탁하는가, 부모에게서 출현한 농후한 정혈이 합쳐지면 전도의 조건과 중유는 소멸한다. 중유가 소멸함과 동시에 일체종자식인 아뢰야식의 공능력으로 미세한 근과 대종이 화합하여 생겨난다.28)

구본술은 이 경전의 내용을 근거로, 새 생의 형성의 원리로 간주되는 삼사화합과 수태로의 전환에서 중유의 개념을 식의 전변원리로서 아뢰야식에 두고, 독립된 의식의 존재를 인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구본술, 2002: 190-191). 따라서 전생의 업이 아뢰야식에 저장되어 끊임없이 생명을 이어가는 새 생의 발생 과정과 윤회전생의 개념으로 나누어 봄으로써 앞에 논의를 유추해 볼 수 있는 단초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논거 역시 태어나는 것은 원인에 의하기 때문에 원인이 무너지면 결과도 반드시 없어진다. 즉, 새 생 형성의 흐름 요건으로 중유는 모태에 들어가는 중간 존재로서, 부모의 신체적 조건과 함께 삼사화합의 결생 과정에 참여한다. 이처럼 새 생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건달바는 윤회의 주체로 아뢰야식의 매체로서 존재가 설정된 듯 보인다.

이에 대해서 김종욱은 삼사화합에서 중요한 것은 식을 포함한 삼사라는 요소성이 아니라, 화합이라는 관계성이므로 본질적 요소로 절대화하여 마치 영혼처럼 생명을 실체화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그는 중유나 식 등을 활용해 생과 생 사이의 상속을 이해하고, 이러한 관계를 다루는 조건 중 어느 하나도 관계의 한 부분일 뿐, 그 관계를 벗어난 실체적이고 독립적인 요소는 아니며, 중유를 비롯한 삼사가 화합하여 태아가 형성된다고 할 때, 중요한 것은 실체적 요소로서의 중유나 식이 아닌 화합이라는 과정적 관계성 그 자체라고 주장하였다(김종욱, 2005: 29-30). 이와 같은 개념이 독립적 존재로서의 의식을 의미하는지는 단정하기 어렵지만, 조건 중 어느 하나를 필수화하여 거기에 절대적 본질성을 부여하는 요소들이 등장해야만 생명의 과정이 시작된다고 보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이러한 생의 요소들은 부모의 교합으로 정과 향음의 결과로서, 삼사가 모여 수태가 이루어지는 필요조건이 성립되어야 비로소 새 생이 성립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삼사화합을 생의 원인[因], 생의 성취[習], 생의 근본[本], 생의 인연[緣]으로 네 가지 인연법으로 설명하고, 육계, 육처, 갱락[觸]으로 감각 생성의 과정을 통한 삼사화합의 동일한 개념으로 육계가 합함을 생으로 연결하고 있다.

생명에서 태어남은 입태 이전 중간 존재인 중유가 생유로 전환할 때 중요한 작용을 하는데, 부모의 업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즉, 부모의 존재인 생유의 업과 상응하게 연결된 중유가 새 생으로 전환되는 시점에 참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태어남은 부모의 교합과 삼사가 화합으로 이루어진다. 이러한 과정에 관련해 중유에서 생유의 시작은 생사의 찰나지간에 일어난다. 그러한 변화는 삼사가 화합을 통해 수태되고 생명으로서 새로운 생의 전환원리로 설명할 수 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다음 장에서 논의할 것이다

불교적 의미에서 생유의 형성 흐름은 부모의 교합으로 몸과 의식이 갖춰지고, 식인 아뢰야식이 부모의 정혈과 결합하여 모태에 들어가야 최초의 생인 결생식이 성립된다. 이때 아뢰야식은 현생에 적용되는 중유의 다른 이름이며, 생유의 시작이며, 새 생의 주체가 된다(강명희, 1996: 162). 식과 명색에 대한 이와 같은 관계는 식이 모태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명색이 증장하지 못한다. 여기서 모태를 식과 명색의 성장을 설명하는 은유적 표현으로 본다면, 식을 조건으로 명색이 있으며, 명색이 없으면 식도 없다는 뜻이다. 이를 통해 볼 때 식이 명색에 머물러야 생이 성립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중아함경』 권24에서 식과 명색의 상호관계를 중음신의 입태로 설명하고 있는 내용이 보인다. 즉, 식은 곧 결생식으로 모태의 수정란과 결합하여 명색으로 자라난다는 것이다.29)

따라서 새 생에 있어서 유정들이 태에 들어가는 형태를 살펴보면 식입태은 입태의 식과 재태의 식, 출태 후의 식으로 구별된다. 이것은 과거세의 업력에 의해서 받는 현세 수태의 일념을 뜻하며, 유정들이 태어나는 인과의 분류에 따라 사생으로 윤회할 수밖에 없는 존재를 얻게 된다. 이러한 생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삼사 중 어느 한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수태는 이루어질 수 없게 된다. 따라서 부모의 교합과 거기에 ‘식’이라는 중간 생이 동시에 화합해야만 비로소 새로운 생명이 발생한다는 설명으로 알 수 있다.

이상을 정리해 보면 식과 명색의 관계를 가역적 쌍방향의 조건적 관계로써 식이 명색과 함께 하고, 오취온과의 결합하여 살아가지만, 수명이 다해 명색이 멸하면 식은 서로 조건 되는 의존관계 때문에 새로운 몸, 새로운 명색이 일어나, 새로운 명색과 함께 그 존재를 상응하여 생유가 형성된다. 따라서 생유란 중유를 비롯한 삼사가 화합하여 모태에 수태되는 순간을 말하며, 이 순간부터 새 생이 형성하는 생연을 얻게 됨을 알 수 있다.

