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문제 제기
21세기 한국 사회는 유례없이 빠른 속도의 탈종교화 현상을 맞이하고 있다. 종교가 개인과 사회에 미치던 영향력은 점차 줄어들고 있으며, 모든 종교는 종교 인구 감소라는 공통의 위기를 직면하고 있다. 이러한 거시적 변화 속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지점은 바로 미래 세대인 20대 이하 젊은 층의 종교 지형이다. 각종 통계 지표는 젊은 세대의 종교 무관심이 심각한 수준임을 보여주며, 이는 각 종교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전반적으로 가파른 종교 인구 감소 추세를 확인할 수 있지만, 세부적인 양상은 종교별로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특히 20대 이하 청년과 청소년 인구를 비교했을 때, 불교 인구가 개신교 인구에 비해 현저히 낮은 비율을 차지하는 현상은 불교계가 당면한 위기의 심각성을 더욱 명확하게 보여준다. 불교의 오랜 역사와 문화적 저변에도 불구하고, 왜 유독 젊은 세대에게 그 영향력을 상실하고 있는가?
이와 같은 차이를 유발하는 원인은 다양하게 존재하겠지만, 그 핵심에 개신교 특유의 신앙 전수 시스템인 모태신앙(母胎信仰) 문화가 자리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이 이 논문의 출발점이다. 모태신앙은 가족을 매개로 한 강력한 초기 종교 사회화 기제로서, 개인의 자발적 선택 이전에 신앙의 ‘초기 진입 장벽’을 낮추고, 공동체 소속감을 부여하는 역할을 해왔다. 반면, 불교는 주로 개인의 자발적 관심이나 성인기 이후의 입문을 통해 신자를 확보해 왔다는 점에서 기독교와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이 시스템의 유무가 장기적으로 젊은 세대의 종교 인구 격차를 만든 핵심 변수일 수 있다는 것이 본 연구의 기본 가설이다.
따라서 본 연구는 젊은 세대의 종교 선택과 모태신앙 문화의 상관성을 검토하고자 한다.1) 다만 모태신앙 문화를 맹목적인 성공 모델로 상정하여 불교가 이를 그대로 답습해야 한다는 주장은 지양하고자 한다. 오히려 모태신앙 문화를 비판적 관점에서 다각적으로 검토할 것이다. 모태신앙이 가진 순기능과 그 이면에 가려진 역기능을 심층적으로 분석함으로써, 그 명암을 객관적으로 조명할 것이다. 이 비판적 고찰의 과정을 통해 불교가 단순히 외형적 시스템을 모방하는 것을 넘어, 불교 고유의 정신과 가치를 지키면서도 다음 세대와 효과적으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창의적이고 지속 가능한 대안을 모색하는 것을 궁극적인 목적으로 삼는다.
이를 위해 제2장에서는 모태신앙의 개념을 정의하고, 종교사회학적 관점에서 그 의미를 살펴본다. 제3장에서는 모태신앙이 개인과 공동체에 미친 긍정적 영향과 함께, 신앙의 피상성, 청년 이탈, 공동체의 폐쇄성 등 부정적 결과를 비판적으로 고찰한다. 제4장에서는 앞선 분석을 바탕으로, 먼저 불교의 교리적 토대 위에서 모태신앙의 순기능을 창조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대안적 패러다임으로서 ‘법연신앙’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이어서 이를 바탕으로, 한국 불교가 당면한 세대 전승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구체적인 실천 방안들을 제안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결론에서는 전체 논의를 요약하고, 본 연구가 한국 불교의 미래를 위한 실천적 담론을 형성하는 데 기여할 수 있는 지점을 제시하며 마무리하고자 한다.
Ⅱ. 모태신앙의 정의와 의미
모태신앙은 말 그대로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가진 신앙’을 의미한다. 한국 개신교에서만 사용되는 독특한 개념으로 태어나면서부터 부모의 종교를 물려받아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신앙을 받아들이고, 성장한 경우를 이르는 표현이다(김윤정, 2022; 박진호, 2023). 유사한 개념으로 가톨릭에서 사용하는 ‘유아 세례’가 있다. 가톨릭의 유아 세례는 아직 하느님이나 신앙을 모르는 어린이에게 베푸는 세례를 의미한다. 대체로 아이가 태어난 후 몇 주 이내에 거행하도록 규정되어 있는(교황청 경신성성, 2010)2) 유아 세례는 스스로 신앙을 고백하지 못하는 나이의 아이를 대신하여 부모와 대부, 대모가 신앙고백을 한 다음, 아이에게 주는 세례이다. 유아 세례의 목적은 아이에게 자연스럽게 교회의 일원으로 살아가게 하고, 성장하면서 신앙교육과 세례를 받아 자신의 신앙을 인정하게 하는 것이다. 모태신앙이나 유아 세례는 모두 가족이라는 공동체 내에서 부모에게 종교를 물려받는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한국 개신교 고유의 모태신앙 문화는 어떻게 형성되었을까? 이와 관련하여 그 연원을 명확히 밝히는 논거를 찾기는 쉽지 않다.3) 박진호는 오히려 모태신앙이 기독교 신학적 측면에서 성립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박진호, 2023).
모태신앙이라는 용어는 어머니 배에 잉태되어 있을 때부터 신앙을 가졌다는 의미가 되므로 성경적으로 틀린 말입니다. 성경은 오히려 그 반대라고 말합니다.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시51:5) 부모가 죄인이라거나, 임신이 악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모든 인간은 원죄 아래에서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으로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아담의 타락으로 인해 하나님과 단절이 된 상태로 영적으로는 죽어 있는 셈입니다. 엄마의 태에서부터 구원받거나, 믿음을 가질 수 있다는 법은 절대로 없습니다(박진호, 2023).
박진호는 이삭의 아내가 잉태한 쌍둥이 가운데 동생 야곱만 구원받았다는 창세기의 내용을 인용하면서 엄마가 믿어서 자녀가 구원을 받는다면 쌍둥이 모두가 구원받아야 한다는 점을 지적함으로써 모태신앙이 신학적 근거가 부족함을 주장한다. 그러면서 모태신앙이라는 개념의 사용이 한국 개신교의 관습이라고 언급한다.
모태신앙’(母胎信仰)이라는 말은 성경에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한국 교회에서만 사용하는 용어입니다. 부모를 따라 어려서부터 교회에 성실히 출석해 온 신자들은 대체로 그 삶이 선하고 교회에서도 믿음 생활을 성실히 행합니다. 성인이 되어서 이런저런 이유로 믿음을 갖게 된, 특별히 문제나 고난을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해결하려는 신자와는 결이 다릅니다. 그런 신자들을 존중해 주고 목양의 편의상 모태신앙이라고 따로 구분해서 부르는 것입니다(박진호, 2023).
일종의 한국적 관용어인 모태신앙이라는 용어가 사용되는 맥락은 부모 세대에서 자녀 세대로 종교가 전승되는 상황을 표현할 때이다. 자녀가 회심이라고 일컫는 특별한 종교적 체험 없이 부모나 가족들과의 일상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신앙을 받아들인 상태임을 드러낼 때 모태신앙이라는 말을 쓴다. 개신교 공동체 내에서는 ‘신앙의 대물림’이나 ‘믿음의 유산’이라는 표현도 유사한 용례로 사용된다.4) 그 표현이 모태신앙이든, 신앙의 대물림이든, 혹은 믿음의 유산이든 간에 핵심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세대 간 종교 전승을 가리키고 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즉, 가족 내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세대 간 종교 전승을 지칭하는 한국적 관용어가 모태신앙이다.
