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론
불교에 대한 일반적 인상은 능동적이고 참여 지향적이라기보다는 수동적이고 은둔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이해는 피상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불교사상에 초점을 맞추어 그 내부를 잘 들여다보면, 불교사상에도 능동적이고 참여지향적인 흐름이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대승불교의 경우, 보살사상 속에는 능동적이고 사회참여적 측면이 상당부분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이런 문제의식에서 이 글에서는 보살사상 속에 포함되어 있는 사회참여적 측면을 살펴보고, 그리고 이러한 보살사상의 사회참여적 측면은 이상적(理想的)인 내용이겠지만, 이 이상적인 측면이 현실세계에서 일정부분 구현된 현대적 사례의 하나로서 월주(月珠)스님(이하 존칭생략)의 사회참여활동을 검토하고자 한다.
그런데 여기서는 보살사상 전반에 대한 검토를 할 수는 없고, 『화엄경』, 「보현행원품」의 10대원과 『약사경』의 12대원으로 그 연구범위를 한정해서 검토하고자 한다. 그리고 월주의 사회참여활동에 관해서는 기존의 연구성과(불교학연구원 기획, 2017: 1-146; 정학섭, 2015: 465-504; 박수호, 2015: 505-547; 정승안 기록, 2015: 549-575, 김응철, 2023: 9-39; 이성수, 2023: 73-96)를 수용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남북통일과 평화정착에 관한 활동’, ‘지구촌공생회 활동’에 대해 주목하고자 한다. 이 가운데 ‘남북통일과 평화정착에 관한 활동’은 비교적 검토가 적게 이루어진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월주의 사회참여활동에 대해서는 그의 법문집 『세간과 출세간이 둘이 아니다』, 그의 회고록 『토끼뿔 거북털』에 의거해서 검토하고자 한다.
참고로, 태공월주(太空月珠, 1935-2021)의 이력을 간단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월주는 1961년부터 금산사 주지를 하기 시작해서 1974년까지 하였고, 1980년에 조계종 17대 총무원장에 취임하고 몇 달 뒤에 강압에 의해 그만두었고, 1994년 조계종 28대 총무원장을 지냈다. 1996년부터 ‘우리민족서로돕기’ 상임공동대표와 이사장을 맡아서 2006년까지 하였고, 2004년부터 지구촌공생회 이사장을 맡았다(태공월주, 2016a: 398-399).
Ⅱ. 보살사상의 사회참여적 측면
먼저, 보살사상의 사회참여적 측면에 대해 검토한 선행연구를 간단히 살펴본다. 박경준은 승만부인의 10대원(大願)과 약사여래의 12대원에서 사회참여적 요소를 간단히 지적한다(박경준, 2009: 131-132). 그리고 이병욱은 승만부인의 10대원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분석해서 승만부인의 10대원 속에 포함된 사회참여적 측면을 드러낸다(이병욱, 2017: 62-64). 여기서는 이러한 연구성과를 수용하고, 나아가 『화엄경』의 「보현행원품」과 『약사경』의 12대원에 대해 검토하고자 한다. 이 내용은 다음의 3단락으로 전개된다. 첫째, 보살의 자비정신과 중생에 대한 존중정신에 대해 알아보고, 둘째, 「보현행원품」의 보살사상에 나타난 사회참여적 측면을 살펴보며, 셋째, 『약사경』의 보살사상에 나타난 사회참여적 측면을 검토한다.
보살(菩薩)은 대승불교의 이상(理想)을 잘 표현할 수 있는 인간상이다. 원래 ‘보살’이라는 말은 보리살타(菩提薩埵: bodhi-sattva)의 줄인 말이다. 보리살타는 보리(bodhi: 깨달음)를 추구하는 유정(有情: sattva)이라는 뜻이고, 혹은 깨달음을 본질로 하는 자라는 뜻이다. 이러한 의미의 보살은 자신을 구원하기보다 남부터 구원한다는 자비(慈悲: karuṇa)의 원(願: praṇidhāna)을 세워서 열반에 태어나지 않고, 생사의 세계에 태어나기를 원하는 존재이다(길희성, 1984/2011: 133-134).
이 보살이라는 용어는 그 이전의 부파불교에서도 사용되었다. 그런데 부파불교에서 말하는 보살은 석가모니의 전신(前身)인 석가보살과 미륵불(彌勒佛)로서 미륵보살이 주된 것이었고, 그에 비해 대승에서는 범부라도 보리심을 일으키면 보살이라고 주장한 것이다(平川彰 외, 정승석 역, 1984: 23).
이러한 보살의 자비정신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유마경(維摩經: 維摩詰所說經)』에서 ‘중생이 병들어 있기 때문에 보살도 아프다’고 하는 것이다. 자세히 말하자면, 중생이 무명으로 인해 애착을 일으켜서 생사(生死)의 세계에 있으므로 병(病)이 있고, 그에 따라 보살도 병(病)이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보살은 중생을 위해서 생사(生死)의 세계에 들어가서 중생과 함께 아파하는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유마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중생은] 무명(無明)에서 애착이 일어나고, 그래서 내 병(病)이 생겼습니다. 모든 중생이 병들어 있기 때문에 나도 병(病)이 생겼습니다. 만약 모든 중생의 병(病)이 없어지면 나의 병(病)도 사라질 것입니다. 무슨 이유입니까? 보살은 중생을 위해서 생사(生死)의 세계로 들어갑니다. 생사가 있다면 병(病)이 있습니다. 만약 중생이 병(病)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보살도 다시 병들지 않을 것입니다.1)
그리고 이러한 자비의 정신은 중생에 대한 존중으로 연결된다. 이러한 중생에 대한 존중은 『법화경(묘법연화경)』의 상불경보살(常不輕菩薩)에서 잘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 상불경보살은 만나는 모든 사람을 다 공경하는데, 그 이유는 모든 사람이 다 부처가 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와 같은 실천행을 하는 상불경보살은 여러 사람에게 핍박을 받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모든 중생을 공경한다. 『법화경』에서는 상불경보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그 때 한 보살이자 비구가 있었는데, 상불경(常不輕)이라 하였다. 득대세여! 무슨 인연으로 상불경이라 하는가? 이 상불경보살이 만나는 모든 비구와 비구니와 우바새와 우바이에게 예배하고 찬탄한다. 그리고 말하기를 “나는 그대들을 깊이 공경한다. 왜냐하면 그대들은 보살도를 행하여 미래에 부처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이 상불경보살은 경전만을 오로지 읽지 않고, 단지 예배를 실천할 뿐이다. 그리하여 심지어 멀리서 사부대중을 보더라도 애써서 가서 예배하고 찬탄한다. 그리고 말하기를 “나는 그대들을 가볍게 여기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대들은 부처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한다.2)
앞에서 보살의 자비정신은 중생에 대한 존중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여기서는 『화엄경』의 「보현행원품」에 나타난 보살사상 가운데 사회참여적 측면이 있는 것에 대해 검토하고자 한다.