Ⅳ. 생유의 전개 과정

1. 생유의 전환 시점

중유에서 생유의 시작은 생사의 찰나지간에 일어난다. 그러한 변화는 삼사가 화합을 통해 수태되고 새로운 생명으로 전환되는 과정으로 설명할 수 있다. 불교적 의미에서 ‘유정’은 정이 있는 것을 뜻하고, 여기서 ‘정’이란 정식(情識)이나 업식(業識)을 지칭한다. 정식은 감각적 수용 능력을 의미하고, 업식은 업상(業相)을 뜻한다. 다시 말해 유정은 감각적 수용 능력을 지니고 맹목적 삶의 의지에 따라 행위를 기반으로 하는 존재로 설명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최소한 착상 이전의 단계인 수정은 감수성과 의지성과 행위성이 없기에 인간의 단계는 아니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감수성과 의지성과 행위성을 지니고 업을 상속받아 지어가는 존재만이 불교적으로 의미 있는 주체이고, 이는 모태와 연결되어 스스로 조작화해 나가기 시작하는 착상 때부터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불교에서는 착상은 수태를 말한다. 왜냐하면 태란 모태 안에 의탁하여 생명체로서 의식이라는 감각기관이 갖추어지는 것을 뜻하는데, 이 시기부터 사람과 같은 분상으로 포함한다. 따라서 불교에서는 수정과 착상을 구분하기보다는 인태(人胎)는 수태나 탁태로 새 생의 전환 시점의 의미로 출발선이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김종욱, 2005: 31-32).

여기서 생유와 관련하여 중유는 생유가 성립되기 위한 세 가지 조건 가운데 하나이다. 계경에서 “모태에 들어갈 때는 반드시 삼사가 함께 나타나 있어야 한다. 첫째는 모신(母身)의 시기가 조적(調滴)해야 하고, 둘째는 부모가 교합하면서 화합하여야 하며, 셋째는 건달바가 바로 앞에 나타나 있어야 한다.”라고 한 것과 같다.30) 이처럼 생유인 수태도 부모의 모임과 그 결과인 정혈 그리고 중간 존재의 하강의 삼사가 동시적일 때 가능한 것이다.

위의 견해에 따르면 삼사화합은 동시적이다. 특히 수태는 삼사의 조건이 갖추어지면 곧 이루어진다. 첫째는, 부모에 해당하는 새 생 성립의 요소로 모신의 시기적 조건을 말한다. 이를 살펴보면 어머니는 음욕과 탐욕이 있어 적절한 시기이며, 병이 없는 가임의 조건을 가리킨다. 둘째는, 부모가 염심으로 함께 교합하여 즐거운 마음으로 음탐으로 화합하는 조건을 가리킨다. 셋째는, 중간 생인 건달바를 가리킨다. 물론 부모의 화합으로 정혈이 내고, 이에 건달바가 결합하여 모태에 들어가게 되는 조건을 가리킨다. 이로써 부모 교합의 시점에 가깝게 수태의 시간을 둘 수 있게 되었고, 곧 부모의 교합 직후의 수정이 생의 시작 즉 생유의 전환 시점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견해는 수태가 부모의 교합으로 정혈에 중유가 하강하여 수태가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경론에서의 인용들은 생의 전환 시점을 착상보다는 수정에 무게를 두는 것으로 보인다. 결국 이러한 견해 차이는 ‘생명의 주체로서 독립된 의식의 존재’를 인정할 수 있는가에 기인하는 것이다.

한편, 태 안에 들어가는 건달바는 남자의 중유와 여자의 중유에 따라 부모에 대하여 뒤바뀐 마음을 가지면서 하강하게 된다. 그에 따라 중유의 온이 소멸하고, 생유의 온이 생기어 결생을 한다. 따라서 부모의 음염(淫艶)과 중유의 부모에 대해 교합하고자 하는 뒤바뀐 마음이 작용하여 후생의 몸을 받게 된다.

정승석은 중유가 건달바와 같은 존재적 실체가 아니라, ‘업력의 존속’이라는 사실을 중유로 상정한 것이라는 전제 아래서만 타당성을 지닌다고 보고 있다. 그는 중유의 상속에 대해 『구사론』에서 중유와 건달바가 같은 개념이 아니며, 중유가 연속시키는 윤회의 주체로 업력은 오온과 다르지 않다고 지적하고 있다(정승석, 1999: 148-149). 그러나 『대비바사론』 권70에서 중유와 건달바는 동의어로 쓰였고, 새 생명의 탄생에 작용하는 중요한 요소로 중유가 부모를 선택하는 것은 미래의 부모에 대한 집착이나 혐오감에 의한 것으로 생전의 업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따라서 부모의 교합 시점을 틈타 모태에 들어가기 위한 미세한 성질 등은 후세 논서에서 서술되고 있는 중유의 특징과 일치한다.

한편, 구윤임은 중유가 생유로 전환되는 것은 체는 같으나 용이 달라서 인연에 의해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런데 부파불교 논서에서 건달바가 현재전 한다는 이론은 대승불교의 유식학에 와서도 그대로 계승되어 건달바 또는 중유가 현재전 한다고 보고 있다(구윤임, 2001: 98). 그러나 대승불교 논서에서 삼사화합의 교리에서만 동일한 용례로 사용할 뿐, 보편적으로 중유를 아뢰야식으로 표현하고 있다.