다음의 인용문들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개신교 신학 내에서 가족은 종교 교육의 핵심 요소로 여겨진다.
가정을 교회의 일부분이라 할 만큼 칼뱅은 가정의 신앙 공동체성을 강조하면서 “어린 자녀를 신앙으로 양육하고 교육할 의무와 책임을 하나님께서 부모에게 부여하셨다’고 말했다. 마틴 루터는 “부모는 교회의 목사보다 우선하여 자녀를 가르쳐야 하고 또 가르칠 수 있는 권위가 부여되어 있다. 만일 가정의 부모가 교육적 책임을 감당 못 할 때 교회와 학교가 이를 보충해 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독교 가정이 ‘축소된 교회’라면 교회는 확대된 가정’으로서 상호 간에 유기적인 통일성을 지닌다(고용수, 2012: 4-5).
부쉬넬은 “어린이는 가정의 대기를 숨 쉬며 부모의 눈을 통해 세상을 본다. 부모의 목표가 어린이의 목표가 되며, 그들의 삶과 영이 어린이의 모습을 만든다.”라고 주장하여, 기독교 가정이야말로 언약공동체로서 중요한 교육의 장이 되며, 부모는 어린이의 영적 성숙에 있어 중요한 교사가 된다는 사실을 학문적으로 제기하고 있다(김광률, 2008: 220).
“부모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일을 통해 자녀를 제자로 양육해야(김광률, 2008: 230)” 하고, ‘교회의 축소판이 가족이고, 가족의 확장판이 교회’라는 인식은 종교 전승 과정에서 부모와 가족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포교, 선교, 전법, 전도 등 다양한 개념으로 표현되는 종교 전승은 종교 공동체의 영속성을 확보하고, 교세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필수적인 요소이다. 종교사회학은 이와 관련한 논의를 ‘종교적 사회화’라는 맥락 속에서 다루고 있다. 사회화는 개인이 자신이 속한 사회의 가치와 규범을 학습하고 내면화함으로써 그 사회의 구성원이 되어가는 과정이다. 따라서 종교적 사회화는 종교에 대해 알지 못하는 개인이 종교적 신념, 가치, 관행 등을 전달받아 특정 종교 공동체의 신도가 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원규는 이러한 종교적 사회화의 주요 통로로 교육 체계, 종교 집단 내 인간관계, 가족, 친지, 대중매체 등을 들고 있다(이원규, 2019: 319-323).
가족과 종교적 사회화의 관련성에 대한 이원규의 논의를 다음 인용문들을 통해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자.
가족은 종교적 사회화가 이루어지는 가장 강력한 매체가 될 뿐만 아니라 … 종교 제도의 한 근본적 단위가 된다(이원규, 2019: 609).
특히 자녀들에 대한 부모의 종교적 사회화가 중요하다 … 부모가 새로운 세대에 종교 문화를 전하는 것은 부모 세대의 종교적 책임의 하나인 것이다. … 가족은 종교적 가르침이 공식적으로나 비공식적으로 이루어지는 중심적 통로가 된다. 아이들은 흔히 가족 안에서 종교적 가치에 처음 접촉하게 된다. 아이들의 종교적 사회화가 처음 이루어지는 곳은 가족이다. 그리하여 특정 종교 집단의 성공이나 실패는 일반적으로 아이들에게 가정 안에서 종교적 개념을 가르치는 데서의 가족 멤버의 효과에 크게 달려 있다(이원규, 2019: 617).
부모의 태도는 자녀의 종교적 태도 형성에서 가장 중요한 요인들 가운데 하나이다. … 부모와 자녀 사이의 관계가 친밀할 때에 자녀는 부모의 종교적 태도를 닮을 가능성이 많다. … 자녀들이 부모와 함께 집에 거주할 때 그들은 부모의 종교성을 더 닮는다. 즉, 집을 떠나 있는 젊은이들은 종교성을 상실할 가능성이 많다. … 이와 같이 자녀에 미치는 부모의 종교적 영향은 매우 크며, 종교에서는 가족 안에서의 종교적 사회화가 매우 중요하다(이원규, 2019: 618).
결론적으로, 종교사회학적 관점에서 볼 때 부모 세대의 종교 교육을 통해 자녀 세대로 이어지는 종교의 세대 간 전승은 종교 집단의 성패에 핵심적 역할을 한다. 바로 이러한 현상을 가리키는 한국적 관용어가 ‘모태신앙’인 것이다. 따라서 모태신앙은 그 자체의 신학적 근거는 부족할지라도, 종교 교육의 장(場)으로서 가정을 강조하는 신학적 관점 및 ‘종교적 사회화’의 핵심 단위로서 가족을 보는 사회학적 논의와 깊이 연결된다. 결국 이 용어는 그 자체의 타당성 논란과 별개로, 종교 공동체의 지속과 성패가 가족이라는 기초 단위의 종교적 사회화 기능에 깊이 의존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라 할 수 있다.
Ⅲ. 모태신앙의 두 얼굴과 실천적 과제
모태신앙의 강조는 가족 공동체를 통해 안정적으로 신앙을 전수하고, 종교적 연속성을 확보하는 기반이 됨으로써 한국 교회의 양적 성장을 견인하는 중심축이 되어 왔다. 그러나 개인의 주체적인 결단과 회심을 중요시하는 개신교의 신념 체계 안에서, 자녀가 자유의지와 무관하게 타율적으로 종교적 정체성을 부여받는다는 점은 심각한 신학적 딜레마를 낳을 뿐 아니라, 신앙의 피상성이나 청년층의 이탈과 같은 실천적 문제들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에 이 장에서는 모태신앙이 낳은 명암을 비교 분석하고,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개신교 내부에서 모색된 목회적, 교육적 대안들을 검토하고자 한다.
모태신앙은 개인의 성장, 가정 내 신앙 전수, 그리고 교회 공동체의 유지라는 세 가지 차원에서 한국 개신교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할 수 있다. 즉, 모태신앙은 개인의 심리적 기반과 도덕적 가치관을 형성하고, 가족 내 종교적 사회화를 통해 교회의 제도적 연속성을 보장하는 핵심 동력으로 작용했다고 보아야 한다. 이는 모태신앙이 단순한 신앙적 배경을 넘어, 한 개인과 공동체를 형성하는 강력한 사회화 과정임을 보여준다.
모태신앙은 견고한 신앙적 토대를 구축함으로써 도덕적, 정서적, 심리적 안정을 제공하고,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강한 결속력을 갖게 한다(김광률, 2008; 고용수, 2012; 신승범, 2013).