『화엄경』 40권본 「보현행원품(普賢行願品: 入不思議解脫境界普賢行願品」에서는 보현보살의 10대원을 제시하고 있다. ① 모든 부처님을 예배드리고 공경하는 것, ② 여래를 칭찬하는 것, ③ 부처님에게 공양을 널리 드리는 것, ④ 업장을 참회하는 것, ⑤ 남의 공덕을 따라 기뻐하는 것, ⑥ 법륜을 굴리기(가르침을 말해주기)를 청하는 것, ⑦ 부처님이 세간에 오래 머물기를 청하는 것, ⑧ 부처님을 따라 항상 배우는 것, ⑨ 중생을 항상 따르는 것[隨順], ⑩ 모든 공덕을 두루 회향하는 것이다.3)
이상의 10대원 가운데 사회참여적 측면을 읽을 수 있는 것은 ③ 부처님에게 공양을 널리 드리는 것, ⑨ 중생을 항상 따르는 것, ⑩ 모든 공덕을 두루 회향하는 것이다. 이 내용에 대해 순서대로 살펴본다.
보현보살의 10대원 가운데 3번째 대원, 곧 ‘부처님에게 널리 공양을 드리는 것’ 가운데에서 사회참여적 측면을 읽을 수 있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중생을 이롭게 하는 공양’, ‘중생을 자비의 마음으로 보호하는[攝受] 공양’, ‘중생의 고통을 대신하는 공양’이라는 표현에서 찾을 수 있다.
‘중생을 이롭게 하는 공양’이 개인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질 수도 있는 것이지만, 그 의미를 사회적인 측면으로 확장시킬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중생을 이롭게 하기 위해서 꼭 개인적인 선행에만 국한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중생을 이롭게 하기 위해 사회적인 제도를 개선하거나, 사회적인 차원에서 일을 진행할 필요가 있다면, 이 때에는 사회적인 차원의 활동도 용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러한 표현이 현재의 민주주의가 작동되지 않은 시대, 곧 전제적 왕권시대에는 사회적 차원으로까지 확장해서 읽어내기 어려운 측면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이러한 제약요소가 많이 사라진 시대이므로, 경전을 읽고 해석할 때에 지나치게 과거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고 본다. 이러한 해석은 ‘중생을 자비의 마음으로 보호하는[攝受] 공양’과 ‘중생의 고통을 대신하는 공양’에도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내용에 대해 『화엄경』의 「보현행원품」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선남자여! 모든 공양 가운데 법공양(法供養)이 최고이니, 말하자면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수행하는 공양과 중생을 이롭게 하는 공양, 중생을 섭수(攝受: 자비심으로 살피고 보호함)하는 공양, 중생의 고통을 대신해주는 공양, 선근(善根)을 부지런히 닦는 공양, 보살의 업을 버리지 않는 공양, 보리심에서 벗어나지 않는 공양이다.4)
보현보살의 10대원 가운데 9번째 대원, 곧 ‘중생을 항상 따르는 것[隨順]’ 가운데에서도 사회참여적 측면을 읽을 수 있다. 보살은 중생을 차별하지 않고 평등하게 보고, 그들을 모두 이롭게 하는데, 그 가운데서도 “여러 병환의 고통에 대해서는 의사가 되고”, “빈궁한 사람에게는 감추어진 보물을 얻게 한다”는 표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러 병환의 고통에 대해서는 의사가 되고”에 대해 중생의 병환의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직접 의사가 되는 것으로만 생각할 필요는 없다. 물론 개인적으로 어떤 사람은 의사가 되어서 중생의 병환의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할 수도 있겠지만, 오늘날의 관점에서 본다면, 사회적인 차원에서 개인의 병환의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리고 사회제도의 측면에서 의료보장제도를 잘 갖추는 것, 아울러 그것을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라고 그 범위를 확장해서 해석할 수도 있다. 굳이 개인적인 범위에 한정해서 경전의 내용을 해석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는 “빈궁한 사람에게는 감추어진 보물을 얻게 한다”는 것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빈궁한 사람이 자신도 모르게 갖고 있던 보물을 알게 해서 가난한 삶에서 벗어나게 할 수도 있을 것이지만, 오늘날의 관점에서 좀 더 폭넓게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은 사회적 차원에서 빈궁한 사람이 자신의 능력을 다시 발견해서 경제적 능력을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고, 사회제도의 측면에서는 소득보장제도(사회보장제도의 하나)를 잘 정비해서 빈궁한 사람이 몰랐던 보물, 곧 소득보장제도가 제공하는 ‘감추어진 보물’을 얻도록 하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경전의 내용을 해석할 때에 지나치게 개인적인 차원으로만 해석하는 것을 고집할 필요는 없을 것이라고 본다.
이러한 내용에 대해 『화엄경』의 「보현행원품」에서는 다음과 같이 전한다. 분량이 조금 많지만 중요한 내용이므로 모두 인용하고자 한다.
다시 선남자여! 중생에 항상 따른다는 것[隨順]은 온 우주와 허공계와 시방세계의 모든 중생의 여러 차별[에 따라 평등하게 그들을 이롭게 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알에서 태어난 것[卵生], 태에서 태어난 것[胎生], 습기에서 태어난 것[濕生], 변화해서 생긴 것[化生], 혹은 지(地)·수(水)·화(火)·풍(風)에 의지해서 태어나서 사는 것, 혹은 허공과 풀과 나무에 의지해서 태어나서 사는 것, [이러한] 여러 가지 생명을 가진 것[生類]의 여러 가지 색신(色身), 여러 가지 형상(形狀), 여러 가지 상모(相貌), 여러 가지 수량(壽量: 수명), 여러 가지 족류(族類: 같은 부류), 여러 가지 이름, 여러 가지 심성(心性), 여러 가지 지견(知見), 여러 가지 욕낙(欲樂), 여러 가지 의행(意行), 여러 가지 위의(威儀), 여러 가지 의복, 여러 가지 음식과 여러 가지 촌영(村營), 취락(聚落), 성읍(城邑), 궁전에 살거나 내지 모든 천룡팔부중생과 사람이면서 사람이 아닌 존재[人非人] 등과 다리 없는 것, 다리가 둘인 것, 다리가 넷인 것, 다리가 여럿인 것, 색(色)이 있는 것, 색(色)이 없는 것, 상(想)이 없는 것, 상(想)이 없는 것, 유상도 아니고 무상도 아닌 것[非有想非無想], 이와 같은 종류의 중생에 대해 내가 모두 수순(隨順)해서 여러 가지 받드는 일과 여러 가지 공양을 전개해간다. [이러한 공양을 할 때에] 부모님을 공경하듯 하고, 스승과 어른을 받드는 것처럼 하고, 아라한처럼 내지 여래처럼 대하여 구분함이 없다. 여러 병환의 고통에 대해서는 좋은 의사가 되고, 도(道)를 잃어버린 사람에게는 그 바른 길을 보여주며, 어두운 밤에는 광명이 되어주고, 빈궁한 사람에게는 감추어진 보물을 얻게 한다. 보살은 이와 같이 평등하게 모든 중생을 이롭게 한다.5)
그리고 「보현행원품」에서는 ‘중생을 따르는 것’이 곧 ‘부처님을 따르는 것’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서, 중생을 위해서 봉사하는 것이 부처님을 따르는 길이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부처님은 중생으로 인해서 큰 자비[大悲]를 일으키고, 이 큰 자비로 인해서 보리심(菩提心)이 생기며, 이 보리심으로 인해서 최고의 깨달음을 얻기 때문이다. 이는 중생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말이기도 하다. 중생의 삶을 더 좋게 하기 위해, 그리고 중생을 바르게 인도하기 위해 활동하는 것은 보리심을 생기게 하는 것으로 이어지고, 이 보리심이 생기는 것은 최고의 깨달음으로 연결된다. 나아가 「보현행원품」에서는 부처님의 근본[體]은 큰 자비의 마음[大悲心]이라고 말한다. 이 내용에 관한 인용문은 다음과 같다.
