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논문

포스트코로나시대의 종교환경변화와 대응전략

정승안 *
Seung-an Jung *
Author Information & Copyright
*동명대학교 선명상치유학과 조교수
*Assistant Professor, Tongmyong University

© Copyright 2023 Institute for Buddhist Studies. This is an Open-Access article distributed under the terms of the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Non-Commercial License (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3.0/) which permits unrestricted non-commercial use, distribution, and reproduction in any medium, provided the original work is properly cited.

Received: Dec 03, 2023; Revised: Dec 15, 2023; Accepted: Dec 20, 2023

Published Online: Dec 31, 2023

국문 초록

2019년 12월 중국에서 처음 시작되어 세계로 확산되었던 COVID-19 pandemic상황은 몇 년이 지나지 않았지만 코로나 이전과 이후로 명확하게 대비되는 다양한 흔적들을 남기며 마무리되었다. COVID-19 pandemic과 종교환경의 변화에 있어 우선적으로 살펴봐야 할 것은 정보화와 세계화가 가져온 시대변화와 그 사회적 결과이다.

세계화는 2000년대 이후 세계적인 차원에서의 지정학적인 갈등과 인플레이션, 이로 인한 경제침체의 심화로 인해 개별국가의 이익을 위한 보호무역주의와 이기주의가 표출됨으로써 지속가능개발에 대한 국제적 협력과 관심의 어젠다는 위협 당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맞이한 COVID-19 pandemic 상황은 질병을 둘러싼 대응을 주관하는 세계보건기구(WHO)의 역할과 영향력에 대한 세계적인 관심과 역할에 대한 대응과 더불어 상호의존적인 국제협력에 기반한 세계화의 시대가 오히려 이기적인 국가이익을 위한 견제와 갈등의 장으로 전락했다는 평가를 받는 계기가 되었고, 이른바 ‘세계화시대의 종말’이라는 논의들까지 등장하였다. 또한 기존의 세계화의 개념을 넘어 재세계화(Re-globalization)의 필요성도 언급된다.

COVID-19 pandemic을 거친 오늘날의 사회적 상황에서 종교와 사회와의 관계에 대한 관심과 연구는 결국 종교와 사회와의 만남으로 이어진다. 종교의 사회적 기능과 그 역할에 대해서 많은 문제제기를 하고 있는 종교사회학적 관심에도 관심을 둘 필요가 있다. 2000년대에 접어들며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와 종교의 관계에 대한 다양한 논의들이 나타났다. 신자유주의와 종교문화의 상품화현상에 대한 연구들에서처럼 일반적인 종교사회학적 연구에서는 ‘불황기에는 종교적 관심이 늘어나고 경제성장이 종교에 대한 관심을 감소시킨다’는 결과에 이르기까지 종교와 세계화에 대한 다양한 논의들이 있다. 종교환경의 변화는 세계화의 양상과 맞물리며 영향을 받고 있다. 우리가 종교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종교외적인 환경의 변화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이다.

불교의 사회적 실천에 대한 논의를 광범위하게 언급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의 사회적 기능에 대한 관심을 통해 환기해 본다면, 불교 역시 인간이 가진 고통과 인간이 처한 현실의 고통이나 문제를 해결하는데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결국 신자유주적인 세계화의 가장 본질적인 한계는 바로 인간 욕망충족을 위한 논리가 사회와 경제를 설명하는 가장 주된 논리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서 현대자본주의 문명의 본질적인 위기와 함께 불교적 성찰을 통한 대안제시와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 나가야 하는 이유이다.

Abstract

The COVID-19 pandemic, which first began in China in December 2019 and spread to the world, ended with various traces of clear contrast before and after COVID-19, although a few years later. In terms of COVID-19 pandemic and changes in the religious environment, the first thing to look at is the changes in the times brought about by information and globalization and its social results.

Since the 2000s, globalization has threatened the agenda of international cooperation and interest in sustainable development as protectionism and selfishness have been expressed for the benefit of individual countries due to geopolitical conflicts, inflation, and the resulting deepening economic downturn. The COVID-19 pandemic situation in the midst of this has served as an opportunity for the era of globalization based on interdependent international cooperation to be evaluated as a place of checks and conflicts for selfish national interests, along with the response to the role and influence of the World Health Organization (WHO) in charge of responses to diseases. The so-called "end of the globalization era" has emerged. The need for re-globalization beyond the existing concept of globalization is also mentioned.

In today's social situation through COVID-19 pandemic, interest and research on the relationship between religion and society eventually lead to encounters with religion and society. It is also necessary to pay attention to the sociological interest in religion, which is raising many questions about the social function and role of religion. Entering the 2000s, various discussions about the relationship between neoliberal globalization and religion appeared. As in studies on the commercialization of neoliberalism and religious culture, there are various discussions on religion and globalization in general sociological studies, ranging from the result that 'religious interest increases and economic growth decreases interest in religion during recessions'. Changes in the religious environment are affected in conjunction with aspects of globalization. This is why we should pay attention to changes in various non-religious environments affecting religion.

There is a limit to mentioning the discussion of Buddhism's social practice extensively. Nevertheless, it is clear that Buddhism can also contribute to solving the suffering that humans have and the suffering or problems they face in reality, if we evoke it through interest in the social function of religion. After all, the most essential limitation of neoliberal globalization is that the logic for satisfying human desires has not deviated from the main logic that explains society and the economy. This is why it is necessary to find new possibilities and suggest alternatives through Buddhist reflection along with the essential crisis of modern capitalist civilization.

Keywords: COVID-19 Pandemic; 신자유주의; 종교환경; 불교; 성찰성
Keywords: COVID-19 Pandemic; Neoliberalism; Religious Environment; Buddhism; Reflection

Ⅰ. COVID-19 Pandemic, 세계화에 대한 인식의 재조명

2019년 12월 중국에서 처음 시작되어 세계로 확산되었던 COVID-19 pandemic 상황은 몇 년이 지나지 않았지만 코로나 이전과 이후로 명확하게 대비되는 다양한 흔적들을 남기며 마무리 되었다. 한국정부도 2023년 5월, ENDEMIC을 선언하고 ‘일상으로의 복귀’를 선언하였다. 위드코로나와 함께 떠나지 못했던 여행과 이루어지지 못했던 만남들을 위한 분주한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는 즈음이다.

COVID-19 pandemic과 종교환경의 변화에 있어 우선적으로 살펴봐야 할 것은 정보화와 세계화가 가져온 시대변화와 그 사회적 결과이다. 일반적으로 세계화란 ‘세계가 하나의 상호작용 단위, 하나의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계가 점차 시간적, 공간적으로 압축되고, 이웃 나라의 문제가 곧바로 자신의 문제가 되고 있으며, 우리들의 삶을 결정하는 주요 문제에 대한 대응이 국내에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국제적으로 이뤄지고, 경제적 활동이 국가적 경계를 완전히 초월하게 되고 있는 시대적 흐름을 지칭한다. 이러한 세계화의 과정은 서로 다른 많은 나라들 사이에 높이 쌓여있던 국경의 장벽을 허물었다. 또한 개별국가의 자율성에 대해 이웃 나라, 무엇보다도 선진자본주의 국가 또는 초국적인 자본의 영향력이 매우 강하게 영향을 미칠 수 있게하였다. 지역블럭을 강화하는 지역화는 비슷한 여건과 조건을 갖춘 세계적인 지역단위의 시장들이 통합되는 것에서 출발하였다. 결과적으로 세계적인 차원에서의 시장통합과 지역화가 진행된 것이다. 미국과 캐나다를 중심으로 하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를 시작으로 유럽의 EU, 아시아의 ASEAN과 APEC은 이러한 세계적인 차원에서 진행된 블록화와 세계시장통합의 대표적인 양상에 주목하는 논의가 세계화의 상징으로 부각되어왔다. 이러한 세계화는 비가역적인 현상이 되었다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렇듯 세계가 하나의 단일한 네트워크이자 사회체계로 통합되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1995년에 설립된 세계무역기구(WTO)를 시작으로 등장했던 많은 국제기구들은 세계화의 상징이었다. IMF와 IBRD, WHO와 같은 국제기구들은 세계적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이러한 논의에 힘입어 지속가능한개발(Sustainable Development)은 세계화시대의 국가적 대응과 협력의 공통관심사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이러한 세계화의 상징은 2000년대 이후 세계적인 차원에서의 지정학적인 갈등과 인플레이션, 이로 인한 경제침체의 심화로 인해 개별국가의 이익을 위한 보호무역주의와 이기주의가 표출됨으로써 지속가능개발에 대한 국제적 협력과 관심의 어젠다는 위협 당해 왔다. 이러한 가운데 맞이한 COVID-19 pandemic 상황은 질병을 둘러싼 대응을 주관하는 세계보건기구(WHO)의 역할과 영향력에 대한 세계적인 관심과 역할에 대한 대응과 더불어 상호의존적인 국제협력에 기반한 세계화의 시대가 오히려 이기적인 국가이익을 위한 견제와 갈등의 장으로 전락했다는 평가를 받는 계기가 되었다. 이른바 ‘세계화시대의 종말’이라는 논의들까지 등장한 것이다. 이와 더불어 기존의 세계화의 개념을 넘어 재세계화(Re-globalization)의 필요성도 언급된다.