불교에서 경론에 나타나는 생유의 전환 시점을 논할 때, 수태가 수정과 동시에 일어난다는 가정에 대하여 살펴보면, 생유는 삼사가 화합과 동시에 일어나는 것으로 보인다. 『증일아함경』에서는 식은 수태와 재생의 원리로 세 가지 인연과 식이 하강해야 태에 들어갈 수 있다. 그 세 가지는 어머니의 욕심과 부모가 한 곳에 모여 교합을 하더라도 식이 오지 않으면 성태를 하지 못한다. 또, 식이 와서 들어가려 해도 부모가 한 곳에 모여있지 않으면 수태가 이루어지지 못한다고 설명하고 있다.31) 또, 『대보적경』 권55에서는 부모와 자식의 인연에 의해서 수태가 이루어질 수 있는 조건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태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부모와 중음간의 복업이 동등해야 수태가 성립될 수 있다는 것이다.32) 또한 『시설론』에서도 만일 부모는 복업이 뛰어나다 하더라도 자식의 복업이 하렬(下劣)하면 태에 들게 되지 못하는 것이니 반드시 아버지·어머니·자식의 세 사람의 복업이 같아야 태에 들어갈 수 있다33)고 설명하고 있다. 이 같은 경우는 중유의 인과 연이 몸을 받는 동인이 부모의 부정과 과거의 업, 그리고 식이 서로 화합하는데 기인하는 데 있다.

한편, 여러 경론에서 다음과 같이 조건이 갖추어지지 않으면 모태에 들지 못하는 경우도 설명하고 있다. 그러한 조건이란 부모가 염심을 일으켜야 하고, 중음이 가서 몸을 구할 수 있으며, 만약 중음이 와도 부모가 교합을 하지 못하거나, 부모의 몸에 질병이 있으면 입태하지 못한다. 그 밖에도 모태에 태장(胎藏)이 황혈(黃血)의 기운으로 막혀 있거나, 태가 폐색(閉塞)되어 있는 상태면 태 안에 들어갈 수 없다. 혹은 맥복병(麥腹病), 의요병(蟻腰病) 등이 있거나 기형일 경우도 태에 들어갈 수 없다. 또는 정혈이 많이 쏟아지거나, 대하(帶下)의 물이 흐르거나, 태안에 들어가는 길이 매끄럽지 못하거나, 혹은 뾰족하거나, 굽어져있는 등의 경우에도 태 안에 들어갈 수 없다.

이상에서 보듯이 생유의 전환 시점은 삼사화합과 더불어 생 주체의 원리로서 작용하는 중유와 중음신의 작용을 강조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식이 새 생의 형성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더라도, 그것이 몸과 결합하는 시기는 단순한 수정이 아니라, 모태에 착상되는 시점을 수태되는 때라 할 수 있다. 이것이 새 생명의 출발선이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불교 경론에 나타나듯이 초기불전 『아함경』에 나타나는 삼사화합의 요소가 부파불교의 『구사론』, 『대비바사론』과 그리고 대승경론의 『대보적경』 등에서 보았던 것과 유사하다는 사실이다. 생유의 전환원리로서 작용하는 중유와 중음신의 작용과 특히 생유의 전환원리로서 삼사화합의 요소 중 어느 하나라도 결핍 없이 세 가지의 완전한 결합을 통하여 중유가 모태에 들어감으로써 수태로 이루어지는 것을 강조한다는 사실도 엿볼 수 있다.

2. 생유의 성립과 출생

앞에서 새로운 생명으로 전환되는 생유의 과정으로 삼사화합에 의한 수태 과정을 알아보았다. 따라서 새 생명의 시작은 수태로부터 시작됨을 알 수 있다. 이제부터 수태된 태아는 정신과 육체가 형성되어 변천해 간다. 이와 같은 생유의 내용에 있어서 태아가 모태에 수태한 이후, 태내에서 성장하여 출생하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보기로 한다.

불교에서 태아의 성장 과정에 대하여 여러 경론에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여기에서는 그 중 대표적으로 『증일아함경』, 『구사론』, 『대비바사론』, 『유가사지론』, 『불설포태경』 등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이들 중에는 간단하게는 수태·주태·출태의 3단계설에서부터 갈라람위, 알부담위, 폐시위, 건남위, 발라사가위 등의 오위설과 여기에 발모과위, 근위, 형위를 더한 팔위설이 있으며, 7일 단위로 더욱 세분하여 설명한 38주기설이 있다. 『유가사지론』에서는 팔위설을 설하고 있으며, 『구사론』에서는 오위설을 설하고, 7일 단위로 38주와 4일이 지나면 신체 대부분의 각 부분이 갖추어져 출생하게 되는 38주기설의 과정을 모두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먼저 『증일아함경』에서는 삼사의 화합으로 식이 태의 안에 드는 과정과 모태로부터 출생하는 과정을 설명한다. 식이 태안에 하강한 직후는 얼어있는 연유와 같고 그 뒤로 고깃덩어리 같다가 어떠한 형상을 갖추게 된다. 그 후 몸의 각각의 기관들이 생겨나며, 어머니의 온갖 정기로 자라나서 형체를 이루고 제근을 완전히 갖추어 어머니로 말미암아 출생하게 된다34)고 묘사한다. 또, 『구사론』에서는 갈라람위, 알부담위, 페시위, 건남위, 발라사가위35) 등이 있다. 또한 『유가사지론』에서는 팔위로 나누어 갈라람위의 단계, 알부담위의 단계, 폐시위의 단계, 건남위의 단계, 발라사가위의 단계, 발모조위의 단계, 근위의 단계, 형위의 단계로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그 단계의 과정을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만약 응고된 전(箭)의 안이 묽은 경우이면 최초 인간의 정신과 육체가 화합한 생명체로 갈라람 위라 하며, 겉과 안이 락(酪)과 같고 마치 끓인 우유에 막이 생기는 것과 같이 살결이 생겨나는 것을 알부담위라 한다. 마치 유연(柔軟)한 살이 더욱 견고하게 응고되고, 혈액이 형성된 경우이면 폐시위라 하며, 더욱 견고하고 두터워져서 육체가 형성되는 경우이면 건남위라 한다. 곧 이 살덩어리가 커져서 부분의 모습이 현현하며 오장, 육부가 온전히 형성되는 경우이면 발라사가위라 하며, 이때 머리카락과 털 혹은 손톱이 현현하면 발모과위라 한다. 이 이후부터 눈 등의 감각기관이 생기는 것을 근위의 단계라고 이름하며, 이때부터 태아는 인간으로서의 형태를 갖추고 소의처가 분명히 현현하는 경우이면 형위의 단계라고 한다.36)

