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Journal of Buddhist Thought and Culture
Institute for Buddhist Studies
연구논문

사회생태론적 토대로서 불교의 연기적 관계관에 대하여

김보경*
Bo-kyoung Kim*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박사과정
*Ph. D. Student, Dept. of Buddhism, Dongguk University

© Copyright 2021 Institute for Buddhist Studies. This is an Open-Access article distributed under the terms of the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Non-Commercial License (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3.0/) which permits unrestricted non-commercial use, distribution, and reproduction in any medium, provided the original work is properly cited.

Received: May 22, 2021; Revised: Jun 13, 2021; Accepted: Jun 25, 2021

Published Online: Jun 30, 2021

국문 초록

본 연구의 목적은 불교의 연기적 관계관이 사회생태론의 사상적 토대로서 기능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살펴보는 것이다.

19세기 접어들면서 시작된 근대문명의 성찰에 대한 논의 중 한 흐름이 생태문제를 다룬 ‘생태학’이었다. 이 중 자연생태의 문제를 사회생태의 문제와의 상호관련에서 살펴봐야 한다고 주장한 학자가 머레이 북친(M. Bookchin)이다. 북친은 자연생태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사회생태로부터 기인한 것이며, 특히 사회적 ‘위계구조’와 ‘지배’가 자연생태문제의 근본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지배적 관계를 없애는 사회구조의 재구성이 문제의 해결방법이며, 이를 위해서는 인간의 ‘변증법적 이성’이 필요하다고 봤다.

이러한 북친의 주장은 자연과 사회의 근본적인 관계를 모두 해결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이유는 그의 사회생태론이 서구의 실체론적 존재론과 이원론적 관계관을 토대하고 있는 근대적 세계관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문제를 생산한 근원적 토대를 그대로 두고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임에도 북친은 이를 간과한 것이다. 따라서 본 연구는 북친의 사회생태론이 지닌 한계점을 넘어설 수 있는 관계론으로 불교의 연기론을 제시하였다. 본 연구자는 불교의 연기론이 세상 만물 존재들의 상즉상입(相入相卽)적인 관계론으로서 북친이 제시한 사회생태론의 관계론이 지닌 한계를 넘어설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불교의 관계관은 자연과 사회의 관계를 생명과 존재에 대한 실체론적 접근이 아니라 연기적 관계에서 접근하며, 문제 진단을 단선적이고 이원론적인 관계에서 전일적이고 연기적 관계로 파악하게 한다. 이 점은 불교의 연기론이 사회생태의 문제를 전방위적이고 다층적이며, 복합적인 원인을 분석하게 하는 토대가 되므로 북친의 한계점을 넘어선 사회생태론의 토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Abstract

This study examines the possibility of the Buddhist relational view of pratityasamutpada(緣起), which is “interdependent co-arising” as an ideological basis of social ecology. One of the discussions on the reflection of modern civilization that began at the turn of the 19th century was ecology, which dealt with the world’s ecological issues. Among them, the scholar Murray Bookchin argued that the problems of natural ecology should be examined in relation to the problems of social ecology. He suggested that natural ecology stems from social ecology, and in particular, social hierarchy and dominance are the root causes of natural ecological problems. Therefore, the reorganization of the social structure that would do away with the domination-subjugation relationships is the solution to the problems, and for this, he advocated that dialectical reasoning is necessary.

Bookchin’s argument has limitations in resolving all the fundamental relationships between nature and society. The reason is that his social ecology was unable to escape from the modern worldview based on the Western pragmatic ontology and dualistic relational view. Although the fundamental basis that produced the problem in the first place cannot be the basis for solving the problem, Bookchin overlooked this point in developing his argument. Therefore, the current study presented the Buddhist pratityasamutpada theory as a relational theory that can overcome the limitations of Bookchin’s social ecology. The Buddhist pratityasamutpada theory in which the essence and action of all phenomena fuse with each other and there are no obstacles can go beyond the limits of the relational theory of social ecology proposed by Bookchin.

The relational view of Buddhism allows us to approach the relationship between nature and society from a relationship of pratityasamutpada rather than a pragmatic approach to life and existence, and to grasp the problem diagnosis from a unilinear and dichotomous relationship to a holistic relationship of pratityasamutpada. This point can be the foundation for a new social ecology that goes beyond Bookchin’s limitation, as the Buddhist pratityasamutpada theory can become the basis for analyzing the omnidirectional, multi-layered, and complex causes of social ecological problems.

Keywords: 사회생태론; 머레이 북친(M. Bookchin); 불교 연기론; 상호작용(상의성); 실체; 관계
Keywords: Social Ecology; Murray Bookchin; Buddhist Pratityasamutpada(緣起); Dependent Co-Arising(Interdependent Arising); Substance; Relationship

Ⅰ. 들어가며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석학들은 현대사회를 ‘위험사회’라고 진단했다. 울리히 벡(U. Beck, 1997)이 저술한 『위험사회』를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현대사회는 지구화, 개성화, 고용감소, 생태위기 등에서 심각한 문제를 겪고 있으며, 오늘날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현대사회가 위험사회임을 인식하고 있다. 더욱이 2019년부터 시작된 covid-19 팬데믹 상황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가 생명을 위협하는 위험사회임을 증명하고 있다. 더하여 기후위기의 상황은 인간에게 더는 미뤄서는 안 되는 환경문제의 해결에 대한 실천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이렇듯 코로나 팬데믹 현상과 갈수록 시간 간격이 짧아지며 맞닥뜨리게 되는 급격한 이상기후는 ‘자연과 인간관계’에 관한 생태문제가 우리의 실천성이 요구되는 가장 시급한 시대적 과제임을 다시금 깨닫게 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에 대해 19세기 말부터 학자들은 근대문명에 대한 성찰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여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과 반성을 시작했다. 그들의 지적과 같이 생태문제 원인의 중심에는 근대문명을 이끌었던 인간 중심주의의 ‘이성’이 있다. 중세시대의 신 중심의 사회에서 근대의 인간중심으로 전환되면서 절대적 우주의 원리로서의 ‘신’의 자리에 ‘인간의 이성과 자유’가 자리하게 되었고, 이를 토대로 인간은 과학을 통해 이 세계를 발전시켜 왔다. 그 결과 물질생산량의 증가와 과학의 발전은 빈곤으로부터 해방과 생명의 연장 및 새로운 세계로의 확장 등 인간이 상상하던 세계를 현실화시켰지만, 그와 함께 인간의 소외, 계층의 갈등 및 생태 파괴의 문제를 낳았다. 이 문제들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함께 해결해야 하는 것이지만 이 중에서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는 생태문제는 지금 여기에서 시급히 실천해야 할 가장 중요한 사안이 아닐 수 없다.

생태실천 철학으로서의 다양한 논의는 1960년경부터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 그 내용을 거칠게나마 요약하자면, 근대 이성과 인간중심에 대한 비판을 통해 생태논의가 전개되었다. 다양한 논의가 전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내용들은 인간 이성에 강한 신뢰를 바탕하고 있으며, 이원론과 합리론적 세계관을 토대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따라서 근원적인 세계관적 토대가 동일한 생태담론은 생태극복 실천방안에서도 공통된 한계점을 지닌다.

본 글에서는 근대적 세계관을 토대로 전개된 생태담론이 지닌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사회생태론의 철학적 토대로서 불교의 연기적 관계관에 주목하였다. 불교의 연기적 관계관은 근대적 세계관에 토대한 이원론적 세계관과는 전혀 다른 세계관에 토대하고 있다. 화엄사상에서 언급하는 ‘하나가 곧 전체이며, 전체가 하나(一卽多 多卽一)’가 불교의 세계관을 잘 표현하고 있듯이 불교의 연기관은 전일론적(holism)이며 유기체적인 전체성의 특징을 지닌다. 이러한 불교의 연기관은 사회생태담론으로서의 철학적 토대를 제공할 수 있으며, 나아가 사회의 모든 체계와 환경과의 유기적 관계 안에서의 실천적 방향들을 제시할 수 있다.