COVID-19 pandemic은 지구촌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과 세계인식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국경이 폐쇄되고 여행이 제한되었고, 무역은 감소했다. 이로 인한 경제위기는 일상생활과 생존의 위기를 불러왔고, 취업률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시대에서는 자급자족과 자국산업 보호를 위한 국가의 역할이 더욱 강조되는 모순적인 양상도 나타난다. 세계화로 인한 긍정적인 측면에 주목하는 논의들만큼이나 위기와 부정적, 전염성의 강화라는 측면에 주목하는 논의들도 늘어나고 있다. COVID-19 pandemic이 오히려 세계화의 중요성을 더욱 보여주고 있고, 글로벌 협력과 연대가 전염병과 세계적인 위협에 대처하는 데 필수적이라는 주장만큼이나 자국의 이익을 위한 보호조처와 여행제한을 통한 세계적인 경제위기가 초래된 것이 그 반증이다. 결과적으로 ENDEMIC을 맞이한 세계사회의 미래는 코로나 이전과는 매우 다르게 진행될 것이며, 이 파급력은 세계경제와 정치, 문화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기에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다양한 주장들도 늘어나고 있다.

세계화와 함께 증대하는 문화적 교류와 세계화의 체험들은 개인들로 하여금 새로운 일상과 경험의 폭을 확장시켰다. 이에 따른 현대인들의 심성구조가 변화했다는 사실은 이제 전통적인 관점과 논의의 틀로 세계사의 전환과 문명 그리고 현대인의 일상생활을 바라보는 것이 한계에 봉착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새로운 관점과 패러다임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접근하는 것이 현대인들에게 시급하게 요청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세계화와 정보통신혁명을 통한 4차 산업혁명이라는 세계사회의 구조적 변화와 코로나펜데믹의 연장선 위에서 종교환경을 둘러싼 다양한 변화와 변동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세밀하게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세계화는 다른 어느 영역보다 종교 환경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세계화로 인해 사람들은 서로 더 쉽게 소통하고 교류할 수 있도록 했으며, 이는 종교의 확산과 전파 그리고 성장의 동인으로 이어졌다. 또한 세계화는 세계적인 차원에서의 종교적 관용과 이해를 증가시키는 데도 기여했다. 반면에 종교적 갈등과 폭력의 증가로 이어지기도 한다. 세계화로 인해 많은 사람들은 서로 다른 종교와 문화에 노출되었고, 이는 편견과 적대감으로 인한 갈등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또 세계화는 종교 간의 세력경쟁과 선교를 둘러싼 갈등, 전쟁으로도 이어졌다. 이는 한정된 재화와 자원을 놓고 벌이는 각축과 다름없는 치열한 ‘경쟁’의 과정이었다. 이렇듯 세계화가 종교환경에 미친 영향은 단일 차원의 설명으로는 그 해답을 찾을 수 없는 복합적인 과정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렇듯 세계화가 종교환경의 변화에 미친 영향은 매우 복합적이다. 종교의 세계적 확산과 성장에 기여한 측면도 있지만, 세계적으로 종교간 갈등이나 대립, 폭력적인 양상들의 증가도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물론 이에 따른 종교적 포용과 이해를 늘려가야 한다는 다양한 지적들도 등장한다. 이렇듯 세계화와 종교위기의 관계에 대해서도 논쟁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위에서 살펴본 대로 세계화의 진행과정은 종교의 위기의 배경적 원인임에 틀림없지만, 동시에 종교의 확장과 성장에는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였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양면적 속성을 지녔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오늘날 세계화된 한국사회의 문제를 바라보는 데 있어서 이러한 세계화에 대한 이해와 고려가 필수적인 이유이다.

Ⅱ. 코로나 시대 이전의 종교지형과 종교사회학의 논의

COVID-19 pandemic을 거친 오늘날의 사회적 상황에서 종교와 사회와의 관계에 대한 관심과 연구는 결국 종교와 사회와의 만남으로 이어진다. 종교의 사회적 기능과 그 역할에 대해서 많은 문제제기를 하고 있는 종교사회학적 관심으로 이어지는 것이 자연스럽게 여겨지는 이유이다.