이는 어린 시절부터 가정과 교회를 통해 신앙을 자연스럽게 체득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예배 참석, 기도, 성경 읽기와 같은 신앙 습관이 몸에 배는 것은 물론, 비종교 가정의 자녀보다 해당 종교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 신앙생활에 쉽게 적응할 수 있다. 이렇게 형성된 신앙적 토대는 먼저 내면화된 도덕적 기준으로 자리 잡는다. 기독교 윤리가 삶의 위기나 윤리적 판단의 순간에 내면적 지침으로 작용하여, 외부의 감시가 없는 상황에서도 행동을 통제하고 선한 삶을 지향하도록 이끈다.
더불어 이는 심리적·정서적 안정감의 원천이 된다. 실패와 좌절의 순간에 기댈 수 있는 절대적 존재와 공동체가 있다는 사실은 역경을 이겨내는 회복탄력성을 길러준다. 나아가 개인은 교회의 언어, 문화, 관계에 대한 익숙함을 바탕으로 공동체에 깊이 뿌리내린 사회적으로 통합된 신앙을 형성하게 된다. 특히 목회자나 선교사의 자녀라는 배경은 공동체 내에서 일종의 사회적 자본으로 작용하여 긍정적 정체성을 강화하고, 이러한 사회적 인정은 다시 신앙 참여와 리더십 함양을 독려하는 강력한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이처럼 내면화된 도덕적 기준과 공동체와의 긍정적 상호작용이 만들어 내는 강한 소속감과 유대감은 개인을 공동체를 구성하는 일원으로 굳건히 자리하게 한다. 또한 모태신앙을 통해 형성된 윤리적 가치관은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공동체와 봉사의 가치를 내면화한 이들은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건강한 시민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목회데이터연구소에서 발표하는 여러 통계 자료들을 보면 개신교의 경우 가족이 종교가 전승되는 핵심적인 창구가 되고 있음이 명확히 드러난다. 특히 부모의 역할은 자녀의 신앙 형성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30-40대 개신교인 4명 중 3명(74%)이 부모의 손에 이끌려 신앙생활을 시작했으며(목회데이터연구소, 2022), 자녀의 신앙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인물은 ‘어머니’이고, 모태신앙 배경을 가진 응답자의 80%가 부모와 함께한 신앙 경험이 ‘신앙에 도움이 되었다’고 평가했으며, 그 가운데 70%는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신앙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목회데이터연구소, 2025a). 이는 부모가 자녀의 신앙 계승에 결정적인 변수로 작용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가족 내 종교적 사회화는 교리 교육을 통해서만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식사 또는 잠들기 전에 하는 기도, 가족 구성원에게 의미 있는 일이 생겼을 때 종교적 의미를 담은 축하와 감사 인사를 하는 것, 가정 예배 등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모든 활동이 종교적 사회화로 이어진다.
전도를 통한 신규 신자 유입이 정체되면서 한국 교회는 ‘가족 종교화’ 현상을 통해 교세를 유지하고 있고, 그 중심에 모태신앙이 있다(목회데이터연구소, 2020).
이러한 ‘가족종교화’는 교회가 더 이상 새로운 외부 개종자를 유입시키기보다 기존 신자의 자녀를 통해 인적 자원을 공급받는 경향이 커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각종 통계는 이러한 현실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전체 개신교인 중 ‘부모님의 영향/모태신앙’으로 신앙을 시작한 비율은 62%로 타 종교에 비해 월등히 높으며(목회데이터연구소, 2024), 특히 젊은 세대로 갈수록 그 비중은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60세 이상에서는 모태신앙 비율이 19%에 불과하지만, 30대와 20대는 54%, 중고생은 58%에 달한다(목회데이터연구소, 2025a). Z세대 크리스천의 경우 72%가 부모의 영향으로 신앙을 시작했으며(목회데이터연구소, 2025b), 신학대학원생의 70.7%가 모태신앙 출신(손동준, 2016)이라는 사실은 이들이 단순 신자 재생산을 넘어 미래 교회의 리더십까지 공급하는 핵심 통로임을 입증한다.
결과적으로 한국 교회의 생존 방식은 과거의 열정적 전도에서 기존 신자 가정의 ‘생물학적 재생산’으로 근본적인 변화를 맞았다. 이는 외부 환경 변화에 흔들리지 않는 안정적인 기반을 제공하는 순기능을 한다. 실제로 부모 모두가 개신교인인 가정의 자녀는 성인이 된 후 교회에 계속 출석할 의향(64%)이 부모가 비신자인 경우(36%)보다 월등히 높다(목회데이터연구소, 2021). 이처럼 모태신앙은 교회의 정체성을 계승하고, 다음 세대의 참여를 보장하며, 제도적 교회의 지속성을 담보하는 가장 중요한 기둥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동시에 한국 교회의 구조적 취약성을 드러낸다. 교회가 생존과 리더십 공급을 모태신앙이라는 내부 재생산에 과도하게 의존한다는 것은 외부 사회를 향한 복음 전파의 동력을 상실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교회의 지속성을 보장하는 바로 그 시스템이 역설적으로 교회를 외부 세계로부터 고립시키고, 신학적·문화적 정체를 유발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점은 한국 교회가 직면한 중요한 과제이다.
앞서 살펴본 순기능의 이면에는, 그 태생적 한계로 인해 개인과 공동체에 깊은 그늘을 드리우는 역기능이 존재한다. 주체적 결단이 부재한 ‘물려받은 믿음’은 개인에게 깊은 내적 갈등과 지적 회의를 안겨주며, ‘가나안 성도’ 현상을 촉발하는 핵심 원인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부작용도 존재한다.
모태신앙의 가장 보편적인 부작용은 개인의 주체적 결단에 의해 신앙 생활을 이어가는 것이 아니라, 타율적이고 습관적인 행위로 전락하는 것이다. 한 조사에 따르면, 모태신앙인 중 61%가 부모의 요구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신앙생활을 하게 된 것을 부정적 경험으로 꼽았다(목회데이터연구소, 2025a).
정재영에 따르면, 교회를 떠나는 가장 중요한 요인 중 하나는 ‘강요받는 신앙’에 대한 부담감이다. 수십 년간 교회에 출석했던 이들조차 신앙을 강요받는 경험을 매우 고통스러워 했다. 특히 ‘구원의 확신’을 끊임없이 확인하고 강요하는 교회의 태도는 ‘폭력적’으로 느껴져 불쾌감을 유발한다고 불만을 내비치기도 한다(정재영, 2015). 이러한 압박은 신앙을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로 발전시키지 못하고, 타인에게 증명해야 하는 종교적 수행으로 전락시켜 깊은 회의감과 자율성에 대한 갈망을 낳는다.
이렇게 개인에게 선택권이 주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어린 시절부터 종교 교육이 이루어지는 모태신앙은 세뇌라는 비판적 평가도 가능하다.
주입된 신앙은 개인적 확신의 부재로 이어져, 신앙이 피상적이거나 형식주의에 머무는 결과를 낳는다. 이 회의감의 근원에는 극적인 회심이나 인격적인 신앙 체험, 즉 ‘강력한 간증’의 부재가 자리 잡고 있다. 이들은 자신의 신앙이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2차적’ 신앙일 뿐, 스스로 쟁취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시달리며, 신앙생활에서 깊은 공허함을 느낀다(김광률, 2008; 정재영, 2015; 김호경, 2018; 박진호, 2023).