무슨 까닭인가(중생을 평등하게 이롭게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만약 보살이 중생을 따른다면 모든 부처님에게 공양하는 것을 따르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만약 중생을 존중하고 섬긴다면, 그것은 여래를 존중하고 섬기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만약 중생이 환희하는 마음을 내도록 한다면, 그것은 모든 여래를 환희하도록 한 것이기 때문이다. 무슨 까닭인가(중생을 따르는 것이 부처님을 따르는 것이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모든 부처님은 큰 자비의 마음[大悲心]으로 체(體)를 삼기 때문이다. [부처님은] 중생으로 인해 큰 자비[大悲]를 일으키고, 큰 자비로 인해서 보리심(菩提心)이 생기며, 보리심으로 인해서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이룬다. 비유하면, 넓은 들판의 모래사장에 큰 나무가 있는데, [이 큰 나무의] 뿌리가 물을 얻으면, 가지·잎·꽃·열매가 모두 무성해지는 것과 같이, ‘생사(生死)’라는 ‘넓은 들판’에 있는 ‘보리(菩提)’라는 ‘나무’도 이와 같다. 모든 중생이 ‘보리’라는 ‘나무의 뿌리’가 되는 것이고, 모든 부처님과 보살은 ‘꽃’과 ‘열매’가 되는 것이며, ‘큰 자비’라는 ‘물’로 중생을 이롭게 하면, ‘모든 부처님과 보살의 지혜’라는 ‘꽃’과 ‘열매’가 성취되는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큰 자비’라는 ‘물’로 중생을 이롭게 하면 최고의 깨달음을 성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까닭에 보리는 중생에 속하는 것이다. 만약 중생이 없으면 모든 보살이 마침내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이룰 수 없다.6)
그리고 「보현보살품」에서는 이처럼 ‘중생을 따르는 것’을 계속 이어갈 것을 문학적인 수사를 동원하면서 말하고 있다. 허공계가 다하고 중생계가 다할지라도 ‘중생을 따르는 활동’을 계속 이어갈 것을 「보현보살품」에서는 강조한다. 이 내용에 관한 인용문은 다음과 같다.
선남자여! 그대는 이러한 의미를 이와 같이 이해하여야 한다. 중생에 대해 마음이 평등하므로 원만한 큰 자비를 성취할 수 있고, 큰 자비의 마음으로 중생을 따르기 때문에 여래를 공양하는 것을 성취할 수 있다. 보살은 이와 같이 중생을 따른다. 허공계가 다하고 중생계가 다하며, 중생의 업(業)이 다하고 중생의 번뇌가 다할지라도 이와 같이 내가 중생을 따른 것에는 다함이 없을 것이고, [중생을 따른다는 것이] 생각마다 이어져서 끊어짐이 없으며 [중생을 따른다는] 몸의 업과 말의 업과 뜻의 업에 피로하거나 싫어함이 없다.7)
보현보살의 10대원 가운데 10번째 대원, 곧 ‘모든 공덕을 두루 회향한다는 것’은 보현보살의 10대원 가운데 앞의 9가지 대원을 세우고, 그 서원을 실천해서 얻은 공덕을 중생을 위해서 회향한다는 것이다. 중생을 위하는 내용 가운데 “중생이 항상 편안하고 즐거우며 모든 병환의 고통이 없기를 원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 “중생이 항상 편안하고 즐거우며”라는 것이 개인적 차원에서 이루어질 수도 있는 것이지만, 사회적인 차원에서 그 사회 구성원의 삶의 질을 올리기 위해 노력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고, 사회제도의 측면에서는 전반적인 사회제도(사회복지)를 중생의 삶의 질을 향상하기 위해 정비하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그리고 “모든 병환의 고통이 없기를 원하는 것”도 이미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개인적인 차원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지만, 사회적 차원에서도 중생에게 병환의 고통을 없도록 노력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또한 사회제도의 측면에서는 의료보장제도를 잘 세우고 다듬으며, 그리고 그것을 위해 노력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 내용에 대해 「보현행원품」에서는 다음과 같이 전한다.
다시 선남자여! 두루 모든 공덕을 회향한다는 것은 처음 [모든 부처님에게] 예배드리고 내지 [중생을 항상] 수순하는 것까지의 모든 공덕을 온 우주와 허공계의 모든 중생에게 회향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중생이 항상 편안하고 즐거우며 모든 병환의 고통이 없게 되기를 원하는 것이다. 악법(惡法)을 행하고자 하는 것은 모두 이루어지지 않고, 닦은 선업(善業)은 모두 빨리 성취되기를 원하는 것이며, 모든 악취(惡趣)의 문을 닫고 사람과 하늘세계와 열반의 바른 길은 열어 보이기를 원하는 것이다. 만약 중생이 여러 악업을 쌓아놓은 것으로 인해서 모든 극히 중한 고통의 과보를 받게 된다면, 내가 모두 [그 고통을] 대신 받으면서 중생이 해탈을 모두 얻어서 구경에는 위없는 깨달음을 성취하기를 원하는 것이다. 보살은 이와 같이 닦은 공덕을 회향한다. 허공계가 다하고 중생계가 다하며, 중생의 업이 다하고 중생의 번뇌가 다하더라도 나의 이러한 회향은 다함이 없을 것이다. [회향이] 생각마다 이어져서 끊어짐이 없고 [회향에 대한] 몸의 업, 말의 업, 뜻의 업에 피로하거나 싫어함이 없다.8)
『약사유리광여래본원공덕경(藥師琉璃光如來本願功德經: 약사경)』에서는 약사여래의 12대원(大願)을 제시하고 있는데, 이 12대원 가운데 사회참여적 측면을 포함하고 있는 부분을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약사여래의 12대원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제1대원은 자기의 몸과 다른 사람의 몸의 광명이 강렬하기를 원하는 것이다. 제2대원은 거룩한 위덕(威德)으로 중생을 개발하기를 원하는 것이다. 제3대원은 중생이 필요로 하는 것을 다 얻을 수 있도록 원하는 것이다. 제4대원은 중생이 대승의 가르침에 머물기를 원하는 것이다. 제5대원은 중생이 청정행(淸靜行)을 닦고 삼취정계(三聚淨戒)를 갖추기를 원하는 것이다. 제6대원은 장애인이 부족한 신체기관을 갖추고, 질병의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원하는 것이다. 제7대원은 중생이 모든 병환을 제거하고, 위없는 깨달음을 얻기를 원하는 것이다. 제8대원은 모든 여인이 남자의 몸을 바란다면 남자의 몸을 얻기를 원하는 것이다. 제9대원은 중생이 외도(外道)의 견해에서 벗어나 바른 견해를 세우기를 원하는 것이다. 제10대원은 중생이 폭군의 악정(惡政)에서 벗어나기를 원하는 것이다. 제11대원은 중생이 배가 고프면 배부르게 먹기를 원하는 것이다. 제12대원은 중생이 헐벗으면 좋은 의복을 입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런데 12대원에는 사회참여적 측면과 종교적 측면이 서로 섞여있는 대원(大願)도 있다. 그래서 여기서는 12대원 가운데 2가지 곧, 사회참여적 측면을 포함하고 있는 대원, 사회참여적 측면과 종교적인 측면이 서로 섞여 있는 대원으로 나누어서 접근하고자 한다.