이러한 8단계를 거치며, 태안에서 7일을 38번 거치면서 신체를 구족하게 된다. 모태에서 38의 7일이 지나면 태장의 일체 지분이 구족해진다. 그로부터 다시 4일이 지나면 비로소 출생하게 된다. 『입태경』에서 널리 설하셨듯이, 극 만족해야 한다는 것은 9개월 혹은 이를 지나야 함을 말씀하신 것이다. 만약 8개월만을 지나야 할 것이라면 원만이라 하셨을 것이요, 극 만족이라 말씀하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6개월이거나 7개월만을 지냄은 원만함이라 말하지 못할 것이다.’37) 그리고 마침내 ‘태아가 산문(産門)을 나왔을 때를 정생위라 하며, 생후 점차 촉이 발생, 안촉과 촉을 분별하는 의촉이 생겨난다.’38)

『불설포태경』에서는 38번의 7일 동안 모태 안에 태아가 신체를 구족하는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39) 이러한 전반적인 과정을 날짜별로 구분하여 새 생으로서 태장은 7일 단위로 38주가 지나면 대부분 신체의 각 부분이 갖추어져 비로소 출생하게 된다. 가장 먼저 발생하는 다섯 가지 큰 형태의 뼈에서부터 태아가 산도로 머리를 움직이는 그것까지를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본유의 첫 번째 부분인 태아의 단계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이는 중유에서 본유로 나아가는 과정으로 신체와 사고의 형성의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과정을 지수화풍 사대를 중심으로 설명하고 있으며, 특히 바람의 요소에 의해서 각각의 주마다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위와 같은 형성의 과정을 『불설포태경』에서 찾아볼 수 있다.

또, 그 밖에 다른 학설로 태내와 태외를 합하여 팔위로 분류하고 있다. 이 팔위설도 『유가사지론』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먼저 ‘처태위란 갈라람 등을 말하며, 출생위란 이것으로부터 이후의 모숙에 이르기까지를 말하며, 영해위란 아직 놀러 다니거나 재미있게 즐길 수 없는 단계까지를 말하며, 동자위란 그러한 것을 할 수 있는 단계를 말하며, 소년위란 30세에 이르기까지 능히 욕진을 수용하는 단계를 말하며, 중년위란 이 단계로부터 50세에 이르기까지를 말하며, 노년위란 이 단계로부터 70세에 이르기까지를 말하며, 이로부터 그 이상을 모숙위라고 한다.’40) 이와 같이 태내에서 성장하는 과장을 오위, 팔위로 분류해서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태생학적 과정에서 볼 때 중요한 내용으로서 특히 처태위의 갈라람위는 중유에서 생유로의 전환되는 최초의 결생이다.

이상에서 보듯이 태아의 성장 기간인 수태설이 오위설보다 좀 더 구체적으로 기록되고 있음을 살펴볼 수 있다. 이러한 수태설은 『구사론』과 『유가사지론』뿐만 아니라, 『불설포태경』 등의 경론에서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새 생명으로서 간주하는 시점이 수정이 아닌 수태나 착상부터라는 사실이다. 불교에서 생명의 시작은 중유에서 생유의 과정적 흐름은 순간적인 찰나에 이루어지므로 이에 대하여 자세한 언급은 없다. 그러나 수태 이후부터 시작되는 생명체 변화는 광의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입태 이후 7일 주기 기간을 통하여 38번째 7일을 지내며 비로소 온전한 새 생명으로 형성되기 위해 전생의 업의 원인과 부모의 신체적 조건 및 정혈 그리고 아뢰야식의 삼사가 화합해야 한다는 것은 생명의 본질을 육체나 영혼과 같은 존재만 보는 것이 아니라, 한 생명의 주체적인 선택과 함께 부모로부터 시작되고 이루어진다고 보아야 한다.