이러한 논의에 앞서 사회생태론을 선두했던 머레이 북친의 이론을 검토해야 할 것이다. 북친이 주장한 이론의 유용성과 한계점을 살펴봄으로써 불교 연기관의 사회생태적 함의를 도출할 수 있을 것이다.

머레이 북친은 자연생태의 회복을 위해서는 사회생태의 회복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는 한편, 환경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사회적 실천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의 사회생태론이 사회문제 및 사회구조의 모순과 환경의 문제가 직결되어 있다는 관점을 제시했다는 점에서는 심층생태학자들의 환경중심적 논의의 한계를 넘어섰고, 환경문제 해결을 위한 실천성을 강하게 촉구하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그러나 머레이 북친의 생태론 역시 서구의 이원론과 인간 중심의 합리론을 중심으로 한 담론의 전개라는 측면에서 여타의 생태담론이 지닌 한계를 여전히 안고 있다. ‘인간 중심’의 세계관 속에서 인간의 행복을 위한 생태철학은 만물을 평등한 대상으로 접근할 수 없으며, 이러한 관점은 환경에 대한 근원적인 문제해결의 방향을 설정해 주지 못한다. 따라서 필자는 불교의 연기 사상을 사회생태철학의 근원적 토대로 삼을 수 있는 가능성을 살피고자 한다. 불교의 연기적 관계관은 북친의 생태담론이 지닌 한계를 넘어서고 보완할 수 있는 이론적 토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Ⅱ. 생태담론의 전개 내용

생태학은(ecology)은 1869년 독일의 생물학자인 에른스트 헤켈(E. Haeckel)에 의해서 그 용어가 사용되었다. 이를 출발로 생태학이 자연과학에서 사회과학의 영역까지 확장되었으며, 이후 사회과학 및 사회철학과 결합하여 논의가 이어진다. 지금까지 전개된 생태담론은 관점에 따라서 다양하게 분류되지만 1960년대 이후부터는 활발히 진행되었으며 내용으로는 크게 생태중심주의와 인간중심주의 담론으로 나뉘어 전개된다. 생태중심주의는 근본생태학 또는 심층생태학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들의 공통된 주된 내용은 근대적 세계관에 토대하고 있는 근대문명이 환경을 파괴했으며, 현재의 위기 상황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근본생태학자로는 노르웨이의 아느 네스(A. Naess), 미국의 드볼과 세션스(Devall and Sessions), 게리 스나이더(G. Snyder), 워윅 폭스(W. Fox), 조지 세션즈(G. Sessions), 프리초프 카프라(F. Capra)와 같은 환경주의 학자들에 의해 이론적으로 계승한 독일의 그리제바하(Griesebach)와 아메리(Amery), 영국의 포리트(J. Point) 등으로 대표된다(문순홍, 2002: 22). 그들은 자연파괴가 자연에 대한 인간의 그릇된 가치관에서 기인한 결과라고 전제하며, 지금까지의 인간중심주의 관점을 생물주의로 전환할 때 문제가 극복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근대성의 저변에 깔린 인간중심주의적인 계몽주의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인간의 이성으로부터 주변부로 밀려 있었던 인간들의 자연에 대한 영적인 접근을 강조한다.

심층생태주의자들은 근대문명의 토대가 된 이원론과 인간중심주의라는 두 기둥이 우리 시대의 중요한 질적 가치를 훼손시켰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잃어버린 질적 가치를 속히 회복하고 위기적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환을 강조한다(A. Naess, 1987). 기존의 이원론적, 인간 중심주의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자아실현(self-realization)’과 ‘생명 중심적 평등(biocentric equality)’으로 의식의 전환이 필요한 것이다. ‘자아실현’은 자신을 자연과의 상호연관 속에서 존재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과정이며, ‘생명중심적 평등’은 모든 생명체가 상호 연관된 전체의 평등한 구성원으로서 동등한 본질적 가치가 있는 것을 말한다(J. R. 데자르뎅, 1999: 353). 이러한 생태적 의식의 패러다임 전환은 곧 의식변혁을 말하는 것으로서 이는 비폭력적 참여의 과정이라는 실천을 통해 달성된다(Naess, 1987).

이러한 심층생태중심주의적인 입장은 1970년대 말부터 사회생태주의자들로부터 비판을 받는다. 사회생태학은 심층생태학이 가진 보수성과 사회와 단절된 의식을 극복하고 사회문화운동으로 확산시키기 위한 노력에서 출발하였다. 사회생태론을 주장한 대표적인 학자로는 머레이 북친(M. Bookchin)과 루돌프 바로(R. Bahro) 등을 들 수 있다. 이들은 심층생태학자들의 생물중심주의와 반인본주의를 에코파시즘으로 전락한 상태라고 비판한다. 나아가 생태위기를 사회의 위기화에서 논의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생태위기의 원인분석이 지배가 관철되는 사회적 제 관계에서 시작되었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인간 중심의 합리주의를 통해 찾아야 함을 강조한다. 실천적 방법으로서는 우선 사회적 지배관계를 근절시키는 운동이 제시된다.

머레이 북친이 인본주의와 변증법적 이성을 통해 현재의 생태 문제를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북친, 1997)은 사회생태학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그는 사회생태개념을 처음으로 제시한 학자로서 자연생태의 파괴가 인간 생태, 즉 공동체의 파괴와 아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고 주장한다. 북친을 시작으로 전개된 사회생태론은 생태위기의 원인이 사회위기화로부터 출발한다(문순홍, 2002)고 보고 있다. 그들은 근본생태학이 주장하는 생태 중심주의는 자연 세계에서 인간만이 갖는 위치를 부정하며, 사회와 단절된 의식전환 또는 문화운동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생태위기의 근본원인을 간과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한편, 서구의 생태론이 근본생태학과 사회생태학으로 전개되고 있는 과정에서 동양사상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일군의 학자들은 유기체적이며 순환적인 동양적 세계관은 생태학적 세계관의 모델이 될 수 있음을 주장한다(박이문, 1997). 1990년대 초부터 동양사상의 논의에서 자연생태 문제는 중요한 주제로 부각1)되었다. 서양의 생태학자들이 일찍부터 생태극복의 사상으로 인도의 힌두교, 불교, 도가사상에 주목했듯이, 세계적으로 환경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국내에서도 역시 불교와 도가사상 연구자들이 생태담론에 가담하기 시작했다.

생태학과 가장 먼저 접목되기 시작한 것은 불교 사상이었으며, 더불어서 불교계의 환경보호운동이 학계의 연구와 함께 진행되기 시작했다. 불교는 연기(緣起)와 윤회(輪回)사상으로 생태문제를 이해하기 시작했고, 생태담론 전개에 중요한 세계관적 토대를 제공했다. ‘생태계’를 상호 의존성을 바탕으로 적합한 삶의 터전을 이루고자 생물과 그 환경 간에 이루어지는 상호 작용의 체계라고 규정한다면, 생태계의 본질로서의 이러한 ‘상호의존성’을 불교사상에서는 연기(緣起)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김종욱, 2006: 25). 연기적 세계에서 모든 생명체는 상입상즉(相入相卽)하는 평등한 관계를 갖는다. 또한 업(業)을 통한 윤회사상은 현재와 다음 생에서의 모습을 결정짓는 개념이므로 이는 자연스럽게 생명 존중사상을 갖게 한다.2) 따라서 윤회와 연기라는 불교의 핵심 사상은 자연과 인간이 서로 동등한 평등적 관계이며 서로가 서로를 전제로 자신의 존재가 드러나는 관계임을 잘 보여준다. 이러한 불교의 철학을 통해 세워진 불교생태철학은 활발한 생태담론을 발전시켰으며, 나아가 환경운동의 철학을 제공했다.