앞에 소개한 12대원 가운데 사회참여적 측면이 분명하게 나타나는 것은 제3대원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은 지혜의 방편으로 모든 중생이 필요한 물건을 모두 얻을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개인의 차원에서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회적인 차원에서 중생이 필요한 물건을 모두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또한 이것은 사회제도의 측면에서 소득보장제도를 정비해서 결과적으로 복지사회를 이루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중생이 필요한 것을 다 얻을 수 있는 사회는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복지사회일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보살은 복지사회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제3대원에 관한 인용문은 다음과 같다.
제3대원은 내가 미래에 최고의 깨달음을 얻을 때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지혜의 방편으로 모든 중생[有情]이 필요한 물건을 모두 얻을 수 있게 하여 중생이 조금도 부족하지 않게 할 것을 원하는 것이다.9)
제6대원, 제10대원, 제11대원, 제12대원에는 사회참여적 측면도 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동시에 종교적 측면도 포함되어 있다.
① 제6대원은 장애인이 부족한 신체기관을 얻고, 질병의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원하는 것이다. 이는 개인적 차원에서 이루어질 수도 있겠지만, 사회적인 차원에서 장애인이 장애에서 벗어나고, 질병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고, 사회제도의 측면에서 의료보장제도를 잘 정비하고, 그것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이 점에서는 제6대원에 사회참여적 측면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 약사여래의 이름을 듣고, 이러한 어려움과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원한다고 되어 있다. 이는 약사여래의 신비한 힘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대목에서 약사여래의 제6대원을 사회참여적 측면으로만 읽을 수 없는 지점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제6대원에는 사회참여적 측면과 종교적 측면이 서로 섞여 있다고 할 수 있다. 제6대원에 관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6대원은 내가 미래에 최고의 깨달음을 얻을 때에 만약 모든 중생 가운데 그 몸이 부족하고 신체기관[根]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다면, 예를 들어 추하고 완고하며 어리석거나, 장님·귀머거리·벙어리[瘖啞]이거나, 앉은뱅이[躄]·등이 구부러지거나[背僂], 피부병[白癩]이나 미치거나[癲狂] 하여, 여러 가지 병의 고통으로 고생한다면, 나의 이름을 듣고 모든 부족하고 장애가 있는 사람이 모두 단정함과 총명함[黠慧]을 얻고 모든 신체기관이 잘 갖추어지고 여러 질병의 고통이 없기를 원하는 것이다.10)
② 제10대원은 왕법(王法)에 의해 처벌받는 고통, 예를 들면 감옥에 갇히거나, 사형을 당하거나, 욕됨 등을 당해서 몸과 마음이 고통을 받는다면, 중생이 이러한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원하는 것이다. 이처럼 ‘왕법’에 의해 처벌받는 고통에서 중생이 벗어나기를 원하는 것은 개인적 차원에서 이루어질 수 있겠지만, 또한 사회적 차원에서도 해석할 수 있다. 그것은 정당한 법에 의한 처벌이라고 해도 인권의 차원에서 가혹한 형벌은 피하자고 제안할 수 있고, 현대의 삼권분립의 차원에서 형벌을 결정하고 집행하는 방향으로 사회적 제도를 바꾸기 위해 노력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제10대원에는 약사여래의 이름을 들으면 약사여래의 복덕(福力)과 위신력(威神力)으로 인해서, 왕법에 의해 처벌받는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원한다고 하므로, 이는 종교적인 영역에 속하는 것이다. 따라서 제10대원에는 사회적인 측면과 종교적 측면이 서로 섞여있다고 하겠다. 제10대원에 관한 인용문은 다음과 같다.
제10대원은 내가 미래에 최고의 깨달음을 얻을 때에 만약 모든 중생이 왕법(王法)의 기록된 내용에 의해 포승줄에 묶이고 채찍으로 맞으며, 감옥에 갇히며, 혹은 형벌로 사형을 당하거나, 그 밖의 헤아릴 수 없는 재난과 욕됨[凌辱]을 당하여서, 근심[悲愁]이 들이닥쳐서 몸과 마음이 고통을 받는다면, 만약 이 중생이 나의 이름을 듣는다면 나의 복덕(福德)과 위신력(威神力)으로 인해서 모든 근심과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원하는 것이다.11)
③ 제11대원은 중생이 굶주림과 목마름의 고통으로 인해 악업을 짓게 된다면, 가장 좋은 음식을 그 중생이 먹도록 하고, 진리의 가르침으로 안락하게 되기를 원하는 것이다. 이 내용도 개인적인 차원에서 해석할 수 있지만, 사회적인 차원에서 중생이 굶주림의 고통에서 벗어나고, 정신적으로 안락하게 되도록 노력하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고, 사회제도의 측면에서 소득보장제도를 다듬어서 최저생계는 유지하도록 하고, 그 다음에 정신적 만족을 추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제11대원에는 약사여래의 이름을 듣고 약사여래의 이름을 염불하고 간직한다면 위에서 말한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원한다고 하므로, 이는 종교적인 차원의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제11대원에도 사회적인 차원과 종교적인 차원의 내용이 서로 섞여 있다고 할 수 있다. 제11대원에 관한 인용문은 다음과 같다.
제11대원은 내가 미래에 최고의 깨달음을 얻을 때에 만약 모든 중생이 굶주림과 목마름으로 고통을 당하여서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악업을 짓는다면, 만약 나의 이름을 듣고 오로지 나의 이름을 염불하고 간직한다면, 내가 우선 최상의 묘한 음식으로 그 중생의 몸을 배부르게 먹게 하고, 뒤에 진리의 가르침[法味]으로 끝내는 편안하고 즐겁게 하고, 제대로 활동하기[建立]를 원하는 것이다.12)
④ 제12대원은 중생이 가난해서 의복이 없고, 그로 인해 모기에 물리는 등의 여러 고통을 당한다면, 좋은 의복을 입을 수 있도록 하고, 나아가 보배의 장신구(장엄구)와 문화적 활동 등을 갖출 수 있도록 해 준다는 것이다. 이 내용도 개인적인 차원에서 해석할 수 있지만, 사회적인 차원에서 중생이 가난해서 의복을 입지 못하는 일이 없고, 나아가 중생이 보배의 장신구와 문화적 활동 등을 갖출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또한 사회제도의 측면에서 소득보장제도를 정비해서 최저생계의 문제를 해결하여 의복이 없는 사람이 없도록 하고, 나아가 경우에 따라서는 의복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보배의 장신구와 문화적 활동 등까지도 많은 사람이 갖출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그렇지만, 제12대원에서는 약사여래의 이름을 듣고, 오직 약사여래의 이름을 염불하고 간직하면, 위의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원한다고 하므로, 이도 종교적인 차원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제12대원에도 사회적인 차원과 종교적인 차원의 내용이 서로 섞여 있다고 할 수 있다. 제12대원에 관한 인용문은 다음과 같다.