Ⅴ. 나오는 말

불교에서 모든 생명 존재는 삶과 죽음이라는 명제에서 벗어날 수 없다. ‘생명’이란 다양한 유정들이 원인적 조건에 따라 윤회하는 모든 중생을 뜻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수태로 인한 생은 부모의 교합과 입태로 오온과 육입의 감각기관을 갖춘 단계에서부터 생명의 존재로 인식하고 있다. 이러한 새 생의 성립 조건은 삼사화합설로 설명되는데, 초기불전에서부터 부파·대승경론에 이르기까지 같은 형태로 표현하고 있음을 보았다. 따라서 불교 경론에 근거하여 새 생의 성립에 작용하는 현상 원리로 업과 사유설을 고찰하였다. 또한 새 생의 성립 조건에는 아버지, 어머니라는 생물학적 존재 이외에 또 다른 중간 존재인 중유가 직접적으로 관련되는 중요한 요소임을 알 수 있다. 즉, 부모와의 인연과 더불어 모태에 들어가 오음을 일으켜서 업에 의한 잠재력을 유지하며, 다음 생으로 이어가는 주체로서 생·사의 윤회에 참여함을 간주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이해를 바탕으로 불교에서는 윤회에 대한 문제는 생사를 분리하지 않고 통념적으로 생각하고, 어느 종교보다 구체적으로 접근해왔다. 새 생의 성립 조건은 전생의 업의 인연으로 부모의 교합하는 과정에서 중음신이 정혈에 들어가 하나의 생명체로 윤회의 주체로서 독립된 의식의 존재로 형성되는 근거로 보고 있다. 또한 유정의 생사유전은 새 생의 성립되는 수태와 재수태의 연속이다. 따라서 태어남의 문제는 하나의 변화과정으로 보고, 전생 업의 상속과 식의 전변을 통해 시간상으로 사유를 거치며 생사를 반복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상과 같이 새 생의 과정에 대한 관점에서 주목되는 점으로 필자는 다음의 두 가지를 생각해 본다. 그 하나는 태어남의 성립에 작용하는 시점에 근원적인 의미를 목적에 두고, 이어 새 생의 현상 원리를 천착하여 시대별 한역 불전에서 나누어 살펴보았다. 먼저 초기불전에서는 생의 시작점을 삼사화합의 조건으로써 식을 윤회의 주체로 간주하여 대상에 따라 표출되는 육식의 개념으로도 사용되었다. 삼사화합의 조건으로 부모의 교합과 정혈의 존재, 향음의 존재 등을 조건으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부파불교 경론에서는 오온 상속을 통한 중유설의 정립으로 중유가 전생의 업을 상속하여 건달바가 사유와 생유의 중간과정을 연결하는 주체로 설정되었다. 삼사화합은 부모의 신체적 조건과 정혈, 건달바의 결합과정이 순간적 찰나에 일어나기에 중유와 생유의 과정을 완전히 구분하기는 어렵다. 대승불교 경론에서는 아뢰야식이 중간 생명체로서 전환원리가 되는 건달바와 중유의 개념을 포괄하고, 부모의 탐애심으로 인한 정혈과 일체종자식인 아뢰야식의 화합으로 성립된다는 점이다. 즉, 부모의 교합으로 정혈이 결합하면서 중유는 소멸됨과 동시에 아뢰야식이 화합하여 새 생이 이루어진다.

다른 하나는 이러한 새 생에 대한 현상 원리로 하나의 변화과정으로서 사유와 중유의 연결 선상에서의 과정으로 이해돼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생명의 시작을 어느 시점부터 보아야 하느냐 하는 중요한 판단의 단초를 제공하는 것이다. 또한 부모와 인연이 되는 중유 역시 새 생의 성립 조건을 결정하는 중요한 역할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중유는 생유와 동일한 업이 결정적 영향을 준다는 것 또한 인식해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중유는 새 생이 성립되는 과정 속에서 새 생으로 태어나고자 하는 희망이다. 본유의 업력이 찰나 사유를 걸쳐 중유로 상속되어 업에 따라 수많은 사람 가운데 업력이 비슷한 부모를 선택하여 모태에 들어가 출생한다는 것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보면 생의 시점은 불교 경론에 표현상 수정의 순간부터 생명으로 보고 있다. 경론의 해석을 자의적으로 하자면, 생의 시작은 수정 직후 착상에 이르는 가까운 시점으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생유는 그 자체가 새 생의 시작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이러한 입장은 불교에서 삼사화합이 부모의 교합과 동시에 수태가 이루어진다는 사실은 추론이라기보다는 불교의 경론들에 근거하여 나타나는 것으로 부모의 교합이 수정과 가까운 시간에 일어나는 수태 과정이라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따라서 수태는 교합과 정혈의 발생과 같은 시점에 삼사의 조건이 동시에 갖추어짐으로써 새 생이 시작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태어남과 죽음의 변화과정에서 생명체가 전변하는 과정에 중간 존재인 중유를 설정하여 죽음을 단멸로 인식하지 않고 새 생의 연장선상으로 보고 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생에 대한 집착으로 업을 쌓아가는 중생은 윤회의 극복 문제를 수행을 통해서 도달하는 해탈과 열반이라는 궁극적 목적으로 압축할 수 있다. 이것은 곧 완전한 자유를 의미하는 것이며, 여덟 가지의 바른길을 지향하는 불교가 수행을 강조하는 종교임을 확연히 드러내 보이는 것이다. 이 같은 논리는 생명 위기의 시대에 불교의 입장에서 인간 존재의 출생 과정과 생명현상 원리에 대한 올바른 이해의 폭을 넓혀 생명의 존엄성을 인식하고, 참 인간으로서 윤리적인 길을 모색할 수 있는 담론을 제시한다.

Notes

“又告阿難 緣有有生 此為何義 若使一切眾生無有欲有 色無色有者 寧有生不” 三有는 삼계에서 제각기 생존하는 모습으로 본유·당유·사유의 총칭으로 생유 ·사유·중유로 부파·대승에서는 四有로 나타난다(『長阿含經』 卷10, 「大緣方便經」 T1, 60c).