이러한 환경에서 형성된 신앙은 깊은 내적 확신보다 형식적인 종교 활동으로 이어지기 쉽다. 실제로 크리스천 청소년의 절반 이상(52%)이 하루 중 개인적인 신앙생활에 할애하는 시간이 5분 이내이거나 전무하며, 28%는 아예 신앙 활동을 하지 않는다고 답했다(목회데이터연구소, 2021). 이는 신앙이 삶의 중심이 아닌, 주말에 치르는 하나의 행사로 전락했음을 보여준다.
성장 과정에서 겪는 지적 갈등 또한 신앙적 회의를 증폭시킨다(장소망, 2018). 특히 자아가 형성되는 청소년기와 대학 시절에 이르면, 어릴 때부터 배워온 교리와 현대 사회의 합리적, 과학적 사고 사이에서 큰 괴리감을 느낀다. 진화생물학이나 지질학 등 경험적 증거를 바탕으로 자연현상을 설명하는 자연과학을 비판하는 창조과학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뇌하는 것은 흔한 사례다. 모태신앙인이 다수인 3040세대의 10명 중 4명이 현재 신앙적 회의를 겪고 있다고 응답했으며, 이들에게 신앙은 ‘마음의 평안을 주는 동시에 회의감을 들게 하는’ 모순적인 요소로 작용한다(목회데이터연구소, 2022).
모태신앙 중심의 문화는 공동체 내에 보이지 않는 벽을 만들기도 한다. ‘믿음의 가문’이라는 정체성이 강해지면서 기존 신자들 간의 결속이 강화되는 효과가 나타나지만, 외부인이나 새롭게 종교 생활을 시작한 신참자들은 모태신앙 문화에서 넘을 수 없는 벽과 소외감을 경험하게 된다.
목회데이터연구소(2025a)의 조사에 따르면, 가족 없이 혼자 신앙생활을 하는 교인 4명 중 1명(26%)이 ‘교회 내에서 소외감을 느낀다’고 응답했다. 소외를 느끼는 이유로는 ‘가족 중심의 설교나 행사’(33%)와 ‘가족 단위 참석자들을 볼 때’(40%)가 꼽혔다. 이는 공동체가 ‘그들만의 리그’처럼 느껴지게 만들어 새로운 신자의 정착을 어렵게 하고, 교회의 포용성과 확장성을 저해하는 심각한 폐쇄성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러한 수동성, 회의감, 부담감의 총체적인 결과가 바로 ‘가나안 성도’ 현상이다. ‘가나안’은 ‘안 나가’를 거꾸로 읽은 말로, 기독교 신앙은 있지만 제도 교회에는 출석하지 않는 이들을 지칭한다. 이는 단순히 개인 차원의 종교성 약화 현상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현대 사회의 개인주의, 탈권위주의, 탈제도화 경향이 종교 영역에 반영된 거시적인 사회 현상이다.
주목할 점은 가나안 청년의 대다수가 모태신앙 배경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2023)에 따르면, 가나안 청년의 44%가 모태신앙 출신이며, 이들 중 73%가 초등학교 이전에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이들의 교회 이탈은 주로 대학 재학 중(31%)이나 졸업 후(42%)에 집중적으로 발생하는데, 이는 부모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정체성을 형성하는 시기와 정확히 일치한다. 즉, 모태신앙에서 가나안 성도로 이어지는 통로가 형성된 것이다.
이들의 이탈은 신앙 자체의 포기라기보다는, 경직되고 권위적이며 소통이 부재한 제도 교회에 대한 거부 반응에 가깝다. 실제로 가나안 성도 중 90%는 기독교 신앙을 유지하고 싶어 한다. 정재영은 이들이 '소통의 단절'과 자유로운 질문이 허용되지 않는 교회 문화 때문에 떠난다고 분석했으며(정재영, 2015), 서도원은 이들이 더 지적으로 정직하고 윤리적으로 일관된 신앙을 실천하기 위해 대안적 공동체와 공론장을 찾고 있음을 보여준다(서도원, 2021). 이는 가나안 성도 현상을 단순한 ‘신앙의 실패’가 아니라, 더 진정성 있는 믿음을 찾기 위한 ‘새로운 형태의 종교적 탐구’로 재해석해야 할 필요성을 시사한다.
이 외에도 모태신앙 문화는 여러 역기능을 동반한다. 첫째, 율법주의와 정죄 의식이다. 신앙의 본질인 ‘은혜’에 대한 깊은 체험 없이 종교적 규율과 행위 중심으로 신앙생활이 이루어지면서 율법주의에 빠질 위험이 크다. 이는 자신과 타인의 신앙을 ‘행위’로 판단하고, 쉽게 정죄하는 태도로 이어진다. 둘째, 교회 지도층의 위선에 대한 민감성이다. 교리에 익숙한 모태신앙인들은 목회자의 언행 불일치, 교회 세습과 같은 비윤리적 문제, 재정 비리 등을 누구보다 민감하게 인지하며, 이는 신앙의 근간을 흔드는 심각한 인지 부조화를 일으킨다.
20세기 후반부터 급속히 진행된 탈종교화 추세 속에서 한국 개신교의 양적 성장을 견인했던 모태신앙 문화는 앞서 검토했던 여러 문제점을 드러내며 한계에 도달하고 있다. 따라서 모태신앙의 긍정적 잠재력을 되살리고,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대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할 필요가 있다. 한국 개신교계는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다음과 같은 다양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모태신앙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첫걸음은 가장 일차적인 종교적 사회화가 이루어지는 가정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그 핵심은 ‘강요’에서 ‘대화’로, ‘지시’에서 ‘삶으로 보여주기’로의 전환이다.
부모는 더 이상 신앙을 주입하는 교사가 아니라, 삶으로 신앙을 증언하는 모델이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개신교계는 부모를 신앙 교사로 세우는 ‘부모 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부모가 자녀의 신앙 교육이 교회의 책임만이 아님을 인지하고, 가정 예배나 신앙적 대화법을 통해 자신의 신앙을 진정성 있게 증언하고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주도록 돕는 것이다. 또한, 질문을 억압하는 권위적 태도를 버리고, 자녀가 신앙적 의심과 고민을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안전한 공간’으로서의 가정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신승범, 2013, 2016; 유화자, 2005; 정재영, 2015; 박상진 외, 2016).
가정의 변화는 반드시 교회의 체질 개선과 병행되어야 한다. 청년들이 머물고 싶어 하는 교회는 주체성, 공동체성, 실천성을 갖추어야 한다.
먼저 주체적 신앙을 위한 교육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 신앙을 ‘물려받는 것’에서 ‘스스로 선택하고 이해하는 것’으로 바꾸기 위해 지적·체험적 훈련을 강화해야 한다. 깊이 있는 본격적인 입교(세례) 교육을 실시하고, 신앙에 대한 회의적 질문에 논리적으로 답하도록 돕는 기독교 변증 교육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또한, 교사 중심의 주입식 교육에서 벗어나, 하브루타나 소그룹 토론과 같은 참여형 교육을 확대하고, 개인적 ‘신앙고백서’ 작성을 의무화하여 자신의 신앙을 스스로 정리하게 한다. 단기선교나 제자훈련과 같은 체험적 신앙 훈련 역시 머리로만 알던 신앙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장호광, 2020; 이정관, 2023; 김진영, 2023; 정현곤, 2020).