종교의 라틴어 어원은 Religio이다. 영어로는 Religion이다. Religare가 다시 묶다는 의미라면 속박, 구속한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절대적 존재인 신과 인간을 잇는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초월적 존재와 나와의 관계가 올무에 묶인 관계와 같다는 것이다. 기도, 예배, 봉헌, 제사와 같은 행위들이 의례로써 제도화되어 있다는 의미에는 결과적으로 복종이라는 의미도 포함된다. Religion을 종교(宗敎)라는 의미로 번역한 것은 일본이 외국과의 관계를 맺으면서 Religion의 번역어가 필요했기 때문일 것이다. 산스크리트어로는 싯단타 데사나(Siddhanta Desana)인데, 이를 한역하였다. 싯단타(Siddhanta)는 ‘근본’에 해당하는 말이다. 이를 한역하며 으뜸가는 가르침의 의미인 종(宗)으로 번역한 것이다. 그러므로 근본이 되는 가르침, 으뜸의 가르침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한역으로 된 이러한 종교(宗敎)에 대한 의미부여와 Religion은 그 의미에서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듯 종교에 대한 정의가 ‘종교의 본질이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제시하는 것이라면 사실상 사회학에서는 종교에 대한 정의를 회피해왔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러므로 종교 그래서 사회학은 종교인가? 아닌가의 구분선에서 경계선을 지적하는 것이 종교 정의의 목표(오경환, 1990: 41)라고 이해되어 왔다는 지적은 충분히 의미있다. 이러한 논의는 막스 베버(M. Weber)가 ‘종교의 본질은 우리의 관심사가 아니다. 우리는 특정 사회 행위의 조건과 결과에 대한 연구를 목표로 삼기 때문이다(Max Weber, 1922: 1)’는 기술에서부터 시작하여, 뮐러(M. Muller)가 종교를 ‘언어의 질병’이라고 언급한 것이나, 마르크스(K. Marx)가 ‘허위의식’이라고 규정한 것들에까지 이어진다. 이는 20세기 초의 종교에 대한 사회학적 논의에 주목하였던 짐멜(G.Gimmel)이 ‘현재까지 아무도 모호하지 않고 동시에 충분히 포괄적이고 종교가 본질적으로 무엇인지 단번에 말해주는 정의를 내놓지 못하였다(Georg Simmel, 1905: 359-376)’는 논의에 이르기까지 쟁점이 되어 왔다. 이후 종교사회학에서는 종교를 실체적(substaintive) 정의1)와 기능적(functional) 정의2)로 나누어 설명해 왔다. 실체적인 정의에서는 ‘성스러움의 체험’이나 ‘교리’, ‘의례’, ‘교단’ 또는 ‘상징’과 같은 종교경험의 표상에 주목하였다. 이에 반해 기능적으로 종교를 정의하려는 연구자들은 종교가 개인적인 차원이나 사회적인 영역에서 어떠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지에 주된 관심을 두었다. 이들 기능들 가운데에 종교적인 것과 아닌 것의 의미의 차이에 주목하거나, 구분, 경계선을 찾아 나섰던 것이다. 종교사회학의 선구자였던 뒤르케임(E.Durkheim)의 연구3)나 다양한 문화인류학적 탐색들이 여기에 해당할 것이다. 그러므로 일반적으로 종교를 실체적으로 정의했던 사람들의 논의가 주가 되지만, 종교의 의미를 이해하고 살펴보기 위해서는 그 사회적, 기능적 의미에 대해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물론 사회변동과 사회발전에 기여하는 수많은 변수들에 대한 연구에서 종교가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를 대표하는 연구가 근대 자본주의 체제의 형성에 중요한 정신적 자산이자 원천으로서의 지위와 역할을 담당했던 프로테스탄트의 윤리의 사회적 역할에 있었다는 막스 베버(M.Weber)의 언명이래로 종교와 사회, 사회변동의 문제는 종교사회학의 가장 중요한 연구대상 가운데 하나로서의 위치를 차지해왔다. 근대성의 형성과정에서부터 현대사회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회변화와 위기, 사회변동과 발전과의 관계에 대한 종교사회학적 연구들이 줄을 잇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베버의 종교사회학적 관심은 사회학적 관점에서의 종교에 대한 접근의 일반적 모델을 제시하였다. 한국의 근대성의 형성과 사회발전에 기여한 종교의 역할을 살펴보는데 있어서도 베버의 이러한 논의들은 주류적 위치에서 그 유효성의 효과검증에 주력해 왔다. 무엇보다도 종교인구, 종교계의 사회적 참여와 활동, 흐름들을 고찰함으로써 종교의 발달사를 살펴보는 것은 개신교의 성장사에 집중하는 것으로 갈음되어 왔다. 경제적 조건과 계층적 상황, 다양한 변수들 그리고 종교의 조직적 측면에 대한 고려에 주목하는 베버주의적인 종교사회학적 논의들은 여전히 중요한 방법론적 틀에서도 주류의 위치를 점하고 있다. 종교와 비종교의 구분으로는 한계가 있다지만 본래적인 의미의 종교라는 형식의 틀에 부합하는 개신교나 천주교의 주된 관심과 일치해 왔다. 그러므로 이러한 한국에서의 종교사회학은 서구적 관점에서 한국사회를 바라보는 오리엔탈리즘적 관점이 그대로 관철되어 왔다는 비판을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더구나 오늘날 맞이하고 있는 현대사회와 일상의 위기상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전통적인 종교의 기능적인 측면과 개념적인 틀만으로 설명하기에는 그 변화상이 너무도 복합적이고 이론적 자원은 한계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도 종교의 발전을 합리성의 증대와 발전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는 베버나 로버트 벨라(Robert Bellah)의 논의들을 통해 접근하게 되는 종교발전과정에 대한 관심은 합리성의 증대와 발전(evolution)에 주목하게 된다. 합리성이 증대되어 갈수록 신과 인간의 거리가 합리적인 재구성의 과정을 거친다는 논의는 베버의 논의와 본질적으로 이어지는 논의이다. 인간의 사회적 활동과 행위가 전통주의적인 성격에서 벗어나 합리성의 증대를 통해 나아가고 있다는 이러한 합리성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럽게 종교의 본래적 기능보다는 종교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데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기 마련이다. 최근 들어 종교를 자유로이 ‘선택’하고 ‘소비’하는 행태에 주목하는 ‘합리적 선택’의 관점, 종교를 ‘종교시장’의 영역에서 어떻게 소비되고 있는가에 관심을 두는 것도 이러한 측면에서 이해된다. 종교현상을 ‘합리적 선택(rational choice)’의 과정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신앙의 과정이 시장의 상황과 조건에 의해 결정된다는 논의는 상품으로서의 종교에 대한 소비과정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종교현상에 대해서도 한 개인의 근본적인 의미체계의 변화와 함께 일어나는 자아의 변화과정을 ‘회심’(장진원, 2010: 211)이라는 개념틀로 바라보는 논의들도 등장한 지 오래이다. 물론 이는 이른바 ‘뉴에이지(New Age)’운동이라 일컬어지던 1990년대의 ‘영성’운동들의 관심에서처럼 인간을 영적인 존재로서 주목하고 논의하며, 대중문화와의 접목을 통한 ‘명상’에 대한 관심들도 이와 관련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는 지점이다.

그러나 여전히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주류적 위치를 점하고 있는 종교사회학적 관점에서는 이른바 동양의 종교, 즉 불교나 유교, 도교, 무속과 같은 종교 현상들에 대해서는 도저히 이해될 수 없고, 받아들일 수 없는 이른바 비합리적인 인식, ‘미신’이라는 영역에서 접근하는 태도들이 변하지 않고 있다. 종교를 법적으로 규정하고자 하는 논의를 제외한, 사회학적 정의에서처럼 종교를 ‘신(神)’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속박된 그 어떤, 실체적 의미에 주목한다면, 동양의 종교에 해당하는 류들은 여전히 ‘종교’의 범주에 가까이 가기에는 더욱 어려워진다. 문제는 종교인가 아닌가?의 문제가 아니라, ‘종교성’의 논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종교 아닌 종교(F. Spiegelberg)’의 논의나 ‘무종교의 종교’에 대한 논의에서처럼 ‘성스러운 것’과 ‘속스러운 것’의 분리를 통한 종교의 개념정의에서 벗어나 종교성 자체에 천착하며, 오히려 현세적이고 현실적인 일상과 삶의 문제에 대한 성찰성에 차라리 가깝게 이해하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다.4) 오늘날 종교사회학의 많은 관심이 ‘이단’이냐? 아니냐의 상황에 쟁점이 집중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하면 이러한 분석은 더욱 현장감 있게 다가오게 된다. 그러므로 이러한 전통적인 종교사회학적인 논의들에서 주목해왔던 종교와 종교현상에 대한 관심으로는 오늘날, 포스트코로나시대의 급변하는 현대사회의 위기와 다양한 종교양태들의 실상을 내밀히 살펴보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조건에서 세계화가 종교 환경의 변화에 미치는 영향은 위에서 살펴본 대로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변화의 양상과 맞물려 있다. 오늘날과 같은 대중사회에서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고등교육을 마친다. 과학적 방법론에 근거한 교육의 증가는 종교성의 형성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정치적 자유가 없던 권위주의적 통치의 기간에는 언론의 통제로 인한 공동체를 통한 소통과 차별에 대한 저항이 종교적 관심과 맞물리며 표현될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과 같은 다양한 이념의 각축과 정치편향적인 종교적 활동의 표출은 대중의 무관심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더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보다도 경제적 환경의 변화가 더욱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2000년대에 접어들며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와 종교의 관계에 대한 다양한 논의들이 나타났다. 김항섭(2001: 340)의 신자유주의가 미친 영향에 대한 논의나 우혜란(2008: 91-130)의 신자유주의와 종교문화의 상품화현상에 대한 연구들에서처럼 일반적인 종교사회학적 연구에서는 ‘불황기에는 종교적 관심이 늘어나고, 경제성장이 종교에 대한 관심을 감소시킨다’는 결과에 이르기까지 종교와 세계화에 대한 다양한 논의들이 있어 왔다. 이러한 논의들은 결과적으로 ‘경제적 양극화 문제는 종교인구의 감소에 기여’하고 있고, 이러한 종교환경의 변화는 세계화의 양상과 맞물리며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우리가 종교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종교외적인 환경의 변화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이다.5)