“云何為有 三有 欲有 色有 無色有” 여기에서 ‘有의 因緣’은 12지 緣起法의 10지의 有로 같은 의미로 볼 수 있다. 그리고 有는 存在의 의미이기도 하며, 有를 存在의 의미로 三有의 有에 두고 설했다(『雜阿含經』 卷12, 「法說義說經」 T2, 85a).

그동안 국내에서 발표된 생유, 혹은 생명과 관련된 연구로는 오형근(1981), 윤호진(1992), 조수동(1999), 구윤임(2001), 한자경(2002), 구본술(2002), 김종욱(2005), 문상련(2006), 정진숙(2007), 윤종갑.(2010), 이병찬(2016) 등이 있다. 이들은 초기·부파불교를 중심으로 생명에 대해 다루고 있다.

“又告阿難 緣有有生 此為何義 若使一切眾生無有欲有 色有 無色有者 寧有生不” (『長阿含經』 卷10, 「大緣方便經」 T1, 60c): 三有는 삼계에서 제각기 생존하는 모습으로 본유·당유·사유의 총칭으로 생유·본유·사유·중유로 부파·대승에서는 사유로 나타난다.

김길상 편저, 『佛敎大辭典』 (홍법원, 2008). 1215.에서 “『俱舍論』, 「계품」(冠導本) 1권5 「三有라고 이름 함, 有의 因緣, 有衣이면서 三有에 거두므로」”라고 말하고 있다. 여기에서 ‘有의 因緣’은 12지 緣起法의 10지의 有로 같은 의미로 볼 수 있다. 그리고 有는 存在의 의미이기도 하다. (『雜阿含經』 卷12, T2, 85c)에서는 有를 存在의 의미로 三有의 有에 두고 설했다.; 云何為有三有 欲有 色有 無色有; 律藏, 「大品」에 의하면 “붓다는 성도 후에 12因緣을 順逆으로 사색하였다.”고 한다. “처음에는 간단한 형태의 지분으로 존재하다가 이것이 기본이 되어 그 후에 12支로 발전하였을 것이다.” 권오민,『印度佛敎史』(경서원, 2006), 40. ; 그러나 초기문헌 『阿含經』 에서는 대부분이 緣起法12支를 설하고 있다. 따라서 三有설은 12지연기의 10지인 有에서 비롯된 것으로 유추가 된다.

연기설은 불교의 핵심 교리임에도 불구하고, 교의의 다양성과 심오함, 그리고 그 진정성으로 인하여 다양하게 해석되고 논의되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으로 오온(五蘊)을 ‘생물학적 인간’으로 보는 관점으로 과거, 현재, 미래로 윤회하는 과정에 대한 삼세양중인과설(三世兩重因果說)은 태생학적 연기설(胎生學的緣起說)로서 사유설(四有說)과 태내오위설(胎內五位說)과 함께 관점을 형성하고 있다. 한편, 무시간적 연기설은 삼세양중인과설과 태생학적 연기설의 ‘시간의 관점’과 ‘태생의 관점’을 비판한다. 연기의 제 형태와 12지연기에 이르기까지의 전개과정, 12지 연기에 대한 평가와 해석, 그리고 연기의 시간적 인과관계로서 해석할 것인가, 아니면 무시간적 논리 관계로 해석할 것인가에 대해서 1920년대 초부터 일본 학자들에 의해 몇 차례에 걸쳐 치열한 논쟁이 있었지만 지금까지도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한 자세한 논의는 ‘윤종갑, 2010: pp. 66-67; 박경준, 1989: pp. 122-123’ 참조 바람.

“有此四生 云何為四 所謂卵生 胎生 濕生 化生 彼云何 名為卵生 所謂卵生者 鷄 雀 烏 鵲 孔雀 蛇 魚 蟻子之屬 皆是卵生 名為卵生 云何名為胎生 所謂人及畜生 至二足蟲 是謂名為胎生 彼云何名為因緣生 所謂腐肉中虫 廁中虫 如尸中虫 如是之屬 皆名為因緣生 彼云何名為化生 所謂諸天 大地獄 餓鬼 若人 若畜生是謂名為化生.是謂 比丘 有此四生”(『增壹阿含經』 卷17, T2, 632a).

“如說四有 謂本有中有生有死有 云何本有 答除生分死分諸蘊中間諸有 此則一期五蘊四蘊為性 問何故此有說名本有 答此是前時所造業生故名本有 覺明了現見者說名本有 餘雖前時所造業 生而微隱難覺非明了現見是以不說 云何死有 答死分諸蘊則命終時五蘊四蘊為性 云何中有 答除死分生分諸蘊中間諸有則二有中間五蘊為性 問何故此有說名中有 答此於二有中間生故 名中有 問若爾餘有亦是中有皆於二有中間生故 答若於二有中間生非趣所攝者名中有 餘雖二有中間生而是趣攝不名中有 云何生有 答生分諸蘊則結生時五蘊四蘊為性 問此四有幾剎那幾相續 答二剎那謂死有生有 二相續謂餘有”(『阿毘達磨大毘婆沙論』 卷192, T27, 959a-b); (『阿毘達磨發智論』 卷19, T26, 1024a) 참조.

“如是緣起煩惱業事. 生生相續 不過四有 中生本死 如前已釋”(『阿毘達磨俱舍論』 卷10, T29, 54c).

“云何和合依託 謂此所出濃厚精血合成一段 與顚倒緣中有俱滅 與滅同時卽由 一切種子識功能力故 有餘微細根及大種 和合而生 及餘有根同分精血和合摶生 於此時中說識已住結生相續 卽此名爲羯羅藍位”(『瑜伽師地論』 卷1, T30, 283a).

