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논문

단사인(斷事人) 제도와 승가 분쟁 해결의 원칙:

이자랑 1
Ja-Rang Lee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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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HK교수
1HK Professor, Academy of Buddhist Studies, Dongguk Univers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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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ceived: Feb 13, 2018; Revised: Apr 30, 2018; Accepted: Jun 20, 2018

Published Online: Jun 30, 2018

국문초록

‘화합승(和合僧)’이라는 표현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승가는 화합을 중시하는 공동체이다. 따라서 승가 운영 전반에 걸쳐 화합을 실현하기 위한 노력이 이루어지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멸쟁법(滅諍法)이다. 멸쟁법이란 승가에서 구성원들 간에 다툼이 발생했을 때 이를 해결하는 방법이다. 율장에서는 칠멸쟁법(七滅諍法)이라고 하여, 일곱 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승가에서 발생한 다툼은 반드시 이 일곱 가지 방법 중 하나에 의해 조정해야 한다. 본고에서는 이들 멸쟁법 중 하나인 현전비니(現前毘尼), 그리고 이 현전비니의 일환으로 실행되는 ‘단사인(ubbāhikā, 斷事人)’ 제도의 검토를 통해 멸쟁법의 근간을 이루는 ‘여법’과 ‘화합’이라는 이념이 갖는 의의를 고찰하였다.

멸쟁법은 율장 건도부 「멸쟁건도」에서 인연담과 더불어 종합적으로 다루어지지만, 이 외 인도불교사에서 발생한 대규모 분쟁 사건에도 적용된 사례를 발견할 수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붓다 열반 후 100년경에 발생한 십사(十事) 비법 논쟁이다. 이 논쟁에는 멸쟁법 중 현전비니의 일환으로 실행되는 단사인 제도가 적용되고 있다. 단사인 제도란 일종의 위원회 형식이다. 분쟁 중인 양측으로부터 일정한 자격을 갖춘 자들을 각각 선발하여 이들에게 분쟁 해결을 위임하는 것이다. 십사 사건의 경우에는 각 4명씩 선발하여 총 8명이 위원회를 구성하였다. 이들이 붓다의 법과 율에 근거하여 문제의 안건을 검토하고 결론을 내린 후, 그 쟁사와 관련된 현전승가의 구성원에게 동의를 구하는 방식이다. 이 제도는 현전비니로 1차적인 조정을 시도하였지만 실패하여 제2차 조정으로 넘어간 경우, 만약 여기서도 의견이 분분하여 결론을 도출해내기가 쉽지 않을 때에 적용되는 방법이다. 따라서 판단이 쉽지 않은, 그래서 자칫하면 승가의 화합을 깨뜨릴 수 있는 민감한 사안에 적용되는 멸쟁법이라고 볼 수 있다.

본고에서는 빨리율 「칠백건도」를 중심으로 십사 논쟁의 진행 과정을 살펴보고, 이 논쟁의 해결을 위해 도입된 현전비니와 단사인 제도의 내용 및 그 의의를 살펴보았다. 일견 단사인 제도는 위원회 형식이라는 점에서 일부 구성원의 의견을 다른 구성원들에게 강압적으로 적용하는 제도로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실행 과정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이 멸쟁법 역시 승가 운영의 주요 이념인 여법과 화합의 실현을 위해 고안된 것임을 알 수 있다.

Abstract

In this paper, we examine the process of the ‘ten points’ dispute centering on Sattasatikakkhandhaka (七百犍度) of Vinayapiṭaka and examined the content and significance of sammukhāvinaya (現前毘尼) and ubbāhikā (斷事人) system introduced to resolve this dispute. The ubbāhikā is a form of committee. It is to select the qualified persons from each side in dispute and delegate resolving the dispute to them. In the case of the ‘ten points’ affair, a total of eight people, four from each group, were selected. After reviewing and concluding the matter on the basis of Buddha’s dhamma and vinaya, it is the way of seeking consent from members of sammukhibhūtasaṃgha (現前僧伽) related to that dispute. It is the method that is applied when the first adjustment fails and the second adjustment is passed, but the second adjustment is not easy due to the split of opinions. Therefore, judging is not easy, so it can be seen as a method applied to sensitive matters that can break the harmony of Saṃgha.

In this paper, we examine the progress of the ‘ten points’ dispute centering on Vinayapiṭaka Sattasatikakkhandhaka and examined the content and significance of sammukhāvinaya and ubbāhikā system introduced to resolve this dispute. At first glance, the ubbāhikā system is a form of committee, and may be considered as a system that applies the opinions of some members to other members by force. However, if we look carefully at the process of execution, we can see that this method is also designed for realization of harmony and harmony, which is the main ideology of Saṃgha.

Keywords: 십사; 단사인; 칠멸쟁법; 현전비니; 제2결집
Keywords: ten points (十事); Ubbāhikā (斷事人); Satta adhikaraṇasamathā dhammā (七滅諍法); Sammukhāvinaya (現前毘尼); Council of Vesālī

Ⅰ. 서 론

승가는 ‘화합(samagga, 和合)’을 중시하는 공동체이다. 승가의 구성원이 된 자는 출가 전의 지위나 신분, 나이 등 모든 것을 내려놓고 물과 우유가 섞이듯 화합하며 살아가야 한다. 승가를 분열시키는 행위는 무간죄(無間罪) 중 하나로 거론될 만큼 정서적으로 기피되었고, 실제로 승잔(僧殘)이라는 중죄로 다스려졌다. 하지만, 율장 등의 초기불교문헌을 보면 고따마 붓다의 재세 당시에조차 출가자들 간에 종종 심각한 다툼이 발생하였고, 때로는 승가 분열이 우려되는 상황에까지 이른 경우도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대표적으로 데와닷따(Devadatta, 提婆達多)의 파승(saṃghabheda, 破僧) 사건과 꼬삼비 비구들 간의 파승 사건을 들 수 있다. 이 두 사건의 전말은 각각 「파승건도」와 「꼬삼비건도」라는 독립된 장으로 율장 건도부에서 다루어질 만큼 승가 안팎으로 큰 영향을 미쳤던 대표적인 승가 분열 사건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경장이나 율장에는 비구들 간에 발생한 크고 작은 다툼이 적지 않게 전해진다. 교리나 계율 등 붓다의 가르침에 대한 해석이나 이해의 차이로 다투기도 하고, 범계 여부에 대한 의견 차이로 다투기도 한다. 또한, 보시물의 분배 등을 둘러싸고 다투기도 한다. 수행자 역시 사람인 이상 완벽한 무쟁(無諍)의 상태를 실현하는 것은 어려운 것이다.

이에 율장에서는 승가에 다툼이나 분쟁 등이 발생했을 때 이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칠멸쟁법(satta adhikaraṇasamathā dhammā, 七滅諍法)을 제시한다. 비구들 간에 문제가 발생하면 그 내용에 따라 반드시 이 일곱 가지 멸쟁법 가운데 하나 혹은 두 개를 적용하여 가라앉혀야 한다. 이들 멸쟁법의 근간을 이루는 원칙은 ‘여법(如法)’과 ‘화합’이다.1) 즉, 승가에서 발생한 다툼은 반드시 붓다가 설한 법과 율에 부합하는 내용과 방법을 통해 가라앉혀야 하며, 결과적으로 승가 구성원의 화합을 도모하는 방향으로 마무리 지어야 한다. 이 두 가지를 외면한 멸쟁은 설사 일시적으로 다툼은 그치게 할 수 있을지 몰라도 결국은 승가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 명확한 원칙 없이, 또한 승가 구성원의 화합을 고려하지 않고 무리하게 이루어진 멸쟁은 그 다툼에서 진 구성원들을 소외시켜 언젠가는 승가에 더 큰 혼란을 야기할 것이기 때문이다.