불교논의에 뒤이어 유학전공자들 역시 생태담론 전개에 가담하기 시작한다.3) 유교사상은 자연과 인간을 각각 대우주(大宇宙)와 소우주(小宇宙)라는 유기체적인 관계로 파악한다. 유학자들은 『주역(周易)』과 『중용(中庸)』 및 『맹자(孟子)』에 주목하여 생태철학을 발전시켜 나갔다. 생태철학적 해석으로 주로 집중된 것은 장재의 기(氣)철학과 정호, 왕수인의 만물일체설(萬物一體說)이다. 때로는 주자론의 리기론(理氣論)이 생태철학으로 읽히기도 했다(홍원식, 2013). 유교사상에서는 유기체적인 사상과 도덕적이고 실천적인 인간관에 주목하여 생태철학의 논지를 폈다. 생태담론은 크게 인간중심주의적 관점과 생태중심주의적 관점, 그리고 이 두 가지의 중간자적 입장에서 전개되었다.4)

이처럼 생태문제에 대해 동서를 막론하고 그 담론이 활발히 진행 중이다. 다만 국내에서는 2010년 이후에는 생태담론에 대한 연구의 수가 많이 줄었는데 생태문제는 전 지구적인 문제로서 실천을 동반하는 시급한 문제이며 실천적 논의를 끌어낼 활동이 지속하여야 함에도 국내에서 그 열기가 다소 식은 것에 대해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불교의 연기적 세계관은 근대적 세계관이 안고 있는 한계점들을 극복할 수 있는 사상으로 주목받고 있으며, 특히 자연 과학계의 성과로 이해하고자 하는 시도들이 보인다.5) 그 중 세계의 성립근거에 대한 존재론적 접근을 상호관계에서 찾고자 하는 복잡계 과학 이론은 불교의 생명관과 연기관과 일치한다고 보고 있다(윤종갑, 2008: 90). 따라서 생태문제와 환경문제에 대한 불교의 사상적 발굴은 지속할 가치가 크다.

불교의 연기관은 인간과 자연생태의 관계를 평등적 존재로서 상호의존적 관계로 보는 철학적 토대를 제공하며, 인간 사회생태의 변화가 자연생태의 변화와 상호관계 속에서 정의되어야 한다는 혜안을 제공한다. 머레이 북친의 자연파괴가 인간사회의 파괴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주장은 불교의 연기관으로 보아도 자연스러운 해석이지만 그가 한 측면에서만 해석하였음을 알게 한다. 불교의 연기론은 사회생태와 자연생태 간의 쌍방향뿐만 아니라 다층적이며 다면적인 요소들의 유기적 관계에 대해서도 사고하게 한다.

다음 장에서는 사회생태론의 창시자인 머레의 북친의 주장 내용을 검토한 후 그의 한계를 불교의 연기관을 통해 살펴보고, 나아가 불교의 연기관이 사회생태론의 철학적 토대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논의하고자 한다.

Ⅲ. 머레이 북친의 사회생태론에 대한 이해

사회생태학의 선구자인 북친은 오늘날의 생태문제의 출발이 대부분 뿌리 깊은 사회문제에서 출발했다고 본다. 그는 긴박한 지구 생태와 사회적 파국을 직시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지금 여기에서 바로 행동으로 나서야 함을 강하게 촉구했다. 그는 생태문제의 핵심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현대사회’에 대한 세심한 분석을 통해 가능하다고 보면서 특히 현대사회가 지닌 비합리성과 모순에 대한 세심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우리가 직면한 오늘날의 심각한 생태파괴는 대부분 그 핵심에 다름 아닌 경제적 갈등, 인종적, 문화적, 성적 갈등이 자리하고 있다고 주장한다(북친, 1997). 이러한 이론적 토대를 바탕으로 북친은 기존의 정치철학이 가졌던 독단론을 배격하면서 급진 활동가이자 또 급진 이론가로서 생태운동을 전개했다.

북친의 논의 중 주목해야 하는 부분은 그가 생태문제를 제기한 시작부터 줄곧 ‘심각한 생태파괴 문제가 다름 아닌 사회문제의 한 양상에서 비롯되었다’는 주장 내용이다.

북친 이전의 생태론은 생태문제의 근원을 사회문제로부터 찾기보다는 인간중심주의와 이를 뒷받침하는 근대성의 토대인 인간의 이성에서 찾는 부류가 대부분이었다. 심층생태학자들은 그들의 논의를 대부분 근대성의 비판으로부터 생태문제에 접근했으며, 새로운 패러다임의 전환을 통해서 오늘날의 위기 상황을 극복하고 상실된 질적 가치를 속히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친은 생태위기를 정신적 위기에서 찾는 이들의 주장을 강하게 비판했다. 생태위기의 극복은 의식의 전환만으로는 불가능하며, 생태파괴의 원인이 사회위기에 있으므로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인간의 생태적 태도와 구조에 대해 사회적 재구성을 위한 운동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더불어 사회적 재구성을 위한 운동은 지역 자체에서 행해져야 한다는 실천적 방법도 제시한다(북친, 2012).

북친은 『사회생태론의 철학』(1997)에서 ‘자연과 인간은 각각 무엇이며, 이 둘은 어떤 관계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 질문에 답을 찾는 것이 오늘날 생태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작업이라고 했다.

그는 자연을 존재의 전체이면서, 자기 발전과정을 겪으며 끊임없이 진화하는 총체로 정의한다. 자연의 진화가 갖는 중요한 특징은 ‘주체성(subjectivity)과 유연성(flexibility)의 증대, 분화의 증대(북친, 2012)’이다. 그는 자연이 대상화된 단순한 전경이 아닌 유기적 세계로서 진화의 내적 상호작용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인간은 이러한 자연이 발전하여 구현된 존재로서 유기체 진화의 산물이다. 따라서 인류는 항상 생물학적 진화의 역사에 뿌리를 둔다. 그는 인간의 생물학적 토대를 ‘제1의 본성(제1자연: first nature)’으로, 인간 특유의 사회적 특성이 담긴 자연을 ‘제2의 천성(제2자연: second nature)’으로 구분한다.

제1자연은 제2의 천성 또는 사회라고도 할 수 있는 영역과 밀접한 관련을 맺는데, 제1자연인 유기체가 진화하면서 자신의 본성으로 제2자연이라는 특별한 산물을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인간은 제2의 자연 속에서 거주하며 제2자연을 변화시키며 살아가는 유기적 진화과정의 산물이다. 인간은 진화과정 속에서 자신들이 지닌 지성, 의사소통 능력, 제도 조직능력 및 본능을 통해 스스로의 생물학적 발전을 가져왔을 뿐만 아니라 제2자연도 더불어 발전시켜왔다. 그 과정에서 인간은 그들 자신과 동물에게 해로운 길도 만들게 된 것이다(북친, 2012: 53). 인간 사회의 위계구조와 지배 역시 해로운 것에 해당한다. 진화과정 속에 창출된 해로운 결과물들은 점차 인간 공동체가 제1자연과는 구별되는 세계로 만든다.

제2자연에 자리하게 된 인간에 대한 ‘지배’는 자연을 지배하는 ‘생각의 뿌리’가 됨으로써 문제를 일으킨다. 근대이전의 사회에서 위계구조와 지배는 있었으며, ‘성장 아니면 죽음’이라는 법칙이 자리한 오늘날의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도 이들은 인간들의 의식 속에 깊이 자리하고 있다. 오늘날 생태위기의 상황은 여기에 원인이 있는 것이다. 지배, 위계구조, 성장 아니면 죽음이라는 의식으로 만연한 사회는 필연적으로 제1자연에게 엄청난 충격을 가한다. 따라서 점점 더 확대되어가는 자본주의의 시장 체제는 제1자연의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만든다.