제12대원은 내가 미래에 최고의 깨달음을 얻을 때에 만약 모든 중생이 가난하고 의복이 없어서 모기와 추위와 더위에 밤낮으로 시달린다면, 만약 나의 이름을 듣고 오로지 나의 이름을 염불하고 간직한다면 그 중생이 좋아하는 여러 가지 최상의 묘한 의복을 얻게 하기를 원하는 것이며, 또한 모든 보배의 장엄구와 화만(華鬘: 머리나 몸을 장식하는 것), 도향(塗香: 분말의 향), 고악(鼓樂: 음악을 연주함), 중기(衆伎: 여러 공연)를 좋아하는 대로 얻게 해서 모두 만족하도록 하기를 원하는 것이다.13)
보살의 자비정신이 잘 표현된 것은 『유마경』에서 ‘중생이 병들어 있으므로 보살도 아프다’라는 취지로 한 것이라고 할 수 있고, 이는 『법화경』의 상불경보살의 실천행, 곧 중생에 대한 존중으로 드러난다. 『화엄경』40권본의 「보현행원품」에서 10대원을 말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사회참여적 측면을 읽을 수 있는 것은 다음의 3가지 대원이다. 3번째 대원, 곧 ‘부처님에게 널리 공양을 드리는 것’에서는 중생을 이롭게 하는 공양은 개인적 차원에서 실천할 수도 있겠지만, 사회적 차원에서 사회제도의 개선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할 수도 있다. 9번째 대원, 곧 ‘중생을 항상 따르는 것’에서 “여러 병환의 고통에 대해서는 의사가 되고”는 개인적인 차원에서 실천할 수도 있겠지만, 사회적인 차원에서 중생의 여러 병환의 고통을 제거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고, 사회제도의 측면에서는 의료보장제도를 잘 갖추는 것, 그리고 그것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또 “빈궁한 사람에게 감추어진 보물을 얻게 한다”는 것은 사회적인 차원에서 빈궁한 사람이 개인의 능력을 재발견해서 경제력 능력을 갖도록 노력하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고, 사회제도의 측면에서는 소득보장제도(사회보장제도의 하나)를 잘 정비해서 소득보장제도가 제공하는 감추어진 보물을 얻도록 한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10번째 대원, 곧 ‘모든 공덕을 두루 회향하는 것’에서 “중생이 항상 편안하고 즐거우며”라고 한 것은 사회적인 차원에서 중생의 삶의 질을 올리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고, 이는 전반적인 사회제도를 정비하고 다듬을 때에 이루어질 수 있다.
그리고 『약사경』의 12대원 가운데 사회적 차원에서 해석할 수 있는 것은 제3대원이다. 이는 지혜의 방편으로 모든 중생이 필요한 물건을 얻을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인데, 사회적 차원에서 중생이 필요한 물건을 모두 얻도록 보살이 노력하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고, 사회제도의 측면에서는 소득보장제도를 정비해서 그 결과로 복지사회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리고 제6대원, 제10대원, 제11대원, 제12대원에 대해서는 사회적 차원과 사회제도의 측면에서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종교적 차원도 섞여있으므로 이 글에서는 크게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자 한다.
이상의 내용을 다시 정리하면, 「보현행원품」의 3번째 대원은 중생을 이롭게 하기 위해 사회적 차원의 접근을 총론적으로 말한 것이 되고, 9번째 대원과 10번째 대원은 사회적 차원의 접근을 구체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9번째 대원은 사회제도의 측면에서 볼 때, 소득보장제도와 의료보장제도를 잘 갖추고, 그것을 위해 노력하는 것으로 해석되며, 10번째 대원은 사회적으로 중생의 삶의 질을 올리기 위해 노력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리고 『약사경』의 제3대원은 사회제도의 측면에서 볼 때 소득보장제도를 잘 갖추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여기서 살펴본 내용에 따르면, 「보현행원품」의 10대원과 『약사경』의 12대원 가운데 일부 내용은 사회적 차원으로 해석할 수 있고, 그것은 총론적으로 중생을 이롭게 하는 것이 될 것이고, 이것의 구체적 전개로서 여러 병환의 고통을 제거하기 위해 노력하고, 또 빈궁한 사람의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며, 중생의 삶의 질을 올리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될 것이다.
Ⅲ. 월주의 사회참여적 활동
앞에서 소개한 보현보살의 10대원과 약사여래의 12대원에 포함된 사회참여적 측면은 불교인에게는 ‘이상적 모델’에 속하는 것이고, 불교인이라면 이 ‘이상적 모델’에 근접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3장에서 소개하고자 하는 월주의 사회참여적 활동은 이러한 ‘이상적 모델’에 근접하기 위해 노력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월주는 보살행으로서 보현행(普賢行)을 강조하고, 이 보살행의 구체적 실현으로서 여러 가지 활동을 하였지만, 여기서는 그 가운데 ‘남북통일과 평화정착을 위한 활동’, ‘지구촌공생회 활동’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월주가 ‘보현행’을 강조한 것은 앞에 소개한 『화엄경』의 「보현행원품」에 근거한 것이고, 나아가 ‘한반도 차원’과 ‘세계적 차원’에서 보현행을 더 구체화하려고 시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남북통일과 평화정착을 위한 활동’은 ‘한반도 차원’의 보현행(보살행)이라고 할 수 있고, ‘지구촌공생회 활동’은 ‘세계적 차원’의 보현행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월주는 보살행으로서 ‘보현행’을 강조하고, 또한 이것이 ‘한국불교의 과제’임을 힘주어 말하고 있으며, 나아가 ‘글로벌 리더’로서 봉사활동을 하기 위한 6가지 마음자세를 제시하고 있는데, 이는 ‘보살행의 현대적 해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자세한 내용을 살펴본다.
월주는 자기 근원의 마음자리로 돌아가는 것과 중생을 이롭게 하는 것이 둘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여기서 보살행이 나오는 것이다. 이 내용은 다음의 인용문에서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마음을 깨달아 자기 본성자리로 돌아가는 귀일심원(歸一心源)과 세간의 중생을 이익되게 하는 요익중생(饒益衆生) 또한 결코 둘이 아닙니다. 우리는 연기적 존재로서 상의상관 관계에 있으며,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이 인드라망처럼 서로의 삶이 연관되어 있습니다. 겉모습만 다를 뿐 본체(本體)는 같습니다(태공월주, 2016a: 167).
위의 인식에 근거해서 월주는 보살행을 강조한다. 이 보살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자고 주장한다. 그 내용은 가난하고 병든 이웃을 돕고, 생태계의 파괴를 막고, 전쟁을 반대하며, 나아가 지구촌의 생명이 평화롭게 안락하게 살도록 노력하자는 것이다. 다음의 인용문에서 이 내용이 좀 더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구도(求道)의 본질은 자비행(보살행)에 있습니다. 보현행(普賢行)을 통해 보리(菩提)를 얻고 해탈할 수 있다는 신심(信心)을 확고히 실천수행하길 바랍니다. 최선을 다해 부지런히 수행하면서 헐벗고 병든 이웃이 빈곤과 질병의 고통에서 벗어나도록 돕고, 자연재난으로 의식주를 잃은 사람들을 돕고, 못 배운 사람에게 배움의 길을 열어주고, 우물을 파서 기갈에 허덕이는 사람에게 물을 주고, 생태계가 파괴되고 삶의 현장이 오염되는 것을 막고, 전쟁을 반대하며, 국내는 말한 것도 없고 지구촌의 생명이 평화롭고 안락한 삶을 누리도록 생명평화를 실현하는 일에 동참하는 자비가 이 시대의 보살행입니다(태공월주, 2016a: 167-168).