청년을 동등한 파트너로 세우는 교회 공동체로 만들어야 할 필요도 있다. 청년들을 수동적인 교육 대상이 아닌, 사역의 동등한 주체로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예산 편성, 프로그램 기획 등 교회의 핵심 의사결정 과정에 청년들을 적극적으로 참여시켜 주도권을 부여해야 한다(함영주·이현철, 2021).
교회가 진정한 공동체성을 회복하고, 관계적 훈련의 중추가 되어야 한다. ‘끼리끼리’ 문화를 극복하고, 새로운 사람이 정착할 수 있는 환대의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멘토링 시스템을 도입하여 세대 간의 벽을 허물어야 한다. 또한 대그룹 예배의 한계를 보완하는 소그룹(셀/목장) 사역을 강화하여 친밀한 교제와 지지를 경험하게 하며, 세대 통합 프로그램을 통해 신앙의 유산을 자연스럽게 전수한다. 개인별 맞춤형 심방 및 상담을 통해 모태신앙인이 겪는 특유의 고민을 돌보는 것 역시 중요하다(박재필, 2016; 고성휘, 2018; 민장배·이수환, 2021; 김춘근, 2024).
교회는 영성과 사회적 실천의 균형을 추구해야 한다. 요즘 청년들은 내적 영성 훈련과 더불어 교회가 정의와 봉사 등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를 기대한다. 청년들이 주도하여 지역사회를 섬기는 구체적인 봉사활동에 참여하게 함으로써 신앙이 이웃을 향한 섬김으로 나타나는 것임을 배우게 하는 균형 잡힌 접근이 필요하다(심민수, 2014).
세상은 정보통신기술의 발전 속에서 과거에 없던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탈종교화 추세 속에서 교회를 떠나는 젊은 세대 대부분이 디지털 원주민(digital native)임을 주목해야 한다. 이들이 교회에 머물 수 있도록 SNS를 비롯한 디지털 미디어를 적극 수용하고, 양질의 온라인 콘텐츠를 개발하고 보급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제도 교회를 떠난 가나안 성도를 위해 권위주의와 경직된 틀에서 벗어난 소그룹 네트워크나 특정 관심사를 공유하는 유연한 형태의 대안 공동체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정재영, 2015; 양희송, 2014).
가정과 개교회의 미시적 변화는 교회 전체의 구조적 문제, 즉 거시적 차원의 개혁을 통해 사회적 신뢰를 회복할 때 비로소 완성될 수 있다. ‘교회개혁실천연대’와 같은 시민 단체들은 교회 세습 방지, 재정 투명성 확보 등 한국 교회의 자정을 촉구하며, 공공성 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공정성과 진정성에 민감한 젊은 세대들은 교회가 세습, 재정 비리 등 스스로의 잘못을 어떻게 바로잡는지 지켜보고 있다. 제도 개혁을 통한 신뢰 회복은 모든 대안의 가장 근본적인 전제 조건이 될 것이다.
Ⅳ. 모태신앙의 타산지석: ‘불교적 모태신앙’의 가능성과 과제
앞에서 한국 개신교의 모태신앙이 공동체의 안정적 유지와 재생산에 기여한 핵심 동력이었지만, 동시에 신앙의 피상성과 공동체의 폐쇄성이라는 심각한 한계를 낳은 양날의 검이었음을 살펴보았다. 유사한 세대 단절의 위기에 직면한 한국 불교의 입장에서 이는 중요한 타산지석이 된다. 이 장에서는 모태신앙 사례를 비판적으로 벤치마킹하여 한국 불교의 지속 가능성을 위한 대안을 모색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먼저 불교의 교리와 경전 속에서 모태신앙을 이해할 수 있는 근거들을 검토할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불교의 정체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그 순기능을 창조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불교적 모태신앙’의 가능성을 타진하고, 나아가 현재 불교계의 위기 극복을 위한 구체적인 실천 방안들을 제시하고자 한다.
모태신앙이라는 개념을 불교적으로 수용하기에 앞서, 불교에서는 믿음의 문제에 어떻게 접근하는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불교는 부모나 스승, 경전의 권위에 맹목적으로 의존하지 말라고 권고한다는 점에서 세습적 신앙과 일정한 거리를 둔다.
이와 관련된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칼라마 경(Kālāma Sutta)이다. 이 경전에서 붓다는 진리를 판단하는 것에 있어서 전승, 경전, 논리, 권위 등 그 어떤 외부적 근거에도 의존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대신, 경험과 관찰을 통해 그 가르침이 유익하고 지혜로우며, 탐욕·성냄·어리석음을 소멸시키는지를 ‘스스로 알게 될 때’ 받아들이라고 강조한다(대림, 2006). 이 지점에서 불교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았다는 이유로 신앙을 수용하는 모태신앙 개념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이처럼 불교의 믿음은 주체적 선택과 확인의 과정을 전제하므로 부모로부터의 세습을 기반으로 하는 모태신앙과는 근본적으로 양립하기 어렵다.
붓다가 남긴 ‘스스로를 등불로 삼고 법을 등불로 삼아라(自燈明 法燈明)’라는 유훈도 깨달음이 궁극적으로 각자의 노력에 의해 성취됨을 천명한다. 특히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라는 살불살조(殺佛殺祖)의 전통이 살아있는 선불교의 정신은 외부의 권위에 대한 의존을 철저히 경계하고 내면의 자각을 통해 스스로 부처가 되어야 함을 역설한다.
불교를 믿는 궁극적 목표는 깨달음의 성취에 있다. 불교는 모든 중생이 깨달음의 가능성, 즉 불성을 지니고 있고, 지혜를 닦음으로써 깨달음에 도달할 수 있다고 가르친다. 붓다는 그 길을 먼저 간 선각자이므로 붓다를 믿고, 자신을 믿으면서 지혜를 닦아 나가면 누구나 해탈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깨달음이 단순한 믿음만으로는 성취되지 않으며, 반드시 지혜의 계발이 병행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대승불교가 제시하는 지혜의 계발 과정인 ‘문사수(聞思修) 삼혜(三慧)’는 듣고(聞), 사유하고(思), 닦는(修) 능동적이고 역동적인 탐구의 여정이다. 이처럼 불교에서 강조하는 믿음은 수동적 수용이 아니라, 이성적 탐구와 체험적 검증을 통해 얻어지는 확신에 찬 믿음으로서 깨달음을 성취하는 능동적 과정의 출발점이자 동력이다. 이는 세습적이고 수동적으로 주어지는 모태신앙과 명백히 구별되는 지점이다. 따라서 기독교 문화에 기반한 모태신앙의 개념을 불교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그 자체로 심각한 교리적 충돌을 야기할 수 있다.
그러나 불교는 이러한 주체적인 교리와 모순되지 않으면서도 가족 내 신앙 전수의 중요성을 설명할 수 있는 뛰어난 교리적 토대를 이미 갖추고 있다.