이렇게 초래된 위기의 생태문제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현 사회의 체제에 전면적으로 도전해야 한다. 경제적 지배, 지배의 행정기구, 지배구조가 낳은 기술남용, 정치기구 및 구조의 피폐화, 도시의 파괴 등 각각에 전면적으로 도전하는 것이다. 이들 속에 뿌리를 둔 지배구조 및 위계를 제거하는 것이다.

북친은 위계와 계급의 구조를 제거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인간이 지닌 최선의 능력인 윤리적 감각의 회복, 개념적 사고능력과 의사소통 능력을 증대해 나가는 사회적 운동을 확산시켜 나가는 것이다. 더불어 현재의 도시들이 탈중심화되어서 주변 자연환경에 최적화된 공동체들의 연방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탈중심화된 공동체의 연방에서는 지역의 수요에 맞게 여러 가지 시설들을 설계해야 하며, 후속 세대들까지도 지속해서 사용할 수 있는 상품들 생산을 고려해야만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직접민주주의의 생태 정치가 생태 공동체들의 연방으로 확장되어 공동체 사이의 건강한 상호의존이 이루어져야 한다. 북친은 ‘리버테리언 지방자치(libertarian municipalism)’6)의 정치학을 통해 사회생태학의 정신을 구현하고자 했다.

이상과 같이 북친은 인간의 ‘직관’과 ‘감성’을 강조한 심층생태학자와는 문제에 대한 진단을 다르게 했고 또한 다른 방법을 제시했다. 그는 인간의 ‘변증법적 이성’을 강조하였으며, ‘변증법적 이성이 구현된 공동체’가 생태위기를 극복한다고 주장한다. 반면에 동양철학의 특징인 유기체적 세계관과 자연주의적 가치관은 정적인 우주형이상학이며 반과학주의라고 비판한다. 오히려 서구의 아리스토텔레스나 헤겔이 보여준 유기체적 전통이 동양의 전통보다 오늘의 환경위기를 더 건강하게 대처하는 사상을 제공한다고 보았다. 결국 북친에게는 서구의 전통을 통해 추구해야 할 사회가 새로운 인본주의적 생태사회인 것이다.

요약컨대 북친의 사회생태철학은 첫째, 반인본주의에 대한 비판의 입장으로 새로운 인본주의 생태사회를 제시하는 것, 둘째,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진화론적으로 해석하는 관점, 셋째, ‘도구적 이성’ 즉 ‘관습이성’을 비판하고 이를 극복하는 ‘변증법적 이성’을 강조하는 것이다(북친, 1997). 이상과 같이 북친의 사회생태론은 생태위기를 자연중심주에 편향되어 분석한 심층생태론자들과는 달리 사회위기의 상호관련성에서 봐야 한다는 점, 나아가 이를 극복하는 방법이 공동체적 가치를 실현할 때 가능하다는 주장에서 의미를 지닌다. 더욱이 생태문제의 위기는 결국 인간의 실천을 통해서 극복될 수 있으며 소통과 연대, 자치가 실현되는 연방공동체를 방법을 통해 극복된다. 북친의 주장은 사회생태와 자연생태의 상호작용 관계에서 살펴야 한다는 유기체적인 관점에 토대하고 있다. 따라서 자연생태와 사회생태의 유기체적인 관계 속에서 극복할 수 있는 사회 각 영역에서의 실천적 방법들을 제시한 것이다.

그러나 북친이 간과한 점이 있다. 북친이 사회와 자연의 상호 관계에서 생태문제에 접근해야 한다는 주장은 이전의 편향적 관점의 생태이론을 넘어섰다고 할 수 있지만, 그가 생태공동체를 이루기 위해서 제시한 ‘변증법적 이성’은 결국 인간중심주의적인 입장의 편향적인 측면에서 논의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원적인 ‘근대적 세계관’의 토대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물론 북친이 그의 ‘변증법적 이성’을 이전의 도구적 이성으로 비판받았던 ‘관습적 이성’과 구분하고는 있지만, 생태문제를 진단하는 관점 자체가 서구의 이원론적인 세계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심층생태학자들이 지닌 편향적 관점을 반복하고 있다. 북친은 자신의 사회생태철학을 생태적 인본주의라 칭했다. 북친이 이해하는 자연은 주체성을 지닌 자연이지만 그 주체성은 인간의 변증법적 이성을 통해서만 실현될 수 있는 특징을 지닌다. 결국 북친의 사회생태론은 인간중심주의적 관계관을 토대한 생태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 이성을 통한 문제해결에 그 주안점을 두었다는 점에서 근대적 세계관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생태문제는 인간과 사회, 우주까지도 포함하는 세계, 즉 자연과의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관계의 문제이다. 그중에서도 상호작용을 통해 생태위기를 급속히 진행한 것은 인간과 사회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인간과 더불어 사회와 자연과의 관계 문제를 정밀히 분석할 필요가 있다. 인간과 자연의 끊임없는 상호작용의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특정 결과는 다시금 인간과 자연 각각에 뿐만 아니라 상호작용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인간중심주의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자연생태와 사회생태를 평등한 관계관 안에서 생태문제에 대한 진단과 해결방법을 설명해 내야지만 생태문제의 근본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Ⅳ. 불교의 연기론(緣起論)의 사회생태론적 토대로서의 가능성

1. 사회생태론의 토대로서 불교의 연기적 관계관: 불교의 연기(緣起)에 대한 보편적 이해

생태적 환경에서 생명은 자신의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해 다른 생명과 상호의존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카프라는 『생명의 그물』(1998)에서 생명 과정들 상호간의 의존성, 즉 상호의존성(interdependence)이 모든 생태적 관계의 본질이라고 했다. 이렇듯 생태적 환경 속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들은 거대하고 복잡한 관계들의 연결망(network)에 속해 있으며, 이 속에서 자신들의 본질 자체를 다른 것과의 관계 속에서 획득한다. 생명은 고정된 하나의 실체가 아니라 관계 속에서 파악될 수 있는 모습이므로 관계론에서 파악되어야 한다. 이러한 관계망 속에서의 상호의존적 존재로서의 생명에 대한 관점은 불교의 연기적 관계를 통해서 해석할 수 있다.

‘연기(緣起)’는 불교에서의 가르침 중 핵심적인 내용이다. 인간을 둘러싼 물질세계와 정신세계까지도 생성과 성장, 그리고 쇠퇴와 소멸하는 과정 속의 상호 인과적 관계에 있음을 연기설은 잘 설명한다. 붓다가 “연기(緣起)를 보는 자는 법(法)을 보고, 법(法)을 보는 자는 연기(緣起)를 본다.”7)고 한 것과 같이 ‘법(dharma)’이 ‘법칙’ 또는 ‘이치’라고 한다면 연기는 일체 존재의 법칙이자 모든 사건의 발생 원리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연기는 모든 것들의 조건들의 인과적 연관 관계를 설명해 준다. 연기론은 초기불교의 아함부 경전에서부터 대승경전까지 핵심사상으로서 관통하고 있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다. 此有故彼有

이것이 일어나므로 저것이 일어난다. 此生故披生

··· 이것이 없으므로 저것이 없다. 此無故彼無

이것이 사라지므로 저것이 자라진다. 此滅故彼滅 8)

위 구절은 연기론을 보편적 의미로 사용할 때 언급한다. 세상 만물은 관계 속에서 생성과 소멸 과정을 겪는다. 세상 모든 것이 조건 발생적으로 일어난다는 구체적인 내용은 12연기설을 통해 자세히 이해할 수 있다. 12연기는 무수히 반복되는 인간의 생사 윤회과정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는데, 무명(無明)으로 시작한 무엇은 행(行)·식(識)·명(名)·육입(六入)·촉(觸)·수(受)·애(愛)·유(有)·생(生)·노사(老死)의 과정을 통해서 구체적인 사건으로 드러나게 된다. 사건의 유기적 과정의 원리를 12연기는 잘 설명한다. 12연기를 통해 생태문제를 진단하면 문제는 결국 인간이 지닌 무명으로부터 비롯되었음을 알게 한다. 따라서 유(有)·생(生)·노사(老死)에 해당하는 현실 문제로 드러난 생태문제의 심각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환멸연기(還滅緣起)로서 문제의 해결 방법을 찾을 수 있다. 발생한 사건들의 조건이 되는 원인을 하나씩 제거해 나갈 때 문제는 소멸되어가는 것이다. 결국 조건들의 근원에서 ‘무명’을 만나게 되고, 이 무명을 밝히는 것이 근본문제의 뿌리를 아는 것이다.