본고에서는 멸쟁법이 갖는 이들 특징을 제2결집의 십사(十事) 비법 논쟁의 해결 과정 및 특히 그 과정에서 실행된 ‘단사인(ubbāhikā, 斷事人)’ 제도를 중심으로 재확인해보고자 한다. 십사 비법 논쟁이란 웨살리의 한 승원에 머무는 왓지족 출신의 일부 비구들이 실행하고 있던 열 가지 행동의 적법성 여부를 둘러싸고 비구들이 나뉘어 다투었던 사건이다.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최종적으로 사용된 멸쟁법이 바로 단사인 제도이다. 이 제도는 칠멸쟁법 중 가장 기본 멸쟁법인 현전비니(sammukhāvinaya, 現前毘尼)의 일환으로 실시되며, 일종의 위원회 형식이다. 분쟁 중인 양측으로부터 일정한 자격을 갖춘 자들을 각각 선발하여 이들에게 분쟁 해결을 위임하는 것이다. 십사 사건의 경우에는 각 4명씩 선발하여 총 8명이 위원회를 구성하였다.

제2결집의 원인이 된 십사 비법 논쟁은 칠멸쟁법이 초기불교교단의 역사에서 실제로 사용된 구체적인 예를 확인할 수 있는 매우 귀중한 사례이다. 따라서 이 사건을 중심으로 승가에서 발생한 쟁사를 해결하는 방법과 그 기반에 놓인 원칙 등을 살펴보며, 멸쟁법이 갖는 의의를 고찰해보고자 한다. 제2장에서는 빨리율 「칠백건도」를 중심으로 십사 논쟁의 진행 과정을 살펴보고, 제3장에서는 논쟁 해결을 위해 도입된 현전비니와 단사인 제도의 내용, 그리고 마지막 제4장에서는 이런 멸쟁법이 적용되는 이유 및 그 의의를 고찰한다.

Ⅱ. 십사 논쟁의 발생과 해결 과정

빨리율 「칠백건도」에 의하면(Vin.Ⅱ: 294-308),2) 붓다 열반 후 100년 정도 지났을 무렵 웨살리(Vesālī, 毘舍離) 지역의 한 승원에 왓지족 출신의 비구들이 살고 있었다. 이때 왓지(Vajjī)국을 유행하다 이 승원에 머물게 된3) 야사(Yasa, 耶舍)라는 이름의 비구는 포살일에 기괴한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왓지족 출신의 비구들이 동(銅)발우에 물을 채워놓고 재가신자들로부터 금전 보시를 받고 있는 모습이었다. 출가자가 금전을 받는 것은 니살기바일제 제18조에 의해 금지된 일이었기 때문에4) 깜짝 놀란 야사는 “석가족의 사문이 금전을 받는 것은 율에 어긋난다.”며 나무랐다. 하지만, 왓지족 출신의 비구들은 무시한 채 다음 날 그 금전을 비구들에게 분배하고 야사에게도 일부 주었다. 야사가 받기를 거절하자 그들은 야사가 재가신자의 청정한 믿음을 비방했다며 하의갈마(paṭisāraṇiyakamma, 下意羯磨)를 실행한다. 하의갈마란 재가불자에게 폐를 끼치고 화나게 한 출가자가 그 재가불자를 찾아가 자신의 잘못을 사과하고 용서를 빌 것을 결정하는 갈마를 말한다.5)

이에 야사는 함께 갈 비구를 요청하여6) 그와 함께 웨살리의 재가신자들을 찾아 갔다. 그리고 “저는 법이 아닌 것은 법이 아니라고 말하고, 법은 법이라고 말하며, 율이 아닌 것은 율이 아니라고 말하며, 율은 율이라고 말합니다.”라며 수행자가 금은을 받는 것이 율에 어긋난다는 점을 알려 재가신자들을 설득한 후 정사로 돌아온다. 한편, 함께 갔던 비구로부터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왓지족 출신의 비구들은 야사가 하의갈마의 내용을 실행하지 않은 것을 알고 대노하며 야사에게 거죄갈마(ukkhepaniyakamma, 擧罪羯磨)를 실행하려고 한다. 거죄갈마는 세 가지 경우를 대상으로 실행되는 일종의 징벌갈마이다. 첫째, 불견죄거죄갈마(āpattiyā adassane ukkhepaniyakamma, 不見罪擧罪羯磨)는 비구가 죄를 짓고도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 경우에 부과되는 갈마이다. 둘째, 불참죄거죄갈마(āpattiyā appaṭikamme ukkhepaniyakamma, 不懺罪擧罪羯磨)는 참회하지 않는 경우에 부과되는 갈마이다. 셋째, 불사악견거죄갈마(pāpikāya diṭṭhiyā appaṭinissagge ukkhepaniyakamma, 不捨惡見擧罪羯磨)는 악견을 버리지 않을 경우에 부과하는 갈마이다. 즉, 거죄갈마란 승가로부터 개선을 요구하는 지적을 받고도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거나, 참회하지 않거나, 악견을 버리지 않을 경우에 승가가 제재력을 갖고 범계자에게 벌을 부과하는 갈마이다.7) 「칠백건도」에서는 ‘거죄갈마(ukkhepaniyakamma)’라고만 표현하고 있어 야사에게 부과하려 한 거죄갈마가 3종 중 어느 것이었는지 알 수 없다. 다만 이전에 야사에게 하의갈마가 실행되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자신의 죄를 반성하고 참회하지 않는 것이 거죄갈마의 핵심 사안이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불참죄거죄갈마’를 실행하려 한 것은 아닐까 추정된다. 다만, 금은 보시를 받는 행위를 정법(淨法)으로 인정하지 않고 부정하는 것은 왓지족 출신의 비구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악견(惡見)이다. 따라서 그것이 악견임을 인정하고 재가신자들에게 가서 참회하고 또한 악견을 버릴 것을 요구했지만, 야사는 그 어느 것 하나에도 응하지 않았다. 이러한 점을 복합적으로 고려한다면 3종의 거죄갈마가 모두 적용될 수도 있을 것 같다.8)