먼저 출산을 통해 이루어지는 부모-자녀 관계를 불교에서는 ‘태(胎)’라는 생물학적 차원이 아니라, 연기적 세계관에 근거한 삼세인과(三世因果)의 맥락 속에서 설명한다. 삼세인과설에 따르면 과거, 현재, 미래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원인과 결과의 과정이다. 과거에 지었던 업이 원인이 되어 현재의 결과를 받고, 현재의 업으로 인해 미래의 과보를 받는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이 세상에서 우연한 만남은 있을 수 없다. 특히 부모와 자식이라는 깊은 관계는 헤아릴 수 없는 과거의 생, 즉 숙세5)로부터 이어진 깊은 인연의 결과물이다.
더불어 ‘선근’이라는 개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숙세인연이 관계의 깊이를 설명한다면, 선근은 불법을 만날 수 있는 개인의 내적 자질을 의미한다. 선근이란 선한 결과를 낳는 선한 원인으로 과거 생에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와 같은 선한 행위를 쌓아온 공덕을 말한다. 이 선근이 두터운 사람은 현생에서 자연스럽게 불법에 이끌리고, 가르침을 쉽게 이해하며, 신심을 내게 된다. 반대로 과거 생에 쌓은 선근이 부족한 사람은 불법을 만날 기회조차 얻기 어렵거나, 만나더라도 그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고 믿음을 내기 어렵다.
숙세인연과 선근 개념을 활용하면 가족 내 신앙 전수를 모태신앙과는 다른 논리로 설명할 수 있다. 즉, 부모와의 깊은 숙세인연으로 인해 불교적 환경에 태어났을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이 과거 생에 닦아온 두터운 선근 때문에 현생에서 그 가르침에 공명하고 신심을 낼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의 선근 공덕이 불자 부모와 인연을 맺게 했고, 그로 인해 불교를 만날 수 있는 것이므로 주체적 믿음을 강조하는 불교의 교리와도 충돌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불법을 만나는 기회 자체가 자신의 과거 선업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에서 개인의 주체성을 더욱 강화한다.
붓다의 전생담인 자타카(Jātaka)나 법화경에는 깨달음이 단 한 생의 노력이 아니라, 무수한 생에 걸쳐 쌓아온 공덕과 인연의 결과임을 보여주는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는 어린 시절의 사소한 불교적 경험조차 미래의 깨달음을 위한 귀중한 씨앗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종합하면, 불교계에서는 ‘모태신앙’이라는 용어 대신, 불교 고유의 가르침에 기반한 ‘법연신앙’이라는 새로운 개념적 틀을 제시할 수 있다. ‘법연신앙’이란 ‘숙세인연’과 ‘선근’이라는 불교적 토대 위에서 가족 구성원이 서로에게 ‘법(Dharma)을 전하는 인연’이 되어주어 함께 깨달음을 향해 나아가는 능동적이고 관계적인 신앙 실천의 패러다임을 의미한다. 이는 단순히 과거 생의 인연으로 주어진 조건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넘어, 현생의 관계를 통해 진리의 가르침을 함께 배우고 실천하며 미래의 선업과 깨달음을 만들어 나가는, 미래지향적인 신앙 모델이다. 이 개념은 기독교적 개념인 모태신앙과 비교했을 때, 불교의 정체성을 지키면서도 그 순기능을 창조적으로 수용할 수 있다.
첫째, 모태신앙이 태어날 때부터 그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소속적·운명론적 성격이 강하다면, ‘법연신앙’은 과거의 업으로 인해 불법에 이끌리는 성향과 기회를 제공받았을 뿐, 그 씨앗을 꽃피우는 것은 전적으로 개인의 주체적 선택과 노력에 달려 있음을 강조한다. 이는 칼라마 경의 정신과 완벽하게 부합한다.
둘째, ‘법연신앙’은 신앙을 강요가 아닌 ‘선물’이자 ‘축복’으로 재구성한다. 부모가 자녀에게 “너는 불자여야 한다”고 말하는 대신, “우리가 가족으로 만난 이 귀한 인연 덕분에, 너는 부처님의 위대한 가르침을 만나는 소중한 선물을 받게 되었단다”라고 말할 수 있게 한다. 이는 자녀에게 불교와의 깊은 유대감을 심어주면서도, 최종적인 선택권을 존중하는 자비로운 접근이다. 동시에 부모는 단순히 교리를 교육하는 것이 아니라 자녀가 본래 가지고 있는 선근의 싹을 틔울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맡게 되며, 이것은 아이가 이번 생에서도 선업을 쌓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부모 자신에게도 선업이 된다.
결론적으로 ‘법연신앙’은 개인의 자각과 자유로운 탐구를 최우선으로 하는 불교의 핵심 가치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가족 내 신심 전수의 중요성과 정체성 형성이라는 모태신앙의 순기능을 포용할 수 있는 매우 불교적이면서도 탁월한 대안적 패러다임이라 할 수 있다.
앞서 불교의 교리적 토대 위에서 ‘법연신앙’이라는 대안적 패러다임의 가능성을 모색했다면, 이제는 그것을 어떻게 현실에 구현할 것인지 구체적인 전략을 논의할 차례다. 이를 위해 먼저 한국 불교가 직면한 위기의 현실을 간단히 진단하고, 개신교 모태신앙의 성공 요인을 비판적으로 벤치마킹하여 ‘법연 불자 가족’ 공동체를 가꾸기 위한 실천적 방안들을 제시하고자 한다. 이는 ① 신행 중심축의 가족 단위로의 전환, ② 생애주기별 맞춤형 교육 설계, ③ 불자 부모의 역량 강화, 그리고 ④ 참여불교를 통한 사회적 신뢰 회복이라는 네 가지 차원에서 구체화 될 수 있다.
탈종교화 추세가 특정 종교에 한정된 것은 아니지만, 한국 불교의 탈종교화 추세는 다른 종교에 비해 더 가파르다. 전반적으로 신도 수가 급감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고령화와 청년층 이탈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이런 추세가 단지 재가자에게만 국한된 것도 아니다. 종단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해마다 신규 출가자의 수도 크게 줄고 있고, 신규 출가자의 연령도 점차 고령화되고 있다. 이는 한국 불교가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구조적 위기에 처해 있음을 명백히 보여준다.
청년들이 불교를 외면하는 이유는 복합적이다. 내부적으로는 일부 지도층에 대한 불신과 권위주의적 소통 방식, 청년들의 현실적 고민에 와닿는 콘텐츠 부재 등이 ‘낡고 어려운 종교’라는 인식을 고착화시켰다. 외부적으로는 사회 전반의 탈종교화와 개인화된 영성 추구 경향이 제도 종교의 매력을 약화시켰다.
그러나 여기서 주목할 점은 청년들의 이탈이 불교의 가르침 자체에 대한 거부가 아니라, 그것을 담아내는 낡은 제도에 대한 거부라는 사실이다. ‘뉴진스님’ 열풍, 템플스테이와 명상에 대한 높은 관심은 청년들이 불교 문화와 수행에는 오히려 큰 매력을 느끼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위기 속 기회이다. 따라서 전략의 핵심은 가르침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전달하는 방식과 공동체를 형성하는 방법을 혁신하는 데 있어야 한다.
모태신앙이 불교의 교리와 부합하지 않는다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모태신앙 문화가 가진 종교 정체성의 조기 형성, 강력한 공동체 유대감, 가치관의 세대 전승이라는 순기능은 불교가 위기를 타개하는 데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이를 ‘법연신앙’의 패러다임 위에서 불교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몇 가지 실천 전략을 제안한다.