초기불교의 12연기설은 이후 중관연기를 통해 더욱 정교해진다. 용수를 중심으로 전개된 중관학파의 연기설은 붓다의 연기설을 실체론적으로 이해했던 이전의 부파철학을 팔불(八不)을 통해 비판하면서 근본불교의 연기를 바르게 이해하는 길을 세웠다. 용수는 부정의 부정을 거듭하는 독특한 변증법의 전개를 통해서 상대적인 인식을 지양하고 높은 차원에서 종합적인 공의 입장을 밝힌다. 『중송』 귀경게(歸敬偈)에서 보이는 ‘팔불연기(八不緣起)’는 이전의 십이지연기(十二支緣起)에서의 설명과는 다른 설명 구조의 연기가 제시된다.

발생하지도 않고 소멸하지도 않으며, 상주하지도 않고, 단멸(斷滅)하지도 않으며,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으며, 오지도 않고 가지도 않네. 이 연기 능히 말씀해 주시어 모든 희론(戱論)을 잘 소멸해 주시니 모든 설법자 가운데 으뜸이신 부처님께 나는 머리를 조아려 절을 드립니다.9)

용수가 제시한 ‘불생(不生), 불멸(不滅), 불상(不常), 불단(不斷), 불일(不一), 불이(不異), 불래(不來), 불출(不出)’인 ‘팔불(八不)’은 연기가 무자성(無自性)이며 공성(空性)의 특성을 보임을 알 수 있게 한다. 또한 무자성과 공성이 일체법의 상호의존적인 관계에 있다는 것도 보여준다. 일체법들의 원인과 결과는 상호의존하여 성립하므로, 원인으로서 서 있는 그것은 자신이 산출한 결과에 의존하여 생성된다. 따라서 원인으로서의 그것은 자신이라 내세울 수 있는 고유한 본성이나 실체를 지닐 수 없다. 때문에 모든 존재와 현상들은 의타적 현상들로서 상대적이고 상관적이다. 다만 임시로 존재하는 가유(假有)일 뿐이며 궁극적으로는 ‘공(空)’인 것이다.10) 따라서 상호의존의 연기에 의하면 궁극적인 원인을 포함하는 모든 것이 연기의 결과물이 되고, 따라서 궁극적인 원인을 포함하는 모든 사물은 무자성의 특성을 지니게 된다(남수영, 2012: 146). 이처럼 중관학파의 무자성(無自性), 공(空), 가명(假名, 假有)로서의 연기법은 인간과 자연이 분별과 대립으로서의 소유와 욕망의 대상이 아니라 상보와 공존의 관계에 있음을 알게 한다.

이후 전개된 화엄사상의 법계연기는 상호작용의 세계를 정교하게 설명하는 데 절정에 다다른다. 생태학에서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연기적 관계로 볼 때 화엄의 ‘법계연기’는 온 우주와 모든 존재는 그 어느 하나도 다른 모든 것들로부터 벗어나 있지 않은 ‘상입상즉(相入相卽)’의 상호작용으로 이뤄진 결과물들로서 이들은 하나의 거대한 그물과 같이 이어져 있다. 『화엄경』에서는 이 세계를 제석천궁의 인드라망으로 표현한다. 모든 존재가 하나의 투명구슬로 비유되는 그물코이면서도, 그물코가 거듭 연결되어 이뤄진 거대한 그물이다. 구슬들은 자신을 비추고 있는 다른 모든 구슬을 비추어 담아내고 있다.

『화엄경』에서는 법계를 사법계(四法界)로 나누는데, 사법계(事法界)·이법계(理法界)·이사무애법계(理事無礙法界)·사사무애법계(事事無碍法界)11)가 그것이다. 이 중에서 사사무애법계는 모든 현상 그 자체가 상호침투하고 대등하게 존재하면서 융섭하는 존재로 어우러진 세계이다. 화엄에서의 ‘일즉다 다즉일(一卽多 多卽一)’의 세계는 이를 표현하고 있다. 법장이 ‘시방(十方)은 실체가 없고 인과관계에 의해 티끌 속에 완전하게 나타나게 된다’라고 한 것과 같이 세상의 모든 것은 일방적 인과관계에 형성된 것이 아니라 동시에 발생하며, 서로에게 침투해 들어가 있으며, 타자를 자신 속에 포섭하고 있다. 이처럼 화엄사상은 이 세계가 무질서하고 독립적인 개체들로 존재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티끌에서부터 거대한 우주에 이르기까지 시공간적으로 상호작용하고 있는 전일론(全一論)적 체계인 것이다(윤종갑, 2008: 95).

이상에서와 같이 초기불교의 12연기에서부터 중관연기, 화엄연기까지의 내용을 통해 공통적인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연기설은 이 세계의 생성과 성장, 그리고 쇠퇴와 소멸의 전개과정을 상호작용에 의해 규정하는 삼라만상을 지배하는 절대적인 원리라는 것이다. 연기가 ‘여래가 세상에 나타나든 나타나지 않든 그 계(界)에서 주성(住性), 정성(定性), 조건성(條件性)으로 상주(常住)한다’12)라고 한 것과 같이 연기법은 세상 일체의 것이 상호의존적 관계에 따라 끊임없이 운동성과 생명성을 지닌 것에 대하여 ‘그러하게 되어져 있는[眞如性] 객관성과 벗어날 수 없는[不離如性] 필연성 그리고 늘 그러함[不異如性]의 항상성, 또 구체적인 것을 조건으로 하는[此緣性] 조건성’을 특징으로 하는 법이다.13)

이러한 관계들의 특성으로 연기적 관계는 무수한 관계들의 운동성과 흐름의 과정을 상호작용 속에서 파악하게 한다. 따라서 세상 만물은 존재 자체가 독립적인 개체와 독자적인 운동성이 아니라 상호관계에서의 존재로서 변화하며 나아간다. 따라서 자연생태의 문제를 사회생태의 문제와의 상호작용에서 파악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 아닐 수 없다.

연기적 관계에서 접근하는 사회생태는 인간 삶을 전일적(holistic)으로 탐구해야 하는 과제를 남긴다. 자연생태와의 연기적 관계로 파악되는 사회생태는 인간 삶의 전방위적 성찰을 가능하게 하며, 이에 따른 합리적인 문제해결 방법을 제시할 수 있게 할 것이다. 어떠한 현상은 한 가지 원인에서 생성되지 않고 둘 이상의 화합을 통해 생겨난다. 따라서 자연생태의 문제와 사회생태와의 상호작용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개인들의 의식에서부터 사회적 체계, 즉 사회의 다양한 제도와 정치, 경제, 문화 등까지 확장하여 살펴봐야 한다.

독일의 학자인 에른스트 울리히 폰 바이츠제커(Ernst Ulrich von Weizsäcker)는 『환경의 세계』(1999)에서 환경의 문제는 정부와 기업의 문제, 개발의 문제이자 문화생산 및 소비의 문제라고 지적했다(바이츠체커, 1999). 바이츠제커의 지적과 같이 자연생태의 문제는 삶의 방식이 전방위적으로 성찰되어야 하며, 더불어 문제해결을 위해 사회생태가 재조직되어야 함을 말해준다. 화엄의 연기적 관점에서 보면 자연생태와 사회생태는 하나의 그물처럼 엮어져 있으므로 사회생태는 인간 개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개인들이 관계를 맺는 모든 것들과의 상호작용의 내용에 따라서 건강성의 여부가 결정된다.