거죄갈마를 받게 되면, 불공수(asambhoga, 不共受)9)의 벌을 받고 이후 일반 청정비구가 승가의 구성원으로서 누릴 수 있는 많은 권리를 박탈 당하게 된다. 야사는 서둘러 거죄갈마를 피해 그 곳을 빠져 나와 이후 자신과 견해를 함께 해 줄 비구들을 찾아 인도 각지로 다니게 된다. 먼저 꼬삼비(Kosambī)로 간 후 빠텟야(Pāṭheyya), 아반띠(Avanti), 닥키나빠타(Dakkhiṇāpatha)로 사신을 보내 도움을 요청한다. 그리고 자신은 아호강가(Ahogaṅgā)산에 있는 삼부타 사나바시(Sambhūta Sāṇavāsī, 三浮陀舍那婆斯)를 찾아간다. 야사로부터 자초지종을 전해들은 사나바시는 야사의 의견에 동의를 표한다. 이후 곧 빠텟야까에서 60명, 아반띠와 닥키나빠타에서 88명의 비구가 아호강가산으로 몰려들었다. 여기서 언급되는 지명들은 문제의 웨살리로부터 대략 서쪽이나 서북쪽 혹은 남쪽이나 서남쪽 등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 중 빳테야 혹은 그 형용사형에 해당하는 빠텟야까(Pāṭheyyaka)는 「칠백건도」에서 이후 웨살리의 왓지족 출신의 비구를 가리키는 빠찌나까(Pācīnaka)라는 용어와 대립하는, 말하자면 야사에게 동조하여 인도 각지에서 모여든 비구들을 총칭하는 표현으로 반복해서 사용된다. 그런데 이 말이 정확히 어디를 가리키는지는 알 수 없다.10) 빨리율의 주석에 의하면, 빠텟야는 꼬살라국의 서쪽에 위치하는 나라라고 한다(Smp. Ⅴ: 1105). 따라서 이 설명을 받아들인다면, 갠지스강 유역의 서북지역을 가리킨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즉, 빠텟야를 포함한 이들 지역은 불교가 번영한 갠지스강 중심지로부터 본다면 약간 변방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한편, 야사의 의견에 동조하여 아호강가산으로 몰려든 비구들은 이 쟁사가 매우 까다롭고 어렵기 때문에 신망 있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레와따(Revata, 離婆多)장로를 아군으로 끌어들이려 한다. 「칠백건도」에 의하면, 레와따는 “다문(多聞)이고, 아함(阿含)에 정통하며, 법(法, dhamma)을 암송하고, 율을 암송하며, 논모(論母)를 암송하고, 현명하고, 총명하며, 지혜롭고, 부끄러움을 알며, 후회하는 마음을 낼 줄 알고, 학처를 배우려는 욕구가 있는 분(Vin. Ⅱ: 299)”이라고 한다. 즉, 삼장에 정통하며 행 또한 훌륭한 장로였음을 알 수 있다. 십사 비법 논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레와따를 자신들의 편으로 끌어들이려 했다는 것은 당시 레와따가 승가의 구성원들 사이에서 매우 존경받는 장로로서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인물이라는 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한편, 레와따는 신통력으로 이들 비구들이 의논하는 이야기를 듣고, 복잡한 쟁사에 얽히고 싶지 않았던지 여러 지역으로 이동하며 비구들과의 만남을 피했다. 하지만, 결국 사하자띠(Sahajāti)에서 그들과 만나게 된다. 야사는 십사의 항목 하나하나를 거론하며 레와따에게 합법성 여부를 물었고, 이에 대해 레와따는 율에 비추어 볼 때 모두 합법적이지 않다는, 다시 말해 정법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다. 그리고 야사의 의견에 동의하며 지원을 약속했다.

한편, 야사가 십사 문제를 쟁사로 다루고자 동분서주하며 편을 끌어 모으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왓지족 출신의 비구들은 자신들도 레와따를 아군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그의 환심을 살 많은 자구(資具)를 준비하여 사하자띠로 갔다. 레와따가 거절하자 왓지족 출신의 비구들은 레와따의 시자인 웃따라(Uttara)를 대상으로 설득을 시작했다. 웃따라 역시 처음에는 거부했지만, 결국 옷 한 벌을 받게 된다. 그러자 왓지족 출신의 비구들은 웃따라에게 ‘빠찌나까(Pācīnaka)의 비구들이야말로 여법설자입니다.’라고 레와따와 다른 비구들에게 말해달라고 부탁한다. 여기서 빠찌나까란 ‘동쪽’을 의미하는 말로(PED, 450a pācīna항) 왓지족 출신의 비구들을 가리킨다. 웃따라로부터 “부처님은 동쪽 나라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여법설자는 빠찌나까의 비구들이며, 빠텟야까의 비구들은 비법설자입니다.”라는 말을 들은 레와따는 그를 쫓아냈다고 한다.

이런 우여곡절을 겪으며 야사를 지지하는 비구들이 모두 웨살리로 모여들었다. 이와 관련하여 「칠백건도」에서는 “승가는 그 쟁사를 판정하기 위해 모였다. 레와따 존자는 승단에 고지하였다. ‘존자들이시여, 승가는 제 말에 귀 기울여 주십시오. 만약 우리들이 이 쟁사를 여기서 가라앉힌다면 원인을 제공한 비구들이 갈마를 다시 실행하여 번복할 것입니다. 만약 승가에 있어 시기적절하다면, 이 쟁사가 발생한 바로 그 곳에서 승가는 이 쟁사를 가라앉혀야 합니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즉, 이들이 문제의 당사자인 왓지족 출신의 비구들 없이 개별적으로 갈마를 하여 십사 비법을 결정한다면, 그들은 그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고 별개의 갈마를 통해 결과를 번복할 것이므로 문제가 발생한 곳에 가서 당사자의 입회하에 갈마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갈마의 중요한 원칙이다. 후술하겠지만, 멸쟁갈마의 기본 원칙인 현전비니는 반드시 피고와 원고의 출석 하에 실행해야 한다. 당사자가 없는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갈마는 훗날 승가에 불화를 초래할 수 있으며, 나아가 이 경우 왓지족 출신의 비구들에게 자신들의 잘못을 인지시킬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지 않은 채 멸쟁이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무의미한 멸쟁이 되어버린다.

한편, 레와따는 이 과정에서 사나바시에게 삽바까미(Sabbakāmī, 一切去)라는 장로를 찾아가 십사에 관해 물을 것을 권유하고, 자신도 삽바까미가 있는 정사로 갔다. 삽바까미는 아난의 제자로 법랍 120세의 장로였다고 한다. 그 역시 장로들의 의견에 동의한다. 후술하겠지만, 삽바까미는 최종적으로 십사의 내용이 왜 율에 비추어 어긋나는지 그 근거를 제시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로 보아 당시 명망 높은 지율자(vinayadhara, 持律者)였을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해서 웨살리에 많은 비구들이 모여 쟁사를 해결하고자 했지만, 여기저기 쓸데없는 이야기들이 난무하여 명확하게 의미를 파악할 수 있는 말이 하나도 없었다. 그러자 레와따는 혼란스러운 상황을 고지하며 단사인 제도를 통해 멸쟁을 시도할 것을 갈마 형식으로 제안한다. 이의를 제기하는 자가 없자 레와따는 양측으로부터 4명씩 단사인을 선발하였다. 빨리율에 의하면, 이때 선발된 자들의 이름은 다음과 같다.

  • - 빠찌나까(Pācīnaka)

    • 삽바까미(Sabbakāmī), 살하(Sāḷha), 쿳자소비따(Khujjasobhita), 바사바가미까(Vāsabhagāmika)

  • - 빠텟야까(Pāṭheyyaka)

    • 레와따(Revata), 삼부따 사나와시(Sambhūta Sāṇavāsī), 야사 까깐다까뿟따(Yasa Kākaṇḍakaputta), 수마나(Sumana)

단사인회가 마련되자 레와따와 삽바까미는 왓지족 출신의 비구들이 정법이라 주장하며 실천하고 있던 금은 수납을 비롯한 다른 아홉 가지 행동, 즉 십사(十事)에 대해 문답을 주고받으며 옳고 그름을 가리게 된다. 결과적으로 십사 가운데 ‘구주정(久住淨)’을 뺀 나머지 9사는 모두 비법비율이라는 판정이 내려진다. 구주정은 승가에서 존경받는 위치에 있는 화상·아사리 등이 관습적으로 하는 행동이라면 그대로 따라 해도 된다는 주장인데, 이에 대해 위원회에서는 이들의 행동이라도 율에 비추어 부합하면 해도 되지만, 부합하지 않으면 해서는 안 된다고 하여 ‘일분정 일분부정(ekacco kappati ekacco na kappati, 一分淨 一分不淨)’이라는 판결을 내린다(Vin. Ⅱ: 307). 이렇듯 레와따와 삽바까미의 문답을 통해 십사가 율에 비추어 허용되지 않는 행위라는 것을 확인한 후, 레와따는 승가를 향해 결과를 통보하고, 삽바까미는 쟁사가 해결되어 적정(寂靜)한 상태가 되었음을 선언한다. 그리고 십사에 대한 문답을 다시 승가의 전원 앞에서 반복한다. 「칠백건도」에서는 이때 칠백 명이 있었기 때문에 이 율의 결집을 ‘칠백[결집]’이라고 한다는 말로 마무리 짓고 있다. 이것이 빨리율 「칠백건도」에 전해지는 십사 비법 논쟁의 멸쟁 과정이다. 이 멸쟁 과정에는 주목할 만한 점이 많지만, 본고에서는 이하 단사인 제도에 초점을 맞추고, 그 특징을 고찰하고자 한다.