오늘날 이와 관련해서 쟁점으로 떠올랐던 것은 세속화에 대한 오래된 논쟁이었다. 일반적으로 세속화가 근대성과 합리성의 증대로 인한 비종교적 가치나 세속적인 제도로 변화되어가는 과정을 지칭하는 말이라고 했을 때, ‘세속화(secularization)’는 종교의 영향력과 중요성의 감소를 설명하는 대표적인 사례로 언급되어 왔다. 이렇듯 현대사회에서 세속화를 통한 종교의 영향력이 약화되어가고 있다고 보는 주장들의 이면에는 사회적 복합성의 증대가 주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예를 들면, ‘이민’의 증가나 ‘도시화’가 대표적이다. 이민의 증가는 새로운 종교와 종교적 관습을 세계의 다른 지역으로 가져오지만, 결과적으로 이는 종교적 다양성의 증가와 갈등의 요인이 된다는 것이다. ‘사회정치적 불안정성’의 증대도 세속화를 심화시키는 요인이 되는 것으로 보인다. 사회정치적 갈등이 증가되고 극단적인 주장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종교가 정치적 목적달성을 위한 사회분열의 도구로 활용되고 있는 장면들을 일상적으로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는 천박한 포퓰리즘과 자원동원을 위한 수단으로 종교를 활용하고 있는 정치와 종교의 유착관계가 긴밀하게 작동하고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오늘날 종교간, 종교내적 갈등이나 정치권력과의 유착을 통해 나타나는 갈등양상은 더욱 첨예화되어가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교회의 부와 정치세력화한 일부 교파들은 국가와의 전면전도 불사하고 있다. 이러는 가운데에도 이단으로 논의되는 다양한 흐름들이 오히려 교계의 여론과 흐름을 주도하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종교와 종교 아닌 것의 관계는 마치 Social이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로도 이어진다. 그렇다면 세계화시대, 포스트코로나시대의 종교는 과연 어떤 의미를, 무슨 기능을 한다고 정의할 수 있을까? 다양한 종교갈등의 현재화에 대한 논의는 어디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Ⅲ. 포스트코로나시대의 종교위기와 대응

1. 세계화와 위기인식의 양극화

세계화시대에는 지역이나 국가 그리고 권역별로 서로 밀접하게 상호작용하면서 불가분의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또 세계보건기구(WHO)가 COVID-19 pandemic시기에 미친 영향력들을 고려하면, 이미 사실상 개별 국가의 능력을 압도하는 방식으로 초국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글로벌 거버넌스(global governance)를 형성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세계화와 지역화의 양상은 균등한 양상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지역적으로 편중되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도 두드러진다. 이와 같이 지속되어가는 세계화의 흐름에서 지역적 통합성의 강화되어가면서도 대립적 양상이 심화되어가는 현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변화하는 국제사회의 변화에 긴밀하게 대응하는 것이 위기사회의 가장 현명한 대처전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세계화가 가져오는 가장 부정적이면서도 심각한 문제는 양극화이다. 이러한 양극화는 국제적인 양상뿐만 아니라, 국내적으로도 재생산된다. 한국사회의 양극화문제도 이제 손을 쓰기도 힘든 영역으로 옮겨가고 있는 추세이다.

이처럼 세계화는 야누스의 두 얼굴과 같은 이중적인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내고 있다. 양극화는 다양한 위험사회의 위기를 불러오는 요인이 된다. 경제적 위기에서 시작된 것이 정치적, 환경적 위기로 확장되고 있다. 현대사회를 ‘위험사회’라 지칭했던 울리히 벡(U. Beck, 1944-2015)은 과학 기술의 발전과 근대화의 결과로 인간은 자연과 환경을 통제할 수 있게 되었지만, 새로운 위험도 생겨났다고 본다. 이러한 위험은 지구적 범위로 확산되고 있고, 기존의 사회 구조로는 통제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렇듯 위험사회는 우리의 일상과 삶이 다양한 ‘위험’과 ‘위기’에 노출된 사회를 말한다.

이러한 위험사회에서 종교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야 하지만, 오늘의 현실종교에서의 이러한 현실인식에 대한 관심에는 아쉬움이 있다. 2007~2009년도의 시기에서는 종교와 위기에 대한 연관 검색이 가능하지만, 대부분의 시기 종교에서 위기인식의 정도는 미약하게 나타난다.6) 오늘날의 종교가 현대사회의 위험과 불확실성에 아무런 위로가 되지 못하고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으며, 사회적 분열과 갈등의 진원지가 되고, 윤리적 비난의 상징이 되어간다면 종교는 더 이상 사회적 기능을 담당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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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구글 트렌드를 통해 살펴본 ‘종교’, ‘위기’에 대한 관심도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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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포스트 코로나 시대는 종교계에도 새로운 도전으로 다가온다. 이미 전염병의 세계화로 인해 모든 사적인 모임과 활동들은 제한되었고, 많은 종교활동들은 중단되었으며, 교회나 사찰의 신자들의 참여는 눈에 띄게 줄어들었던 경험을 하였다. 또한 전통적으로 종교를 통해 의지하던 심성구조는 개인화된 방식으로 전환되어가는 경향들 또한 뚜렷하다. 이는 위생을 중심으로 하는 사회적 환경과 맞물려 1인 식당의 ‘혼밥’, 온라인 예배, 비대면 중심의 행사 진행들과 같이 신앙의 형태와 위안을 구하는 양상들도 달라졌기 때문이다.

이러는 가운데에도 대형교회나 사찰의 모습과 중소교회나 사찰의 그것은 뚜렷이 대비된다. 세계적인 양극화의 화살은 종교계에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는 마주 하고 있는 현실의 문제인 것이다. 앞으로도 온라인 활동의 증가만큼이나 코로나19로 인해 고립되고 단절된 사람들이 공동체 의식을 회복하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뒤따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더불어 이미 Zoom이나 화상회의, 온라인환경을 활용한 예배나 집회방식들은 개별화된 공간에서도 이어지는 신앙의 촉매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지속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2. 종교의 다원화와 무관심의 증가

종교 다원화가 하나의 종교가 지배적인 사회에서 다양한 종교가 공존하는 사회로 변화하는 시대를 의미한다면 그 단적인 사례는 바로 한국일 것이다. 세계적인 차원에서의 종교 다원성이 갈등과 대립, 차별, 박해로 이어져 있다면 한국사회는 나름대로의 동적 균형을 이루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종교적 다원성이 증가할수록 종교적 무관심 역시 증가한다는 사실에도 시선을 둘 필요가 있다. ‘이웃종교’와의 대화, 서로간의 종교적 이해를 도모한다는 형식적인 논의를 넘어서야 하며, 종교간 대화를 통한 상호이해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공감을 얻고 있다.

그러므로 포스트코로나시대의 종교위기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종교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이끌어내기 위한 다양한 노력들이 필요하다. 종교의 세속화 및 종교적 다양성의 증가에 따른 종교의 영향력 감소에도 요인이 있겠으나, 이는 종교의 사회적 역할에 있어서의 종교인의 윤리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환기시키는 것이 가장 우선적인 과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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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구글 트렌드를 통해 살펴본 종교위기에 대한 연관 검색어 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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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2에서처럼 종교위기에 대한 구글 트렌드 연관어 검색에서는 정치적 갈등과 종교인의 ‘윤리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은 것을 알 수 있다. 이에 대한 인식을 개선할 수 있어야 종교가 사회에 긍정적인 기여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종교지도자들의 부패는 사람들이 종교에 대한 믿음을 잃게 만들고, 종교에 대한 위기감을 불러올 것이다.

3. 종교아닌 종교의 시대, 종교성에 대한 새로운 성찰과 모색

포스트로코로나시대와 종교위기의 시대에서 종교와 종교성에 대한 새로운 성찰적 모색들이 이어지고 있다. 오늘날 종교가 현실사회와 위기를 설명하는 설명력과 현실대응이 한계에 이르렀다는 지적들이 그것이다. 서구에서의 탈종교의 열풍과 종교인구의 감소는 종교성에 대한 새로운 논의들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의 공통 관심사는 종교성의 차원이라기보다는 영성의 차원에서의 접근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종교밖의 영성 추구 노력(전명수, 2015)들은 현대인들의 삶의 근본적인 의미와 위안의 원천이던 종교적 가르침을 제도로서의 종교와 분리시키기 시작했으며, 이 경향은 삶의 가치를 개인이 직접 구현해야 한다는 개인주의적 세계관에 의해 강화되고 있다(성해영, 2017: 20). 또한 이는 전통적인 종교방식을 넘어선 새로운 종교성이 등장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논리가 동양사상의 핵심 주제와의 만남을 자연스럽게 가능하게 한다는 측면에서 주목해야 할 지점이라는 생각이다.