“生者 謂彼眾生 彼彼眾生種類 生則生 出則出 成則成興起五陰 已得命根 是命爲生”(『中阿含經』 卷7, 「大拘緻羅經」 T1, 462c).

‘五蘊’은 보통 형상(色), 느낌(受), 지각(想), 의도(行), 의식(識)을 말하는데, 色蘊은 生滅變化하는 물질세계, 나머지 수·상·행·식은 정신세계를 형성하게 되고 이로 인해 인간으로서 ‘나’라는 존재를 갖추게 되는 것이다; “此五受陰 色受陰·受·想·行·識受陰耶”(『雜阿含經』 卷2, 「陰根經」 T2, 14b).

“愚癡無聞凡夫無慧無明 於五受陰生我見繫著 使心繫著而生貪欲”(『雜阿含經』 卷3, 「分別經」 T2, 16a).

“我今當說有身有身集 有身滅 有身滅道跡 諦聽 善思 當為汝說 云何有身 謂五受陰 云何為五 色受陰 受 想 行 識 受陰 是名有身”(『雜阿含經』 卷3, 「有身經」 T2, 18c).

“眾生云何生 誰為其作者 眾生何處起 去復至何所 汝謂有眾生 此則惡魔見 唯有空陰聚 無是眾生者 如和合眾材 世名之為車 諸陰因緣合 假名為眾生” (『雜阿含經』 卷45, 「尸羅經」 T2, 327a).

“有二法 何等為二 眼 色為二 如是廣說 乃至非其境界故 所以者何 眼 色緣生眼識 三事和合觸 觸俱生受 想 思 此 四無色陰 眼 色 此等法名為人 於斯等法作人想 眾生 …중략… 耳 鼻 舌 身觸緣生身識 三事和合觸 觸俱生受 想 思 此四是無色陰 身根是色陰 此名為人又如 …중략… 是說 我眼見色 我耳聞聲 我鼻嗅香 我舌甞味 我身覺觸 我 意識法 …중략… 緣意 法生意識 三事和合觸 觸俱生受 想 思 此四無色陰 四大 士夫所依 此等法名為人”(『雜阿含經』 卷13, 「人經」 T2, 87c).

“有此四生 云何為四 所謂卵生 胎生 濕生 化生 彼云何名為卵生 所謂卵生者 鷄 雀 烏 鵲 孔雀 蛇 魚 蟻子之屬 皆是卵生 是謂名為卵生 彼云何名為胎生 所謂人及畜生 至二足蟲 是謂名為胎生 彼云何名為因緣生 所謂腐肉中虫 廁中虫 如尸中虫 如是之屬 皆名為因緣生 彼云何名為化生 所謂諸天 大地獄 餓鬼 若人 若畜生 是謂名為化生”(『增壹阿含經』 卷17, 「私製品」 T2, 623a).

“即此三千大千世界名一佛土 如來於中現成正覺 於無邊世界施作佛事 如是安立 世界成已於中五趣可得 謂那洛迦傍生餓鬼人天及四生可得 謂卵生胎生濕生化生”(『瑜伽師地論』 卷2, T30, 288a).

“生云何 謂於胎卵二生 初託生時 等生云何 謂即於彼身分圓滿 仍未出時 趣云何 謂從彼出 起云何 謂出已增長 出現云何 謂於濕化二生 身分頓起”(『瑜伽師地論』 卷10, T30, 323c).

불교에서 살아 있는 ‘生’을 지칭할 때 ‘인식 능력이 있는 존재(有情)’와 ‘목숨을 지니고 있는(衆生)’ 등의 용어를 대표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有情’은 生死流轉라는 다양한 生들을 의미하지만, 감정과 의식을 가지고 생활하는 존재로 실제 쓰임에서는 대략 인간의 초점을 맞추어 지칭하기도 한다. 또한 ‘衆生’은 ‘생명이 있는 존재’를 의미하며, 생명을 가진 모든 생물 중 동물의 분류를 가리킨다. 이처럼 중생과 유정의 의미는 문맥에 따라 지시하는 바가 상이하겠지만, 중생과 유정의 의미는 四生과 四有의 분류를 통한 윤회의 과정을 실질적인 生의 범주를 인간과 동물의 존재에 한정시키는 것으로 보인다.

“一切生中何生最勝 應言最勝唯是化生 若爾何緣後身菩薩得生自在而受胎生” (『阿毘達磨俱舍論』 卷8, T29, 44a).

“阿難 緣識有名色 此為何義 若識不入母胎者 有名色不 答曰 無也 若識入胎不出者 有名色不 答曰 無也 若識出胎 嬰孩壞敗 名色得增長不 答曰 無也”(『長阿含經』 卷10, 「大緣方便經」 T1, 60a).

“謂彼彼有情 卽於彼彼有情聚中 諸生等生 趣入出現 蘊得界得處得諸蘊生命根起 說名生”(『阿毘達磨法蘊足論』 卷12, T26, 513a).

“在母腹中 以因識爲緣 相續果識 前後次第而生 乃至羯羅藍等位差別而轉於母胎中”(『瑜伽師地論』 卷9, T30, 321a).

“초기불교에서 五蘊의 출현과 소멸을 부파불교에서 생명의 실재는 命根으로 보았다. 즉, 명근이 유지되고 있을 때는 생명이 유지되는 것이며, 명근이 상실되면 죽음으로 간주된다. 생명을 유지하는 근본이 명근이고, 명근은 체열과 의식의 결합이다. 생물학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명근은 신체의 물질대사나 물질의 생리적인 순환 현상을 의미하는 체열과 정신의 측면에서의 의식의 결합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불교생명윤리정립연구위원회, 『현대사회와 불교생명윤리』, (서울: 조계종출판사, 2006: 174).