Ⅲ. 현전비니와 단사인 제도

인도 각지에서 왓지족 출신의 비구들을 단죄하기 위해 많은 비구들이 웨살리에 모여들었지만, 결국 쟁사 해결을 위해 취해진 조치는 단사인 제도의 실행이었다. 즉, 대립하는 양측으로부터 각 4명씩 대표자를 선출하여 이들에게 옳고 그름을 가리게 하는 방법이다. 8명으로 구성된 단사위원회에서는 레와따와 삽바까미가 문답을 주고받으며 십사의 적법성 여부를 검토하고, 이 두 사람 외에 다른 6명은 이들의 문답에 오류는 없는지 경청하며 검토하는 역할을 하는 형태로 진행되었다.

빨리율 「멸쟁건도」에 의하면, 단사인 제도는 칠멸쟁법 중 하나인 현전비니(sammukhāvinaya, 現前毘尼)의 일환으로 실행되는 멸쟁법이다. 먼저 현전비니에 대해 살펴보자. 「멸쟁건도」에 의하면, 승가에서 발생할 수 있는 쟁사는 모두 4종이며, 각 쟁사의 내용에 따라 칠멸쟁법이 각각 적용된다. 4종의 쟁사란 언쟁(vivādādhikaraṇa, 言諍)·멱쟁(anuvādādhikaraṇa, 覓諍)·범쟁(āpattādhikaraṇa, 犯諍)·사쟁(kiccādhikaraṇa, 事諍)을 말하며, 칠멸쟁법이란 현전비니·억념비니(sativinaya, 憶念毘尼)·불치비니(amūḷhavinaya, 不癡毘尼)·자언치(paṭiññā, 自言治)·다인어(yebhuyyasikā, 多人語)·멱죄상(tassapāpiyyasikā, 覓罪相)·여초부지(tiṇavatthāraka, 如草覆地)를 말한다.11) 칠멸쟁법 중 현전비니는 가장 기본적인 멸쟁법으로 4종의 쟁사 가운데 유일하게 언쟁의 초기 단계에만 단독으로 적용되며, 그 외의 경우에는 현전비니에 다른 멸쟁법을 추가하는 형태로 이루어진다. 즉, 언쟁이 초기 단계에서 해결되지 못하면 현전비니+다인어(多人語)로 멸쟁이 이루어지며, 멱쟁의 경우에는 현전비니+억념비니(憶念毘尼) 혹은 현전비니+불치비니(不癡毘尼) 등의 방법으로 멸쟁이 이루어지는 식이다.

언쟁은 ‘붓다가 설한 교리나 계율의 해석을 둘러싸고 의견이 대립하여 논쟁하다 결국 분쟁으로 발전한 경우’를 가리킨다. 이는 승가 분열, 즉 파승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위험한 성격의 다툼이라고 할 수 있다.12) 이 언쟁을 다루는 멸쟁법이 바로 현전비니이다. 현전비니는 네 가지 조건을 갖추고, 쟁사의 해결을 도모하는 것을 말한다. 즉, 승가(僧伽, saṃgha)·법(法, dhamma)·율(律, vinaya)·사람(人, puggala)이다(Vin. Ⅱ: 93). 승가란 멸쟁을 시도하는 주체가 승가라는 점을 보여준다. 즉, 비구 간에 발생한 문제는 비구승가에서 비구들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이는 구체적으로는 세 가지 조건을 갖춘 화합 승가여야 한다. 첫째, 갈마를 성립시킬 수 있는 인원이 있어야 한다. 갈마의 종류에 따라 5명 혹은 10명으로 가능한 갈마도 있지만, 언쟁 등을 다루는 쟁사갈마는 20명 이상이 필요하다. 둘째, 동일한 현전승가에 속하는 비구들이 전원 참석해야 한다. 만약 불가피한 사정으로 참석이 어려운 자는 다른 비구를 통해 승가에 그 사실을 알리며 위임을 전달해야 한다. 셋째, 갈마를 하는 자리에는 자격이 안 되는 자들이 참석하고 있지 않아야 한다. 즉, 사미나 범계비구 등이다. 이들 조건을 갖추고 형성된 승가가 멸쟁을 시도해야 한다. 한편, 법과 율이란 붓다가 설한 법과 율에 근거해서 판결이 이루어져야 함을 의미한다. 위에서 소개한 바와 같이 삽바까미는 십사가 왜 비법인지 정확하게 율 조문에 의거하여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한편, 사람이란 쟁사갈마를 하는 자리에 문제의 당사자가 참석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Vin. Ⅱ: 94). 이 네 가지 조건을 갖추고 실행되는 갈마가 바로 현전비니이다.

십사 논쟁은 분명 언쟁에 속한다. 왜냐하면, 십사는 율의 해석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십사는 단지 율 조문을 어겼는가 아닌가 하는 범계 여부와 관련된 것이 아니다. 만약 범계여부를 묻는 것이라면 4종의 쟁사 가운데 멱쟁이나 범쟁으로 다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십사는 범계 여부가 아닌, 십사가 율의 조문에 비추어 볼 때 적법한가 아닌가 하는 ‘정법(淨法, kappa)’의 문제이다.13) 정법이란 일종의 편법이다. 원래는 율에 저촉하는 행위이지만, 현실적으로 실행이 어려운 상황이 발생했을 때 약간의 편법을 써서 그 행위를 율에 부합하게 만드는 것이다. 예를 들어, 비구는 초목에 손상을 가하면 안 되지만, 승원의 건축 등을 위해 벌목이 불가피한 경우에는 구족계를 받지 않은 재가신자나 사미 등에게 ‘이것을 아시오’ ‘이것을 원하오’ 등의 표현으로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여 원하는 것을 실행시킨다.14) 왓지족 출신의 비구들이 동발우에 물을 채워놓고 금전을 받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들은 비구가 금전을 받는 것이 율에 저촉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따라서 동발우와 물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금전을 받는, 말하자면 손으로 직접 받지 않는 방법으로 금전을 받은 것이다. 필시 웨살리와 같은 도심에서는 화폐의 유통이 발달해 있었기 때문에 이곳에 거주하는 비구들은 그 영향을 받아 금전을 보시받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금전 수납은 명확히 율에서 금지하는 행위이므로 이들은 자신들이 하는 행위의 정당성을 정법이라는 형태로 주장한 것으로 생각된다.

십사 논쟁이 언쟁에 속한다는 것은 이 쟁사가 최종적으로 단사인 제도를 통해 해결이 도모되었다는 사실로부터 보아도 명확하다. 「멸쟁건도」에 의하면, 언쟁이 발생하면 몇 가지 단계의 현전비니를 거치게 된다. 그 과정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Vin. Ⅱ: 94-95).