종교성은 개인과 사회 모두에게 중요하다. 종교성이란 인간의 한계에 대한 자각으로 초인적 존재에 대한 자각과 믿음으로 나타난다. 종교가 사람들의 삶의 의미성을 부여하고, 사회적인 결속과 안정의 기능을 한다면, 인간존재가 지닌 영성은 종교적이거나 종교적이지 않은 모든 사람이 지닌 보편적인 관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7) 이러한 영성은 명상과 기도, 다양한 형태의 종교적 의식이나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서도 발현될 수 있다. 그러므로 인간존재가 보편적으로 지닌 영적인 지혜와 에너지를 넓은 의미의 종교성, 영성(靈性)이라 정의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본래적인 의미에서의 영성(spirituality)은 기독교적인 전통에서 인간과 신을 매개하는 원리로 기능했었다. 라틴어 spiritus가 호흡(pneuma)이라는 단어에서 유래한 것을 보면 육체를 움직이는 비물질적 차원의 원리를 의미했던 것으로 보인다. 영성의 의미는 시간에 따라 변화해 왔는데, 초기에는 영성이 종교적 믿음과 관행과 관련된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오늘날 영성은 이제 종교적이거나 종교적이지 않은 모든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개인적인 능력이나 경험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종교가 지배적인 영향력을 상실한 오늘날과 같은 세속화된 사회에서는 더욱더 영향력을 넓혀 갈 것으로 예측된다.

크리팔(J. J. Kripal)의 ‘무종교의 종교’, ‘종교가 아닌 종교(the religion of no religion)’의 언급이나, 최준식(2005)의 ‘종교를 넘어선 종교’라는 개념들도 제도화되고, 조직화된 종교의 경계와 울타리를 넘어선 종교성, 즉 영성에 주목한 논의라고 할 수 있겠다. 심층심리학적인 논의와 맞물린 신비주의적 지향은 이러한 전통에 일관되게 서 있다. 영성은 개인들의 삶의 의미와 목적을 찾고, 힐링과 치유를 가능하게 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사람들이 더 만족스럽고 의미있는 삶을 살도록 도울 수 있다. 이는 결과적으로 사회의 결속과 안정을 위해 기여한다는 측면에서 종교의 사회적 기능과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성은 오로지 개인적인 경험이고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표현된다는 점에서 오늘날의 개인주의화된 사회적 양식과도 부합한다. 거꾸로 이는 스스로와의 대화, 자신에 대한 사회적 성찰성을 높이는데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무종교의 종교’로 불리는 다양한 수행법들과 템플스테이8), 명상, 기도, 수련, 힐링, 치유의 경험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꾸준히 증가해왔다. 이들의 공통 관심사는 종교성의 차원이라기보다는 영성의 차원에서의 접근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종교밖의 영성 추구 노력(전명수, 2015: 64)들은 현대인들의 삶의 근본적인 의미와 위안의 원천이던 종교적 가르침을 제도로서의 종교와 분리시키기를 시작했으며, 이 경향은 삶의 가치를 개인이 직접 구현해야 한다는 개인주의적 세계관에 의해 강화되고 있다(성해영, 2017: 20). 또한 이는 전통적인 종교방식을 넘어선 새로운 종교성이 등장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논리가 동양사상의 핵심 주제와의 만남을 자연스럽게 가능하게 한다는 측면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주제와 영역에 대한 성찰과 모색이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는 영역이 불교계라 할 수 있다.

Ⅳ. 종교위기를 넘어서기 위한 불교계의 대안모색을 위하여

불교의 사회적 실천에 대한 논의를 광범위하게 언급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의 사회적 기능에 대한 관심을 통해 환기해 본다면, 불교 역시 인간이 가진 고통과 인간이 처한 현실의 고통이나 문제를 해결하는데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9) 불교는 인간이 처한 고통의 바다에서 고(苦)의 속박에서 해탈할 수 있도록 하는 데에 근본 목적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사실상 인간이 처한 상황이나 생활상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복지의 영역과 근본적으로 맞물린다. 근대 복지학의 발달과정이 자본주의의 발달과 심화되어가는 모순으로 인한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복지문제에 대한 사회과학적 대안을 찾기 위한 노력의 과정이었다. 초기의 복지정책의 발달사가 개인이나 가족이 당면한 문제들을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하거나 병리적인 차원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사회구조적 차원에서 접근하며 국가와 지역사회의 책임을 통해 삶의 질을 제고하겠다는 것이 주된 방향이었다고 한다면, 오늘날에는 다양해지는 인간의 사회적 요구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제반의 환경이나 여건 또는 개인들의 능력에 있어서의 부조화나 욕구의 불충분으로 인한 사회적 적응문제에 대하여 전문적으로 개입을 도모한다. 이를 통해 사회적 기능을 유지하고자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시대적 과제에 주목하여 현대사회에서 종교와 사회와의 만남을 위한 몇 가지 의견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1. 시민사회의 윤리와 덕목을 기준으로 삼아야

대승불교적 전통에서의 가장 이상적인 인간형은 보살이다. 보살정신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육바라밀을 실천함으로써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대승불교적 전통, 보살정신의 요소는 한국불교의 교리에도 반영되었다. 대승불교적인 전통에 따라 사부대중을 종단의 주요 구성요소로 본다. 여기에 출가 보살과 재가보살로 구성된다고 보고 있는 것에서도 확인된다. 그러나 현재 한국불교에서도 재가불자의 역할은 규정이나 규율로 정해져 있지는 않다. 특히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대한불교조계종의 종헌에도 종단의 구성을 ‘사부대중’으로 명시하고 있을 뿐이다. 사찰의 유지나 운영은 대부분 출가자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을 뿐, 재가자들의 참여를 보장하는 곳을 찾아보기가 어려운 형편이다. 1984년에 제정된 조계종의 ‘신도법’도 여러 차례 개정되었지만 재가불자들의 의무사항만 명시하고 있을 뿐, 사찰이나 종단에의 일반 재가 신도들의 참여를 보장하고 있지는 않다.

종헌 제8조, “본 종은 승려(비구, 비구니)와 신도(우파새, 우파이)로 구성한다.”

종헌 제10조, “삼귀의계, 재가5계 및 보살계를 수지하고, 삼보를 호지하며, 본 종의 종지를 신수봉행하는 자”

조계종단의 신도법, “신도는 ‘삼보를 호지’, ‘보시 및 지계’, ‘상구보리하화중생의 서원을 세우고 수행’, ‘종법령에서 정하는 신도교육과 법회에 참여’, ‘교무금을 납부’, ‘본종의 종법령을 준수’, ‘본종의 종지에 입각하여 포교’, ‘종단 및 사찰의 외호와 발전에 기여’, ‘기타 종법령이 정하는’ 의무와 권리를 지닌다.

한국에서 종교의 위기는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닌다. 먼저, 종교의 위기는 한국 사회에서의 전통적인 가치관에서의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합리성의 증대로 인해 종교의 세속화와 종교에 대한 의존도가 낮아지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또한 종교위기는 한국사회에서 전통적인 공동체의식에서의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개인주의화된 사회에서의 공동체의식은 약화되기 마련이다. 마지막으로 종교의 위기를 불러오는 것은 윤리적인 측면에서의 위기이다. 성직자들에서부터 신자에 이르기까지 종교위기는 사람들의 도덕적인 윤리의식이 낮을 때 더욱 심화될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에 경주해야 할 때이다.