그리고 월주는 앞에서 말한 보살행은 한국불교가 나아가야 할 길이라고 강조한다. 자비의 실천이 불법을 전하고, 중생을 제도하는 길이라고 주장한다. 이 내용에 관한 인용문은 다음과 같다.
앞으로 한국불교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숙고하고 또 성찰하면서 보살행을 병진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현대사회의 소외된 중생들이 겪는 질병, 빈곤, 무지, 인권탄압 등의 사회고(社會苦)와 남북분단과 환경파괴 등의 시대고(時代苦)에 따른 고통을 발고여락(拔苦與樂)의 자비정신으로 경감시켜 줘야 합니다.
지금 당장 배가 고파서 죽을 지경인 사람, 질병으로 시달리는 사람에게 “본래 생사(生死)가 없으니 마음을 갈고 닦아서 진리를 깨달으라”는 심오하고 고차원적인 설법은 그저 귓전을 스쳐지나가는 바람이 되기 쉽습니다.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 그들의 삶의 질을 높여주고, 몸과 마음으로 느끼는 고통을 덜어주고, 인권이 유린되는 질곡의 현실에서 벗어나게끔 돕는 자비야말로 진정한 전법도생(傳法度生)입니다. 불교는 사회전반에 걸쳐 복지에 기여해야 하고, 그 영역의 확대를 통해 자비와 이타의 종교임을 확실히 각인시켜 주어야 합니다(태공월주, 2016a: 176).
나아가 월주는 ‘글로벌 리더’로서 봉사활동을 하기 위한 6가지 마음 자세를 제시한다. 그것은 원력, 전문성, 겸허함, 목표의 성취, 대상자(수혜자)의 존중, 연대의식이다. 이것은 ‘보살행의 현대적 해석’이라고 생각된다. 그 자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원력을 세워야 합니다.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그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자원활동을 함에 있어서 어떤 어려움에 직면할지라도 극복하겠다는 사명감을 가져야 합니다. 둘째, 전문성을 가져야 합니다. 자원봉사활동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이는 자원활동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표현으로 전문성이 수반되어야 하므로 전문적인 지식습득을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셋째,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겸허함을 가져야 합니다. 자원활동을 통해 자기라는 아상(我相)을 내어 명예를 추구하거나 대가를 바라거나 자신의 행위에 대해 집착하는 마음을 지양하여 몸과 입과 뜻을 청정하게 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그들의 삶과 나의 삶이 다르지 않음을 자각해야 합니다. 넷째, 목표한 바를 성취해야 합니다. 자원봉사활동 과정에서 어떤 어려움에 직면하여 여러 가지 회의감이 들어 중간에 포기하고 싶은 욕구가 생겨도 그들의 삶을 항상 생각하고 목표한 것을 이룰 때까지 노력해야 합니다. 다섯째, 대상자(수혜자)를 존중해야 합니다. 항상 온화한 얼굴과 정다운 말로 상대방을 대하며, 대상자의 연령, 성별, 종교, 인종, 사상에 차별을 두지 않고 존중하여야 합니다. 여섯째, 자원활동에 대한 연대의식과 정보의 공유가 필요합니다. 자원활동의 개별성을 지양하고, 활동의 효율성과 역량의 극대화를 도모해야 합니다(태공월주, 2016a: 232).
월주는 보살행의 하나로서 북한주민을 돕는 활동에 동참하였고, ‘감상적 통일지상주의’를 경계하면서 인내심을 갖고 북한과 대화하고 교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월주는 ‘남북교류와 협력의 활동’에서 지켜야할 4가지 기본정신을 제시하고, 나아가 불교의 중도(中道)정신과 원효의 화쟁(和諍)사상에서 남북통일의 원리를 구하자고 주장한다. 그 자세한 내용을 살펴본다.
월주는 30여 년 전부터 불교계 교류와 인도적 지원을 위해서 북한을 10여 차례 다녀왔다. 또 월주는 1995년 2월 북한의 조선불교도연맹 박태호 위원장과 중국의 베이징에서 만나 남북불교대표자 회담을 열기도 했다. 이렇게 여러 차례 접촉한 뒤에 1997년 부처님 오신날 봉축법요식에서 ‘남북불교도 공동발원문’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이 공동발원문은 조선불교도연맹 박태호 위원장과 조계종 총무원장 송월주의 공동명의로 발표한 것이다(태공월주, 2016a: 324-325).
그리고 ‘남북불교도 공동발원문’의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전 민족의 단합된 힘으로 자주적으로 나라의 통일을 실현하려는 우리 민족에게 화해와 화합을 이루기 위한 지혜와 광명을 주십시오. 나아가 인류의 평화를 실현하여 불국정토를 이룩하는 데 우리 불교도들이 앞장 서도록 용기를 주십시오(송월주, 2016b: 287).
월주는 남북한의 통일문제 또는 평화정착의 문제가 해결하기 쉽지 않다고 전망하면서 인내심을 갖고 꾸준히 대화하고 교류하며, 협력해 나가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 내용에 대해 더 자세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남북한은 서로의 체제를 고수하면서 반세기가 훨씬 넘게 적대관계를 유지해 왔습니다. 이러한 과거가 있기 때문에 화해와 평화정책이 쉽게 이루어지리라 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계속 대화하고, 교류하고, 협력하면서 통일에 저해되는 장애물을 하나하나 걷어내야 할 것입니다. 남북 상호 당국자 회담과 군사협력위원회를 통하여 긴장을 완화하고, 전쟁 재발을 막는 평화정착을 위한 노력을 계속해야 합니다. 또한 이산가족들의 재회를 포함한 문화·사회·체육 교류를 활발하게 추진하여 민족의 동질성과 일체감을 이루도록 노력해야 합니다(태공월주, 2016a: 325).
한편, 그러면서도 월주는 통일문제에서 ‘감상적 통일지상주의’를 경계하고 있다. 먼저 ‘문화와 언어의 이질성’을 극복하고, ‘문화의 동질성’을 회복하는 노력을 지속하는 가운데 대화와 교류를 통해 북한과 평화적 관계를 유지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태공월주, 2016a: 305).
이런 관점에서 월주는 남북교류와 협력의 활동에서 다음의 4가지 기본정신을 제시한다. 이는 남북이 교류하고 협력할 때, 서로가 반드시 유념해야 하고 지켜야할 덕목이라고 할 만한 것이다. 그 구체적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로 남북한 당국자가 함께 약속한 7·4공동정신(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을 계승시키고 현실화해야 한다. 두 번째, 진정한 형제애와 동포애를 발휘해 피차간의 자존심이 상하지 않는 범위에서 교류를 추진해야 한다. 세 번째, 상대방의 존재와 가치관을 인정한 상태에서 논의가 진행돼야 한다. 네 번째, 교류협력과 통일이라는 과제는 무한한 인내와 희생, 봉사정신을 요구한다는 폭넓은 이해를 가져야 한다. 통일성업이 남북 어느 한 편에 서서 한 체제나 한 집단, 어느 한 정파의 이익이나 개인의 명리에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송월주, 2016b: 289).