  • ①분쟁이 발생한 승가에서 멸쟁 시도

  •     ↓

  • ②보다 많은 수의 비구들이 있는 승가에 가서 멸쟁 의뢰

  •     ↓

  • ③단사인 제도에 의한 멸쟁 시도

언쟁이 발생하면 먼저 분쟁이 발생한 승가에서 쟁사갈마를 열게 된다. 동일한 현전승가의 구성원들이 모여 화합승가를 형성한 후 붓다가 설한 법과 율에 근거하여 분쟁 중인 비구들의 입회하에 해결을 도모하는 것이다. 이 단계에서 만장일치로 결론이 나면 좋지만, 이의를 제기하는 자가 있어 만장일치에 이르지 못할 경우가 있다. 이럴 때는 근처의 다른 현전승가에 가서 사태를 알린 후 자신들 대신 분쟁을 해결해 줄 것을 부탁하게 된다. 이것이 ‘②보다 많은 수의 비구들이 있는 승가에 가서 멸쟁 의뢰’라고 위에서 말한 단계이다. 직접적인 이익 관계가 없고, 인원도 많은 비구들에게 객관적인 입장에서의 판결을 요청하는 것이다. 멸쟁을 의뢰받은 근처 승가의 비구들은 분쟁이 발생하게 된 사정을 정확히 말해 줄 것, 그리고 자신들이 법과 율과 스승의 가르침에 근거하여 판단을 내렸을 때 이를 그대로 수용해 줄 것을 약속받은 후 분쟁을 맡게 된다(Vin. Ⅱ: 94-95). 이렇게 해서 멸쟁을 시도했는데, 논의 중에 비구들 사이에 논쟁이 이어져 수습 불가능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이럴 때 실행하는 것이 바로 단사인 제도이다. 즉, 1차적인 단계에서의 멸쟁이 실패하여 다음 단계로 넘어가 다른 승가에서 재차 멸쟁이 시도될 때 의견이 분분하여 결론을 내기 어렵다면 대표자를 선발하여 이들에게 판단을 맡기는 것이다. 이때 단사인으로 선발되는 비구들은 총 10가지의 자격 요건을 갖춘 자들 가운데 선발된다.15)

「멸쟁건도」에 의하면, 단사인은 다음 열 가지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첫째, 계를 구족하고, 둘째, 바라제목차의 율의(律儀)에 의해 보호받고 있으며, 셋째, 행(行)을 구족하여 사소한 죄에도 두려움을 보고 학처를 지니고 배우며, 넷째, 다문(多聞)으로 들은 바를 지니고 들은 바를 축적하고 있으며, 다섯째,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으며, 의미를 갖추고, 자구(字句)를 갖추며, 완전히 원만하고 청정한 범행을 찬탄하는 것과 같은, 그러한 제법(諸法)을 많이 듣고 지니며, 말로 능숙하게 표현하고, 마음으로 숙고하고, 견해가 통달하며, 여섯째, 양부(비구·비구니)의 바라제목차를 규칙과 그 의미로부터 상세히 잘 이해하고, 잘 분별하며, 철저히 구사하고, 잘 결정하며, 일곱째, 율에 있어 능숙하고 확고하며, 여덟째, 자타 두 파를 설득하고, 이해시키고, 관찰하게 하고, 보게 하고, 믿게 할 수 있으며, 아홉째, 쟁사의 발생과 지멸에 있어 능숙하며, 열째, 쟁사를 알고, 쟁사의 발생을 알고, 쟁사의 멸진(滅盡)을 알고, 쟁사의 멸진에 이르는 길을 알아야 한다(Vin Ⅱ: 95-96).

이 열 가지 조건에서 알 수 있듯이 승가의 쟁사를 해결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게 되는 비구는 율에 대한 해박한 지식뿐만 아니라, 스스로 실천하는 모습도 겸비해야 하며, 나아가 쟁사의 내용을 잘 파악하여 분쟁 중인 비구들을 설득하고 납득시켜 쟁사를 가라앉힐 수 있는 능력도 겸비해야 한다. 단사인 제도라는 멸쟁이 기능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이들이 구비한 이런 조건에 대한 믿음 때문일 것이다.

Ⅳ. 승가 쟁사 해결의 원칙

단사인 제도는 현전비니에 의한 1차 멸쟁이 실패하고, 2차 멸쟁으로 넘어갔는데, 이때 온갖 설들이 난무하여 조정이 어려울 때 승가에서 존경받는 비구들에게 판단을 맡기는 방식이다. 2차까지 넘어갔다는 것은 그 쟁사의 내용이 까다롭다는 점을 보여준다. 분쟁하는 내용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어려워서 해결이 어려울 수도 있고, 대립하는 양측의 감정이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어 조정이 어려울 수도 있다. 여하튼 조정이 어려운 쟁사의 경우 단사인 제도가 활용된다.16) 그런데 앞서 서론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승가의 멸쟁법은 ‘여법(如法)’과 ‘화합(和合)’이라는 두 가지 원칙을 고수한다. 멸쟁의 방법도 내용도 이 두 가지에 부합하지 않는 것은 승가의 멸쟁법이 아니다. 따라서 칠멸쟁법 하나하나에 이 두 가지 원칙이 담겨 있다고 보아야 하는데, 그렇다면 단사인 제도는 이 원칙들을 어떤 방법으로 실현하고 있는 것일까. 이하, 이 점을 고찰하며 멸쟁법으로서 단사인 제도가 갖는 의의를 살펴보자.

먼저 ‘여법’의 문제이다. 여법이란 ‘원칙’을 의미한다. 방법(형식)상으로도 내용상으로도 멸쟁은 반드시 붓다의 가르침에 부합하는 형태로 이루어져야 한다. 앞서 소개한 「멸쟁건도」의 기술에 십사 비법 판정의 과정을 비추어보면서 이 문제를 생각해 보자. 이 건도에 따르면, 십사는 언쟁에 속하는 쟁사이므로 현전비니가 적용되어야 한다. 첫 번째 단계는 사건이 발생한, 다시 말해 왓지족 출신의 비구들이 거주하고 있던 웨살리의 승원을 중심으로 한 현전승가 안에서 현전비니 만으로 해결이 먼저 시도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 사건의 경우에는 이를 실행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문제의 승가에서는 십사를 정법으로 판단하여 실천하고 있었으며, 이에 대해 외부에서 들어온 야사라는 비구가 홀로 이의를 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왓지족 출신의 비구들이 야사에게 거죄갈마를 실행하려 한 것을 보면 이 승가에서 현전비니가 이루어질 가능성도 없을뿐더러 설사 열린다 해도 제대로 된 현전비니가 적용될 가능성도 낮다. 이에 야사는 두 번째 단계로 건너뛰게 된다. 하지만, 첫 번째 단계의 현전비니가 생략된 상태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외부에서 구성된 승가가 쟁사갈마를 하는 것은 옳지 않다. 더구나 원인을 제공한 왓지족 출신의 비구들은 참석하지 않은 상태이다. 이 점을 의식하여 레와따장로는 쟁사가 발생한 곳으로 가서 멸쟁을 시도해야 한다며 비구들을 이끌고 웨살리로 간 것이다.