세계적인 차원에서의 종교인구 감소와 같은 환경변화가 거대한 물결로 다가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종교현실, 종단에서는 이에 대한 인식이 뒤따르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시민사회가 종교계에 요구하는 다양한 흐름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종교인구의 감소의 첫 번째 요인이라는 생각이다. 시대변화에 따르지 못한다면 몰락하는 것도 시대흐름이 될 것이다. 그러니 다양한 위기해소를 위한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불교계에 한정해 논의해 본다면 몇 가지 문제제기는 해 볼 수 있을 것이다.

  • 1) 청년-학생층의 불교 활성화방안에 대한 종단차원의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 2) 불교교양대학의 사찰간 연계방안 마련을 통해, 단위 사찰을 넘어선 전불교적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 3) 교계는 지역사회가 요구하는 사회사업과 교육적 요구에 부응하며, 지역사회에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

  • 4) 지역사회의 현안문제에 대해 보다 적극적인 의견표명을 통해 지역사회에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

  • 5) 일상생활에서 행할 수 있는 실천의례와 기도의 일상화를 통해 종교성의 발현 및 체득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한국에서는 이제야 본격적인 의미의 시민사회가 형성되고 있다는 생각이다. 이제야 서구 100여 년 전의 시민성, 시민적 가치가 조명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최고의 천민성이 주도하는 이 세계에서 종교성의 원천은 개인과 자아의 성찰이다. 이는 인간 본질에 대한 성찰과 자각과 맞물린다.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시민사회와 시민윤리의 관점에서 가장 기대치가 높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곳이 바로 종교계이다. 그러나 언론과 많은 이들의 사건 사고의 현장에서는 이러한 윤리성이 망실된 면모들이 부각되고 있다. 시민사회의 윤리와 덕목에 부합하는 종교계의 관심이 있어야 종교와 사회와의 진정한 만남이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2. 종교인구의 감소에 대한 대응전략을 모색해야

고풍스런 교회가 없는 유럽의 풍경은 상상하기 힘들 것이다. 채 500년이 안된 교회는 이름을 내세우기도 어렵다. 그러나 오늘날 이들은 새로운 도시의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유지하자니 경비가 너무 많이 든다. 미관과 안전을 생각한다면 해체가 더 나을 것이다. 이제 신자 수의 감소문제는 단순한 교회 존폐의 문제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유럽을 더 이상 기독교국가라고 일컫기 어렵게 되었다. 오랜 세월 기독교의 중심이었던 유럽에서도 거대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더구나 많은 교회는 교인들의 헌금에 의지해 왔다. 특정한 가문에 의지하기도 어렵다. 인구가 감소하고 시골에서는 더욱더 심각한 문제들이 있다. 교회건물을 수선하는 문제에 이르르면 더욱 그러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들에 기인해서인지, 얼마전 구글 검색에서 ‘교회’를 판매하는 광고들이 등장했다. 물론 사찰을 판매하는 광고의 익숙함과 결은 다르겠지만 매각된 교회는 서점, 박물관, 아파트 등으로 활용되고 있다. 교회가 하루 아침에 나이트클럽, 서커스클럽으로 바뀌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성공회 1만 6천개, 그중에 대부분 문화재 0건물이다. 교회의 1/4이상이 교회예배자수가 20명이 되지 않는다. 감리교회가 이슬람교단으로 되기도 한다는 신문기사들이 이어지고 있다.

시민사회의 발달과 함께 연대와 실천이 핵심 화두로 부각된 것은 근대 이후의 일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정치적 혼란과 갈등상에서는 학교, 직장, 이웃과의 관계에서도 공론을 모아내기가 어렵다. 그러나 교회의 신적 권능의 독점을 넘어서 시작되었던 종교개혁의 요구와 고전 고대적 문화의 재조명을 통한 르네상스가 시작되며, 서구시민사회는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시민사회의 형성과정은 종교적 세속화의 과정과 동시적인 과정으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세속화(secularization)의 과정은 종교개혁을 거치면서 교회의 재산을 빼앗기는 과정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면, 오늘날의 세속화는 사실상 ‘탈종교화’되어 가는 현상을 지칭하는 말로 활용되고 있다. 또 세속화를 “초시간적인 것에 의존하는 종교와 연관된 이전의 신앙 중심의 삶의 양식을 해체하고, 세계 내 존재인 인간 이성에 기초한 삶으로의 변화를 의미”한다는 긍정적인 이해에서 ‘공적담론에서 신성보다 이성과 과학에 의한 검증과 논증’이 중시되고, ‘종교적 상징과 교리의 초월성’이 박탈되고, ‘부조리한 것에 대한 비판과 저항’(정대성, 2011: 325 참조)이라는 적극적인 의미로도 해석된다. 무엇보다도 테일러(Charles Taylor)의 논의에서처럼 ‘새로운 믿음의 조건’이 형성되었다는 논의도 있겠지만, 이른바 ‘Secular Stage(세속화된 시대)’로 현대사회를 규정하는 것에 동의가 된다. 이는 종교개혁 이후의 지속적인 쟁점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정작 문제는 종교인구가 급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얼마전 조사에서 나타난 것처럼 불교계 인구의 급감과 성직자 신뢰도의 차이에 대한 조사결과가 나온 후 ‘한국불교의 위기설’과 함께 서구의 세속화와 같은 탈종교 현상이 한국에서도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는지에 대해 많은 논의가 전개되었다.

통계청 조사를 다룬 불교계의 토론과 기사들이 대부분 ‘탈종교화’에 집중되고 있었다. 그렇다면 현대사회는 과연 탈종교화하고 있는가? 탈종교화 시대, 종교의 위상과 의미는 무엇인가? 만일 탈종교화가 실제로 진행되고 있다면, 이 새로운 종교지형의 등장은 한국불교에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통계청의〈2015 인구주택총조사 종교인구 통계〉발표(2016년)에 따르면 한국의 종교인구는 크게 감소했다. 2015년 종교인구는 43.9%, 무종교인이 56.1%로 조사되었다. 통계청이 종교인구를 조사하기 시작한 1985년 이래 처음으로 무종교인 인구가 절반을 넘었다. 2015년 조사에서 불교 인구는 총인구의 15.5%, 개신교와 천주교를 합친 기독교 인구는 27.6%였다. 불교 인구는 10년 만에 300만 명 정도가 줄었고, 더불어 전체적인 종교인구도 줄어들었다. 이 통계에 의하면 현재 대한민국 국민의 절반 이상은 종교가 없고, 최대 종교는 개신교라는 종교지형이 형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에 대한 논의도 긴박한 시점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종교인구 감소의 시대, 종교계는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까?

3. 일상생활의 위기에 대한 대응과 실천전략을 마련해야

세계적으로 포스트코로나와 더불어 ENDEMIC이 논의되고 있다. 그러나 COVID-19 pandemic의 상황에서 경험한 것처럼 이미 우리 앞에는 파국으로 다가와 있다. 앞으로 지구상의 과포화된 이산화탄소에 대응할 수 있는 시간이 2030년이면 더 이상 방법이 없을 것이라는 전망은 환경론자들로부터 꾸준히 제기되고 있는 문제이다. 이미 극지의 빙하들이 녹아서 해수면은 상승하고 있고, 기후위기의 부작용들을 우리는 매년 몸으로 느끼기 시작하고 있다. 무한경쟁과 성장의 이면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이, 사실 그 무엇보다도 기후상승 1.5도를 막아야 한다는 사실에 있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이를 위한 지구촌의 생존을 위한 거대한 전환에 대한 논의는 종교계의 자기 선언에서부터 나와야 한다. 대부분의 정치인들이 환경위기와 재앙을 부추기며, 기후와 환경의 문제를 정치적인 마케팅의 산물로만 활용하고 있다.