그리고 월주는 구체적으로 불교사상 속에서 통일의 원리를 제시하고자 한다. 그것은 부처님의 중도(中道)사상과 원효의 화쟁(和諍)사상이다. 이 내용에 대한 구체적 인용문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불교인으로서 부처님의 중도사상과 원효스님의 화쟁사상에서 우리 민족이 서로 상생하면서 경제적·문화적으로 번영 발전할 수 있는 통일의 길을 찾아야 합니다. 중도사상은 극단적인 대결을 초월해서 합의 가능한 부분을 도출하는 길입니다. 그리고 화쟁론은 상호간의 서로 다른 이론의 긍정적인 면을 도출시켜 공통점과 합의를 이루는 방법입니다. 화쟁론이 과거 삼국 통일 이후 문화와 상호통합을 이루는 정신적인 기초가 되었듯이 오늘의 남북갈등 문제해결에도 충분히 적용할 수 있습니다(태공월주, 2016a: 326).
나아가, 월주는 1995년부터 ‘북한주민돕기 범불교추진위원회’를 조직해서 총재를 맡으면서 북한 주민을 도왔고, 또 월주는 1995년초부터 시민·사회·종교단체와 함께 ‘우리 민족 서로돕기 운동본부’를 조직하고 상임공동대표를 맡으면서 북한주민을 돕는 일을 함께 해왔다. 그 구체적 내용을 들면, ‘우리 민족 서로돕기 운동본부’에서는 3,000억 원 상당의 물품을 부담하여 북한 주민들에게 식량, 비료, 의약품, 의류, 농기구 등을 보내주었다. 이는 메칭펀드로 지원한 것으로 정부와 이 단체회원이 각각 50퍼센트씩 부담하는 것이다. 월주는 이러한 지원이 북한 주민들을 구제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것이지만, 이러한 지원사업에 동참하게 된 것에는 이러한 지원사업이 이 시대의 보살행이고 동포애를 구현하는 길이라고 확신하였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태공월주, 2016a: 327).
월주는 ‘보현행’의 하나로서 ‘지구촌공생회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월주의 ‘지구촌공생회’의 사상적 배경으로 ‘글로벌 시민의식’, ‘지구촌공동체의식’, ‘불교의 연기법’을 거론한다. 그러면 자세한 내용을 알아본다.
‘지구촌공생회’는 2003년 9월에 출범한 단체인데, 월주가 이사장을 맡았다. 이 단체에서는 캄보디아, 라오스, 몽골, 스리랑카, 미얀마, 네팔, 케냐 등 7개국에 해외지부를 설립하고, 교육지원사업과 식수(우물)사업, 지역개발사업을 중심으로 지구촌 전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캄보디아를 예를 들면, 교육지원사업으로 유치원 5곳(2016년 6월 현재), 초등학교 8곳(2016년 6월 현재)을 건립해서 운영하고 있다. 캄보디아에서도 열악한 지역인 캄폿 등지에서 식수지원사업인 우물공사를 시행해서 2,243개(2016년 6월 현재)를 만들었다. 우물공사를 시행하기 이전에는 이곳에서는 건기마다 마실 물이 없어서 아이들이나 노약자들이 흙탕물이나 웅덩이에 고인 물을 마시다가 온갖 수인성 질병에 시달려서 생명을 잃는 경우가 많았는데, 우물이 많아진 뒤에는 수인성 질환으로 죽거나 고통 받는 사람이 사라졌다고 한다(태공월주, 2016a: 220).
월주는 이러한 사업을 하는 사상적 배경으로 ‘글로벌 시민의식’과 ‘지구촌 공동체의식’을 제시한다. 이 내용에 관한 인용문은 다음과 같다.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요소인 절대빈곤, 기아, 각종 질병, 지속가능한 삶을 위협하는 환경을 바로 제거하고 퇴치하는 사업이 전 지구적으로 추구되지 않고는 인류는 미래를 보장받을 수 없습니다. 비록 국가와 민족, 인종과 언어, 종교와 문화, 이념과 사상의 차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를 차별하지 않고 돕는 일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삶의 의미입니다. 이제 우리 사회도 글로벌 시민의식이 좀 더 성숙하여 기부, 봉사 등 지구촌 이웃에 대한 나눔을 통해 행복의 가치를 찾고, 공동체 정신을 회복하여야 한다(태공월주, 2016a: 224).
또한 ‘지구촌공생회’의 불교사상적 배경은 연기법이라고 할 수 있다. 연기법은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가르침인데, 모든 존재는 한 개체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한 개체의 삶은 다른 많은 삶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우리나라 밖으로 나가서 다른 나라의 어려움에도 귀를 기울이고, 힘을 보탤 수 있는 마음자세가 생길 것이다. 이 내용에 관한 인용문 2개를 소개한다.
오늘날 과학문명의 발달로 지구촌 사람들은 누구든지 지구촌이 한 일터임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한’이란 하나의 일터이기도 하고, 큰 일터이기도 합니다. 마찬가지로 인류는 한 가족이란 말도 하나의 가족이고 큰 가족이라는 뜻입니다. 인류는 하나의 대가족이요, 지구촌은 우리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지혜를 모아야 하고, 가치관을 바로 세워야 하는데, 전 세계의 석학들이 부처님께서 일깨워주신 상의상관(相依相關)의 연기법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연기법이 마음 깊이 자리 잡으면 관념이 아닌 동체대비행이 저절로 나옵니다(태공월주, 2016a: 207).
인류의 스승인 부처님께서는 일찍이 모든 생명은 상의상관(相依相關)관계에 있으며 아무리 미세한 존재라고 하더라도 생명이 존중되어야 하며, 하나의 삶이 또 다른 무수한 삶에 영향을 미치고, 모든 존재는 하나의 삶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설파하셨습니다(태공월주, 2016a: 211).
이처럼, ‘지구촌공생회’의 사상적 배경으로서 ‘글로벌 시민의식’, ‘지구촌 공동체의식’에다 불교의 ‘연기법’을 추가하고, 이제 결론적으로 지구촌을 대상으로 하는 자비행이 펼쳐진다. 그것은 자연과 환경을 살리고 지구촌 평화를 실현하는 일 등이다. 이에 대한 인용문은 다음과 같다.
나의 이웃이 질병과 빈곤의 고통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야 하고 못 배운 사람에게 배움의 길을 열어주어야 하며, 자연과 환경을 살리고 전쟁을 방지하여 지구촌의 평화를 실현하는 일이 우리들의 할 일입니다. 다만 이런 일을 하는 데는 각자 관심분야에 대한 집중과 전문성을 심화하는 노력이 뒤따라야 합니다. 이처럼 우리가 안고 있는 사회적·시대적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이웃의 고통은 덜어주고, 즐거움은 더해주는 실천이 바로 동사섭이요, 동체대비행입니다. 이러한 삶을 살 때 여러분들의 삶은 온전해질 수 있으며, 진정한 행복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태공월주, 2016a: 225).