“謂有比丘知生如真 知生習 知生滅 知生滅道如. 云何知生如真 謂彼眾生 彼彼眾生種類 生則生 出則出 成則成 興起五陰 已得命根 是謂知生如真”(『中阿含經』 卷7, 「大拘緻羅經」 T1, 462b).

“以三事等合會入於受母胎 父母聚集 一香處陰 母滿精堪耐 香陰已至 此三事合會入於母胎”(『中阿含經』 卷54, T1, 769b)은 다음 내용을 전한다. “삼사가 고루 화합하여 수태하게 된다. 父母가 합하고, 香陰이 이미 이르렀으니, 이러한 일 등이 母胎에 들어가는 요건이 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爾時父母貪愛俱極 最後定各出一滴濃厚精血 二滴和合住母胎中合爲一段 猶如熟乳凝結之時 當於此處 一切種子異熟所攝 執受所依阿賴耶識和合依託 云何和合依託 謂此所出濃厚 精血合成一段 與顚倒緣中有俱滅 與滅同時卽由一切種子識功能力故 有餘微細根及大種 和合而生 及餘有根同分精血和合摶生 於此時中說識已住結生相續 卽此名爲羯羅藍位”(『瑜伽師地論』 卷1, T30, 283a).

“當知所謂緣識有名色 阿難 若識不入母胎者 有名色成此身耶 答曰 無也 阿難 若識入胎即出者 名色會精耶 答曰 不會 阿難 若幼童男童女識初斷壞不有者 名色轉增長耶 答曰 不也 阿難 是故當知是名色因 名色習 名色本 名色緣者 謂此識 所以者 緣識故則有名色 阿難 若有問者 識有緣耶 當如是答 識亦有緣 若有問者 識有何緣 當如是答”(『中阿含經』 卷24, 「大因經」 T1, 579c).

“如契經說 入母胎者要由三事俱現在前 一者母身是時調適 二者父母交愛和合 三健達縛正現在前 除中有身何健達縛 前蘊已壞何現在前 故健達縛卽是中有” (『阿毘達磨大毘婆沙論』 卷69, T27, 356c-357a).

“有三因緣 識來受胎 云何爲三 於是 比丘 母有欲意 父母共集一處 與共止宿 然復外識未應來趣 便不成胎 若復欲識來趣 父母不集 則非成胎”(『增阿壹含經』 卷12, 「大因經」 T2, 602c).

“或父母尊貴 中有卑賤 或中有尊貴 父母卑賤 如此等類亦不成胎 若父母及中有俱是尊貴 若業不和合亦不成胎 若其中有於前境處無男女二愛亦不受生”(『大寶積經』 卷55, T11, 328b).

“施設論說 若彼父母福業增上 子福業劣不得入胎 若彼父母福業劣薄 子福業勝不得入胎 要父母子三福業等方得入胎”(『阿毘達磨大毘婆沙論』 卷70, T27, 363c).

“先當受胞胎 漸漸如凍酥 遂復如息肉 後轉如像形 先生頭項頸 轉生手足指 支節各各生 髮毛瓜齒成 若母飲食時 種種若干饌 精氣用活命 受胎之原本 形體以成滿 諸根不缺漏 由母得出生 受胎苦如是”(『增阿壹含經』 卷30, 「六重品」 [其7], ]T2, 714a).

“謂母腹中分位有五 一羯剌藍位 二頞部曇位 三閉尸位 四鍵南位 五缽羅奢佉位”(『阿毘達磨俱舍論』 卷9, T29, 47c).

“復次此之胎藏八位差別 何等為八 謂羯羅藍位 遏部曇位 閉尸位 鍵南位 鉢羅賒佉位 髮毛爪位 根位形位 若已結凝箭內仍稀 名羯羅藍 若表裏如酪未至肉位 名遏部曇若已成肉仍極柔軟 名閉尸 若已堅厚稍堪摩觸 名為鍵南 即此肉摶增長支分相現 名鉢羅賒佉 從此以後 髮毛爪現即名此位 從此以後 眼等根生名為根位 從此以後 彼所依處分明顯現 名為形位”(『瑜伽師地論』 卷2, T30, 284c-285a).

“又於胎中經三十八七日 此之胎藏一切支分皆悉具足 從此已後復經四日方乃出生 如薄伽梵於 入胎經廣說 此說極滿足者或經九月或復過此 若唯經八月 此名圓滿 非極圓滿 若經七月六月 不名圓滿”(『瑜伽師地論』 卷2, T30, 284b).

“出產門時名正生位 生後漸次觸生分觸 所謂眼觸乃至意觸”(『瑜伽師地論』 卷2, T30, 285a).

“彼始七時受母胎裏 云何自然而得成胎 始臥未成就時 其胎自然亦復如是 七日處彼停住而不增減轉稍而熱 轉向堅固則立地種 其軟濕者則為水種 其中煖者則為火種 關通其中則為風種”(『佛說胞胎經』 卷1, T11, 887a-889c) 참조.

“處胎位者 謂羯羅藍等 出生位者 謂從此後乃至耄熟 嬰孩位者 謂乃至未能遊行嬉戱 童子位者 謂能爲彼事 少年位者 謂能受用欲塵乃至三十 中年位者 謂從此位乃至五十 老年位者 謂從此位乃至七十 從此以上名耄熟位”(『佛說胞胎經』 卷2, T30, 289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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