자연과 생명을 보존하고 사회적 정의를 바로 세우는 과정은 신자유주의의 확장성과 정반대의 과정에서 하나가 된다. 이를 위해서는 자연과 환경, 삶을 대하는 인식의 근본적인 패러다임의 대전환이 요청된다. 이는 세계화와 거대한 자본주의에 대한 정면대응이다. ‘나’라는 이기적 자아개념의 사회적 확장을 통한 공공성에로의 관심 환기가 진행되지 않는다면, 새로운 시각으로 시대와 문명을 바라보지 않는다면 지구는 누가 지킬 것인가? 넘치는 음식물에 대해 발우공양으로 담아내는 것은 생활문화 전반의 대전환과정이자, 기후위기에 대한 대안찾기의 과정이다.

이때까지 불교계는 사회변화와 발전을 위한 실천적인 노력에서 가장 더디게 반응해 왔다. 가장 반자본주의적인 논리와 문명전환의 대안적 논리를 가지고 있음에도 무기력하게 관조해 왔다. 보살이라는 가장 전투적이고 실천적인 역할모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인식과 가치의 확산에 무관심하기에 종교의 본연의 사회적 기능에 대한 대중의 신뢰도 사라져가고 있는 것이다. 이제 기후위기와 재난, 환경문제와 같은 인류의 삶과 생존을 위협하는 문제와 쟁점, 갈등들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과 대응, 일상적 실천들로 이어질 수 있어야 할 때라는 생각이다.

4. 물질문명시대를 넘어서기 위한 인식 전환과 대안을 제시해야

현대 자본주의의 흐름과 시대적 흐름을 고려해 보았을 때, 신자유주의의 세계화의 흐름 역시 되돌리기는 너무나 지난한 과정이다. 우리의 시대와 미래 역시 음울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는 것 또한 자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현대인의 삶에 대한 성찰적 인식은 새로운 가능성의 시대를 암시하기도 한다. ‘사물이 극에 도달하면 되돌아온다’는 물극필반(物極必反)의 논리는, 인간의 역사나 문명에 있어서도 되돌아올 수밖에 없다는 인간역사 전체의 과정에서 증명되고 있다. 홍승표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근대적 세계관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인간이란 욕망의 만족을 추구하는 욕망의 주체이다. 욕망의 주체로서 인간을 전제하였을 때, 더 나은 삶과 문명이란 욕망 충족적인 삶과 문명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현 인류는 더욱 더 욕망 충족적인 삶과 문명의 건설을 향한 맹목적인 돌진을 계속하고 있고, 여가생활 역시 욕망 충족적인 활동으로서의 여가 생활이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홍승표, 2006: 220-221).

결국 신자유주적인 세계화의 가장 본질적인 한계는 바로 인간 욕망충족을 위한 논리가 사회와 경제를 설명하는 가장 주된 논리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기에서 현대자본주의 문명의 본질적인 위기와 함께 종교적 성찰을 통한 대안제시와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 나가야 한다.

최첨단 정보사회의 총아로 등장한 반도체는 말 그대로 반도체이다. 음양의 논리와 마찬가지로 통할 수도, 아닐 수도 있는 전도체라는 것이다. 이는 인간의 마음을 물질로 표현한 것이라는 주장도 등장한다. 최근의 세계적인 차원에서 진행되는 정보화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인터넷이라고 하는데, 아무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것이다.

AI와 빅데이터를 중심으로 하는 가상공간과 새로운 시대의 연결망으로 등장한 인터넷과 네트워크사회에 대해 화엄사상과의 연결도 가능하다. ‘하나가 전체요, 전체가 곧 하나’(一卽多 多卽一)라는 화엄의 핵심사상은 하나안에 있는 수많은 사회적 상념들과 관계망을 다 아우른다. 우주만상이 개인에게 비치는 모습은 다 다르겠지만 본체로서의 우주는 원래 하나(眞如)임에 틀림없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그물망의 네트워크로 연결된 정보고속도로는 화엄(華嚴)사상에서 제시되는 인드라망(因陀羅網: Indra-net)의 논리에 그대로 연계된다. 만물과 세계가 하나로 연관되어 있다는 것은 ‘이것이 있음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남으로 저것이 일어난다. 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고, 이것이 사라지면 저것이 사라진다’는 보편적 연기의 원리들이 인드라의 그물로 이어져 있다는 것을 보면, “반짝이는 구슬, 하나하나의 그물코에는 제석천의 모습이, 하나의 표면에는 모든 세상이 다 비추이고, 하나에 점을 찍으면 다른 모든 구슬에도 나타난다”.10)

모두가 들고 다니는 스마트폰의 주고받는 메시지와 밴드의 글들은 다양하지만 하나의 점과 선으로 이어져 있는 정보화 사회의 네트워크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그러나 이는 양날의 칼이다. 국가권력의 수단적 가치로서 이용된다면 이는 감시사회와 정보독점을 통한 제도적 폭력으로 언제든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을 눈으로 지켜보았기 때문이다. 종교계는 무엇으로 함께 할 것인가? 종교계가 권력의 총구가 되고, 정치적 극단세력의 대변자가 된다면 이는 종교자멸이 길이 될 것이다. 이에 대한 비판과 성찰의 과정이 필요한 이유이다.

Ⅴ. 나가며

불교의 현실인식은 인간의 현실적 삶에 대해 고통의 바다(苦)로 이해한다. 고집멸도의 과정을 알아가는 것이 불교인식론의 현실적 기초이자 세계상에 대한 논의이다. 이는 다음의 우화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드넓은 벌판을 지나고 있던 나그네가 갑자기 뒤에서 성난 코끼리가 달려오자 코끼리를 피하기 위해 마구 달리기 시작했다. 한참 달리다 보니, 몸을 피할 작은 우물이 있었다. 우물에는 마침 나무 뿌리가 있어서 급한 나머지 그것을 타고 아래로 내려갔다. 그런데 정신을 차리고 아래를 내려다보니 우물 바닥에는 무서운 독사가 혀를 널름거리고 있었다. 두려움에 위를 쳐다보았더니 코끼리가 아직도 성난 표정으로 우물 밖을 지키고 있었고 때마침 들판에서는 들불이 일어나 모든 것을 태우고 있었다. 게다가 어디선가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려 주위를 살펴보니 흰 쥐와 검은 쥐가 번갈아가며 나무넝쿨을 번갈아 갉아먹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뿐만 아니라 우물 중간에서는 네 마리의 작은 뱀들이 왔다 갔다 하면서 그를 노리고 있었다. 그는 두려움에 떨면서 나무넝쿨을 잡고 매달려 있었다. 그 때 어디선가 벌 다섯 마리가 날아와 나무넝쿨에 집을 지었는데, 그 벌집에서 꿀이 한 방울씩 아래로 떨어졌다. 그는 그 다섯방울의 꿀을 받아 먹으면서 달콤한 꿀맛에 취해 자신의 위급한 상황을 잊은 채, 벌이 쏘는 것도 잊고, 꿀이 왜 더 많이 떨어지지 않나 하는 생각에 빠져 있다.(《불설비유경(佛說譬兪經)》의 ‘안수정등도(岸樹井藤圖)’)