다음에서는 이러한 연기관을 통해서 북친의 사회생태론이 간과했던 사회생태와 자연생태와의 관계를 살핀 후 나아가 사회생태와 자연생태를 관통하여 주목해야 할 관점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2. 불교 연기론으로 살펴 본 북친의 사회생태론의 한계

불교의 연기적 관계관은 자연생태의 문제와 사회생태가 다층적이고 중첩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한다.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북친이 생태파괴의 문제와 위기를 인간의 관계 방식에 대한 고찰로 극복하고자 한 점은 심층생태학자와 급진적 환경주의자들의 편향적인 생태주의적인 관점을 넘어섰다는 입장에서 주목할 만하다. 따라서 사회생태와 자연생태의 관계 속에서 자연생태 파괴의 문제를 조명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그 공로가 크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불교의 연기론으로 비춰볼 때 북친이 자연생태 파괴의 근본 문제들을 분석하는 데 간과한 점과 한계 점이 보인다. 하나는 북친이 생태파괴의 문제해결 방법으로서 제시한 인간의 ‘변증법적 이성’이 고대부터 근대까지 이어져 온 서구철학의 실체론적 존재관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자연생태의 문제를 발생시킨 사회생태의 문제점을 ‘사회의 위계적 구조와 지배’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이다.

첫째로 북친이 생태문제의 해결방법으로 강조하면서 제시한 변증법적 이성은 사회생태론으로서 근본적인 한계를 드러내는 지점이다. 변증법적 이성은 인간중심적인 관점에서 제시된 개념으로서 이는 인간에 대한 실체론적 존재론에 근거하고 있다. 실제로 이 부분이 불교의 연기적 존재론과는 큰 차이를 보이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존재에 대한, 즉 생명에 대한 실체론적 접근은 서양 철학의 핵심을 관통하는 주요한 관점이다. 플라톤의 ‘이데아’, 칸트의 ‘물자체’, 헤겔의 ‘절대정신’에서와 같이 이들은 궁극적 실체를 상정하고 세계를 해석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북친 역시 인간의 절대적 정신으로서의 ‘이성’에 대한 긍정을 그의 이론적 토대로 삼고 있다. 물론 북친은 근대 문명을 이끈 ‘이성’을 ‘관습적 이성, 도구적 이성’이라고 분류하면서 이것과는 차별된 이성으로서 ‘변증법적 이성’을 제시한다. 하지만 북친이 주장한 ‘변증법적 이성’도 인간중심주의적인 관점에서의 해석으로서 큰 범주로 보면 ‘이성’에 대한 강한 긍정에서 출발한 관점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서구의 실체론적 존재론에 근거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더욱이 관계관은 이원론적인 세계관에 토대하고 있다. 이원론적인 세계관은 생명과 존재의 특징을 실체로서 규정하게 한다. 즉 세상 모든 존재가 그 존재로서 의미를 가지게 하는 어떤 ‘실체’가 있다는 것으로서 인간을 비유로 들자면 인간에게는 실체로서의 ‘이성적 자아’가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실체론적 생명관은 자신의 실체가 불변하며, 다른 어떤 것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고 독립적이며, 다른 것과 나눌 수 없는 최소한의 어떤 고유한 성질을 스스로 내포하는 그런 모습을 말한다(김종덕, 2002: 43). 그런데 북친에게서 변증법적 이성이라 함은 자연과 인간의 상보성의 원리를 파악하게 하는 것으로서, 이를 통해 인간은 자연에 대해 창조적 역할, 자연의 유지와 발전에 기여하는 역할, 그리고 건강한 자연 상태의 가치를 적극 인정하게(북친, 2012: 20) 하는 인간이 지닌 실체론적 사실인 것이다. 따라서 북친의 주장은 이성적 인간이라는 실체론적 존재라는 큰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므로 그가 비판하고자 했던 이전의 근대철학의 내용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반면에 연기적 관계에서의 존재는 변하지 않는 실체를 거부하고 환경과의 끊임없는 상호관계를 통해서 변화의 가능성을 지닌다. 따라서 생태계에서의 생명은 어떤 고정된 특징을 지닌 실체가 아니라 여러 존재가 서로 의존적으로 관계하여 생성된 것이다. 이성을 지닌 ‘인간’ 역시 이성만으로서 대표될 수 없는 생명체이다. 그러므로 북친이 제시하는 ‘변증법적 이성’은 연기적 관계에서 포착된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는 인식론 상에서의 합리성을 구현해 내는 역할의 기능을 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그 자체가 문제의 해결책으로 제시될 수는 없다. 이는 자연생태와 인간생태를 동등한 입장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인간중심주의적 발상의 연속이라고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북친은 사회생태론을 설명할 때 동양철학을 서양철학과 비교하면서 비판을 가했다. 그는 동양철학에서 보이는 유기체적 세계관과 자연주의적 가치관이 정적인 우주형이상학이며 반과학주의라고 비판했다. 따라서 서구의 아리스토텔레스나 헤겔에서 볼 수 있는 유기체적 전통이 동양의 전통보다 오늘의 환경위기를 더 건강하게 대처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고대로부터 근대까지 관통하는 서구의 이원론적인 세계관과 그로 상정되는 실체론적 존재관은 인간과 사회의 상보적 관계를 설명하는 데 있어서 부분만을 보게 할 뿐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원인으로 작용하는 생태문제에 대한 진단에는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따라서 북친이 간과한 자연생태와 연결된 사회생태와의 근원적인 문제점들은 연기적 관계론을 통해서 새롭게 분석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둘째, 북친이 주장한 내용의 또 다른 한계점은 사회생태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을 사회적 관계 방식에서의 ‘지배’와 ‘사회적 위계구조’로 든 점을 들 수 있다. 그가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관계 방식에 대한 고찰로 생태위기를 다뤄야 한다는 주장은 심층생태학자들이 갖는 한계를 넘어서서 자연과 인간의 방식을 확대했다는 측면에서는 의의가 크다. 실제로 사회생태의 문제가 자연생태에 영향을 미친 것은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근대가 시작된 이래 짧은 시간동안 급격히 변한 기후와 변종 바이러스 수의 확대 및 영향력의 정도를 보더라도 인간들의 삶의 방식이 자연생태와 긴밀한 관련이 있음은 자명하다. 따라서 사회생태를 이루는 개인의 삶의 방식에서 사회적 체계들이 유지되는 관계의 성격을 다층적으로 분석하는 것은 현재의 관점에서 당연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친이 사회적 관계에서의 ‘위계구조’와 ‘지배’가 자연생태까지 절대적으로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은 생태문제의 근원적인 원인을 비켜간 채 일면만을 본 것이라 할 수 있다. 북친은 사회적 관계 내에서 작용하는 ‘지배’가 자연에 대한 ‘지배’로 이어진다고 주장하며, 이러한 기존의 관념이 ‘상보성’이라는 원리로 전환되지 않을 때는 생태문제도 해결되지 않는다고 봤다(북친, 1997).

북친은 생태파괴의 대부분은 그 핵심에 경제적 갈등, 인종적, 문화적, 성적 갈등이 자리 잡고 있다고 했다. 이러한 점은 마르크스가 자본주의의 모순을 분석한 틀이 확대된 것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마르크스가 자본주의의 모순을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의 불평등 구조에서 찾고자 한 것과 같이 북친도 역시 생태문제를 인간과 자연의 이원론적인 관계에서 해석하고 해결방안을 제시하고자 한 것이다. 이러한 점이 마르크스의 계급 관계론과 크게 다르지 않은 분석이다.