또한 ‘지구촌공생회’의 활동을 불교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보현행(普賢行)이라고 자리매김할 수 있다. 그 구체적 내용은 다음과 같다.
자신의 수행을 게을리하지 않으면서 빈곤과 질병의 고통에서 벗어나도록 돕고, 자연재난으로 의식주를 잃은 이들을 돕고, 못 배운 사람에게 배움의 길을 열어주고, 우물을 파서 기갈에 허덕이는 사람에게 물을 주고, 생태계가 파괴되고 삶의 환경이 오염되는 것을 막고, 전쟁을 반대하며 지구촌의 생명이 평화롭고 안락한 삶을 누리도록 생명평화를 실현하는 일에 동참하는 것이 구체적인 보현행입니다(태공월주, 2016a: 191).
끝으로, 이 ‘지구촌공생회’의 설립취지문의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우리는 연기론의 관점에서 현실을 바라보아야 하며, 우리 존재의 시야를 넓혀 국내는 물론 지구촌의 문제를 나의 문제로 공히 인식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지구촌 생명의 공존공생과 정치·경제적 평등, 복지사회 구현은 모든 인류의 화두이며 지향점이다. 우리는 이에 모든 인류의 삶의 가치가 서로 다르지 않으며, 다 같이 존중받아야 함을 충분히 각인하고, 주체적 삶을 위한 일에 소명을 다하고자 하는 것이다(송월주, 2016b: 356-357).
Ⅳ. 결론
이 글에서는 『화엄경』40권본 「보현행원품」의 보살사상(보현보살의 10대원)과 『약사경』의 보살사상(약사여래의 12대원)에 나타난 사회참여적 측면을 살펴보고, 그리고 이러한 사회참여적 측면은 불교인이 추구해야 될 ‘이상적 모델’에 속하는 것이지만, 이 ‘이상적 모델’에 근접하기 위해 노력한 사례의 하나로서 월주의 사회참여활동에 대해 살펴보았다. 여기서는 앞의 내용을 요약하고 간단하게 필자의 견해를 제시하는 것으로 결론을 삼고자 한다.
2장 2절에서 「보현행원품」의 10대원 가운데 사회참여적 측면을 포함하고 있는 대원(大願)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것은 3번째 대원 ‘부처님에게 널리 공양하는 것’ 가운데 ‘중생을 이롭게 하는 공양’ 등의 표현에서 확인할 수 있다. ‘중생을 이롭게 하는 공양’을 개인적 차원의 선행에만 국한해서 해석할 것이 아니고, 사회적 차원의 활동도 포함시켜 해석할 수 있다.
9번째 대원 ‘중생을 항상 따르는 것’에서도 사회참여적 측면을 읽을 수 있다. 그것은 개인의 병환의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사회적인 활동을 한다는 것이고, 사회제도의 측면에서는 의료보장제도를 갖추고, 그것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빈궁한 사람이 자신의 능력을 다시 발견해서 경제적 능력을 얻도록 사회적 활동을 펼치는 것이고, 사회제도의 측면에서는 소득보장제도를 잘 정비하고, 그것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10번째 대원 ‘모든 공덕을 두루 회향하는 것’에서도 사회참여적 측면을 읽을 수 있다. 그것은 그 사회구성원의 삶의 질을 올리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고, 이는 전반적 사회제도를 잘 정비할 때 가능할 것이다.
2장 3절에서 『약사경』의 12대원 가운데 사회참여적 측면을 포함하고 있는 대원(大願)에 대해 알아보았다. 그것은 제3대원인데, 그 내용은 ‘지혜의 방편으로 모든 중생이 필요한 물건을 모두 얻을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이는 개인적 차원에서 추구하는 것만은 아니고, 사회적인 차원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고, 사회제도의 측면에서는 소득보장제도를 잘 정비해서 복지사회를 이루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그리고 약사여래의 12대원 가운데 제6대원, 제10대원, 제11대원, 제12대원에는 사회참여적 측면도 있지만, 종교적 측면도 포함되어 있으므로 여기서는 크게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자 한다.
3장에서는 월주의 사회참여활동에 대해 검토하였다. 월주는 보살행으로서 보현행(普賢行)을 강조하는데, 이는 ‘한국불교의 과제’라고 힘주어 말하고 있으며, 또 월주스님은 ‘보살행의 현대적 해석’으로서 ‘글로벌 리더’의 ‘6가지 마음자세’를 제시하고 있다.
또한 월주는 이 보현행(보살행)의 ‘한반도 차원’의 전개로서 남북통일과 평화정착을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 여기서 월주스님은 ‘남북교류와 협력의 활동’에서 지켜야 할 ‘4가지 기본정신’을 제시하고, 아울러 불교의 중도(中道)정신과 원효의 화쟁(和諍)사상에서 ‘남북통일의 원리’를 구하자고 제안한다.
그리고 월주는 이 보현행의 ‘세계적 차원’의 전개로서 ‘지구촌공생회 활동’에 동참하고 있다. 이 ‘지구촌공생회’의 사상적 배경으로는 ‘글로벌 시민의식’과 ‘지구촌공동체 의식’을 거론하고 있고, 또 ‘지구촌공생회’의 불교사상적 배경으로 연기법을 제시한다.
2장에서 거론한 보현보살의 10대원, 약사여래의 12대원에서 사회참여적 측면으로 해석한 내용은 중생을 이롭게 하기 위해 사회적 차원에서 노력한다는 것이고, 이것이 구체적으로 전개되면, 중생의 여러 병환의 고통을 제거하기 위해 사회적 차원에서 노력하고, 빈궁한 사람이 경제적 능력을 갖도록 사회적 차원에서 노력하며, 중생의 삶의 질을 올리기 위해 사회적 차원에서 노력한다는 것이 될 것이다. 그리고 3장에서 살펴본 내용, 곧 월주의 사회참여적 활동은 이러한 보살사상의 사회참여적 측면을 일정부분 받아들이면서 그것을 ‘한반도 차원’과 ‘세계적 차원’에서 더욱 구체화한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만의 4대종문 가운데 ‘자제공덕회 활동’과 월주의 활동을 비교하면, 월주의 활동을 계승하는 쪽에서 아직도 더욱 분발할 측면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만의 ‘자제공덕회’에는 700만 회원(많게는 1,000만 회원)이 있다고 하는데, 이는 사회참여적 활동을 추구하는 한국불교의 단체에게, 나아가 같은 목적을 가진 대부분의 불교단체에게 모범적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자제공덕회 활동’은 곧 동아시아 불교인의 자긍심이라고 말하고 싶다.
끝으로, 보현보살의 10대원 가운데 9번째 대원 ‘중생을 항상 따르는 것’에서 그 중생의 범위가 인간을 넘어서 동물, 곤충에 이르고, 나아가 천룡팔부중생, 유색(有色)의 존재, 무색(無色)의 존재, 유상(有想)의 존재, 무상(無想)의 존재, 유상(有想)도 아니고 무상(無想)도 아닌 존재[非有想非無想]에 이른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고 싶다. 이는 보살행의 대상이 매우 넓음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보현보살의 10대원에서 ‘허공계가 다하고 중생계가 다할지라도 계속 매진하겠다’는 마음자세, 곧 보살행을 실천하는 마음자세는 우리 중생에게 소중한 귀감이 될 만한 내용이라고 생각한다.