<불설비유경>에 나오는 이 우화가 시사하는 바는 크다. 여기서 드넓은 들판은 무명(無明)을 의미하고, 나그네는 중생들을 상징한다. 코끼리는 무상하게 흘러가는 세월(無常)을 의미하고, 우물은 생사(生死)를 비유적으로 나타낸다. 나무뿌리는 목숨의 생명줄을, 검은 쥐와 흰 쥐는 밤과 낮을 의미하는데 나무뿌리를 갉아먹는다는 것은 찰라의 생명이 줄어들고 있음을 의미한다. 네 마리의 독사는 우리의 몸을 이루고 있는 네 가지 요소인 地水火風 사대(四大)이다. 들불은 늙음과 질병의 비유이다. 벌꿀은 인간의 욕망의 단적인 상징이며, 다섯 방울인 것은 인간의 오욕락(五欲樂)에 해당한다. 오욕이란 재물욕, 색욕, 식욕, 명예욕, 수면욕이다. 작은 뱀들은 가끔씩 몸이 아픈 것을 의미하고, 독사는 죽음을 비유하고 있다. 결국 이 이야기는 생사윤회의 고통에 허덕이면서도 무명에 빠져 인간의 감각적인 욕망을 추구하는 인간 삶의 총체적인 모습과 실태를 그림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결국 중생의 삶을 옥죄고 있는 이 고통(苦)에서 벗어나 해탈에 이르기 위해서는 무명을 떨치는 정진을 통해 현실의 허망함을 떨칠 수 있어야 한다는 논리이다. 그러나 이 괴로움조차도 뭔지 알지 모르고 순간의 작은 기쁨과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살아가는 욕망하는 존재로서의 인간에 대한 지적이 불교 교리의 첫 출발인 셈이다. 물론 붇다는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어가는 과정에 대한 성찰을 통해 해탈의 길에 접어들었다. 성스러운 네 가지의 진리로 불리우는 사성제(四聖諦)는 고통의 현실인식(苦)과 이러한 원인에 대한 이해(集)를 통해 그 뿌리를 없앨 수 있다는 확신(滅)을 갖고 실천을 통해(道) 해탈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며, 그 가장 빠른 길이 바로 중도(中道)라는 것이다. 정해둔 바가 없는 가장 빠른 길로서의 중도에 대한 논의는 동양종교의 공통관심이기도 하다. 이를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방법이 바로 팔정도(八正道)11)와 육바라밀(六波羅密)12)로서 제시되고 있다.

이러한 불교적 인식을 통해서 본다면 세계화시대에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이 자본주의의 물질적 풍요한 감각중심의 물질문화와 같은 다양한 허상들에 대해 비판적으로 이해하고 바르게 바라볼 수 있는 눈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우리의 일상을 둘러싸고 있는 다양한 위기의 상황과 양상에 대한 인식의 필요성에 대한 환기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불교적 인식원리에서 이 세계는 하나로써의 전체로 뒤엉켜 있다. 만물은 연기적(緣起的)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나와 남이라는 인식이나, 주관과 객관, 남자와 여자나 생사와 같은 개념이나 인식들도 서로 의존하여 발생한 개념(槪念: concept)들에 불과하다. 불교의 인식논리에서의 인간의 사회적 행위는 일반적으로 업(業, Karma)에 따른 인과관계의 제약을 받는다고 바라본다. (선인(善人)은 선과(善果)를 악인(惡人)은 악과(惡果)를 초래하므로 개인의 행위와 노력이 중요함을 강조한다. 그러므로 행복이라는 결과도 자신의 행위에 의하여 조성되기에, 행복창조를 위한 복짓는 행위, 사회적 존재로서의 행위에 대한 책임으로서의 그 결과가 초래된다는 논리는 인류의 보편적 행위지침으로서의 합리성을 충분히 얻을 수 있게 된다. 이를 통해 극에 달한 물질문명의 위기와 파국으로 나타나고 있는 기후위기, 그리고 인간의 물질적 이기심으로 무장한 현대사회의 시민윤리와 덕목들에 대해서도 보편적인 연관속에서 이해할 수 있는 논리적 근거를 제시한다.

諸惡莫作 衆善奉行 自淨其意 是諸佛敎

모든 악을 짓지 말고 뭇 선을 받들어 행하며, 스스로의 마음을 깨끗하게 하는 것,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이는 부처 이전의 과거세의 일곱부처가 공히 깨달음의 게송으로 남겼다는 ‘제불통게(諸佛通偈)’이다. 『법구경』의 불타품에 나오는 부처님 이전의 일곱부처님이 공통으로 깨달음의 지침으로 삼았다는 게송, 제불통게이다. 이는 불교의 근본적인 가르침과 대사회적 실천, 윤리적 지침으로서의 충분한 지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바야흐로 성찰성의 사회화의 시대가 도래하였다. 그렇다면 성찰을 하는 이유와 목적은 무엇인가? 결국 제불통게의 가르침에서처럼 ‘착하게(善)’ 살기 위함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Notes

1) 오토(R.Otto), 레우(V.d. Leeuw), 엘리아데(M.Eliade) 같은 사람들이 이에 해당한다.

2) 뒤르케임(E.Durkheim)과 말리노브스키(B.K.Malinowski)가 대표적이다. 이는 미국사회학을 주도했던 기능주의의 흐름과도 연계된다.

3) 1912년에 발간되었던 <종교생활의 원초적 형태>에서 진화론의 논의에 대한 비판적 언급을 통해 종교의 기능적 정의를 제시하고 있다.

4) 물론 오늘날의 불교도 교단, 교리, 교의의 체계를 갖추고 종교의 사회적 역할에 충실하게 포교전략을 실천하고 있다는 실체로서의 종교현상이 주가 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주류 종교사회학적 관점에서의 종교인식에 대해 비판적으로 언급하는데 주목하고 있다.

5) 일반적으로 종교성의 정도는 종교적 신념이나 관습에 대한 개인의 참여와 헌신을 설명하는 데 사용된다. 종교성을 설명하는 요인에는 주로 ‘신앙의 강도’, ‘종교 의식에 대한 참여 정도’, ‘종교적 가치에 대한 헌신의 정도’ 등을 요인으로 해서 측정하는 것이 종교사회학에서 범주화를 통해 측정하는 주요한 방법들이다. 이러한 종교성을 설명하는 요인들은 개인의 일상과 생활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요소들이다.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종교를 둘러싼 외적인 환경의 변화에 많은 영향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6) 구글트렌드 검색으로 일반화하기에는 곤란할 것이다. 그러나 일상적인 현실 인식의 정도를 엿보는 근거로 활용하기는 충분하다 하겠다.

7) 거칠게 정리해 본다면, 종교성이 종교적 신념과 관습, 가치에 대한 개인의 참여와 헌신, 지지를 토대로 한다면, 영성은 삶의 의미와 목적에 대한 탐구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개인적 탐구의 과정이라고 대비해 볼 수 있겠다.

8) 템플스테이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종교적인 심성과 무관하게 심신의 안정과 삶의 의미를 불교적 명상을 통해 찾아보려고 한다. 제도화된 종교의 모습에 대한 추구가 아니라, ‘몰입(flow)’이나 ‘집중’에 관심을 둔다(배금란, 2011, 현대종교문화 현상으로서의 템플스테이, 종교학연구 29집.).

9) 불교에서의 근본적인 관심은 Nirvana(涅槃)에 이르는 것에 있다. 이를 위한 보시(報施), 지계(持戒), 인욕(忍辱)의 과정을 통해 이타(利他)의 실천을 행하며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것은 사회적 실천에 해당한다. 이는 근본적으로 자비(慈悲)의 사회적 표출이다. 이와 더불어 정진(精進)하고 선정(禪靜)에 들며 반야(般若)의 지혜를 완성하고자 한다. 이는 자신을 위한 자리(自利)의 과정이며 내적인 성찰의 과정이다. 이러한 구도의 과정(上求菩提)과 중생구제(下化衆生)하겠다는 육바라밀(六波羅密, P-aramit-a, 度彼岸)은 대승불교적 전통이자 불국 정토(淨土)를 만들어가겠다는 불교의 사회성의 원천이 될 수 있다.

10) “此帝網皆以寶成 以寶明徹遞相影現涉入重重 於一珠中同時頓現 隨一卽爾 竟無去來也 今且向西南邊 取一顆珠驗之 卽此一珠能頓現一切珠影 … 點西南邊一珠者 一珠著時卽十方中皆有墨點 旣十方一切珠上皆有墨點 故知十方一切珠卽是一珠也: 杜順”(『華嚴五敎止觀』, T45, 513b).

11) 이른바 팔정도는 정견(바르게 보라), 정사유(바른 생각), 정어(바른 말), 정업(바른 행동), 정명(바른 생활), 정정진(바른 노력), 정념(바른 마음챙김), 정정(바른 선정)이다.

12) 육바라밀은 보시(베품), 지계(계율을 지키는 것), 인욕(참기 어려운 것을 참고 행하기 어려운 것을 능히 행함), 정진(끊임없이 노력), 선정(깊이 마음을 집중), 반야(지혜의 완성)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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