위기 극복의 첫걸음은 신행의 중심 단위를 ‘개인’에서 ‘가족’으로 확장하는 것이다. 이를 위한 핵심 전략은 가족법회(家族法會)의 활성화와 불교적 통과의례의 창출이다.
정기적으로 개최되는 법회의 참석자를 유심히 관찰하면 몇 가지 특징이 바로 눈에 들어온다. 노인과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고, 가족들이 함께 참여하는 경우가 드물다는 것이다. 기독교의 주말 예배에 가족 단위 참석자가 많다는 점과 대비하면, 불교 신행의 중심 단위가 개인이라는 점이 더욱 명확해진다. 주체적 믿음을 강조하는 불교의 특성을 고려하더라도 불자 공동체의 유지라는 차원에서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부모와 자녀가 함께 예불, 명상, 다도, 사찰음식 만들기 등 세대 수준에 맞는 활동을 공유하는 가족법회를 전면적으로 도입해야 한다. 이는 사찰을 단순한 종교 시설이 아니라, 가족 전체의 정신적 성숙과 유대를 위한 따뜻한 공동체 공간으로 변화시킬 것이다.
가족 단위의 신행 활동 기회를 늘리기 위해서 불교식 통과의례를 개발하고 보급할 필요가 있다. 가족법회가 일상적이고 주기적인 신행 기회를 제공한다면 불교식 통과의례는 이벤트적인 성격이 강한 활동이다. 현재 불교계에서 거행되는 통과의례는 대체로 죽음이나 조상과 관련된 것이 많다. 장례식, 49재, 천도재 등은 애도와 추모의 순간에 슬픔을 풀어내고, 위로를 건네는 의례들이다. 갓 태어난 아기를 대상으로 하는 가톨릭의 유아 세례는 기쁨과 축복, 즐거움을 나누는 의례이다. 기독교의 사례가 보여주듯, 삶의 기쁜 순간을 기념하는 의례는 강력한 정체성 형성의 계기가 된다. 불교는 이를 맹목적으로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불교적 가치 안에서 임신, 출산과 탄생, 성인식, 결혼, 입학과 졸업, 은퇴 등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순간들을 축하하고, 함께 기념하는 의례들을 창조적으로 개발하고 보급해야 한다. 생애주기 상의 주요 변곡점들을 기념하는 이런 통과의례들은 개인의 삶에 불교가 함께 한다는 강력한 유대감을 심어주고, ‘법연’의 의미를 가족이 함께 체험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법연신앙’의 관점에서 사찰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포교 프로그램은 아이가 본래 지닌 선근의 싹을 틔우고 평생에 걸쳐 성장시키는 연속적인 과정으로 재설계되어야 한다.
영유아기에 해당하는 아이들을 위한 어린이 법회는 ‘신나는 놀이터’로서의 사찰, ‘레고 명상’이나 ‘자타카’ 스토리텔링처럼 지식 전달이 아니라 오감을 활용하는 체험 활동을 중심으로 프로그램을 구성함으로써 불교에 대해 친근한 첫인상을 심어주어야 한다.
청소년 법회는 재미와 의미를 결합하는 프로그램 구성이 효과적일 것이다. 템플스테이와 물놀이를 결합하거나, 사찰 문화 해설사 또는 SNS 홍보 대사 등의 역할을 부여함으로써 또래 집단의 유대감과 자긍심을 높여주는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청년 법회는 진로, 결혼, 대인관계 등 현실적 고민에 대한 불교적 해법을 공유하고, 서로를 지원할 수 있는 프로그램 구성이 절실하다. 또한 사찰을 기반으로 하는 다양한 포교 활동이나 사회적 활동의 주체로 참여하도록 기회를 제공하고, 적극 지원할 필요가 있다.
임신·출산·육아기는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고 기르는 경이로운 과정이자, 부모로서의 정체성이 형성되는 중요한 전환점이다. 이 시기에 해당하는 부부들을 위해서 불교 명상 태교 프로그램, 불교적인 자녀 양육법 등을 교육하는 부모 교육 프로그램 등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중장년기는 사회적으로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지만, 동시에 직장에서의 압박, 자녀 문제, 노후 불안 등으로 다양한 스트레스와 상실감을 경험하는 시기이다. 중년 세대가 겪는 실직, 불안, 가족 갈등 등의 문제에 맞춰 자아를 성찰하고, 마음의 안정을 찾도록 돕는 자조 모임이나 공동체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을 것이다. 적극적인 사회활동을 지원할 수 있는 리더십 함양 프로그램이나 은퇴 준비 교육 등도 고려해 볼 수 있다.
초고령사회로 진입한 한국 사회에서 은퇴 이후 노년의 긴 시간을 어떻게 의미 있게 보낼 것인가는 중요한 사회적 과제이다. 이 시기에 해당하는 불자들에게 삶을 아름답게 회향하는 길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기본적으로는 노년의 신체적, 정신적 어려움을 이해하고, 삶을 존엄하게 마무리할 수 있도록 돕는 방향으로 프로그램들을 구성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불교 수행 중심의 평생학습 프로그램, 풍부한 경험과 지혜를 공유할 수 있는 봉사활동, 웰다잉(well-dying) 프로그램 등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각 생애주기의 필요에 맞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프로그램을 제공함으로써, 불교는 요람에서 무덤까지 모든 세대의 삶에 의미 있는 동반자가 되어 시대적 위기를 극복하고, 지속가능한 미래를 여는 가장 확실한 길이 될 것이다.
가족 중심 모델의 성공 열쇠는 부모의 역량에 달려 있다. 불교계는 부모가 자녀의 ‘첫 스승’이자 ‘첫 도반’이 될 수 있도록 체계적인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해야 한다.
바람직한 불자 부모가 되기 위해서는 자녀를 출산한 순간부터가 아니라, 임신을 준비하는 단계부터 부모가 된다는 인식의 전환이 선행되어야 한다. ‘숙세인연’을 따라 선근을 갖춘 아이와 만나기 위해 부모도 임신을 준비하는 단계부터 선업을 쌓아야 하는 것이다.
임신 이후부터는 태아에게 무엇인가를 주입하는 교육이 아니라, 부모 스스로 맑고 평온한 마음과 몸 상태를 만들어 태아에게 최상의 환경을 제공하는 것을 태교의 목표로 삼아야 한다.
출산 이후에는 자녀 양육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을 불교적 지혜로 풀어내는 부모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해야 한다. 아이는 자신이 전생에 쌓은 선근 공덕의 과보로 현생에 태어난 것이니,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할 존재이다. 따라서 부모의 뜻대로 자녀를 바꾸려고 해서는 안 된다. 부모 자신의 고정관념과 내면을 성찰하고, 자녀와 수평적인 관계를 만들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자녀가 지닌 선근의 싹을 틔워주는 최상의 '인연'이 되어주는 길이다.
불교 내부적인 체질 개선 노력은 사회적 신뢰 회복이라는 더 큰 그릇에 담길 때 비로소 완성될 수 있다. 청년들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공동체의 문을 열고, 세상의 고통에 동참하며, 사회적 역할을 다하는 참여불교의 정신을 구현해야 한다.