이 직후의 상황에 대해 「칠백건도」에서는 승가가 쟁사를 조정하려 했지만, 이때 많은 이야기들이 난무하여 명확하게 의미를 파악할 수 없었기 때문에 레와따가 단사인회를 구성하자고 제안했다고 한다(Vin. Ⅱ: 306). 필시 야사에게 동조하여 웨살리로 간 비구들과 웨살리 승원에 머물고 있던 왓지족 출신의 비구들이 모두 멸쟁을 시도하는 하나의 승가를 구성하게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왜냐하면, 레와따가 승가를 향해 단사인회를 구성할 것을 제안하고, 이에 양측에서 4명씩 비구들이 선발되었기 때문이다. 여기까지의 과정을 보면, 십사 비법 문제는 발생 환경에 따라 약간의 예외 조치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멸쟁건도」의 규정에 따라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방법상으로 ‘여법’이라는 조건을 충족시키고 있는 것이다. 여법한 과정을 거쳐 결론이 내려졌는데, 만일 갈마가 끝난 후 누군가 그 결론에 이의를 제기하며 문제 삼는다면 그 사람은 바일제죄를 저지르게 된다. 하지만, 만약 갈마를 실행하는 방법 자체에 문제가 있었다면 이의 제기가 가능하다. 이러한 경우 승가가 자신들의 판정에 오류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면, 다시 갈마를 실행할 수 있으며, 이전에 잘못된 갈마를 실행한 지사(知事)비구에게 죄를 묻게 된다(Vin. Ⅱ: 94, 히라카와 아키라(1953: 10)). 따라서 만약 레와따가 「멸쟁건도」의 규정을 어기고 야사를 지지하는 비구들끼리 갈마를 했다면, 그가 우려한 대로 왓지족 출신의 비구들은 이 갈마의 형식상 문제를 거론하며 그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이처럼 갈마는 형식상의 문제도 매우 중요하다.

이와 같은 갈마 실행 방법상의 문제와 더불어 내용상으로도 여법해야 하는데, 그것은 곧 붓다가 설한 법과 율에 근거하여 옳고 그름을 가려야 한다는 것이다. 「칠백건도」에 의하면, 단사인회가 구성되자 법랍 10년의 설계자(pātimokkhuddeska, 說戒者) 아지따(Ajita)는 조용한 왈리까(Vālika)원에 자리를 마련하였다. 그러자 레와따는 자신이 삽바까미와 십사에 대한 문답을 할 것이라며 대중들의 동의를 구한다. 즉, 대중들의 의견이 난무하여 혼란을 초래하지 않도록 조용한 곳에 단사위원들이 모인 가운데 레와따와 삽바까미가 문제의 십사에 대해 문답을 주고받는 것이다. 문답은 다음과 같은 형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레와따: “존사여, 염정(鹽淨)은 율에 비추어 합법적입니까?”

삽바까미: “존자여, 그 염정이란 무엇인가?”

레와따: “존사여, ‘소금이 없는 곳에서 먹어야지’라고 생각하며 뿔로 된 용기에 소금을 가지고 다니는 것은 합법적입니까?”

삽바까미: “존자여, 합법적이지 않습니다.”

레와따: “어디에서 거부되었습니까?”

삽바까미: “사왓티에서, 경분별에서입니다.“

레와따: “무엇을 어기는 것입니까?”

삽바까미: “저장식에 있어 바일제입니다.”

레와따: “존사들이여, 승가는 제 말에 귀 기울여 주십시오. 이 첫 번째 항목은 승가에 의해 판결되었습니다. 이 항목은 법에 어긋나고 율에 어긋나며 스승의 가르침을 떠나 있습니다. 이 첫 번째 주를 내려놓겠습니다.”

이와 동일한 방법으로 나머지 구사(九事)에 대한 문답도 이루어진다.17) 여기서 두 가지 점이 주목된다. 하나는 ‘염정은 합법적입니까’라는 불분명한 질문에 대해 ‘염정’의 정확한 의미를 물어 쟁사의 안건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삽바까미가 염정의 의미를 몰라서가 아니다. 「칠백건도」의 내용을 보면, 삽바까미는 이 쟁사에 본격적으로 가담하기 전에 이미 사나바시로부터 십사에 관해 듣고 나름대로 판단을 내리고 있던 상태이다(Vin. Ⅱ: 303-304). 따라서 그는 이미 염정의 내용을 충분히 알고 있었지만, 쟁사의 내용을 그 자리에 모인 장로들과 더불어 명확히 밝힌 후 판결을 내리기 위해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는 염정의 합법성을 묻는 레와따의 질문에 삽바까미가 왜 염정이 스승의 가르침에 어긋나는지 그 근거를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삽바까미는 법과 율에 대해 매우 해박한 지식을 지닌 자였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중요한 것은 추상적인 내용으로 쟁사를 해결하는 것이 아닌,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이 바로 여법의 내용이다. 율장에 제정된 멸쟁법을 통해 방법상 여법을 지향하고,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면서 옳고 그름을 가려 내용상 여법을 지향하고 있다.

이와 같이 쟁사갈마는 실행 방법도 결론을 내리는 내용상 근거도 붓다의 가르침에 부합하는 형태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런 원칙의 고수야말로 설사 다툼에서 졌다 하더라도 진 쪽이 큰 반항 없이 결과를 받아들이게 하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모든 쟁사가 이렇듯 명확하게 붓다의 가르침에 근거하여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갈마를 실행하는 형식상의 문제는 정해진 절차를 밟으면 되는 것이므로 비교적 준수하기 쉽지만, 내용상의 문제는 판단이 어려운 경우가 적지 않다. 십사 비법의 경우, 레와따와 삽바까미는 왓지족 비구들의 행동이 문자 상으로 율에 비추어 부합하는가 아닌가를 기준으로 옳고 그름을 가려내고 있다. 계율적인 문제는 ‘조문’이 있기 때문에 이 조문에 근거하여 판단하므로 비교적 용이한 편이다. 하지만, 계율적인 문제도 만약 조문화되지 않은 경우라면, 혹은 미묘한 교리적인 해석의 문제일 경우라면 명확히 근거를 제시하며 싸움을 종결시키는 것이 어려울 수 있다. 이런 미묘한 언쟁의 한 해결 방법으로 단사인 제도를 둔 것은 승가에서 존경받는 지도자들의 판단을 통해 승가의 화합을 유지하려는 의도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물론 이 경우에도 단사인들의 판단을 무조건 수용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아니다. 레와따와 삽바까미는 문답을 주고받으며 십사 하나하나의 항목이 왜 정법으로 인정될 수 없는지 명확하게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이를 지켜보며 다른 단사위원들 역시 그 의견의 옳고 그름을 확인하고 있다. 이렇게 모든 문답이 끝난 직후, 레와따는 이 사실을 승가에 통보하고, 삽바까미는 쟁사가 해결되었음을 선언한다. 여기서 승가란 십사 비법 쟁사와 관련하여 서로 대립하는 양측, 즉 야사쪽 비구들과 왓지족 출신의 비구들로 구성된 일종의 현전승가이다. 그리고 나서 레와따와 삽바까미는 단사인회에서 자신들이 했던 문답을 승가의 전원 앞에서 반복한다. 자신들의 멸쟁 근거를 공개하고 승가 전원의 동의를 얻고자 한 것이다. 여기서 단 한 명도 이의 제기자 없이 만장일치로 끝나야 이 쟁사는 최종적으로 멸쟁이 이루어진다. 만약 한 명이라도 이의를 제기한다면 이 쟁사는 그 다음 단계인 다인어(多人語)로 넘어가게 된다. 즉, 투표를 통해 다수의 의견을 채택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이 단계에서 투표를 행하는 사회자격의 행주인은 단사인회 등을 통해 이미 옳고 그름이 가려진 결론을 다수의 의견이 되도록 끌고 가야 하는 막중한 책임을 짊어지게 된다. 요컨대, ‘다수’라는 이름으로 ‘여법’이라는 원칙을 저버리지 않는 것이다. 이와 같이 단사인 제도 역시 멸쟁의 기반을 이루는 여법과 화합이라는 두 가지 이념을 추구하며 실행된다. 이 두 가지 조건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여법한 원칙을 상실한 멸쟁이 화합을 조성할 리 없으며, 화합을 저버린 원칙의 고수가 다툼을 가라앉혀 구성원을 평안한 상태에 머물게 할 리 없는 것이다.