북친은 사회의 위계구조와 지배의 역사적, 인류학적, 사회적 근원에 대한 연구를 진행함으로써 인간의 자연에 대한 지배를 분석했다. 북친이 스스로 사회주의나 아나키즘이론을 넘어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마르크스의 대립적 구조를 그대로 차용한 마르크시스트였고 아나키스트라고 할 수 있다. 그가 생태문제를 해결하는 방법 제시에서도 사회적 근원에 맞서 싸우는 집단행동과 사회운동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점은 이를 잘 보여준다. 따라서 북친이 사회적 위계구조와 지배적 구조를 창출하는 사회적 제도를 폐지함으로써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고 나아가 자연에 대한 지배적인 인간의 모습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관점은 비약이 크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비판에 대해 북친은 자신이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상호작용에서 봐야 한다는 유기체적인 관점을 제기했다고 주장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가 생태문제를 분석하고 해결방안을 제시해 나가는 관점에서는 유기체적인 입장이 아니라는 지적을 피해갈 수는 없을 것이다.

북친의 주장과 같이 자연생태는 인간이 만든 사회생태와의 끊임없는 상호작용 속에서 그 모습이 변화되어 간다. 사회생태의 모습도 마찬가지로 자연생태 변화의 흐름에 따라서 절대적인 영향을 받게 된다. 이는 지금 현실에서 겪고 있고 코로나 팬데믹 상황을 통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사회생태와 자연생태와의 상호작용에 따라 변화되는 과정에서 문제로 작용하는 부분을 다층적으로 접근하여 그 근원을 분석해 들어가야 한다. 북친은 그것을 사회적 위계구조와 지배에서 봤지만, 필자가 보건대 그가 제시한 위계구조와 지배의 문제가 사회에서 해결된다고 하여 사회생태와 자연생태의 문제점이 해결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마르크스가 노동자혁명을 통해 새로운 사회가 출현할 것이며 더불어 평등한 사회가 이뤄질 것이라고 예견했지만 역사는 이것이 해답이 아님을 증명했다. 따라서 북친의 주장 역시 현재의 사회생태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근원적인 진단으로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북친의 주장에서도 보였듯이 자연생태와 사회생태가 긴밀한 상호작용으로 자신의 환경을 창출하고 변화시켜간다면, 사회의 변화는 한 가지의 주된 원인에서가 아니라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원인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므로 단선적이며 일면의 현상에 주목하여 분석해서는 안 된다. 여기에서 주목하게 되는 부분이 불교의 연기론이다. 불교의 연기론은 단선적인 흐름에서 진단되는 한계를 넘어서게 하는 관계론이다.

연기론은 최근에 과학계서 활발히 진행되는 복잡계(complex system)이론과 유사하다(윤종갑, 2008: 95). 복잡계에서는 물질세계가 활동과 과정으로 존재하며 모든 사물과 현상은 서로 연관된 동적인 세계로서, 각각의 존재는 다른 존재를 자신에게 품으면서 상호작용하는 연기적 존재이다. 각각의 존재는 자신을 끊임없이 재창출함으로써 환경을 변화시키고, 동시에 환경의 변화를 통해서 자신을 변화시켜 나간다. 이러한 끊임없는 상호작용으로서의 과정이 복잡계 과학에서 설명하는 핵심 내용이다. 불교의 연기적 관계론 역시 이 부분에서 맥이 닿는다. 사회생태와 자연생태와의 상호작용은 인간 개인의 삶을 형성하는 제반 내용, 사회체계의 유지와 변동의 과정 및 사회적 체계를 유지하는 성격에 대한 분석이 다층적으로 이뤄질 때 진면목이 파악될 수 있을 것이다. 북친이 지적했던 사회의 위계구조와 지배 역시 불교의 연기적 관점으로 재해석될 수 있는 부분이다.

12연기에서는 세상의 ‘고(苦)’가 ‘무명(無明)’에서 출발한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사회생태의 근원적인 문제점을 발생시키는 무명은 한 가지 원인을 통해서 발생된 것이 아니라 두 가지 이상의 원인의 인연조합을 통해 발생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는 개인을 삶을 비롯하여 사회 체계 전반에서의 모순과 오류들을 관찰하여 분석해야만 한다. 따라서 불교의 연기적 관계관은 북친의 사회생태가 지닌 한계점을 포섭하여 복합적인 상호관계를 분석하는 이론적 토대가 될 수 있다.

Ⅴ. 나오며

생태학의 전개에서 머레이 북친의 업적은 자연생태의 문제를 사회생태와의 상호관계로 눈을 돌리게 한 데 있다. 그는 자연생태의 문제가 사회생태의 위계구조와 그 속에서의 다양한 유형의 ‘지배’가 인간의 자연 지배로 이어진 데에서 찾았다. 따라서 사회적 위계구조를 해체하고 생태적 방향으로서의 사회적 재구성을 촉구하는 운동을 제시했다. 따라서 북친의 사회생태론은 인간의 정신적 혁명을 통해 자연생태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던 심층생태학자들의 한계를 넘어서 생태학의 범위를 확장했다. 이처럼 북친의 관점이 생태학의 범위를 넓혀 자연과 사회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는 중요한 시사점은 던졌지만, 그의 사회생태학은 마르크시즘에 대한 수정이론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북친은 자연생태와 사회생태의 위계적 구조와 그 속에 내재한 ‘지배’를 없애기 위해서는 ‘변증법적 이성’을 통해 자연과 사회의 유기적 상호작용을 통찰해야 함을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은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힘들다. 북친이 ‘변증법적 이성’을 근대문명을 이끈 ‘도구적·관습적 이성’과 차별시키고 있지만 세상만물을 실체론적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점과 이원론적인 세계관에 토대하고 있는 점은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인간 이성이 세상 만물의 상호관계에서 포착되는 현상들과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는 인식상에서의 합리성을 구현해내는 데는 그 역할을 할 수 있을지라도, 변증법적 이성 자체를 문제의 해결책으로 제시하는 것과 ‘지배’가 내재한 사회의 위계적 구조를 재구성해야 한다는 주장은 이전의 마르크스주의에서 보이는 논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북친이 그의 연구 곳곳에서 인간과 자연에 대한 이원론적인 시각을 벗어나야 한다는 주장을 하곤 있지만 실제는 그것을 넘어서지 못했다. 이를 위해서는 그가 생태문제의 진단과 이를 해결하는 방법들이 토대하는 세계관과 관계관을 다른 곳에서 찾았어야 했다.

필자는 사회생태론의 세계관과 관계관의 토대가 될 수 있는 관점이 불교의 연기관이라고 본다. 연기적 관계에서의 존재는 변하지 않는 실체성을 거부하고 환경과의 끊임없는 상호관계를 통해서 존재의 변화 가능성을 보여준다. 생태계에서의 인간을 비롯한 모든 존재의 생명은 어떤 특징을 지닌 실체가 아니라 여러 존재가 서로 의존적으로 관계하여 생성된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 역시 이성을 인간의 고유한 실체성으로 내세울 수 없는 생명체이다.

불교의 연기적 관계관은 자연생태의 문제와 사회생태와의 관계에서 어느 특정 원인의 단선적 흐름만을 진단하는 한계를 넘어서게 한다. 인간 개인의 의식을 비롯하여 삶의 전방위적 관찰, 또한 그와 연결된 사회와의 연결지점에서 작동하는 무명으로서의 원리를 찾게 하는 관계관이 연기적 관계관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사회생태론은 이러한 연기적 관계관에서 새롭게 체계화되어야 할 것이다.

Notes

박이문은 동양적 세계관이 일원적이고 순환적인 형이상학이며 자연 중심적이고 유기적인 자연관이라 보면서 불교와 도교, 유교로 대표되는 동양의 전통사상은 생태학적 세계관의 모델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박이문, 1997).