이는 단순히 불교계의 이미지를 개선하는 차원을 넘어, 그 자체가 사회적 차원에서 선근 공덕을 쌓는 보살행의 실천이다. 불교적 관점에서 보면, 환경 파괴, 경제적 불평등, 사회적 갈등과 같은 모든 사회문제의 근원에는 인간의 마음속 ‘탐(貪)·진(瞋)·치(痴)’ 삼독(三毒)이 자리한다. 따라서 환경 운동에 동참하는 것은 사회 전체의 탐욕을 정화하는 보시행(布施行)이며, 평화 운동과 인권 옹호 활동에 나서는 것은 혐오와 차별에 맞서는 자비행(慈悲行)이자 인욕(忍辱)의 실천이다. 이는 ‘불법(佛法)을 몸으로 실천한다’는 불교 정신과 부합하며, 종교에 거부감을 가진 청년들도 자연스럽게 불교의 가치를 체득하게 하는 가장 효과적인 포교 전략이 된다.
그렇다면 이러한 사회적 실천을 앞서 논의한 ‘숙세인연’과 어떻게 연결할 수 있을까? 여기에 불교적 상상력의 묘미가 있다. ‘숙세인연’을 단순히 과거 생으로부터 이어진 ‘결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행동이 ‘미래의 숙세인연’을 만드는 원인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불교의 가르침에 따르면 옷깃만 스쳐도 무수한 생의 인연이 닿아있는 것이다. 하물며 우리가 사회 속에서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이웃, 함께 땀 흘리며 봉사하는 동료들은 결코 나와 무관한 타인이 아니다. 지금 우리가 맺는 이 사회적 관계와 자비의 실천은 미래의 어느 생에선가 부모와 자식, 스승과 제자, 혹은 가장 가까운 도반으로 다시 만날 소중한 인연의 씨앗을 심는 행위가 된다. 즉, 사회를 향한 자비 실천은 ‘미래의 불자 가족’을 만들어 가는 가장 적극적인 선업 쌓기인 셈이다.
나아가 보살의 관점에서 보면, 모든 중생은 헤아릴 수 없는 과거 생에 나의 부모였거나 자식이었던 존재들이다. 이러한 연기적 세계관 안에서 가족의 울타리와 사회의 경계는 허물어진다. 결국 참여불교를 통한 사회적 실천은 ‘숙세인연’이라는 개념을 가족의 차원에서 사회 전체, 모든 생명으로 확장하는 가장 역동적인 보살행의 구현이다.
이처럼 불교가 개인의 해탈을 넘어 사회 전체의 선근을 가꾸고, 미래의 숙세인연을 창조하는 ‘세상이 필요로 하는 종교’가 될 때, 진정성과 사회적 정의에 민감한 젊은 세대는 자연스럽게 불교의 가치에 공명하게 될 것이다. 이는 불교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높여 새로운 진입 경로를 만드는 가장 근본적이면서도 강력한 방안이 될 것이다.
Ⅴ. 결론: ‘모태신앙’을 넘어 ‘법연신앙’으로
본 연구는 한국 사회의 탈종교화, 특히 젊은 세대의 종교 이탈이라는 거시적 위기 속에서 개신교에 비해 불교 청년 인구의 감소세가 두드러지는 현상에 주목하며 시작되었다. 이러한 차이를 유발하는 핵심 변수 중 하나로 개신교 특유의 ‘모태신앙’ 문화가 기능하고 있다는 가설 아래, 그 명암을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한국 불교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대안을 모색하고자 했다.
먼저 제2장에서는 모태신앙의 개념을 정의하고, 그것이 신학적으로는 근거가 부족하지만 가족을 매개로 한 강력한 초기 ‘종교적 사회화’ 기제로서 기능하는 한국적 현상임을 밝혔다.
제3장에서는 모태신앙의 ‘두 얼굴’을 심층적으로 분석했다. 순기능으로는 개인에게 안정된 도덕·정서적 기반을 제공하고, 공동체의 유지와 재생산에 결정적으로 기여했음을 확인했다. 반면, 그 역기능으로는 개인의 자유의지를 억압하고 신앙의 피상성을 낳으며, 나아가 ‘가나안 성도’ 현상과 공동체의 폐쇄성을 심화시키는 원인이 되었음도 비판적으로 고찰했다.
제4장에서는 앞선 논의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한국 불교를 위한 대안을 모색했다. 불교는 ‘칼라마 경’과 ‘자등명’의 가르침에서 볼 수 있듯이 주체성을 강조하기에 모태신앙 개념을 그대로 수용할 수 없지만, ‘숙세인연’과 ‘선근’이라는 교리를 통해 그 순기능을 창조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토대를 이미 갖추고 있음을 발견했다. 이를 바탕으로, 본 연구는 ‘법연신앙’이라는 불교적 대안 패러다임을 제안하고, 이를 구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실천 전략(① 가족 중심 신행 전환, ② 생애주기별 맞춤형 교육, ③ 불자 부모 역량 강화, ④ 참여불교를 통한 사회적 신뢰 회복)을 제시했다.
본 연구는 다음과 같은 학술적·실천적 의의를 지닌다.
첫째, ‘모태신앙’에 대해 다차원적 접근을 시도했다. 기독교 중심의 신학적·목회적 논의를 거칠게나마 정리하고, 역사사회학적 관점에서 모태신앙의 형성 과정을 추론하며 종교사회학적 틀로 그 기능을 분석함으로써, 모태신앙이라는 문화 현상을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했다.
둘째, 종교 간 ‘창조적 벤치마킹’의 구체적인 모델을 제시했다. 타 종교의 제도를 맹목적으로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그 성공과 실패의 요인을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자신의 교리적 정체성 위에서 그것을 창조적으로 재해석하여 실천적 대안을 도출하는 연구 방법론을 구체적으로 보여주었다. 이는 다종교사회에서 종교 간 상호 학습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셋째, 한국 불교의 미래를 위한 실천적 담론을 형성하고 구체적인 청사진을 제안했다. 막연한 위기 진단을 넘어, ‘법연 불자 가족’이라는 대안을 제시하고, 이를 구현하기 위한 의례, 교육, 포교, 사회참여 등 다방면에 걸친 종합적인 실천 전략을 제시함으로써, 불교계가 현실적으로 채택하고 논의를 심화시킬 수 있는 실질적인 담론의 토대를 마련하고자 했다.
이러한 의의에도 불구하고 본 연구는 몇 가지 한계를 지니며, 이는 향후 연구 과제로 남는다.
첫째, 모태신앙의 역사적 연원에 대한 분석은 문헌 자료의 부재로 인해 ‘사회학적 상상력’에 기반한 가설적 추론의 성격을 갖는다. 향후 초기 한국 교회의 사료 분석 등을 통해 이 가설을 검증하거나 보완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둘째, 본 연구에서 제안한 다양한 실천 전략들, 예를 들어 ‘가족법회’나 ‘생애주기별 교육 모델’ 등을 실제 사찰 현장에 시범적으로 적용하고, 그 효과를 실증적으로 측정, 분석하는 후속 연구가 이루어진다면, 이론과 실천의 간극을 메우는 더욱 의미 있는 성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