한편, 광율(廣律) 등 율장 계통의 자료에서는 십사를 비법으로 판단하고 700명의 비구가 제2결집을 실행하는데서 이야기가 끝나지만, 스리랑카의 빨리 초기 역사서에서는 이 판결에 불만을 품은 이들이 따로 ‘대중부(大衆部, Mahāsāṃghika)’를 형성하여 분열했다고 전한다. 즉, 십사를 비법으로 판단한 측은 상좌부(上座部, Theravādin)이며, 이에 반기를 든 자들은 대중부이다. 그리고 이것이 불교사에서 발생한 최초의 분열이라 하여 근본분열이라고 한다.18) 하지만, 이 전승이 일부 텍스트에만 전해진다는 점, 또한 근본분열의 원인으로는 이 십사 외에 『대비바사론』 등의 설일체유부 계통의 전승에서 거론되는 대천(大天, Mahādeva)의 오사(五事) 주장 사건 및 대중부의 『사리불문경』에 전해지는 구율(舊律)의 개편 증광(增廣) 사건 등이 있다. 따라서 학자들 간에는 십사 사건이 역사서들이 전하는 것처럼 정말 근본분열의 원인이었는가에 관해서는 의견이 나뉜다. 이 점에 대해서는 지금으로서는 사실 여부를 가리기 힘들 것 같다.

Ⅴ. 결 론

멸쟁의 원어는 아디까라나 사마타(adhikaraṇa-samatha)이다. 즉, 승가 안에서 발생한 다툼을 가라앉혀 평안한 상태로 만드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멸쟁이라고 한역하기 때문에 단지 다툼을 소멸시킨다는 의미로만 받아들이기 쉽지만, ‘멸’에 해당하는 원어가 사마타라는 점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사마타는 샴(√śam)이라는 어근으로 이루어진 산띠(santi, skt. śānti)와 동의어로서 ‘적정(寂靜), 적멸(寂滅)’ 등을 의미한다. 즉, 모든 번뇌가 사라져 평안해진 상태를 가리킨다.

「멸쟁건도」에 의하면, 쟁사의 발생은 비구의 악한 개인적 성품이나 그가 갖고 있는 탐진치의 유무에 기인한다. 본고에서 중점적으로 다룬 언쟁의 경우, 6종의 언쟁의 원인·3종의 선하지 못한 원인·3종의 선한 원인 등 총 12가지를 원인으로 발생한다. 먼저 6종의 언쟁의 원인이란 비구의 성품이 ①분노하기 쉽고 원한을 가졌거나, ②위선적이고 악의적이거나, ③질투심이 강하고 이기적이거나, ④교활하고 정직하지 못하거나, ⑤나쁜 의도를 지니고 삿된 견해를 가졌거나, ⑥세속적이고 고집스럽고 버리기 어려운 경우이다. 한편, 3종의 선하지 못한 원인이란 탐·진·치가 있을 때, 3종의 선한 원인이란 탐진치가 없을 때를 각각 말한다(Vin. Ⅱ: 89-90). 즉, 분노하기 쉬운 등 개인적으로 악한 성품을 가졌을 때 다툼을 발생시켜 다른 비구들을 힘들게 하는 것이고, 탐욕스럽거나 사악하거나 어리석은 마음으로 또한 다툼을 발생시킨다. 또 때로는 탐진치가 없을 때도 다툼을 발생시킬 수 있다. 이 경우에는 주로 무지나 무관심이 논쟁을 키워가는 것으로 생각된다.

멸쟁이란 바로 비구의 마음속에 깃든 이런 번뇌들을 잠재우는 것이다. 그리고 이 번뇌를 잠재우는 것은 다툼을 발생시킨 비구만의 문제는 아니며, 그와 함께 생활하는 모든 비구들의 임무이기도 하다. 때로는 내 마음 속에 때로는 다른 누군가의 마음속에 불을 지피고 훨훨 타오를 번뇌를 항상 경계하며 서로를 교화해 가야 한다. 멸쟁은 단지 자신의 입장에서 옳고 그름을 가려 다툼을 소멸시키는 것이 아니다. 아디까라나 사마타라는 표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비구들의 마음속에 타오르는 갖가지 번뇌를 재빠르게 파악하고 가라앉혀 평안함을 유지하는 것이 바로 멸쟁이다. 이 평안함이 없다면 승가는 수행 공동체일 수 없다. 이런 점을 고려하며 승가의 쟁사 및 멸쟁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Footnotes

1) 멸쟁법이 여법과 화합이라는 두 가지 이념의 실천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사실은 특히 ‘多人語(yebhuyyasikā)’라 불리는 멸쟁법을 통해 구체적으로 확인 가능하다. 이 점에 관해서는 이자랑(2012: 1-41)을 참조 바람.

2) 칠백결집은 빨리율 외에 다음과 같은 율장 자료에서 폭넓게 확인된다. 『사분율』(T22: 968c-971c); 『오분율』(T22: 192a-194b); 『십송률』(T23: 450a-456b);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잡사』(T24: 411c-414b); 『마하승기율』(T22: 493a-c); 『비니모경』(T24: 819b-c) 등. 이 중 대중부 계통의 『마하승기율』을 제외한 나머지 자료는 전승 내용이 유사하다. 『마하승기율』에서는 당시 사건의 핵심으로 십사비법 논쟁인 아닌 五淨法, 九法의 序, 毘尼의 五事의 記를 전한다. 한편, 칠백결집은 빨리율의 주석서 및 『디빠왕사(Dīpavaṃsa, 島史)』, 『마하왕사(Mahāvaṃsa, 大史)』 등 스리랑카의 초기 빨리 연대기에도 전해진다. 주목할 것은 율장에서는 십사를 비법으로 판단하고 제2결집을 실행하는데서 이야기가 끝나지만, 『디빠왕사』와 『마하왕사』에서는 이 판결에 불만을 품은 이들이 따로 ‘대중부’를 형성하여 분열했다고 전한다. 즉, 십사를 비법으로 판단한 측은 상좌부이며, 이에 반기를 든 자들은 대중부이다. 이를 최초의 분열이라 하여 근본분열이라고 한다(Smp.I: 33-37; Dpv, 제4장 vv. 47-53, 제5장 vv. 16-38; Mhv, 제4장 vv. 1-66, 제5장 vv. 1-4).

3) 이 점과 관련하여 빨리율 등의 율장에서는 야사가 왓지국을 유행하다 우연히 웨살리의 승원으로 들어갔다고 전하지만, 빨리율의 주석에서는 왓지족 출신의 비구들이 십사 비법을 실천하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듣고 일부러 문제의 승원을 찾아갔다고 한다(Smp.I: 33-34).

4) “비구가 금은을 받는다면, 혹은 받게 한다면, 혹은 놓여 있는 것을 受用한다면, 니살기바일제[捨墮]가 된다(yo pana bhikkhu jātarūparajataṃ uggaṇheyya vā uggaṇhāpeyya vā upanikkhittaṃ vā sādiyeyya, nissaggiyaṃ pācittiyan ti.)” (Vin. III: 237).

5) 하의갈마에 관해서는 빨리율 소품 「갈마건도」(Vin. II: 15-21)에 상세히 규정되어 있다.

6) 하의갈마를 받은 비구가 문제의 재가신자를 찾아갈 때 혼자 갈 용기가 없다면 함께 갈 비구를 청할 수 있다(Vin. II: 19).

7) 3종의 거죄갈마에 관해서는 Vin. II: 21-27을 참조. 특히 불사악견거죄갈마에 관해서는 바일제 68조와 69조에서도 관련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Vin. IV: 133-138).