“죽음은 자기존재의 끝이 아니라 그 인과응보의 다른 국면일 뿐이다. 현재에서 나의 존재(個我)가 어떻게 존재하느냐 하는 것은 과거에 그가 행한 결과로부터 유래하며 현재 그가 하는 행동은 후세에 자기가 어떻게 있을까를 또한 결정하게 된다.”(풍우란, 1989: 305-306)

생태주의를 유교사상의 철학과 연결하여 생태담론의 가능성을 시도한 최초의 연구가 미국에서 출판된 Confucianism and Ecology(M. E. Tucker & J. Berthrong (eds.), 1998)이다. 이후 국내·외의 학자들은 유교사상을 생태문제에 대한 진단과 해결의 실천적 가치와 이념들에 관해 연구하기 시작했다.

「동양철학의 인간중심적 환경윤리」(전병술, 2003), 「동아시아 생태담론에 대한 비판적 검토-유학사상을 중심으로」(홍원식, 2007), 「자연생태계의 조화와 인간 책임론-유가철학을 중심으로」(황갑연, 2003) 등의 연구는 도덕적 실천의 인간에 주안을 둔 유교의 관점에서 환경문제와의 관계를 연구하였으며, 『미래세대와 생태윤리』(2007), 「주자의 공동체적 생태 윤리」(이승환, 2006), 「환경윤리 가치이론에 대한 유교적 해석」(최일범, 2007) 등은 만물의 평등성을 강조하며 논지를 전개한다. 인간의 도덕적 실천에 주안을 두면서 인간중심주의적 입장을 편 학자군과 만물의 평등성을 강조한 학자군의 입장을 종합하여 김세정(2008)은 「유가 생태담론을 통해 본 유가생태윤리」를 유가생태철학으로 전개한다. 그는 유교가 생태중심과 인간중심의 양극단을 아우르는 중간적인 입장의 철학이 될 수 있음을 주장하였으며, 그 근거를 ‘생생불식’의 유기체적 자연관, ‘천지만물의 중추적 인간관’과 ‘친민의 생태론적 실천관’으로 들었다. 나아가 이러한 특징들이 양극단의 입장이 지닌 폐단을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환경·생태윤리가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불교의 연기관에 대한 과학적 해석에 대한 연구들은 「법계연기에 대한 과학적 해석」(양형진, 2016), 「실재성에 대한 불교와 과학의 관점」(김성구, 2012), 「불교의 연기론적 생명관」(윤종갑, 2008) 등이 있다.

‘리버테리언 지방자치(libertarian municipalism)’는 지자체들이 자치권을 갖되 연방회의의 연결망을 통해 공조하는 체제를 말한다. 지자체는 지자체들 사이의 의견을 조정하기 위해 연방회의에 대표를 파견하며 위임되어 파견된 대표들은 언제든 소환이 가능하다. 모든 결정은 연방 산하 읍과 시민회의지지 여부로 비준된다. 이런 절차는 작은 읍 단위 도시들의 네트워크뿐만 아니라 거대 도시 내의 지역주민들 사이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다(북친, 2012: 63-64).

『中阿含經』, 「상적유경」, 동국역경원.

『雜阿含經』, 동국역경원.

“不生亦不滅,不常亦不斷,不一亦不異,不來亦不出. 能說是因緣,善滅諸戲論,我稽首禮佛,諸說中第一.” 『중론』 1권(ABC, K0577 v16, 350b17-b18), 동국역경원.

용수는 불생불멸, 불거불래, 불일불이, 불상불단이라는 상반되는 상이한 개념들의 4개조를 통해 당시 유부들이 주장했던 실체론을 비판한다. 즉 유자성인 사물의 생멸거래(生滅去來)와 일이단상(一異斷常)이 논리적으로 모순되었음을 밝힌다. 나아가 무자성과 공성을 밝힘으로써 일체법의 진실을 더욱 분명하게 증명한다.

“연기인 것, 그것을 공성(空性)이라고 우리들은 부른다. 그것은 가명(假名)이며, 그것이야말로 중도(中道)이다.”

『중송』 제24장 18송의 위 내용에서 연기는 공성이며, 가명이자, 중도라고 했다. 즉 “연기=공성=가명=중도”라는 등식이 세워진다. 용수가 연기가 공성이라고 한 것은 앞서 언급했던 연기인 일체법이 인(因)과 연(緣)에 의존하여 발생한 것이므로 자성을 가지지 않기 때문이다.

“여러 인연으로 발생한 법을 나는 공이라고 한다. 여러 연이 갖추어지고 화합해서 사물이 발생한다. 그 사물은 여러 인연에 속하기 때문에 무자성이다. 또한 무자성이기 때문에 공이고, 공도 또한 공이다. 다만 중생을 인도하기 위하여, 가명으로 설한 것이기 때문이다. 존재와 비존재의 양 극단을 떠났기 때문에 중도(中道)라고 부른다.” 이는 위 18송에 대한 청목의 주석으로서 ‘연기=공성=가명=중도’를 명확하게 이해하게 한다. 상호 의존하여 생기는 모든 것들은 상호의존적 성격으로서 자성을 가지지 않으므로 공성이며, 이러한 공성은 중생을 교화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가명이며, 존재하지도 않으며 존재하지도 않는 특성으로 중도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사법계는 현상 세계를, 이법계는 우주의 본체를, 이사무애법계는 현상계와 본체계가 둘이 아닌 세계, 사사무애법계는 모든 현상 그 자체가 상입상즉하여 융섭하는 세계로 간략히 설명할 수 있다.

『샹윳다 니까야(Saṃyutta-Nikāya)』 12, 20.

2020년 2학기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대학원 김종욱 교수님의 「불교와 철학연구」 수업 자료 참고.

참고문헌

1.

『雜阿含經』(동국대역경원).

2.

『中阿含經』(동국대역경원).

3.

『中論』(동국대역경원).

4.

김종덕. 2002. “생물학적 정체성.” 『줄기 세포연구와 생명윤리』 봄철 학술대회 자료집. 서울: 한국생명윤리학회.

5.

김종욱. 2006. 『불교생태철학』. 동국대학교출판부.

6.

김종욱. 2021. “불교와 철학 특강 수업 자료집.”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대학원 수업 자료.

7.

남수영. 2012. “용수의 연기설 재검토 및 중도적 이해.” 『불교학연구』 32: 129-196.

8.

머레이 북친(Murray Bookchin). 1997. 『사회생태론의 철학』. 문순홍 역. 서울: 솔출판사.

9.

머레이 북친(Murray Bookchin). 2012. 『머레이 북친의 사회적 생태론과 코뮌주의』. 서유석 옮김. 메이데이.

10.

문순홍. 2002. “서구 생태 패러다임의 등장과 그 분화.” 『과학사상』. 범양사.

11.

박이문. 1997. 『문명의 미래와 생태학적 세계관』. 당대.

12.

울리히 벡(Ulrich Beck). 1997. 『위험사회: 새로운 근대(성)을 향하여』. 홍성태 옮김. 새물결.

13.

에른스트 울리히 폰 바이츠체커. 1999. 『환경의 세기』. 권정임 · 박진희 옮김. 서울: 생각의 나무.

14.

윤종갑. 2008. “불교의 연기론적 생명관: 실체에서 관계로, 관계에서 생성으로.” 『한국정신과학회 학술대회논문집』 28: 89-99.

15.

이상헌. 2011. 『생태주의』. 책세상.

16.

J. R. 데자르뎅. 1999. 『환경윤리:이론과 쟁점』. 김명식 옮김. 자작나무.

17.

프리초프 카프라(Fritjof Capra). 1998. 『생명의 그물』. 김용정 역. 서울: 범양사출판사.

18.

풍우란. 1989. 『중국철학사』. 형설출판사.

19.

홍원식. 2013. Ecology and Korean Confunism. 계명대학교 한국학연구원 편. Keimyung University Press.

20.

Arne, N. 1987. Ecology, Community and Lifestyle.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