8) 한편, 이 점과 관련하여 「칠백건도」에서는 야사의 행동에 대해 왓지족출신의 비구들이 “야사는 우리들이 선발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재가신자에게 널리 설하였다. 그에게 거죄갈마를 하자.”라고 표현하고 있다(Vin. II: 298). 이를 보면 왓지족출신의 비구들이 야사에게 거죄갈마를 실행한 이유는 승가가 야사를 설법자로 선발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재가신자를 대상으로 법을 설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3종의 거죄갈마가 부과되는 이유에 부합하지 않는다.

9) 다른 비구들은 불공수의 벌을 받은 비구와 보시 받은 음식이나 물건 등을 공유해서도 안 되며, 법을 가르치거나 배우거나 해서도 안 된다. 또한 포살·자자·갈마 등의 승가 행사를 함께 해서도 안 된다(Vin. IV: 137-138).

10) 이 말이 구체적으로 어느 지역을 가리키는가를 둘러싸고 학자들 간에 견해의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Malalasekera는 Pāṭheyyakā를 Pāveyyakā와 같은 의미로 생각하여 Pāvā의 비구라는 의미로 생각하지만(DPPN, 1974: 195), 히라카와 아키라(平川彰, 1960: 689-690)와 Bareau(1955: 79)는 Pāvā나 그 거주자들이 웨살리결집의 역사에서 어떤 역할을 했음을 보여주는 기술이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 견해에 반대한다. 분명 Pāvā는 웨살리에서 북쪽으로 올라가 꾸시나가리에 이르는 중간에 있으며 東國의 일부분이므로 이 결집에서 Pācīnaka와 대립하는 측이라고 간주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 같다.

11) 본고의 주제는 단사인 제도 및 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현전비니라는 멸쟁법이므로 4종의 쟁사 및 칠멸쟁법에 대한 전반적인 설명은 생략한다. 구체적인 내용 및 상호 관계에 대해서는 모리 쇼지(森章司, 2010). 이자랑(2005: 33-65)을 참조 바람.

12) 「멸쟁건도」에서는 언쟁을 “비구들이 ‘이것은 법이다, 법이 아니다, 율이다, 율이 아니다, 여래가 설하신 것이며 말씀하신 것이다, 여래가 설하지 않은 것이며 말씀하지 않으신 것이다, 여래가 행한 것이다, 여래가 행하지 않은 것이다, 여래가 제정한 것이다, 여래가 제정하지 않은 것이다, 죄이다, 무죄이다, 輕罪이다, 重罪이다, 有餘罪이다, 無餘罪이다, 麤罪이다, 非麤罪이다’라고 하는 등의 18가지 사안을 둘러싸고 말다툼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Vin. II: 88). 그런데 이들 18가지 사안은 「파승건도」에서 파승의 원인으로 그대로 언급된다(Vin. II: 204).

13) 가타야마 이치로(片山一郎, 1988, 1989)는 경장과 율장 등에서 정법을 의미하는 kappiya의 용례를 검토한 후, 이 말이 불교의 최초기 단계에서부터 이미 배양되고 보존되어 온 개념으로, 초기에는 사항의 가부를 판단하는 상응한 기준을 의미했으나, 제1결집에서 결정된 ‘佛制不改變’의 원칙 결정을 계기로 특수한 의미를 띠는 술어로 발전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14) “이것을 아시오, 이것을 주시오, 이것을 옮기시오, 이것을 원하오, 이것을 淨한 것으로 하시오”라고 말하는 것은 무죄이다(Vin. IV: 35)(anāpatti imaṃ jāna imaṃ dehi imaṃ āhara iminā attho imaṃ kappiyaṃ karohīti bhaṇati.).

15) 「칠백건도」에 의하면 분쟁 중인 양쪽 그룹에서 각각 4명씩 단사인을 선발하고 있는 한편, 「멸쟁건도」에서는 단사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열 가지 조건을 갖춘 비구를 선발해야 한다고 기술한다. 따라서 이 두 건도의 내용이 서로 모순된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이노우에 히로후미(2009: 252)). 하지만 십사 비법 판정을 위해 단사인으로 선발된 이들이 이런 조건을 갖춘 자들이었을 가능성을 부정하는 언급 또한 없다. 따라서 굳이 이를 모순으로 볼 필요는 없을 것이다.

16) 단사인 제도를 거쳤음에도 이에 이의를 제기하는 자가 있어 결론이 나지 않을 경우에는 최종적으로 현전비니+다인어라는 멸쟁법이 적용된다. 즉, 언쟁을 해결하는 마지막 방법이다. 다인어는 일종의 다수결이지만, 멸쟁법으로서의 다인어는 일반사회에서 실행되는 다수결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이 점에 대해서는 이자랑(2012)을 참조 바람.

17) 십사의 구체적인 내용에 관해서는 가나쿠라 엔쇼(金倉圓照, 1960), 가타야마 이치로(片山一郞, 1990), 사토 미츠유(佐藤密雄, 1972: 595-609) 등을 참조 바람.

18) 이들 자료에 관해서는 본고의 주 2)를 참조 바람.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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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PPN: Malalasekera, G. P. 1974. Dictionary of Pāli Proper Names, vol.2. London: Pāli Text Socie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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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pv: Oldenberg, H. 1992. The Dīpavaṃsa -an Ancient Buddhist Historical Record-, 1st ed. 1879; New Delhi: Gayatri Offset Press.

3.

Mhv: Geiger, W. 1958. The Mahāvaṃsa, 1st ed. 1908; London: Pāli Text Socie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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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D: Rhys Davids, T. W. & W. Stede. 1921-25. The PTS’s Pali-English Dictionary. London: Pāli Text Socie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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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p: Samantapāsādikā. Pāli Text Socie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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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n: Vinayapiṭaka. Pāli Text Socie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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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 대정신수대장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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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倉圓照(가나쿠라 엔쇼). 1960. “十事非法に対する諸部派解釋の異同 -特に諸律における十事各項理解の比較-.” 『中野義照敎授古稀記念論文集』. 京都: 內外印刷株式會社: 1-30.

9.

片山一郞(가타야마 이치로). 1988. “パーリ佛教における相對的基準[Ⅰ] -kappiyaの原義-.” 『駒澤大學佛教學部論集』 19: 492-510.

10.

片山一郞(가타야마 이치로). 1989. “パーリ佛敎における相對的基準[Ⅱ] -kappiyaとニカーヤ-.” 『駒澤大學佛教學部 研究紀要』 47: 252-268.

11.

片山一郞(가타야마 이치로). 1990. “十事(dasa vatthūni)について.” 『パーリ學佛敎文化學』 3: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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森章司(모리 쇼지). 2010. “サンガにおける紛爭の調停と犯罪裁判.” 『中央學術硏究所紀要』 モノグラフ編, No.16, 論文20 (http://www.sakya-muni.jp):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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佐藤密雄(사토 미츠유). 1972. 『原始佛敎敎團の硏究』. 東京: 山喜房佛書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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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랑. 2005. “멸쟁법을 통해서 본 승단의 쟁사 해결 방법 – 빨리율 「멸쟁건도」를 중심으로-.” 『승가화합과 한국불교의 미래』. 서울: 혜민기획: 3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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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랑. 2012. “「멸쟁건도」의 다수결 원칙(yebhuyyasikā)을 통해 본 승가 분쟁 해결의 이념.” 『선문화연구』 12: 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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平川 彰(히라카와 아키라). 1960. 『律藏の硏究』. 東京: 山喜房佛書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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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reau, A. 1955. Les Premiers Conciles Bouddhiques, Par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